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한 수업 만들기

삶과 맞닿는 그곳에서 가르침은 시작됩니다



열혈 아줌마의 좌충우돌 수업 이야기 4
삶과 맞닿는 그곳에서 가르침은 시작됩니다


김 주 화
(행복한수업만들기 한문 모임 대표)


바쁘다고 모른 척할 수 없는 일

 육아 휴직 3년 만에 돌아온 학교는 더 분주해진 모습이었습니다. 복잡해진 시스템과 다양한 행사들, 하루에도 몇 십 통씩 쏟아지는 메시지들. 참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 버리더군요. 수업하고, 행정 업무 처리하고, 학급 아이들 챙기다 보면 막상 수업 준비해야 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살림과 육아로 또 숨 돌릴 틈이 없다 보니 문득문득 ‘내가 이 길을 잘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수업 준비’는 그 자체로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이 단원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왜 가르치는가?’ 고민하는 것이 때로는 버겁게 다가옵니다. 교과서 내용 정도야 뻔한데, ‘왜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나’ 교과서에 있는 대로 편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많습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쁘다고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수업에 중립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교과서 한 쪽을 펴 놓고,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보고 또 보고,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내 삶과 맞닿은 거기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어떤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학이편 1장



《논어》학이편 1장은 중학교 한문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논어》의 첫 구절이기도 하고, ‘한문’을 배운다면 한번은 꼭 배워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게다가 사용된 한자가 쉬워, 풀이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쉽다고만은 볼 수 없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공자가 살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저 한낱 ‘명언’ 정도로만 여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춘추 시대라는 혼란했던 시대적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仁), 예(禮)를 주장하고, 덕(德)으로 다스릴 것을 주장했던 공자의 선택을 고려하면 이 구절은 공자의 삶의 고백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 즐겁다는 이야기에서 공자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기에, 그걸 또 ‘때때로 익힌다’는 것은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기쁘다고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학자는 공자의 ‘學’은 ‘예학(禮學)’이었다고도 하고, ‘심학(心學)’이라고도 합니다. 예학이든 심학이든 당시에 출세를 보장받을 만한 그런 배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것을 새가 날갯짓 연습을 하듯이 몸에 완전히 배여서 ‘내 것’이 될 때까지 연습하고 또 훈련하는 것에서 오는 기쁨! 그것은 겪어본 자만이 아는 기쁨이겠지요. 시대의 유행과는 다른 ‘낯선 길’을 가기에 외로움을 각오하고 있는데, 뜻을 같이하겠다고 멀리서 동지(同志)가 찾아옵니다. 동역자를 만나는 즐거움은 상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 기쁨과 즐거움을 남들은 모릅니다. 오히려 왜 시대에 부응하지 않고 거슬러 사냐고 더러 한심한 듯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기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이런 삶의 고백을 중1 학생들과 나누려, 보고 또 보고, 고민하고 또 고민할 때 저는 제 삶과 맞닿은 거기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수업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1] 마음 열기

- 《학문의 즐거움》중 일부를 읽고, ‘배움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

[2] 본문 학습

- 교과서 본문 내용 학습 (《논어》학이편 1장)

- 한자의 음과 뜻 익히기, 본문 내용 풀이 및 이해, 문법적 설명, 본문 쓰기 등

[3] 한 걸음 더

- 춘추 시대 이해하기 (지식채널 e 영상 활용)

-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본문 다시 읽기

[4] 삶에 접속하기

- 〈꿈꾸지 않으면〉 노래 듣고, 따라 불러 보기

- ‘배움의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없는 길, 낯선 길,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좋은교사운동과 기독한문교사모임은 제게 이 구절을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공자가 말한 기쁨과 즐거움을 모르면서, 기쁘다고, 즐겁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이 살아서 전달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공자가 말한 이 기쁨과 즐거움을 알겠습니다. 아주 생생히 제 마음에 그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선생님께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배우고 시시때때로 익힙니다. 어떻게 아이들을 더 사랑할지 배우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배우고, 어떻게 진리의 길로 안내할 것인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익힙니다. 가정 방문으로 익히고, 일대일 결연으로 익히고, 수업 평가를 받으며 익히고, 중보 기도를 하며 익힙니다. 거기에서 오는 기쁨은 아무리 고단해도 우리의 배움과 익힘을 멈추지 않게 합니다. 학교에서 홀로 힘들게 싸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기독교사대회에 갔더니 전국에서 2천 명 가까운 기독 교사가 모입니다. 동역자를 만나는 즐거움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지역 모임으로 모이고, 교과 모임을 비롯한 여러 사역으로 모이며, 승진과 상관없는 자율 연수를 받고 성과급의 일부를 기부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본문을 꼼꼼히 살펴본 뒤에 마무리 활동으로〈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를 듣고 함께 흥얼거렸습니다. 우리가 배운 공자 이야기는, 이 노래에 나오는 ‘없는 길, 낯선 길, 아무도 가지 않는 길’과 닮아 있음을 전하며, 특별히 저는 기독한문교사모임을 아이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게는 7~8명, 적게는 3~4명의 인원이 꾸준히 모여 기독교적 배움에 대해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한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창조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서울 동서남북에서, 시흥에서, 용인에서, 안양에서, 송탄에서 아이를 업고, 먼 길 마다 않고 달려오는 동역자들과 만나는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정말 어느 누구 알아주지 않아도 신기하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은 그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교과 내용과 맞닿은 제 삶을 나눌 때, 아이들 눈이 반짝였습니다. “아, 저게 꼭 교과서에만 나오는 이야기만은 아닌가 보구나.” 그렇게 보여 주는 그 눈빛에서 실낱같은 희망 하나를 건졌습니다.


선생님이 교육 과정이십니다

 이 《논어》수업은 제게 1학기 수업 중 가장 의미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살아 낸 것을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에 ‘중립’은 없습니다. 어떤 가르침이든 그 안에는 가르치는 사람의 삶이 결국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의도했든 안 했든 교사의 생각, 삶의 방향, 추구하는 가치나 신념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습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방향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르침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교육 과정이 되어 학생들에게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하기에 바로 선생님이 교육 과정이십니다.

 저는 이 말이 참 두렵습니다. 사는 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아 부끄럽고, 가르치는 대로 살지 못하면 가르칠 용기를 잃기도 합니다. 아무리 목청을 높여 설명을 해도 공허하게 느껴질 때면 제 삶이, 가르칠 만하지 못하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염지선 선생님과 언젠가 ‘비기독 교사의 좋은 수업’과 ‘기독교적 수업’의 차이점에 대해 나눈 적이 있습니다. 염 선생님은 교사가 먼저 수업 내용을 통해 창조 세계를 발견하고,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통해 기쁨을 누리는 것은 기독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수업 준비며, 이것은 비기독 교사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을 마음에 꼭꼭 담아 두었습니다. 아무리 세련된 수업 기법과 화려한 영상이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창조 세계의 비밀을 발견하고 그 진리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기독 교사만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삶 속에서 꾸준히 훈련되지 않으면 창조 세계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도, 그것을 수업에 녹여내는 것도 모두 ‘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결국 잘 살아야,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이제 방학이 끝나면 2학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날마다 배우고 익혀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래서 그 닮아 가는 과정에서 넘치는 기쁨이 학생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선생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