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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사실을 가치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행복 수업 초등 이야기
사실을 가치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권 일 한
(행복한수업만들기 초등 대표)


 수업 재구성으로 의견을 나누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과목이 있다. 국어, 도덕, 사회는 재구성하기 쉽다고 생각하고 수학, 과학은 어렵게 생각한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대체로 가치를 다루는 내용은 재구성이 쉽고 사실을 다루면 재구성이 어렵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단원 재구성은 아무래도 가치 쪽으로 기울게 된다. 재구성을 많이 해 보지 않은 교사의 수업 지도안은 도덕 과목처럼 변하기 쉽다. 하나님이 주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독교적이라는 것처럼 단순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무엇이 ‘기독교적인가’에 대한 논의는 워낙 답을 찾기 어렵다. 물론, 짧은 지면에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건 아니다.

 나는 책과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국어과 재구성을 많이 한다. 단원 재구성을 넘어 시에 대한 관점, 독서 활동에 대한 관점, 설명문이나 논설문에 대한 관점도 따로 정리하고 있다. 사회과도 현재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에 재구성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이야기할 때 하나님이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편을 드시느냐는 정하기 어렵지만 정치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선 좀 더 일치된 견해를 갖출 수 있다. 경제와 역사 역시 재구성할 때 기독교적인 입장이라고 말할 만한 견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은 창조를 말할 수 있는 우주 관련 내용과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환경 단원 외에는 재구성이 어렵다. 물체를 분류하는 기준, 자석 활용, 거울과 렌즈에 관한 기독교적 입장이 무엇인지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과학 전담 교사이면서도 재구성 수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새로운 도시, 새 학교에서 교무부장으로 적응하느라 바빠서 못 했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과학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과학에 대한 안목이 낮으니 관심이 적고 재구성할 능력이 부족하다. 수학과 과학은 정해진 지식을 배우고 문제 해결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지 기독교적인 해석을 해 보겠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창조 과학에 관심이 있지만 주로 ‘창조’ 영역에 머물 뿐이다.

 과학 과목은 사실을 주로 다루다 보니 가치를 다루는 과목보다 재구성이 어렵다. 그래서 재구성을 하지 않고 교사용 지도서가 알려 주는 대로 가르쳤다. 하지만 글쓰기만이라도 가치를 담아낼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본 수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4학년 1학기 2단원 ‘지표의 변화’ 내용 체계는 아래와 같다.

중단원

차시

내     용

구분

소중한

자원, 흙

1~2

학교 주변 흙 관찰, 여러 가지 흙 분류하기

사실

3

화단 흙과 운동장 흙 비교, 부식물의 역할

사실

4

풍화 작용에 의한 흙의 생성 과정

사실

변화

하는

5

지표가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하는 과정

사실

6~7

물에 의한 지표의 변화 (침식, 운반, 퇴적)

사실

8~9

강의 상류, 중류, 하류 지형, 알갱이의 차이

사실

10

침식과 퇴적에 의한 바다 지형 변화

사실

마무리

11

되짚어 보기, 확인하기, 글쓰기

사실, 가치


 4학년 1학기 2단원은 땅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원인과 과정을 배운다. 땅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배우는 내용이 없다. 즉, 사람이 받는 영향을 대부분 배제하고 풍화 작용, 침식, 운반, 퇴적 작용을 이해하도록 한다. 기독교적으로 재구성한다고 해서 땅이 소중하니까 잘 보전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관련 지식을 모두 배운 뒤에 글을 쓴다면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위의 내용을 모두 배운 뒤에 학생들에게 아래의 질문을 해 보았다.


1. 단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책을 보고 다섯 가지 이상 써 보자.

대답 : 풍화 작용, 침식․운반․퇴적 작용, 부식물, 물 빠짐, 지표의 변화, 실험, 산과 계곡의 상․중․하류의 모습, 식물이 잘 자라는 흙, 물에 의한 지표의 변화, 흙 보호

2. 각자 찾은 핵심 내용을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 찾아보자.

대답 : 화분에 운동장 흙을 넣으면 안 돼서. 지표의 변화를 모르면 위험이 있어서, 부식물이 있어야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을 알기 위해, 풍화 작용을 알기 위해, 지표의 변화를 알기 위해, 미래를 위해서, 흙의 생성 원리를 알기 위해, 화분에 운동장 흙을 넣으면 안 돼서. 돌을 아껴야 해서


 사실 나도 이 단원을 왜 배우는지 모른다. 화분에 씨앗을 심은 뒤에, 싹이 나고 자라는 걸 보며 놀라워하고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나도 즐거웠지만 지표가 오랜 세월에 걸쳐 변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지는 모르겠다.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산사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쓰는 글 역시 단원을 왜 배우는지와는 상관없다. 사방 공사나 나무 심기처럼 정해진 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다른 주제를 정했다. 내가 제시한 주제는 “학교 주위에서 작은 돌멩이를 하나 구해 오자. 이 돌멩이는 오래전부터 늘 이곳에 있지는 않았다. 돌멩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돌멩이의 여행을 상상해 보자”이다. 발에 차이는 돌 하나가 이곳에 오기까지 어떤 여행을 했을지 생각하면서 하찮은 돌 하나, 흙 하나의 가치를 알기 원했다. 활동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학교 주변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가져오자.
2. 이 돌이 중류, 상류에 가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서 그려 보자.
3. 돌이 학교까지 오는 과정을 상상해서 글을 써 보자.





김동영 : 대돌이의 여행

 대(大)돌이는 초록봉산 상류에 있던 큰 돌이다. 사람들은 대돌이한테 돌을 던지고 간다. 대돌이는 그럴 때마다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우르릉 쾅쾅 치던 날 내 머리를 내리쳤다. 그때부터 중(中)돌이가 됐다.

 “난 이제 여행을 떠날 거야!”

 중돌이는 강을 타고 강의 중류로 갔다. 그런데 어떤 남자애가 내 위에 올라갔다. 난 그때 조금 가라앉았다. 내 몸이 바위에 부딪쳐 조금 반쪽이 없어졌다.

 “으아앙, 나쁜 녀석!”

 나는 또 중류를 타고 내려가다 바위와 박았다. 그때부터 나는 소(小)돌이가 되었다. 난 북삼초등학교 방향으로 떨어졌다. 난 애들한테 맞으면서 잔디밭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누가 나를 잡고 과학실로 데려가 그림을 그렸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전미라
 나는 별님이다. 덩치가 크게 태어났다. 너무 퉁퉁해서 많이 못생겼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웃으면서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슬프다. 중류에 떠내려 오니 엄마, 아빠가 없다. 풍화 작용에 의해 다치며 깨지며 여기저기 다치게 되었다. 너무 아프고 괴롭다. 하류에 오니 중류에 있을 때보다 더욱더 작아지게 되었다. 중류에서 이리 박고 저리 치고 여기저기 부딪쳐서 더욱 작아졌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여러분, 저 별님이를 살려 주세요.’




 학교 운동장에 흩어져 발에 차이는 하찮은 돌이라도 우리가 모르는 역사를 갖고 있다. 이걸 알려 주려고 했다면 지나친 걸까? 풀 하나, 바위 하나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서 있는 건 없다는 걸 알려 주려고 했다면 과학이 아닐까? 잘 모르겠다. 다만, 시험지를 나눠 주는 것보다 이 활동에 아이들이 훨씬 더 집중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핵심 내용을 찾고 왜 배우는지 조별로 의논하고 돌의 여행을 상상하면서 단순 지식 이해 수준은 넘어선 것 같다.

 땅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나일강이 흐르는 사막, 골짜기가 있어 비를 흡수하는 가나안에 있는 흙과 돌이 믿음의 모습에 영향을 준다. 또한, 내 곁에 있는 작은 돌 하나, 나무 하나, 날마다 스치는 사람들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어 내 곁에 있다. 어쩌면 바울이 로마서에서 표현한 대로 이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남을 수만 년 동안 고대했을지 누가 아는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정답을 맞히는 수량화를 넘어 의미를 갖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이런 걸 이해하지 못했다. 돌 하나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것으로 끝이다. 그래도 사실을 가치로 연결시키는 작은 노력이 아이 마음에 무엇을 심어 주었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그걸 어떻게 알아보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