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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보호받을 폭로와 보호받지 못할 폭로


지남철 위에서 함께하는 시사 수업

 

보호받을 폭로와
보호받지 못할 폭로

이 봉 수


暴露(폭로)

 표음 문자인 한글과는 달리 한자는 상형 문자다. 상형 문자는 형태를 본떠 만든 문자이므로 문자 자체가 가지는 의미 전달력이 강하다. 일례로 대학 시절 필자가 있었던 선교 단체에서는 죄라는 단어를 쓸 때는 ‘罪’라고 꼭 한자로 썼다. 징그럽고 혐오스럽게 생긴 이 글자를 보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하는 결심의 표현이었다. 2011년 상반기 한국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현상으로 ‘폭로’를 꼽고 싶다. 이 暴露라는 단어도 罪라는 단어처럼 느낌이 강하다. 무엇인가 감추어진 사실들이 막 쏟아질 것 같다. 국무총리 후보에 대한 폭로에서 비롯하여 신정아의 자서전을 통한 폭로, 그리고 서태지 이지아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폭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폭로들이 이 단어의 느낌대로 끊임없이 쏟아진다.

 우리가 이 폭로들을 대할 때 궁금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 노출의 범위다. 신정아는 자신이 만난 남자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밝힐 권리가 있는 것인가? 그것으로 인해 그 남성들의 가족이 겪을 고통은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국무총리 후보자 부인이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까지 청문회에서 이야기 되어야 하는가? 이지아의 어린 시절 사진과 이들의 사적인 결혼 이혼 서류까지 언론에 공개되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개인의 사생활을 과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보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공인이므로 마땅히 이러한 사생활 폭로는 각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 간의 충돌의 문제다. (여기서 언론의 자유는 등록된 언론사만의 자유가 아닌 표현의 자유, 말할 자유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가치 충돌에서 어떤 권리에 승자의 영예를 안겨 주느냐 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모두 국민 모두의 계약인 헌법에 그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갖는다”라고 하여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반면 21조 4항에서는 “언론ㆍ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윤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인격권을 침해할 경우 그에 대한 법적인 제제를 가할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이익 형량의 원칙

 그러므로 언론에 의한 인격권 침해에 관련된 판례 또한 엇갈린다. 김진명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사생활이 드러나 있는 것에 대해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이휘소는 뛰어난 물리학자로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공적 인물이 되었다 할 것인데, 이러한 경우 이휘소와 유족들은 그들의 생활상이 공표되는 것을 어느 정도 수인하여야 할 것이므로 유족들의 인격권 또는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반면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성00 씨가 감옥에서 수의(囚衣)를 입은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한 교도소 경비 교도원 정 모 씨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 씨와 국가는 성 씨에게 각각 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 법원의 판결은 이익 형량의 원칙이라는 것에 의해 내려지게 된다. 이익 형량이라는 것은 충돌하는 헌법 가치들을 비교하여 더 우월한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흡연권은 개인의 자유로 혐연권도 개인의 자유로 보장되나 혐연권은 건강권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판례는 혐연권을 더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다.) 즉 공인의 사생활 공개는 그것으로 얻게 될 공적인 이익과 사생활 공개에 따른 인격권의 침해를 비교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김태호, 신정아, 서태지 그리고 공공의 이익

 이런 이익 형량의 기준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폭로 사건들을 판단해 보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사건의 경우는 비록 사적인 폭로라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그 폭로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정아 사건의 경우는 이익 형량이 애매한 경우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폭로와 인격권 침해가 공존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태지와 이지아 사건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들의 사적 생활을 폭로함으로서 우리가 얻게 되는 공공의 이익은 무엇일까? 호기심과 관음증의 충족 그리고 신문사의 판매 부수의 증가 외에 우리가 얻게 되는 공공의 이익이 있을 것인가 의문이다.


보호받을 폭로, 보호받지 못할 폭로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폭로가 출판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들 폭로의 대상은 폭로되어도 크게 저항하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학교로 치자면 만만한 학생들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꼴이다. 사실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폭로되어야 할 대상은 이러한 가십 거리의 개인들이 아니다. 이런 개인들에 대해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른들 또 어떠하겠는가?

 반면 국가 권력이 가지고 있는 부당함들은 끊임없이 폭로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폭로가 없다면 국가 권력은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끊임없이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정치권력에 대한 내부 고발자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하며 국가 권력에 대한 고발은 마땅히 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폭로가 아닌 국가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폭로가 가능한 사회가 진정한 언론의 자유가 주어진 사회라 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서태지 이지아 사건에 대해 같이 읽고 공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폭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학생들과 말해 봅시다.

 2.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과 “표현의 자유는 부정확한 사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라는 말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는지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어 봅시다. 의견을 나누어 본 후 ‘미네르바 사건’의 판례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돌베개)
* 《인터넷 언론 자유와 인격권》 (이재진, 한나래)
*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지식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