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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지경을 넓히소서


열혈 아줌마의 좌충우돌 수업 이야기 3
지경을 넓히소서

김 주 화 (행복한수업만들기 한문 모임 대표)


넓이를 알 수 없는 한문

 다른 교과도 그렇겠지만, ‘한문’은 참 범위가 넓은 교과입니다.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특성을 제외하면 이 교과는 문학이면서 역사이고, 사회이고, 과학이고, 수학이며, 미술이고 철학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과목의 성격들을 두루 가지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의 삶을 한자로 기술해 놓은 것을 모두 모아 ‘한문’이라는 교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교과서만 살펴보아도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가 정말 다양하게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분수 계산하는 법을 가르칠 때도 있고, 일식과 월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공통점이라면 ‘한자’를 사용해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모두 깊이 있게 가르치자니 교사 스스로도 잘 모르는 분야가 많고 힘이 듭니다. 그렇다고 문장 풀이만 하자니 교사 스스로가 잘 모르는 영역을, 풀이만 해서 학생들을 이해시킨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고등학교에서 근무했을 때, 정약용의 토지 개혁 사상인 <여전론(閭田論)>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당시 고3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수업입니다.




[1] 마음 열기

- ‘아파트 평당 가격’에 대한 신문 기사 읽기
- ‘부동산 투기’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책 생각해 보기


[2] 본문 학습

- 교과서 본문 내용 학습 (여전법/ 정약용 -《田論》 7편 중 제 3편)
- 한자의 음과 뜻 익히기, 본문 내용 풀이 및 이해, 문법적 설명, 본문 쓰기


[3] 한 걸음 더

- 실학의 이해
- 중농학파의 토지 개혁론과 그에 대한 정약용의 반론 살펴보기
  (유형원 - 균전제/ 이익 - 한전제/ 정약용 - 여전론)


[4] 헨리 조지와 토지정의시민연대

- ‘헨리 조지’와 ‘토지 가치세’에 대해 소개
-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창립 선언문’ 살펴보기
- 정약용의 여전론과 헨리 조지의 사상 사이의 공통점 찾아보기


 저는 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임용고사 공부 때나 펼쳐 봤던 정약용의 《전론(田論)》 전편을 다시 살펴봐야 했습니다. 교과서에 짤막하게 실려 있는 이야기의 앞과 뒤를 모르고서는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당시 사회적 상황도 알아야 했습니다. 어떠했기에 이런 주장을 펼치게 되었나를 이해해야 본문 내용을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토지 개혁에 관한 주장들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살펴보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정약용과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1839~1897)와 그의 저서정약용이 여전론을 통해 주장한 바는 첫째 농사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소유하며 (양반이라도 농사짓지 않으면 토지를 소유할 수 없게 함), 둘째 토지 소유는 공유(共有)로 하여 사유 토지를 인정하지 않으며, 셋째 토지의 경작은 공동으로 하고, 넷째 생산 곡물은 공동으로 수확하며, 다섯째 수확 곡물은 노동량에 따라서 분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토지 소유를 공유로 하고, 공동 경작, 공동 수확한다는 내용 때문에 일부에서는 사회주의적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 내용을 다시 공부하면서 근대 경제학의 개념과 논리를 가지고 성경적 토지법의 정신을 훌륭하게 표현하였다는 ‘헨리 조지’를 떠올렸습니다. 토지 가치세 징수와 근로 소득세 감면이라는 헨리 조지의 주장과 공동 소유와 공동 경작으로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자는 정약용의 여전론은 어딘가 닮아 있었습니다.

 제 안에서 정약용과 헨리 조지가 연결되자 이걸 학생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토지를 둘러싼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고, 정약용과 헨리 조지의 주장을 들어 보고, 왜곡된 경제관을 어떻게 회복하면 좋을지에 대해, 바쁜 입시의 여정 중이지만 잠깐이나마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여러 시민단체가 함께 하여 출범한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창립 선언문을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 속에 나타나는 노력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다소 어려운 내용이기는 했습니다만, 학생들은 오히려 흥미를 보이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저는 경제학은 잘 모르고, 부동산이나 세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사람입니다. 다만, 교회에서 청년부 시절 몇몇 지체들과 함께했던 ‘세계관 공부방’모임을 통해 ‘성토모(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는 만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된 것뿐입니다. 그래서 제 지식은 일천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약용과 헨리 조지가 연결은 됐지만,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런 저런 내용을 그저 소개하는 정도로 그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이 시기에 또 다른 실학자인 홍대용의 글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일식과 월식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 글이었습니다. 과학 쪽에 대한 지식이 있었더라면 더 재미있는 수업이 되었을 텐데, 아는 바가 없어서 교과서 중심으로 풀이하고, 가볍게(?) 수업을 마쳤습니다. 비록 저는 모르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일식과 월식의 현상 속에도 분명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빼곡히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감탄하게 되고, 가슴 벅찬 이야기가 그 안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더 풍성한 수업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적 수업의 시작

 우리의 지경이 넓어질수록 수업도 더 풍성해지겠지요. 보고, 듣고, 생각하는 바가 많아지면 교과 내용과 함께 연결할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고, 이것이 하나의 관점으로 꿰어질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지난 6월호 글의 말미에도 잠깐 언급했던 내용입니다만, ‘한문’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세상’을 잘 알아야겠고, 세상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은 소망,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도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고 나서는 성경 말씀이 더 재미있게 다가온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 땅을 사랑하셨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수업의 시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마음으로 이웃과 이 땅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적 수업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분의 창조 세계를 사랑하고, 궁금해 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 땅을 잘 가꾸고 싶기에 왜곡된 현실에 아파하고,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묻고 또 묻는 것이요. 참 추상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만나는 십자가 위에서 기독교적 배움의 싹이 나는 것 같습니다.


갈수록 학교 현장은 분주해지고, 이런 고민조차 버겁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고, 가뜩이나 할 일 많고 바쁜데 그냥 고민 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게 해달라고 오늘도 기도합니다.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전국의 모든 기독 교사를 응원합니다. 선생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