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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한번 하면 끝까지 한다(2017.06)

 

 

 

 

 

한번 하면

끝까지 한다

 

 

 

부산공업고등학교

손정웅 선생님

 

 

 

 

인터뷰,사진 조창완

 

 

부족한 시작을 준비하신 하나님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지요. 가세는 기울었고 저는 집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신문배달을 하기도 했죠.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아버지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셨음에도 가족들의 배려로 나름대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한쪽 신경은 병석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스스로에게 많은 제약을 준 시기이기도 하였지요. 그래서인지 중고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특별한 추억이 없어 좀 아쉽기도 합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공고 기계과에 진학했습니다. 사실 가족들은 인문고에 가기를 원했지만 저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취업해서 빨리 돈을 벌고 싶었기에 공고를 선택했지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취업이 되었지만 가족들은 저에게 대학을 가는 것이 어떠냐고 강하게 권유했습니다. 그래도 막내아들 대학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수능 공부를 해 본 적 없는 제가 좋은 결과를 얻을 리가 없었지요.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재수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안 하던 공부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14시간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셨는지 다음 해 대학에 합격하였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입학금도 면제받았습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게 되었고 제대 후 1년간 일명 노가다라고 하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죠. 친구들에 비해 사회 진출이 늦어진다는 불안감과 함께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2000년 복학을 했는데 아는 선배의 소개로 과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거기서 연구 활동을 도우며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기독교사 도전기

졸업을 앞둔 4학년 2학기 때 지금까지 만든 스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 속에서 선택한 것이 바로 교사였습니다. 다른 기독교사들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소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죠. 첫 해 무작정 임용고사를 쳤지만 당연히 떨어졌고 졸업 후 백수로 지내는 것보다는 교사로서 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알아봤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냥 공부만 하자고 생각하는 시점에 모교에서 연락이 와 첫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46개월 동안 기간제 교사생활을 하면서 5번의 임용고사를 치렀습니다.

교사생활을 하며 임용고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퇴근 후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매일매일 공부했으니까요.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한 번씩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악몽(?)으로 다시 만나곤 합니다. 4번째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제가 했던 기도 중 한 가지는 제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올바른 교사로 살아갈 수 있다면 합격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기도죠. 하나님이 너 별로네하시며 불합격을 주셨을 수도 있는데,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겨 지금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기간제 교사 시절 친구를 통해 처음 TCF(한국기독교사회)를 소개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기간제 교사라는 열등감 때문에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이기 머뭇거리게 되더라구요. 나중에 그 친구가 2006 기독교사대회도 소개해 주었습니다. 여기가 어떤 곳일까라는 궁금함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사교성이 부족한 저는 대회 기간 동안 주변인처럼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날 저녁 기도회 시간에 더 이상 임용고사 준비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교사가 되어 2008 기독교사대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마음과 기독교사로서 교사 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믿기지 않게 두 기도 모두 응답을 받았습니다. 20075번째 임용고사에서 합격했고 TCF 공동체에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년 첫 학교를 발령받았는데 제가 기간제 경력이 많다 보니 바로 1정 연수 대상자가 되었지요. 하지만 2006 기독교사대회 때 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정 연수를 포기하고 2008 기독교사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덕분에 2008 기독교사대회는 2006년 때와는 다른 감격과 은혜를 누리게 되기도 하였지요.

임용 후 TCF라는 공동체에 들어갔지만 사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성향은 정해진 규칙과 목적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말보다 서류가 편한 사람인데 TCF는 그런 공동체가 아닌 거죠. 느슨한 조직에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모습은 저 같은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적응하기에 쉽지 않았죠. 이제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분위기를 맞출 수 있는 상태는 되었지만 여전히 사교성이 부족해 적응 중입니다. 이런 사람이 TCF 부산지역 대표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다 하나님의 은혜죠.

 

새로운 세계, 해외교육탐방

해외교육탐방에 갈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2013년 좋은교사에서 주최한 핀란드덴마크 교육탐방과 2016년엔 TCF가 주최한 핀란드덴마크독일 탐방이었습니다. 사실 탐방기간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보면서 그들의 앞선 교육시스템과 신뢰의 문화가 부러워 막연한 동경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 교육의 지향점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알게 된 루터와 프랑케의 모습은 저에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이기 위해 새벽녘 홀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걸었던 그 길을 걸을 때의 감동, 프랑케가 전쟁 후 고아들을 위해 학교와 도서관을 세웠던 노력이 제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그들도 자신의 앞길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었던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깃발을 만들었고 그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나아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요.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밑바탕에 루터와 프랑케 같은 이들의 결단과 실천이 있었다는 사실이 저에게 많은 감격이 되더라고요. 해외교육탐방은 이러한 감격 속에서 제가 현재의 위치에서 어떤 깃발을 만들고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일롱 교사를 위한 팟캐스트 <샘샘샘>

팟캐스트 <샘샘샘>TCF 현승호 공동대표의 제안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교사단체마다 줄어드는 2030 세대에게 어필하고 소통하기 위한 매체로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죠. 남보다 먼저 나서서 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한 성격이라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방송 의도가 좋고 새로운 것이라는 도전의식에 이끌려 방송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아무 장비도 없이 아이폰 한 대로 녹음하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8회 방송부터는 전문 장비를 구입해 이제는 제법 방송인 포스를 풍기기도 합니다.

<샘샘샘>의 기본 컨셉은 나일롱 교사를 위한 방송입니다. 나일롱 교사가 부정적인 의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평범한 교사들을 지칭합니다. 교직에 처음 나설 때는 큰 뜻을 품고 나갔지만 세월의 무게와 교육의 현실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너져 버린 교사들이 대상인거죠. <샘샘샘>이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고 그래도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송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방송이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세 명의 선생님이 진행을 하는데 아이디어 회의, 방송 순서, 게스트 선정, 방송 컨셉, 콘티 작업, 편집 등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가장 힘든 건 진행자끼리 만나는 거예요. 각자 사는 지역이 인천, 부산, 제주입니다. 게스트에 따라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방송한 지 1년이 되어 가는데 들인 정성에 비해 청취율이 오르지 않아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좋은교사 선생님들이 팟캐스트 방송 <샘샘샘>을 청취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들어야할 깃발

사실 특별히 꿈꾸는 교사의 모습은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한다면 TCF 공동체와 공업계 학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먼저는 TCF 공동체 속에서 사람을 키우고 올바른 가치관을 전달할 수 있는 선배 교사가 되는 것이겠죠. 저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교사들에게 덕을 끼치고 자연스럽게 저를 따를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네요. 공업계 교사로서 해외교육탐방을 통해 알게 된 유럽의 직업교육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루터와 프랑케처럼 나만의 깃발을 들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직업교육과 다양한 직업교육정책에 관심을 갖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인거죠.

저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안에 대해 각각의 경우를 다 확인해 보아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오랜 기간 고민을 통해 올바르다고 결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합니다. 어려서 교회를 다닌 것도, 낙방해도 계속 임용고사를 준비한 것도,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올라오는 공업계 교사생활도, TCF에 남아있는 것도, 팟캐스트 방송을 하는 것도 모두 제 결정의 결과물들이겠죠. 이런 제 성격상 정년퇴임할 때쯤 되면 좋은교사운동에 제 흔적 하나는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