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사명은 문제의식을 촉발하는 겁니다
권영석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으로 혼돈의 대학 생활을 보내다 IVF를 통해 기독 신앙을 갖게 된 그는 IVF에 진 사랑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TCF 간사로 사역했다. 1983년에서 1998년까지 IVF 간사와 총무를 역임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플러신학교에서 성서신학, 목회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이민 교회를 목회하다 2009년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아 귀국, 최근 들어 현저히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청년 대학생 선교 사역을 돕고 있다.
인터뷰/사진.임종화, 김정태
1970년대 유신 독재 시절에 혼돈의 대학 시절을 보내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TCF와 IVF 총무간사, 미국 이민 교회 목회자를 거쳐 대학 선교단체를 돕는 학원복음화 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아 사역하시는 권영석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한국 교회의 아픔과 대학생 선교의 어려움을 돌아보며 좋은교사운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풀리지 않던 인생의 회의, 구원의 역사 안에 녹다
저는 73학번입니다. 1972년도에 유신이 있었기에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당시엔 생각 있는 사람으로 살려면 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당연한 대학 분위기였습니다. 대단히 혼란스러운 1, 2학년 시절이었어요. 73년, 74년 그 2년 동안 아주 심하게 시위를 하면서 쫓겨 다니던 신세가 되었어요. 본의 아니게 앞장서서 데모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때 같이 데모하던 친구들의 피폐한 삶을 보면서 굉장히 실망을 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학교 방송국 기자를 하면서 선배들의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며 회의감을 품게 되었어요. 원했던 전공 학과가 아니었기에 그런 과외활동을 통해서 대체 만족을 얻으려 했었는데 실망하게 되면서 제 안에 정신적인 공백이 찾아 왔어요.
그 무렵에 IVF 성경 공부 그룹에 초대 받아 갔어요. 거기서 창세기 2, 3장의 이야기가 충격으로 와 닿았어요. 인간이 창조주를 떠나면서부터 이렇게 목적을 상실한 채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방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듣게 되었지요. 점차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아.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만드셨는데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면서 이렇게 살게 되었구나!’하는 것을 확신하게 된 거예요. 그때 학교 기숙사 뒤에 교회가 있었는데 거기 가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우리 집안이 안동의 전통적인 유교 집안이라 핍박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중에 알게 된 것은‘하나님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셨구나’였어요. 예수를 믿는 것이 단순히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것이 아니고 어마어마한 질서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마디로 제 대학 생활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난 셈이지요. 풀리지 않던 인생의 회의가 해결되고 나니까 신앙생활에 무지 열심을 냈죠. 전도도 하고 성경 공부 인도도 하고 했어요. 그리고 IVF를 통해 받은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대학원에서 교육철학 공부를 마치던 시점에 IVF 내의 교사모임인 TCF 간사로의 부르심이 있었어요. 당시 교육학을 전공하면 졸업할 때 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교사의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돌발 변수로 인해 길이 열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TCF 간사로 출발하게 되었지요. 그러다 IVF 내의 리더십의 변화로 총무직을 맡게 되었어요.
80년대, 사회와 다리 놓는 신앙을 자각하다
당시 IVF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이 보수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어요. 신앙을 너무 개인 경건 위주로 배워서 복음이 구체적인 사회 정치적 상황의 해답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어요. 당시 사회 상황은 급하게 돌아갔어요. 독재의 끝물이었는데 광주사건 이후 또 다시 독재 정권이 연장되면서 있어서는 안 될 희생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지요. 광주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또 많은 대학생들이 희생했어요.
특히 1986년 이화여대 강당에서 IVF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강연회를 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간에 건국대 사태가 벌어졌어요. 그때 전국의 운동권 총학생회 임원들이 거의 전부 건국대에 집결했어요. 경찰들이 그 정보를 알고 대학을 포위해서 학교에 있던 대학생들을 바깥으로 나가지 못 하게 감금했지요. 거의 2천여 명이 체포되었어요. 당시 건국대는 그야말로 전쟁터였지요. 그때 제가 IVF 총무였는데, 특히 건국대 간사들이‘이건 아니다’라고 했어요. 나도‘기독교가 이렇게 사회와 다리를 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이건 의미 없는 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때 근본주의 신학의 한계를 생각하게 되었고, IVF 운동도 이런 식으로 상황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물론 달리 생각하는 간사들도 있었어요.
근본주의 신앙의 한계를 깨닫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것이, 우리나라에는 80년대 중반인 그 무렵에 비로소 번역, 소개된 1974년의 로잔대회 문서였죠. 또 존스토트가 1974년 로잔 대회 이후에 쓴 책 중에 <현대 사회 문제와 기독교적 답변>이란 책을 많이 참고했어요. 그 외에 로날드 사이더의 <구원, 복음, 사회정의>란 책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런 자료들을 접하면서‘지금껏 우리가 복음의 함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하는 자각을 한 것이죠. 그리고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첫 번째가 1987년 공정선거감시운동이었는데 그 운동에 IVF맨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했어요. 광주 이후 들끓던 민주화 분위기가 건국대 사태 이후 극에 달하게 되고 마침내 1987년 6.29 ‘항복’을 받아내게 됩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에게도 작용한거죠. ‘하면 되는구나’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80년대 기독교 세계관 운동
저는 지금도 당시 민주화 과정의 전환기에서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참으로 귀중한 자산이자 신앙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Evangelical을 두고 사회와 정치에 참여할 거냐 말 거냐 하는 문제에 국한하여 구분하여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Evangelical은 신앙 전체의 포괄적인 관점, 곧 세계관의 문제와 연결되는 신학적 성찰을 전제로 형성된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80년대 우리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 일종의 각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로잔 언약과는 별도로, 기독교 신앙이 각 전공과 학문 영역에 어떤 함의를 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후에 그런 흐름을 두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라 명명하게 된 줄로 압니다만,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리고 일부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이들 가운데서 칼빈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철학자들의 관점에 노출된 이들이 늘어나고, 미국 IVP의 제임스 사이어의 저술들이 소개되면서, 그야말로‘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는 관점이 전혀 기독교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 연장선에서, 의대생 모임, 교사모임, 기독교 학문 연구회, 대학원생 수련회, 창조과학회 등이 태동하기 시작했으며, 6.29 이후에는 복청, 경실련, 복음과 상황 등이 가능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이런 자각이 교회에서부터 출발한 게 아닌데다가, 이런 담론이 교회의 리더십을 맡은 목회자들에게까지는 확산되지 못했고, 직선제를 통해 민주화 과정이 일단락되면서 이슈 자체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죠. 게다가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대변하는 것처럼 냉전 체제마저 종식되자,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 전체가 급격히 보수화 되고 말았지요. 냉전 시대에는 시스템 두 개가 서로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온 세계가 다 개인주의와 물질 중심의 쾌락주의 일색이 되고 말았어요.
이렇게 볼 때,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학문적 담론 차원에서 머물다가, 그마저도 세계관 운동 1세대들이 유학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이런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이 관심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민주화 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되면서, 복음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심화되지도 확산되지도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87년형 복음주의는 추억으로 남게 된 셈이지요.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학 사역, 한국 교회, 한국 사회
1980년대보다 지금의 대학생 사역이 훨씬 더 어려워졌어요. 그때는 생각 있는 그리스도인은 뭔가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이 운동을 위한 동력이 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 것도 안 해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에요. 궤변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다행이었을 텐데 뒤틀린 기독교가 공룡처럼 커지면서 문제가 더 커진 거죠. 예수의 정신은 흐리멍덩해졌는데 돈과 권력을 가졌으니 엉뚱한 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교회의 문제는 그렇게 보면 이미 예고된 문제입니다. 거기에다 교회 성장 운동이 함께 일어나 마케팅 전략과 맞물려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교회가 엄청나게 늘어나버린 거죠. 이런 상황에서 의식 있는 이가 외쳐 봐야 그냥 흙탕물 속에 묻히게 되는 겁니다. 어쩌면 1980년대보다 지금을 더 비관적으로 봐야 해요.
요약하자면,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복음 공동체가 고백하는 내용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복음 공동체의 개교회주의적 구조의 문제입니다. 교회 리더십 구조를 너무나 개인주의로 짜놓은 거죠. 교회란 말에 개교회주의가 들어가면 안 되는 것 입니다. 교회는 우리 것이 아니잖아요? 복음은 너와 나를 차별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자녀라는 건데, 어떻게 된 것이 옆 교회가 경쟁 상대가 되면서 이상하게 변질되었어요. 그런 이상한 결합이 우리의 현실이 된 거죠.
또한 우리의 교회 리더십이 샤머니즘과 결부되면서 목회자가 거의 슈퍼맨 역할을 해요. 큰 교회일수록 피라미드의 정점이 되어 제왕적 리더, 왕처럼 군림해요. 우리가 왕정 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에서 바로 공화정으로 왔지만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왕정 시대에 머물러 있어요. 대통령이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고 국민들도 대통령을 왕으로 대해요. 이런 과정에서 정말 신기하게도 대통령과 국민이 그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큰 교회에 가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잘 되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이기 때문이죠. 교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빠져나가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그 두 가지 문제를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크리스천들이 뭔가 역할을 하려면 복음의 내용을 회복해야 하고 개교회주의의 제왕적 교회 구조를 바꿔야 해요.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임금이신 예수님이 겸손히 마구간에 오신 것인데 어떻게 목회자들이 제왕적인 위치에서 군림할 수 있나요?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복음의 내용이 뒤틀려 있고 교회의 구조가 뒤틀려 있는 겁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선교단체 가입을 권하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은 몇 가지 요인이 있어요. 내적인 요인은 개인주의화 되었다는 것이고 외적인 요인은 학교가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대학교가 우리 때와 너무 다른 거죠. 거의 다 신자유주의의 후유증인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거죠. 우선 일자리가 없고, 학점은 물론 스펙을 쌓아야 하니 시간이 없어요. 거기다 오락물도 많아요.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 등으로 언제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의 변화,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젊은이들이 시간을 내는 것에 인색해요. 그게 제1 요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교단체는 동력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시간을 더 많이 요구해요. 그래서 한 사람이 몇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해요. 그러니 젊은이들이 선교단체에 안 들어오죠. 그냥 교회 생활하며 적당히 스펙 관리하는 쪽으로 가는 거죠. 거기에다 사회문제 의식도 없고 개인주의화 되어가면서 응집력이 없어요. 운동권이 다 죽었어요. 서울대가 몇 년째 낮은 투표율 때문에 총학 구성 자체를 못한 적이 있어요.
이처럼 사회가 올바른 의식의 확산이나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시스템을 짜고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지면 급속도로 관료주의화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우리의 손해입니다. 개인주의가 한 사람의 자아를 회복하는 면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나 이기적인 개인주의는 서로를 망치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라 전체가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일본을 보세요. 일본에는 정치 발전이 없어요. 관료 사회가 다 해먹어요. 보통 사람들은 몰라요. 그냥 세금 내며 무식하게 사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런 조짐이 많아요.
저의 과제는 문제의식을 촉발시키는 겁니다
2007년 이승장 목사님 은퇴 후 한동안 학복협 대표가 공석이었습니다. 당시 학복협 대표의 조건이 무척 까다로웠던지 1년 정도 공백 상태였다가 제게 연락이 온 거죠. 사실 학복협 대표직을 맡기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실상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나랑 가까운 지인이 중간에서 소개했는데 그분이 이야기한 것은 한국 사회와 교회, 그리고 선교단체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너무 방만하게 되어 있는데 그 정체성에 걸맞게 위상과 역할들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며, 그것을 위한 성찰의 작업이 필요한데 그런 일에 제가 맞을 것 같다고 했어요. 제가 늘 원론적인 질문을 하는 기질이 있거든요. 또 선교단체와 지역 교회 양쪽을 다 경험해서 맡게 된 것이죠.
그런 차원에서 지금 문제의식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을 확산하는 것 까지가 제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안을 찾는 것은 다음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을 것 이라고봐요.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문제의식만 철저해지면 일은 풀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식이 철저하지 않으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80년대 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던 처절한 희생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지금 그게 없는 거죠. 그걸 어떻게 촉발시킬 것인가? 이게 제 과제입니다.
지금 문제의식이 생기는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교회 성장이 계속 하락세이고 일부 교회들은 예배당을 경매에 넘기고 있어요. 교인이 줄고 헌금이 줄면 유지 자체가 어려운 교회 건물들이 경매로 나오는 것에 가속도가 붙을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빠져 나가고 있어요. 대형 교회 간에는 아직 수평 이동이 많아 문제의식이 없어요. 그러나 작은 교회들은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통합적 그림이 없어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이기적이야!’이런 수준의 진단으로는 안돼요. 이런 측면에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복음이 무엇이냐, 우리 사회가 근대화 과정에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등을 짚어주면 큰 그림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Para-church(교회병행단체)와 교회가 협력할 길
무슨 운동이든지 기독교 신앙과 결부된 것은 일단 지역 교회와 연결되어야 해요. 지역 교회에서 기독교 정신의 기본을 백업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단체를 만들어 그 단체에서 기독 정신을 의식화하려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교회가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교회병행단체도 필요해요. 이 교회, 저 교회에 상관없이 대학생들을 엮어줄 para-church가 필요해요.
그래서 제가 볼 때 좋은교사운동도 교회와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교사와 교육과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을 교회에 나눠주거나 아니면 기독교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좋은교사운동의 멤버십을 너무 딱딱하게 가지고 가면 안 된다고 봅니다. 기독 정신을 같이 갖고 느슨한 연합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운동의 질을 높이면서 그 저변을 계속해서 확대해 가는 그런 운동을 해야 해요.
특별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학생들에게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치의 공백 상태입니다.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달콤하게 넣어준 것(물질, 쾌락 등)을 우리의 가치로 삼는다는 것이죠. 그 결과 아주 비참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꼭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생각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가치란 도덕, 역사, 인문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 되겠죠. 담임은 말할 것도 없고 과목을 맡는 이도 자기 과목과 함께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이 어떻게 가치 교육을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매뉴얼이나 샘플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과 공감하는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기독 부모들은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요. 좋은교사운동이 부모 교육과 관련되면 교회와 연결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저변도 확산되고 열매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복음의 총체성을 지향하는 학교’에 대한 고민
<대학의 위기>(C.H.말릭)란 책을 보면 미국 대학이 세속화되는 과정이 나옵니다. 하버드, 예일 대학 등이 원래는 다 기독교 학교예요. 목회자를 기르기 위한 학교였는데 세속화 되었어요. ‘차라리 기독교 대학을 새로 만드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기존의 대학을 정화하는 것이 대안인가?’란 논쟁에서 그 책은 기독교 대학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해요. 그래서 저는 최근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 학교나 기독 대안 학교들을 시간이 지나서 적절한 때에 평가하면 좋겠어요. 그게 좋으면 그 모델도 개발하고, 기존의 공립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모델을 개발하는 작업도 동시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칼빈칼리지 같은 경우 1년 단위로 크리스천 스터디 오리엔테이션 과정이 있어요. 또 캐나다 ICS(Institute christian study)에도 기독교 세계관 오리엔테이션 과정이 있어요. 그런 것을 우리도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평소에는 공립학교 다니다 방학 때 몇 주 정도 시간을 내어서 기독인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직업과 인생을 어떻게 보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이죠. 또 교사들도 가서 그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 프로그램은 굳이 대안학교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일에는 자원이 필요한데 이걸 교회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자기 혼자 다 하려 하지 말고 큰 교회가 서로 어울려서 함께 해보자고 제안할 수 있는 거죠.
좋은교사운동이 한 세대를 넘어서는 운동이 되려면
운동이란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니 처음 창립자에서 그 다음 리더십으로 전수될 때 그 정신이 잘 전수되어야 합니다.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적용(adopted)이 되어야 해요. 우리가 칼빈을 이야기 하면서 칼빈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걸 못 넘으니 칼빈의 과거 시스템에 갇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정신을 이 시대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면 운동은 살아남아요. 그런데 그 중간에 리더십이 끊어지거나, 갈등이 벌어지거나, 적용 가능하지 않은 옛날 틀에 갇혀 버리면 죽는 거죠. 기독 운동은 원래 죽을 수 없는 운동이에요. 예수님의 불이 너무 엄청나서 꺼질 수 없는 불입니다. 그 불에 적당한 대롱만 꽂고 있어도 운동은 사라질 수 없어요. 그런데 그 대롱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꼬이거나 막히면 안 되는 거죠. 시스템이 그럴 듯해도 안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기독 운동이 왜 몇 년을 못가나?’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 그것은 여전히 미스터리예요. 어쩌면 인간의 연약함 때문일 수도 있고, 사단의 궤계일 수도 있고, 이 세상 시스템이 그만큼 훨씬 더 도도하기 때문일 수도 있죠.
그 운동을 소수의 사람이 하면 지쳐버립니다. 하지만 그 몇 사람만이라도 운동의 동력을 계속 살릴 수 있다면 죽지는 않아요. 그만큼 리더십의 책임이 큰 겁니다. 처음 리더십을 맡은 자들은 상황이 절박하기에 에너지가 분출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 다음 리더십은 내가 이 일을 맡았으니까 내가 한다는 것으로 가기 쉽죠. 그러지 말고 전체 그림을 보면서 헌신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 속에서 좋은교사운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어떤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봐야 해요. 그렇게 전체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여요. 그리고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과 동시에 상층부에서는 계속적으로 응집력을 가질 자를 확보해야 합니다. 죽자 살자 뛰어드는 사람을 확보해야 해요. 핵심 그룹 안에서 비전이 계속해서 굴러다닐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러면 운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화하는 내내 오래 전 대학 선배님을 만난 듯 따뜻한 마음과 함께, 멀리 보지 못하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기에 급급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종교,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독교는 진짜가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와 대학 선교단체들을 어떻게 도울 지를 고민하고 연구하시는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 돌파의 계기가 생겨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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