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불가능의 한계 선상에서
새로운 페다고지를 꿈꾸어야 합니다
이계삼
경기도 김포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여 고향 밀양으로 학교를 옮겨 그만두기까지 11년간 국어 교사로 일했다. 아이들과 뭔가를 함께 읽거나 보면서 때때로 먹을거리를 펼쳐 놓고 나누어 먹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추억한다. 그러나 학교교육의 한계를 고민하며 농업과 인문학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배움의 길을 찾아 나섰다. 현재 감물생태학습관에서 인문학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최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더 알려졌다. <청춘의 커리큘럼>, <변방의 사색>, <삶을 위한 국어 교육>,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등의 책을 지었다.
인터뷰.김진우 / 사진.김정태
이계삼 선생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녹색평론>을 읽으면서였다. 교사의 글이라 좀 더 눈길이 갔는데 이내 그의 명징한 사고와 분명한 실천에 매료되었다. 그의 글은 나태한 정신을 깨우고 약간은 불편하게 하는 깨우침을 주었다. 작년에 그가 학교를 사직하고 농업을 화두로 하여 새로운 길에 들어선다고 했을 때‘그답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사고의 결론을 몸으로 살기 위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교육 불가능’을 말했다. <오늘의 교육>이라는 잡지를 통한‘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라는 글이 화제가 되었고, 최근‘교육 불가능’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가 말한 교육 불가능성이 교사에게 던지는 실존적 질문은 어떤 것이지 묻고 싶었다. 또 그가 추구하는 교육의 이상은 무엇인지 나누고 싶었다.
6월에 처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인터뷰를 사양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로 너무 바빠 교육에 대해 차분하게 말할 상황이 아니라며 9월 정도에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나 다시 전화했을 때 그는 여전히, 아니 더욱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번 거절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약한(?) 모습을 보였다.
4시간 30분 열차를 타고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 곳곳에는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이 여러 종류의 현수막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반대의 목소리와 한편에는 빨리 보상을 받고 끝내자는 목소리까지 어지러이 섞여 있었다. 이 갈등의 한가운데에 이계삼 선생이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처음부터 전화는 계속 울려댔다. 기자들의 전화와 경찰서에서 출두하라는 전화 등 수많은 전화들이 빗발쳤다. 1 나도 쫓기는 마음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손님을 위해 태연하게 사과를 깎았다. 농약 없이 기른 야생의 사과라고 했다. 벌레 먹고 볼품없었지만 정겨움이 느껴졌다. 그가 있는 곳은 감물생태학습관이라는 곳이었다.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제가 퇴직할 때 천주교 부산 교구 신부님들과 농업학교를 하자고 의기투합 하였습니다. 풀무학교 전공부와 비슷한 방식으로 1~2년 정도의 교육과정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대학에 절망한 젊은 청년들이 시골살이를 배워 나갈 수 있는 대안 운동을 생각합니다. 교육과정은 농사, 장이나 효소 같은 먹거리 만들기, 글쓰기, 책 읽기와 같은 인문 교육도 있고, 목공이나 건축, 소도구들을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살림살이 기술들과 같은 것입니다. 주로 농업, 인문학,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여기서 학교 운영을 맡고 인문학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게 될 거고요. 내년 개교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일로 지연이 되고 있어요. 서울 민중의 집과 같이 밀양에도 ‘너른 마당’이라는 협동조합이 있는데 여기 구성원들이 저희 학교를 지원해주고 있어요. 시설은 다 되어 있고, 농토도 논, 밭, 과수원 합해서 4천 평 정도 되는데 아직 내용적인 준비가 덜 됐죠.
학교를 떠나 이곳으로 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글에도 썼는데 이념적으로는 교육 불가능성이랄까요. 학교교육의 효용성이 이제 끝났다는 거죠. 한국의 학교교육은 지금껏 교육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에 복무해 왔죠. 국가주의적인 이념 교육을 통해 국민으로 만들어 내는 일, 보신 혹은 출세 지향적 구조 속에서 그냥 사회적 지위를 배분해 주는 기제일 뿐이었죠. 교육을 통해서 전인적인 배움과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 없었잖아요. 다만 학교를 통해서 별 탈 없이 사회에 편입되고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그 정도였다고 생각해요. 그게 학교교육을 지탱하는 힘이었지요. 그런데 이제 그 기능마저도 제대로 안 된다는 거죠. 대학 졸업장이든 고교 졸업장이든 상징 자본으로서의 기능만 하지 실제로 물질적 자본과 환금되지 않는 겁니다. 그럼에도 학교교육은 거대한 아비투스(사회적 습관)로 남아 있으니 학교교육은 무의미해지는 거죠. 저는 이것을 단순히 문화적인 문제로만 보지 않아요. 애들이 수업 시간에 엎어져서 자고, 학교 체제에 대들고 하는 행태들이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교육자체가 아이들의 삶에 쓸모가 없다는 무의식적자각에서 출발했다고 봐요. ‘이딴 공부해 봤자 내게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학교는 나를 쪼는 거냐’는 거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학교는 거대한 아비투스일 뿐이에요. 부모는 아이들을 맡겨야 하고, 교사들은 월급을 받아야 하고, 국가는 세금을 써야 하고, 아이들은 달리 갈 데가 없으니까요. 이런 체제는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어마어마한 사회적 낭비를 하면서 막강한 체제로 남아 있을 거예요.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도 결국 비정규직이나 산업예비군으로 좌절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많이 봤어요. 학교교육은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나는 그냥애들 등쳐서 월급 받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는 개인적인 좌절이 있었습니다. 내가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국어 수업도 잘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제 천성이 교사에 잘 맞는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 자신이 버티기 힘들었던 측면이 있어요. 거기에는 전교조 운동의 몰락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교조 운동에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특히 일제고사 투쟁을 하면서 심적으로 큰 좌절을 겪었어요. 교사가 되기 전에 대안학교를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공교육 학교로 들어온 것은 바로 전교조 때문이었어요. 중산층 이상의 배운 부모들을 둔 아이들로 구성된 대안학교보다 공교육이 갖고 있는 민중성에 더 기울어졌던 거죠. 시대의 평균적인 조건 속에서 변화가 태동해야 한다고 저는 보았고요. 그래서 저는 전교조 운동을 하고 싶어서 공교육 학교로 들어왔던 거고, 그리고 그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전교조는 그냥 교사들이 월급 받으면서 자기 양심 정도를 건사하게 해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기대가 없잖아요. 그리고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죠. 그렇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조직이 실은 좋은 일을 할 의지도 용기도 없으면서 좋은 세상에 대한 기대를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교조 운동에 희망을 걸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저는 전교조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전교조가 없는 것이 역설적으로 전교조 운동의 희망이 정초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해요.
어쩌면 저희 관점에서 위험한 인터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학교에 남아 있는 교사들의 입장에서 희망도 없는 학교 안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도전적 질문이기 때문이죠. 교육 불가능이라는 말은 다소 충격적인 표현입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 고치자는 것이 아니라 개선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언적 표현으로 들리거든요. 이 말을 역설적으로 던진 것인지 진의를 좀 더 설명해 주시죠.
교육 불가능이라는 것이 수사적인 차원에서 기분 나쁠 수 있죠. 특히 선의와 열정에 차 있는 교사들은 그런 얘기를 듣기 싫어해요. 저는‘교육 희망’이라는 허위의 수사에 대한 반정립으로써‘교육 불가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계 선상에서 성찰하자는 말이죠. 실제로 교육이 안 되고 있고요. 교육은 가르쳐서 일깨워 키우는 것이고, 그건 기본적으로 피교육자의 교육적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거죠. 그런데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오늘날 한국의 학교교육은 근대 학교교육의 종말적 형식이 되어 있죠. 수용소 메커니즘과 같이 아무런 교육적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체제죠. 장학사는 자기 맡은 분야에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학교장도 그저 자기가 교장 하는 동안 그 학교에서 별일 없기만을 바랄 따름이죠. 담임은 담임대로 그렇고요, 아이들 또한 날 그저 귀찮게만 하지 말라고 그러죠.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현실은 별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현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배태되었는지 별로 따져보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러면서 그저 학교교육의 아비투스가 만들어 놓은 타성의 길로 그냥 미끄러지는 거죠. 교육 불가능이라는 표현은 그런 맥락에서 좀 더 본질적인 사유를 하자는 일종의 제안인 것입니다.
큰 맥락에서 보면 이것은 탈근대적 상황이거든요. 근대는 결국 산업자본주의로부터 금융자본주의로 이행했는데, 2008년도의 금융위기를 통해서 보았듯이 말할 수 없이 위태로운 체제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갈수록 빈곤해지고 척박해져가요. 학교교육의 주체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불안들을 공유하고 있어요. 한국 같은 첨단의 입시 경쟁 교육이 이런 시대적 상황에 더욱 쉽게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겠죠. 공부, 시험, 진학, 취업, 이 넷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공부, 시험, 진학, 취업이 이제 불가능하거나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되면서 학교교육은 불가능성으로 진군해 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학교교육은 굉장히 중요한 도전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교육 불가능을 말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학교에서는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적 사건이 있고, 선생님이 <삶이 있는 국어 교육>에서 보여 주었던 교육적 실천은 분명히 의미가 있지 않나요? 우리들은 그와 같은 실천 속에서 교육의 희망을 발견하고 싶은 것이고요.
저는 결국 희망이란 우리들 자신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지식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교육과정으로 존재하는, 그리고 뚜렷한 사회적 책무를 부여받는 존재죠. 그들 자신의 운동이 희망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운동이 전통적인 전교조 운동과 같은 방식의 조합 운동, 정치적 성격의 교육 운동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운동은 한없이 지쳐 있고 늙어 가고 있죠. 독서 모임이라도 하자고 하면 귀찮아들 하잖아요. 저는 이런 교육 운동의 퇴조에는 교사의 계층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교사라는 계층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교사가 사회경제적으로 상당히 도드라진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임용고사라는 진입 장벽이 생기면서 교사의 계층성은 크게 강화되고 전문가적 정체성도 덩달아 강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교사의 전문가적 독립성,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현격하게 약화되는 겁니다.
교육불가능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가능한 것은‘에듀케이션’입니다. 아이들의 능력을 밖으로(e) 끄집어내는(ducare) 방식에 기초한 학교교육은 분명히 종말적인 상황이라고 봅니다. 끄집어내려는 능력이 국영수에 국한된 지적 능력인 한 더더욱 그러할 겁니다. 그러나‘페다고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의식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원적 차원에서의 페다고지를 말하는 겁니다. 페다고지는 고대 그리스의 교복(敎僕)을 뜻하는 지칭하는 말이죠. 귀족 가정의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나 체육관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이끄는 교육 노예를 페다고지라고 불렀죠. 어린아이들(paidos)을 이끄는(agogos) 일로서의 페다고지를 저는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문제집을 통한 에듀케이션으로 대학 보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삶의 공간을 함께‘살아가면서’아이들을 이끄는 페다고지의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것이겠죠. 그것이 꼭 학교 바깥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을 이끄는 자로서, 고대 그리스의 교육 노예가 그러하였듯 아이들에게 수많은 삶의 모습을,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끌어 주는 교육은 지식 교육이 불가능해진 지금 오히려 더 활짝 열립니다. 저는 이제 전혀 다른 교육이 필요하고, 그런 가능성이 교육 불가능의 현실 속에서 더 활짝 열리는 것이고, 또 그 공간이 굳이 꼭 학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학교 안에서의 변화가 어렵다고 새로운 교육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보는데요. 지금 이 터전에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교육의 상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 몸을 쓰는 교육을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면 고등학생들 중에서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논술을 익혀서 할 수 있는 경우는 200명 중에서 1~2명이 될까 말까 합니다. 그런 에듀케이션은 아이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죠. 대신 아이들이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들, 댄스, 축구, 식물 가꾸기, 목공, 동물 기르기, 아니면 이런저런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을‘이끌어’줄 수는 있겠죠.
그 중에서도 농업과 인문학이 알짬이라고 생각해요. 농업과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의 방식, 농사적 삶, 인문적 삶으로 이끌어 주는 거죠. 요즘은 인문학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는데 그냥 흉내만 내는 것 같아요. 뭐 하나 읽히고, 유명한 강사 초청해서 강의 듣고 질문 하나 던지는, 그런 흉내 내기를 인문학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인문학는 고민하게 하는 것이죠.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기실 아까 말씀드린 그런 몸의 교육을 뜨겁게 하게 하고, 그것을 언어화하는 작업 자체가 바로 인문교육입니다. 굳이 특화된 인문교육이라고 한다면 좋은 자료를 같이 읽고, 서로 신랄하게 대화하고,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농업은 자급자족적인 삶을 실현하는 것이죠. 저는 모든 학교 교육이 농사의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과 정의 혁신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농업 기술을 가르쳐서 농업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농적 삶을 소개하고 ‘이끌어 주는’ 것이죠. 그렇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농업을 백안시하거나 범주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 사고의 타성만 넘어서면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도구 교과의 이수 단위를 축소해 적어도 오후 3시 전에 머리로 하는 수업을 끝내고, 그 나머지 시간을 이렇게 자기 스스로 몸을 쓰는 시간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거죠.
몸을 쓰는 교육이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살리는 방편이라는 의미 외에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다양한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우리 삶은 머리보다 몸을 쓰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식 기반 사회, 정보화 사회로 진단하는 주류들과는 다르게, 금융 경제의 몰락이라든지, 석유 정점이라든지 식량 위기, 기후 변화 등등의 미래 사회의 지표를 생각하면, 앞으로는 몸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훨씬 긴요해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죠.
인문학의 의미가 성찰과 사유에 있다고 할 때 이 시대에 특히 인문학이 강조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쓸모로 넘쳐나는 시대에 쓸모없음이 가지는 가치가 갈수록 소중해지는 것이겠죠. 사유와 성찰은 돈이 되지 않지만,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겠죠. 이 시대의 인간은 기본적으로‘접속’되어 있잖아요. 돈이 되는 세계, 쓸모의 세계에, 첨단 정보의 시스템에 접속되어 있죠. 그리고 그 접속된 코드로 흘러 들어오는 신호체계를 충실히 이행하는게 이 시대 인간이고요. 가히 영화 ‘매트릭스’적 상황이죠. 코드를 뽑아야 하는데, 그 코드를 뽑게 해주는 힘이 바로 사유와 성찰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무엇이고, 꿈꾸는 사회상에 대해 명료하게 표현한다면?
저는 페다고지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삶에 애정을 가진 연장자가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삶의 모습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는 것이죠. 제가 꿈꾸는 사회는‘고르게 가난한 사회’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카말 줌블라트라는 레바논 혁명가가 선거에서 내건 구호였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 저 글귀를 읽었을 때, 살짝 전율을 느끼기도 했지요.
새로운 교육의 상은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농업을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농업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농업은 소수의 급진적 실천으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보편적 삶의 양태로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한마디로‘농업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이야기할 때는 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적어도 30년 후의 사회를 상상해야 하는 것이죠. YS 정부의 5.31교육개혁의 상은 미래 사회가 지식 기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허구라고 봅니다. 그것은 자본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은 아닙니다. 2043년에 대한민국이 현재처럼 살 수 있을까요? 지금 15살인 아이가 45살이 되어 30년 뒤의 세상을 살 때, 지금 받고 있는 학교교육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저는 무엇보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농촌을 보면‘10년, 아니 5년 정도만 지나도 궤멸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포를 느낍니다. 지금 이 늙은 농민들이 퇴장하고 난 뒤의 세상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은 사실상 휴대폰, TV, 자동차, 철강, 조선 등 대여섯 분야의 수출로 먹고 사는데 이 중에 2~3개만 수출이 막혀도 주저앉습니다. 가계 대출이GDP를 넘어섰어요. 일해서 만든 것보다 빚이 더 많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아서 다 빚 갚고 있어요. 가계든, 정부든, 기업이든 빚으로 지탱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집 한 채, 혹은 전세금이 재산의 전부인데,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이 농업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고, 결국 먹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너무 위험한 구조 속에 놓여 있죠. 마치 제가 대단한 선각자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성장 과정에 기독교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고, 글에도 종교적 사유가 느껴집니다. 선생님에게 있어 신앙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제게 매우 중요하죠.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 신앙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온갖 상념, 너절한 욕망들을 환히 들여다보고 계실 그분 앞에서 제가 신앙을 말하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것입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신앙의 본질은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의 핵심은‘나’로부터 빠져나와서‘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겠죠. 약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들에게서 자신을 찾아온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를 그리스도처럼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신앙적인 면에서 영향을 준 분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어머니죠. 제 아내가 생전의 제 어머니를‘여자 권정생’이라고 불렀습니다. 훌륭한 분이셨죠. 전쟁 고아로 어려운 가운데 성장하셨지만 행상을 하시면서도 집에 거지가 오면 밥을 잘 차려 대접하셨던 분이셨어요. 심지어 밥이 없으면 당신이 드시던 것을 드릴 정도였죠. 오갈 데 없는 아이를 돌봐 주기도 하셨고요. 아버지 또한 역시 전쟁 통에 부모님을 잃으시고 어렵게 사셨지만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신이 나서서 도맡아 처리하셨어요. 시신을 염하는 일을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나고요, 떠돌이를 거두어서 집에서 돌봐 주시기도 하셨고요. 두 분 다 훌륭한 분이셨어요. 특별히 종교 생활을 골똘하게 하신 분들은 아니고, 또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가진 약한 면모를 가진 분들이었지만, 삶 자체는 굉장히 영성적이고 훌륭한 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좋은 교육이란 누구든 부모든 선생이든 아이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는 거겠죠. 복잡한 게 아닌 것 같아요.
현재 송전탑 갈등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핵 발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대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시골 노인을 짓밟는 국가폭력이죠. 그것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법과 국가 행정 조직의 총체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년 동안 끌어온 싸움인데 막바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잘 막아야 합니다. 현재 만들고 있는 765KV 송전탑은 장차 12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계획하고 만드는 것입니다. 1970~80년대에 만든 고리 1, 2, 3, 4호의 수명 연한이 다 되었는데, 그것을 다시 연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고, 새롭게 원자력 발전소를 증설해서 계획상으로는 고리원전단지에 총 12기의 발전소가 가동되게 됩니다. 세계 최대의 핵 발전 단지가 되는 거죠. 그리고 그 12기의 발전력을 도시로 수송하기 위해 밀양 765KV 송전선로가 필요한 것이고요.
좋은교사운동 회원인 기독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주시지요.
좋은 마음을 지녔다고 좋은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신 승리’라고 하죠, 선의와 열정이 있으면 잘 될 것이라는 오류, 물론 선의와 열정이 교육의 시작이자 끝이지만, 이런 체제 속에서 선의와 열정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몹시 중요할 겁니다. 선의와 열정이 빠지는 섣부른 자기만족은 결국 나르시시즘이잖아요. 실패하고 잘 안돼서 괴로워하는 자에게 주님이 함께하시지, 그래도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혼자 들떠있는 이에게 주님이 함께하실 리 만무할 겁니다. 저는 좋은 교육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좋은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기실 우리는 개인으로 놓아두면 한없이 나약한 존재들이죠. 제 혼자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은 잘 알고 있죠.
또 하나는 오늘날 교육이 불가능해지고, 선의와 열정을 가진 교사가 좌절하는 원인을 정확히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교육이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세상의 흐름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은 큰 조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직의 규모와 역량이 오히려 조직을 속박하는 역설이 있지 않습니까? 생활 단위의 소그룹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안에서든 학교 바깥에서라도 교류할 수 있는 교사 소그룹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사들끼리 학습하는 모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가 쓴 <삶이 있는 국어교육>을 보면 그의 수업은 삶과 연결되기를 갈구한 것 같다. 그 삶은 아이들의 솔직한 감정이기도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아픔이기도 하다. 진공 상태의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삶의 맥락 가운데서 의미가 살아나는 콘텍스트를 가르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오늘날 그의 선택은 그가 가르쳤던 국어 수업을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삶과 연결하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그가 떠난 교실을 생각하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 답답한 교실 안에서 숨통을 틔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큰 맥락에서 생각하면 그의 떠남으로 인해 학교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성찰하고 이대로의 교육이 불가능함을 절감하고 전혀 새로운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된다면 위안이 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아이들은 여기에 있다. 적어도 학교 제도가 존재하고 어떤 이유로든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며 아비투스에 복무하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꿈과 참다운 교육의 길을 추구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때로 깨어 있음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눈감지 않고 함께 고통 받는 자들을 찾아 고통을 나누며 버티고 나아가는 것이, 그의 삶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지금 여기에서 사는 법이 될 것이다.
- 한전에서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소송을 내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루 100만 원의 손해 배상 청구를 한 일이 있었고, 현재 글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뉴스를 통해 주민 대표를 체포한 사건이 보도되는 등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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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사명은 문제의식을 촉발하는 겁니다 (권영석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_2013.9 (0) | 2014.07.03 |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최유강 티치포올코리아 대표) 2013.08 (0) | 2014.06.12 |
CCTV보다 선생님이 제일 중요합니다(김종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2013.07 (0) | 201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