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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사실의 힘, 전도와 선교의 새 지평(2016.10)

정병오 칼럼


사실의 힘, 전도와 선교의 새 지평

 

 

좋은교사운동 역사에 대해 강의하는 기쁨

좋은교사운동 활동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나도 여러 모임이나 행사를 준비해 본 사람으로서 가급적 이러한 요청에 응하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다 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안 맞는 경우는 당연히 못한다고 거절을 하고, 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받을 때도 정중히 거절을 한다.

반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응하려는 대상이나 주제도 있다. 그것은 기독교사를 대상으로 해서 좋은교사운동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았을 때다. 이 경우는 선약을 조정해서라도 가급적 응한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여 지겨움을 느낄 만도 한데, 그런 것도 없다. 강의를 준비하고 그 내용으로 청중들과 호흡하는 가운데 이전에 몰랐던 역사의 의미가 새롭게 드러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했던 좋은교사운동의 역사에 대한 강의는 거의 좋은교사운동 소속 회원단체나 지역모임, 혹은 예비교사모임에서 이루어졌다. 가끔 좋은교사운동 소속이 아닌 곳에서 강의를 할 때도 있었다. 주로 기독 NGO나 기독 전문모임 혹은 기독교 대학의 교수모임 대상 강의였다. 이들은 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긴 했지만 좋은교사운동 가운데 일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부분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일반 교사모임과 타문화권에도 통할 수 있을까?

이번 여름방학 동안 좋은교사운동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온 곳은 조금 특별했다. 한 곳은 혁신학교와 학교혁신운동을 주도해 온 새로운학교네트워크’(새학교넷)의 전국 단위 여름연수 자리였고, 다른 한 곳은 케냐에서 개최된 1East Africa Christian Teachers Conference’(EACTC)였다.

새학교넷의 경우 참석자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인도 있겠지만 전체 모임 성격은 기독교와 무관한 일반 교육단체다. 그런데 좋은교사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려면 우리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대상이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기독교인끼리만 통할 수 있는 용어는 피하고 일반 교육학적이거나 교육운동의 흐름에 맞추어 좋은교사운동의 역사나 교육운동의 흐름을 소개하려고 내용을 재구성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을 빼 버리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하나님을 빼버리고 설명을 하면 좋은교사운동의 생명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명력의 핵심을 뺀 강의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EACTC의 경우는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이 모임은 기독교사의 모임이기에 좋은교사운동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케냐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나라가 처한 상황이 한국의 상황과 너무 달랐다. 교육적인 상황이나 고민도 한국과 너무도 달랐다. 무엇보다 내가 이들에게 상황이나 고민을 피상적으로만 알뿐 깊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육과 한국의 기독교사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이들이 자칫 남의 나라 이야기로 흘려듣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아니면 우리의 이야기가 자랑질이 되고 절망을 안겨주지는 않을지 염려되었다.

 

그의 행하심은 만방에 드러난 객관적 사실이 아닌가?

두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가 계속 던진 질문은 지난 20여 년 동안 좋은교사운동을 통해 내가 목도하고 경험했던 일들이 나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이었나? 아니면 만방에 드러난 객관적인 사실이었나?’였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 사실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좋은교사운동 가운데 일어났던 대부분의 역사는 함께 했던 선생님들이 공동체적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해보이는 상황 가운데서 길이 열렸던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신앙을 공유한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도 일상적인 삶의 방식이나 운동의 논리를 뛰어넘어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으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았다.

이렇게 지난 20년간 좋은교사운동 가운데서 일어났던 일들이 단지 나만 혹은 함께 했던 공동체에게만 속했던 비밀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분명해지자 강의에 대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기독교 공동체가 아닌 일반 교육운동 단체에서는 종교적인 용어를 최대한 절제하고 일반 교육계가 공유하는 언어로 표현해야겠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좋은교사운동이 하나님의 인도와 지혜를 구함으로 그 분이 역사하셨던 사실 자체는 분명하게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교육실천운동이든 정책운동이든 전문성운동이든 각 운동에 있어서 우리가 견지했던 기독교적 원리와 철학 역시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결코 거부감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도 의미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역사적 상황이 다르고 교육적 고민이 다른 아프리카 기독교사를 향해서도 과도하게 그들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아프리카에도 함께 하신다면 나로서는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그 내가 증언한 그 사실을 들어 사용하셔서 아프리카의 기독교사들에게도 말씀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해 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 이후의 역사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드러난 살아 움직이는 역사

새학교넷에서의 강의나 EACTC에서의 강의는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새학교넷에서는 좋은교사운동이 공교육 내에서 기독교적인 수업을 하는 부분이나 또 기독좋은을 독점하는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나머지 교육운동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공감대 속에서 진행이 되었다. 좋은교사운동의 각 운동 영역 가운데 깔려있는 기독성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아닌 에너지와 생명력의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안목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EACTC에서의 강의도 단지 한국 기독교사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들을 위한 메세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특별히 좋은교사운동이 운동의 고비마다 공동체적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와 지혜를 구하는 모습은 그들에게도 큰 도전으로 다가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놓고 좋은교사운동의 경험을 적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전도와 선교가 아니면 무엇인가?

새학교넷에서의 강의를 준비하고 또 실제로 강의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야말로 전도라는 것이다. 비록 개인 간증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기독교사들을 불러서 이 땅 교육계 가운데서 하셨던 역사를 증거하는 바로 이 일이 전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복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어찌하든지 복음을 듣지 않으려는 이 시대 상황에서 교육계 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는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형태의 전도가 아니겠는가?

EACTC에서의 강의를 준비하고 또 하면서도 이 일은 또 다른 의미의 선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복음을 전혀 모르는 지역에 복음을 들고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더 큰 역사에 대해 타문화권의 상황에서 증거한 이 일이 선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특별히 하나님이 사적인 영역에서 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 가운데서 어떻게 역사하시며, 또 그리스도인들이 공적인 영역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 한국에서 이미 드러난 증거를 가지고 타문화권에 선포하는 새로운 선교의 방식을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