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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소명의 길을 찾아가는 진로교사(2016.6)

북한 아이들에게 세계를 연결해주고 싶고, 나아가 세계를 섬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관심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특별히 교육을 통해 북한을 섬기고 통일을 준비한다면 좋겠습니다. 각자 노력한 것들을 잘 모아서 통일한국에 작은 발판을 마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명의 길을 찾아가는

진로교사


숭의여자고등학교 김진훈 선생님




글, 사진·김현경




나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아름답게 쌓은 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좋으면 좋을수록 나의 공은 커지고, 결과에 대한 소유욕은 늘어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김진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쌓은 성을 기꺼이 포기할 때 그보다 놀라운 비전이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성의 근원을 포기하는 훈련

보배 진(珍), 공 훈(勳), 제 이름입니다. ‘나라에 공을 세우는 보배가 되어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어주셨대요. 자신보다 국가를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많은 역사서와 위인전을 특히 좋아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다나카 요시키가 쓴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장편소설을 읽고 군인을 꿈꾸었지요. 이후로 일본 전국시대의 패권을 다룬 <대망>을 읽었고, <삼국지>, <초한지>, <손자병법> 등의 책에 빠져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늘 “군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육군사관학교를 목표로 공부했지요. 결론적으로는 사관학교 입시에 실패했습니다. 저의 경우엔 삶의 포인트마다 군대 문제가 있었어요. 저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준게 군대죠. 사관학교에 떨어지고 나서는 하나님이 안 계실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 주일 설교를 통해 깨닫게 하신 것이 있어요. 하갈이 광야로 쫓겨났는데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라는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지요. 지금 이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을 열어주실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대학 가서는 ROTC에 지원했어요. 육군장교의 길을 가려고 했죠. 2학년 때 ROTC 후보생 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기초 군사 훈련을 앞두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훈련이 제가 속해있던 선교단체 겨울수련회와 날짜가 겹치는 거예요. 선교단체 간사님은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는 마태복음 19장 29절 말씀을 들려주시며 대학 3,4학년을 ROTC 보다 더 값진 신앙 훈련에 매진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강권하셨습니다. 

사실 군 문제야 말로 저의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자기중심성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때까지의 제 신앙은 상황과 여건이 허락되는 범위에서만 하나님을 따르는 모습이었어요. 이제 저에게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었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관학교 입시는 떨어진 거지만, 붙은 ROTC를 포기할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 고민 끝에 내가 쥐고 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인생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ROTC 입교를 위한 물품을 반납하고, 겨울수련회에 참석했죠. 간사님 말씀처럼 3, 4학년엔 공동체에서 신앙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는 선교단체 지체들과 학사장교 시험을 치렀습니다. 한 학년 위였던 김태현 선배와 나란히 합격하여 사관후보생 훈련을 같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중학교 때 기도했던 육군장교가 되어 군 생활을 할 수 있었지요. 돌아보면 사관학교에 떨어지고, ROTC를 포기하고, 학사장교에 합격한 과정이 저의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되어 있습니다. 막막한 인생에서 내 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게 된 과정이었죠.


숭의여고에 첫발을 들이다 

고된 군 생활을 정신없이 보내며 전역할 즈음하여 진로를 교직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사관학교 입시에 실패한 저는 행정학과에 진학했고, 입대 전에는 행정학과 일반대학원에 등록한 상태였습니다. 미국 유학 후 국제기구를 통해 개발도상국으로 가서 사회 경제 개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었죠. 그러나 유학을 가기에는 영어의 장벽과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다가 대학에서 교직이수 한 것을 살려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에서 결혼까지 한 상태였는데, 제대 후에 노량진으로 학원을 다니며 임용고시를 준비하자니 절박했습니다.   

임용에는 낙방했습니다. 사립학교를 알아보았죠. 숭의여자고등학교에서 사회교사를 채용한다기에 경험삼아 원서를 냈습니다. 숭의여고는 1903년에 평양에 세워졌다가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자진 폐교, 해방 후 남산 신사 터를 허물고 학교를 재건, 100주년을 맞아 2003년에 대방동으로 이전한 기독교학교였습니다. 비사범계에 교직경력이 전무한 제가 감히 꿈꿀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0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에 1차 서류심사, 2차 시강, 면접을 치렀습니다. 선교단체 선후배들 앞에서 수업 시연을 하고, 김태현 선배의 수업코칭도 받고, 아내가 힘써 기도해주었습니다. 합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도전했습니다. 최종 이사장 면접 후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기에 떨어진 것으로 알고 터덜터덜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최종 합격했으니 학교에 와서 서류를 작성하라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백수 사위, 드디어 일자리 얻었습니다! 그동안 믿고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사회교사는 나의 소명?

처음 교사가 되어 여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쑥스러운 거예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혼자 수업했습니다. 수업에 자신이 없어서 전교조 산하의 ‘전국사회교사모임’에 찾아갔습니다. 3년간 교재 연구, 독서 토론, 수업 시연 등의 활동을 하며 사회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고 수업에 대해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교과수업에 대한 신앙적인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2006년 기독교사대회’가 있었는데, 대학시절 같은 선교단체에서 동고동락했던 김태현 선배가 같이 가자고 해서 참여했어요. “이런 곳이 있다니!” 감탄하며 정말 도움 많이 받았지요. 

대회 중에 한동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알게 되었고, 2007년부터 다니게 되었습니다. 양승훈, 제양규, 현창기 교수님을 통해 창조-타락-구속의 기독교 세계관을 배울 수 있었어요. 박상진, 김성수, 이은실 교수님을 비롯해 이상찬, 김중훈 선배를 통해서는 기독교적 배움의 공동체와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요. 특히 이국운 교수님을 통해 사회교과 속의 프로테스탄트적 기원에 대해 배우며, 사회교사로서 ‘아, 이거구나!’하고 사회수업에 대한 큰 비전을 갖게 되었어요. 아이들에게 사회수업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줄 수 있게 된 것이죠. 

예를 들어 고등학교 정치, 법과사회 과목에 나오는 천부인권사상을 가르칠 때, 보통은 홉스·로크·루소 사상가를 비교하는데서 그쳐요. 시험에서는 세 사상가가 말한 내용을 헷갈리지 않고 쓰는 것이 중요한 정도죠. 그런데 이 개념을 가르칠 때 기독교적인 내러티브를 잘 담아낼 수 있습니다. 천부인권사상의 기원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소중한 권리가 있다는 것, 그래서 각 개인 사이에 우열이 있어선 안 되고 이를 잘 지켜야 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로크의 신앙적 배경, 홉스나 루소가 생각했던 기독교적인 가치가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것이 결국 시민혁명, 민주주의 정치체제 까지 간 것이라는 개념을 수업에 녹여낼 수 있었죠. 본질을 잊고 피상적인 시스템만 이해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잘 설명할 때 아이들의 눈이 빤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자체 교재도 만들고, 수업에도 굉장히 애정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2008년 기독교사대회’에서는 김효수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현관 앞 계단에서 기독교적 사회교육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했었죠. 그 후로 ‘기독사회교사모임’을 만들어서 이봉수, 임종화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두세 번 저희 집에도 초대하여 함께 식사 교제와 연수 준비도 하며, 동지애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2010년 기독교사대회’때는 이 모임에서 기독교적 사회수업에 관한 연수를 진행하기도 했었죠. 


공동체를 위한 결정은 결코 헛되지 않다

2011년,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며 중고등학교에 ‘진로진학상담교사’를 배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신청 마감일을 이틀 앞두고 교감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누군가 한명은 가야하는데 김진훈 선생님이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취지에 걸맞게 잘 해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과목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600시간 진로진학상담 부전공 연수를 받아야 한다고 했죠. 그때 저는 사회교사로 한창 물이 올랐다고 생각했고, 학생들이 수능에서 성과를 내도록 도울 수 있겠다는 감도 있었어요. 더군다나 주위에서 이 제도가 곧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도 들렸었죠.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결국 저는 공동체를 위한 결정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신청 마감 전날 진로진학상담교사에 지원했습니다. 연수를 받으며 진학을 넘어 진로와 소명이라는 틀 속에서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특히 ‘기독교적 소명교육’이라는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진로진학상담교사로서 아이들이 진로 역량을 키워서 삶 전체를 잘 개척하도록 돕고 싶어요. 하나님이 아이들 삶에 맡기신 의미 있는 일을 스스로 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 제 소명입니다. 그래서 자기 삶에 하나님이 맡기신 영역과 도전할 부분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이 도우려 합니다. 진로프로젝트수업, 소논문쓰기 활동 등을 통해 아이들이 그들 삶을 통해 섬길 대상이나 영역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요. 학생들은 진로수업 열심히 하면 무슨 성적 받는 것도 아닌데 정말 몰입해서 수업에 참여합니다. 수업시간에 팀 프로젝트 하고 자료를 제작하고 발표하는 것을 정말 즐거워해요. 너무 과열되지 않도록 제가 조절해야 할 정도예요. 


평양 학교의 수위아저씨

진로수업 첫 시간에는 꿈 이야기를 해요. 사람마다 독특한 꿈이 있다고 말하며 수업을 시작하죠. 아이들에게 제 꿈을 먼저 말하는데요. “선생님 꿈은 언젠가 평양에 숭의여고를 재건해서 수위아저씨가 되어 아이들에게 인사 나누는 것이야.” 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숭의여고는 평양에서 세워진 학교예요. 언젠가는 평양에 돌아가 학교를 재건해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죠. 제가 이런 비전을 갖기까지 여러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 북한을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 중국 연길, 단동, 도문 쪽으로 단기선교를 갔을 때예요. 7명 정도가 모여서 조선족 교회에 가서 성경공부하고, 압록강 접경 지역에 가서 북한을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게 저한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강폭이 정말 좁은데. 바로 건너편에서 북한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놀고 있더라고요. 여름이어서 팬티만 입고, 막 놀고 있는 거예요. 그 장면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중국을 통해 탈북한 제 또래 청년을 만난 적도 있는데요. 저보다 한 15년은 더 험하게 살아온 사람 같이 여겨졌어요. 이런 만남을 통해 내 인생에서 어떻게든 북한 혹은 제3 세계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뿐만 아니라 대학 선교단체에서 날이면 날마다 들은 이야기가 ‘성서한국, 세계선교’ 였어요. 대학시절에는 잘 몰랐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이게 얼마나 소중한 정신이였는지 알게 되었죠. 세속적인 가치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저를 지켜주는 정신이 되었어요. ‘성서한국, 세계선교’라는 큰 비전 앞에 내가 조그만 일부가 되어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 마음 가운데 북한에 대한 비전도 싹튼 것 같아요.

그동안은 생각만 하다가,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북한과의 교류가 불가능하지만 통일된 이후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죠.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나는 탈북 청소년이 있는 학교와 접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대학 때 경험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조중접경지역을 탐방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기회들이 차츰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탈북 학생을 지도했던 경험을 통해 탈북 학생들과 연계해서 진로진학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조선족 학생들과의 접촉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지난겨울에는 조선족 학생들과 선생님들 초청해서 5일 동안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복음이 차고 넘쳐서 새롭지 않은 이야기잖아요. 그분들이 우리의 섬김이 대체 뭔가 궁금해 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예수를 물어 와요. 중국에서 복음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없었던 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죠. 이런 경험이 이후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겠지만, 질문이 왔을 때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 이것을 통해 세계선교의 길도 열릴 것이라 꿈꾸게 되었어요.

올 7월에는 우리 학교 학생 7명과 함께 중국으로 동북아평화기행을 하게 됩니다. 백두산, 용정, 연길로 이어지는 탐방코스를 기획하여 이미 두 번의 답사도 마친 상태예요. 이 여행이 우리 아이들에게 통일과 동북아 평화에 대한 비전을 주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조선족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조선족 사회를 경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북한 사회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경험이 북한 섬김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백조선족학교와 교류도 추진 중인데요. 장백을 여행하는 중에 ‘학교가 있을 것이다, 조선족이니까 말은 통하겠지’ 하고 무작정 문 두드려서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장백학교는 한국과의 교육적 접촉에 적극적입니다. 감사하죠.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장백은 압록강을 사이로 북한 혜산시를 마주하고 있는 곳입니다. 장백학교를 통해 혜산, 혜산을 통해 평양으로 교육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평양에 학교 세우기까지가 목표예요. 

우리가 하필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북한 아이들이 세계와의 연결고리가 없는 채로 북한이 개방되면 큰 어려움 맞게 될 것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세계를 연결해주고 싶고, 나아가 세계를 섬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관심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특별히 교육을 통해 북한을 섬기고 통일을 준비한다면 좋겠습니다. 각자 노력한 것들을 잘 모아서 통일한국에 작은 발판을 마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학생들이 소명을 찾도록 도와주는 김진훈 선생님과 인터뷰하며 ‘학생들에게 들려줄 꿈이 있는 교사가 학생들을 꿈꾸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과 세계선교의 소명을 가지고, 선생님의 꿈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진로진학상담교사로, 통일을 준비하는 교사로 소명을 따라 사는 선생님의 삶이 많은 독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