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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물 만난 물고기를 만드는 물이어야 합니다(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_2017.08)

 

 

 

교육은 물 만난

물고기를 만드는

물이어야 합니다

 

 

 

인터뷰 김진우 사진 조창완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교육공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의 연구 조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잘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분야를 10년 넘게 가르쳤고,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약 7년간 교수들의 강의를 분석하고 컨설팅했다. 수년간 축적된 연구를 기반으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출간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KBS <명견만리>, EBS <교육대기획 - 시험>, EBS <초대석>, KBS <교육 혁신 프로젝트 - 학교의 진화> 등에 출연했고 매일경제 명예기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교육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참고: 예스24)

 

 

최근 수능 절대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으로 교육계에 핫 이슈를 던진 이혜정 소장은 시험의 문제를 바꾸지 않은 채 논의되는 절대평가 논쟁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 잘라 말한다. 우선 무엇을 평가할 것인지부터 분명히 하라. 이것이 그가 한국의 교육, 시험에 대해 던지는 화두다. 특히 시험의 정점에 존재하는 대입시험(수능과 내신 포함)의 형태를 바꾸지 않고는 한국 교육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의 시험을 통해 그 대안으로 IB형 평가를 들고 왔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622일 이루어졌다. 이 소장은 좋은교사운동이 바칼로레아식 논술형 평가를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소름끼치는반가움을 표시했다.

 

 

최근 수능 절대평가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회의 평등이나 경쟁 완화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잖아요. 그러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아예 다른 방향을 향해 뛰고 있어요. 거기서 평등과 경쟁 완화가 된다 해도 엉뚱한 방향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잖아요.

대한민국의 시험을 통해 그는 IB형 평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자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는 다른 것이다. 원래 해외 주재원 학생들을 위한 국제적 교육 커리큘럼으로 1968년부터 개발된 것으로, 현재 스위스에 본부가 있고 영국에 채점센터가 있으며 세계 각 지역에 지사가 운영되고 있다. 아시아 권역은 싱가포르에 지사가 있다. IB는 커리큘럼이기도 하고, 시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등(Primary Year Program), 중등(Middle Year Program), 고등(Diploma Program) 커리큘럼으로 개발되어 있다.

 

 

IB가 대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개인적으로 늘 한국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첫째아이가 한국 공교육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탈출을 했어요. 탈출했던 학교가 IB학교여서 그때 처음으로 IB를 접하게 되었어요. 둘째는 한국의 일반 공립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두 아이가 배우는 방식의 차이가 눈에 보이는 겁니다. 첫째는 검색을 해서 알 수 있는 정보를 아는 것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아요. 둘째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그런 지식을 말하면 주위에서 높게 인정을 해 준다는 것이지요. 반면 첫째는 남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환경에 있는 것이지요. IB 커리큘럼과 평가는 학생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자극합니다. 둘째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네 생각을 이야기해 봐.”라고 질문하면 엄마, 그건 시험에 안 나와요.”라고 해요. 그런데 IB의 한국어 시험은 예를 들면 어떤 이유로 문학 작품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여러분이 공부한 작품 중 적어도 두 작품을 참조해서 쓰십시오.”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한 문제를 골라서 2시간 동안 쓰는 것입니다.

IB는 기본적으로 어떤 지역에 국한된 지식을 중심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특정지역에서만 유용한 What to think가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나 유용한 How to think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 추정으로는 유대인에게 이런 마인드가 있어요. 이들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유대인은 DNA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문화가 결정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개념을 생산해냈습니다. 은행, 주식, 신용카드. 이런 개념들말이지요. 이들의 생각하는 능력, ‘How to think’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동안 이런 부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생각해보면 지난 수십 년간 추격형 경제성장 모델이었기 때문에 이런 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저출산 고령화, 인공지능, 글로벌 마인드, 이런 화두가 등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지식이 아니라 IB에서 추구하는 능력과 같은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IB와 영국의 A-level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A-level도 굉장히 비슷한데, 영국의 교육철학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보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과목 수가 적어요. 영국의 A-level3과목만 선택하면 돼요. IB6과목을 선택하는데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의 역량을 훈련시킵니다. IB가 아이들에게 상당히 도전적 과제를 던져주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것이 TOK(Theory of knowledge)입니다. 철학의 인식론과 비슷해요. 교과공부만 하면 그 안에 매몰되기 쉬운데 고개를 들고 내가 공부하는 지식 자체의 근원과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요. 얼마 전, SBS 스페셜 2, 학교를 묻다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는데요. 요즘 2이라는 것이 늘었는데 자존감이 완전 바닥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 때는 대학에 들어가서 놀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바로 취업을 위해 학점에 매달립니다. 깊게 성찰할 시간을 못 갖고 달리다 보니 정신적으로 지쳐버리는 것 같아요. 왜 공부하는지와 같은 생각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 TOK입니다. 성찰 과정을 논문으로 쓰는 것이지요. 이건 선택교과와 달리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반드시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이 있고 내용도 좋아요. 하지만 문제는 생각을 안 한다는 겁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수업 시간에 우리 고장의 문화재를 알아보자라는 질문으로 기껏해야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이야기를 하는 수준으로는 생각하는 근육을 기를 수 없습니다. 땀이 안 날 정도로 가볍게 뛰는 것은 운동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각자의 최고치를 끌어낼 때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질문하고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TOK에서는 6개의 질문을 학기 초에 주고 하나를 선택해서 7~8개월에 걸쳐 그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합니다. 일주일에 2TOK수업이 있어요. 그동안 선생님이랑 계속 이야기를 해요. 다른 아이들도 같이 질문을 던지고 반박을 해요. 실제로 국가가 어떤 인재상을 추구하는지는 그 나라의 대입시험 문제만 봐도 알 수 있어요.

 

 

TOK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성장이 나타난다고 보세요?

굉장한 성장이 있다는 것을 교사들이 느낀다고 해요. 제가 한 교사에게 “TOK를 어떻게 가르치나요?”라고 물었더니 가르치지 않는 것이 가르치는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계속 질문을 해서 아이들이 그걸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기의 역할이라고 해요. 그러면 가르치는 콘텐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애들한테 향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했더니 아이들이 산 밑에서 보던 것을 이제 산 중턱에서 보고 있구나, 이제는 산 꼭대기에서 보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낀대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변화를 느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TOK를 경험한 첫째 아이는 자신이 던진 화두를 가지고 사람들이 뜨겁게 토론을 했다는 것에 흥미있어 하는 반면 둘째는 본인이 무슨 발표를 했는데 누가 딴지를 걸었다는 것을 기분 나빠해요. 이런 것이 굉장히 다른 거죠.

 

정해진 교과서가 없고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다고 하는데 그런 다양함 가운데서도 평가의 기준은 공통적일 것이잖아요. IB에서는 평가를 어떻게 하나요?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마치 영화제에서 프랑스 영화든 한국 영화든 어떤 기준에 따라 시상을 하잖아요. IB는 같은 능력을 평가해요. 모국어는 문학 해석 능력을 평가한다든지 외국어는 철저히 실용적인 능력을 평가한다든지 해요. 어떤 나라나 똑같아요. 학생들도 기출 문제를 보면서 훈련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몇 점 정도인지 알아요. 이게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운영되면서 검증이 되었어요. 내신에서는 교사가 터무니없이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교사의 평가 결과물을 무작위로 몇 개 뽑아서 영국의 채점센터에서 리뷰를 합니다. 그래서 샘플의 점수가 전반적으로 높게 채점되었으면 그 학교 전체의 내신점수를 낮게 조정합니다. IB에도 수능처럼 외부시험이 있고 내신처럼 교내에서 담당교사가 평가하는 내부시험이 있는데, 외부시험의 경우는 영국의 채점센터로 시험지를 보내면 거기서 다시 전 세계의 채점관에게 보내서 채점을 의뢰합니다. 한 교사가 약 100개를 맡는데 10개씩 시차를 두고 온답니다. 그 안에 이미 채점이 된 답안지가 섞여 있어요. 그 점수가 얼마나 정확한지 봐서 차이가 나면 그 세트는 다시 채점을 합니다. 점수가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전체적인 점수는 채점관리자가 조정합니다. 장문의 에세이 시험은 반드시 교차채점을 해서 채점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확보합니다. 결과가 발표된 후에 학생은 재채점을 신청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더욱 엄밀하게 보기 때문에 처음보다 점수가 낮아질 수도 있어요. 재채점을 하면 원래 점수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신청합니다. 평가를 대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나라의 상위권 대학에서 IB성적을 신뢰하고 있어요.

IB는 대학입학 성적 산출을 위해 6개 과목에서 점수를 매긴다. 각 과목마다 1점부터 7점의 점수가 있다. 외부평가 점수와 내부평가 점수를 합해서 산출한다. 내신은 과목별로 20~50% 정도 반영된다. 42점 만점이고 3점의 교과 외 성적을 합해 45점 만점인데 40점 이상이 되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한다.

 

내신 점수는 어떻게 산출이 됩니까?

내부 평가는 최종 학년의 평가를 반영합니다. 그 이전에 행해지는 평가는 형성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종 평가에 이르기까지 피드백을 주는 과정이고 계속적인 패자부활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7점 만점에 3점이 내신 점수라고 한다면 최종평가는 7단계 등급으로 구분되고 그것이 3점으로 환산되어 반영됩니다. 내신 점수는 중앙의 채점관에 의해 검증되고 조정될 수 있습니다.

 

40점 이상이 되는 비율이 어느 정도입니까?

해마다 조금씩 다른데 전세계적으로 40점 이상의 비율은 약 5% 정도 됩니다. 각 과목의 만점인 7점의 비율은 과목에 따라 2~3% 정도인 어려운 과목도 있고 20~30%인 다소 쉬운 과목도 있습니다.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해마다 그 비율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40점을 일률적으로 보기는 어려워요. 명문대는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수강했는지를 봅니다. 영어도 LanguageLiterature가 있는데 쉬운 Language를 들으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 최상위 대학은 포기해야 한다고 해요. 영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쉬운 과목의 7점보다 어려운 과목의 6점을 더 높이 평가해요. 가고자 하는 학과에서 어떤 과목 능력을 요구하는지가 중요해요. 옥스브리지 같은 경우는 IB성적과 자기소개서만 요구해요. 그리고 통과한 학생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는데 10명 중에 1~2명만 붙어요. IB성적이 어느 정도 이상만 되면(대개 40점 이상이면) 그 다음은 점수와 실제 합격은 무관합니다. 최종 면접까지 갈 수준이면 성적은 같은 수준이라고 봐요. 면접은 지식을 묻기보다는 답이 없는 난제를 던지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봐요. 예를 들어 모래알이 100만 개 있으면 모래 더미라고 부르는데 하나를 빼도 모래 더미다. 그렇게 계속 하나씩 빼서 나중에 하나가 남으면 모래 더미라고 볼 수 있느냐? 아니라면 언제부터 모래 더미가 아닌 것이냐?’ 하는 질문을 던져요. 교수는 선행학습에 의한 지식보다 사고과정만 평가한다고 면접 전에 공지를 합니다. 이런 질문을 다루려면 수업 시간에 활발히 토론을 해야 가능하죠.

일본은 2013년에 교육혁명 계획을 선언하고 2015년부터 IB 전 과정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문부과학성에서 공교육에 도입했다. 2020년까지 200개 학교에 IB커리큘럼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아베총리는 한 해에 수 천만 원씩의 학비를 내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에서 운영하는 우수한 교육을 일본의 공교육에서 공짜로 받도록 하겠다.”는 말로 국민을 설득하였다. 일본은 현재 모든 과정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을 마치고 채점관도 100% 일본교사로 완료하여 많은 비용을 절감하게 되었다.

 

IB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의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국형 IB를 직접 우리가 개발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건 너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IB의 일부만 들여오는 방식보다는 일본처럼 IB를 통째로 들여오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치 히딩크를 영입하듯이 우리나라가 스스로 개발할 역량이 되기까지는 IB 전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그대로 사용하는 학교를 운영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자연스럽게 공교육으로 파급효과가 있을 겁니다. 경기외고에 국제반 한 학급에 도입을 했었는데 규모의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서 어려운 면이 있었고 영어로만 운영되어 공교육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요. 절대평가를 해서 도시 지역 학교에 A,B 등급이 많고, 농어촌 지역 학교에 C,D 등급이 많다면 이것이 정서적으로 수용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학교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또 절대평가의 원칙과 맞지 않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교별로 차이가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더 우수한 학교가 되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 하는 것인데요. 사교육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에서 IB의 경우는 사교육 요인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족집게 과외나 단순 문제풀이식 사교육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죠. 물론 집에서 부모와 많은 토론을 할 수 있는 학생은 더 유리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교에서 교사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미술이나 다른 과제도 외부에서 대신 해 주는 방식이 통하지 않아요. 교육에서 유전과 환경의 영향이 얼마냐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것이고, 양질의 교육을 받으면 할렘가에서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거든요. 제가 방문한 학교도 필라델피아의 가난한 동네였는데 새로운 교장이 오면서 5년만에 학교가 완전히 뒤바뀌는 일이 있었어요. 그런 노력이 일어난다면 학교 간 격차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의 배경과 메시지를 정리해주시죠.

원래 논문 제목은 <서울대는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이걸 평가한다고 하는데 까보니까 저걸 평가하고 있더라는 거죠. 평가하는 사람이 교수잖아요. 사실 교수가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더 문제거든요. 그래서 특정하기 애매한 평가자보다 데이터가 분명한 피평가자를 주어로 하는 제목이 정해진 겁니다. 원래 는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도와주려고 시작했어요. 그냥 단순하게 잘 하는 아이들을 분석해서 알려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저에게 콱 박힌 이야기가 있어요. “교수님, 해도 안 돼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해요. 아이들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전략이나 방법이 다를 것인데 그것은 일반적 학습전략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서울대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학습습관이 우수한 학생들이에요. 이 아이들 가운데서 학점의 차이가 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설문문항이 백 개가 넘어요. 정확한 응답을 받기가 무척 어려운데 학생들에게 이 설문에 참여하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겠다고 하니 3일만에 1,200여 명이 참여했어요. 학생들도 이게 목말랐던 거죠.

그렇게 광범위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어요. 다른 요인들은 변별이 안 되는데 오로지 수업 관련 요인만 결정적 학점 요인으로 나왔어요.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적는다, 앞자리에 앉는다, 초벌 필기하고 두 번째 노트 필기를 다시 한다 등 지식을 수용하는 태도가 뚜렷한 연관이 있었어요. 완전히 정비례 직선으로 나타나요. 결과가 그렇다보니 원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보여주려고 했었는데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어떤 면에서 실패한 프로젝트가 된 셈이죠. 대신 이걸 시리즈 논문으로 발표했어요. 대중에게 알리는 책의 출간에 앞서 먼저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 게재를 하는 것이 자료와 분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길이라 생각했어요. 연구의 신뢰도와 타당도가 검증되어야만 서울대 구성원들에게도 설득력이 있을 테니까요. 사실상 이것이 서울대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학교의 발전을 위한 충언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책을 읽으신 교수님들도 학교를 향한 애정이 보인다는 평가를 해 주셨어요. 책은 안 읽고 기사만 보신 분들은 지금도 오해를 하세요. 그래서 해결책을 중심으로 쓴 책이 대한민국의 시험입니다. 서울대에서도 토론 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을 하지만, 그 과정은 성적에 결정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읍니다. 토론 참여 점수가 30점이면 거의 30점을 주는 식으로 하고 결국 학점은 개별 지필고사를 통해 변별하려고 하죠.

 

비판적 사고와 수용적 사고는 별개의 것인가요? 아니면 수용적 사고 위에 비판적 사고를 쌓아가는 개념인가요?

지식이 있어야 비판적 사고를 하지.’ 라는 이야기를 서울대 교수나 학생들도 많이 해요. 그런데 지식수용-비판-창의 식의 위계가 아니에요.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식의 수용이 충분하면 비판 능력이 생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지식 수용을 백날 해도 내가 직접 훈련하지 않으면 나의 아이디어는 생기지 않아요. 예컨대 축구 비디오를 보는 것은 수용적 학습이라면, 직접 공을 차서 훈련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꺼내는 교육입니다. 만약 수용 없이 혼자 차기만 하면 동네 축구를 벗어날 수 없어요. 반대로 슛을 잘 하는 비디오만 보고 직접 차지 않으면 자신의 근육이 안 생겨요. 비디오 분석도 해 보고 직접 차기도 해야 필요한 근육과 스킬이 제대로 발달합니다. 서울대 학생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라 하면 어려워해요. 미국 학생은 별로 아는 것이 없어도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말해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미국 시험을 어려워하고, 미국 학생들은 우리 시험을 보면 어렵다고 하죠. 이건 익숙함과 훈련의 문제이지 난이도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는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라 영역 특정적인 능력이라서 해당 수업에서 하지 않으면 길러지지 않습니다. 즉 다른 과목에서 비판적 사고 훈련을 해도 내 과목에서 하지 않으면 내 과목에서의 비판적 사고력은 길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육은 물 만난 물고기를 만드는 이어야 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물 만난 물고기의 눈빛이 아니라면, 학생들을 탓할 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면, 학생이 질문할 수 없도록 수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수업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비판적창의적 교육의 첫 번째 조건은 다른 종류의 생각을 허용하는 겁니다. ‘허용이라는 것은 교실에서 인정받고 성적에 반영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으로 해 보라고 하면서 정작 기말평가는 정답 찾기 시험으로 채점한다면 그건 창의를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비판과 창의를 허용하려는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검색하면 금방 나오는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의 생각 엔진을 돌리는 꺼내는 수업을 간절히 하고 싶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구체적인 방법은 창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평가해 온 많은 선례를 참고하면 됩니다. 비판적창의적 배움을 일으키는 교육은 교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에게 본래의 교육권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처음에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어도 결국 교사들은 날개를 달 것입니다.

 

 

인터뷰에 동행을 한 조창완 선생님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바칼로레아식 논술형 수능을 주장하는 가운데 강력한 우군을 만났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교육 담론은 교육의 질보다는 사교육이나 변별력 논의를 맴돌고 있다. 방향이 문제인데 속도를 가지고 논하는 현재의 담론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세밀한 줄 세우기, 객관성 패러다임에 빠진 현재의 시험은 교사의 날개를 묶어놓은 체제다. 그 밧줄을 끊어내는 것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교사 스스로가 평가의 철학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풀어놓기 위해서 교사가 먼저 날개를 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