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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지남철 위에서 함께하는 시사 수업 : 웃자고 이야기하는 데 죽자고 달려드는 이유

 

지남철 위에서 함께하는 시사 수업
웃자고 이야기하는 데 죽자고 달려드는 이유

이 봉 수


다시, 정의란 무엇인가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 부분에 이런 예화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웨스트 텍사스 앤드루스 고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캘리 스마트는 인기 있는 응원 단원이다. 뇌성 마비를 앓아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응원 단원으로서 캘리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캘리는 2군 경기 때 사이드라인 쪽에서 미식축구 선수들과 관중을 열광케 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면서 응원단에서 방출되는 신세가 된다. 응원 단장을 비롯한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여러분은 이 내용을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아마 자신의 자녀들을 끔찍이 생각하는 부모들의 이기주의를 탓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샌델이 이 예화를 들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다른 데 있다. 치어리더들 중 가장 큰 영광(환호, 칭찬, 박수 세례)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공연을 가장 훌륭히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영화 〈Bring It On〉에서 가장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인 팀이 우승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정의관을 샌델은 목적론적 정의관이라고 한다. 목적론적 정의관은 목적에 가장 부합된 자질을 가진 사람이 자리를 차지해야 하며 목적에 가장 부합되게 활동하는 사람이 영광을 얻어야 한다는 정의관이다. 부모의 자리, 그리고 좋은 부모라는 칭찬은 자녀를 가장 잘 돌보는 부모가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너는 가수냐, 나는 선배다


 목적론적 정의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기성세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아이돌 그룹의 인기다. 기성세대가 보았을 때 인기 가수의 영광은 조용필이나 트윈 폴리오처럼 노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나 서태지처럼 창조적인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쁘고 잘생기고 몸 좋고 춤 잘 추는 앵무새처럼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의 인기 독식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들이 누려야 할 영광은 춤이나 육체미 대회에서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불의한 세상(?)에 분노하던 많은 사람에게 단비처럼 다가온 프로그램이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는 가수 7명이 나와 미션 곡을 수행한다. 그리고 청중 평가단 500명으로부터 가장 적은 표를 얻은 사람은 탈락하게 된다. 예고편부터 화제를 몰고 왔던 이 프로그램은 그들의 놀라운 노래 실력과 곡 해석 능력으로 ‘목적론적 정의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가 잊고 지내 왔던 가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게 해 준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시작한 지 몇 주가 안 돼 갑작스럽게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정반대의 문제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7위를 차지한 가수가 탈락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가수들도 이에 동조하자 PD는 룰을 변경해서 7위가 한 번 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많은 시청자들이 분노하였고 급기야 PD는 교체되고 해당 가수는 사과하며 더 이상 참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정당한 룰을 만들면 모두 그 룰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자유주의적 정의관’에 부합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진중권은 “다시 말하면 서바이벌 게임이 적용될 만한 영역에서 벗어나, 그 프레임을 적합하지 않은 영역에 옮겨 놓은 것 자체가 문제고... 피카소, 마티스, 파울 클레, 몬드리안,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데려다 놓고 데생 실력으로 한 사람씩 떨어뜨리는 프로그램, 그런 게 있을 수 있을까요?”라며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무분별하게 도입한 것 자체를 비판하였다. 룰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강같이


 생각해 보면 일개 연예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이런 현상은 어쩐 일인가? 아마도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강같이(암 5:14~27)’흐르지 못하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집단적 절망감이 그 배후에 있지 않나 싶다. 

 군 면제나 부동산 투기 등 편법, 불법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차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영광을 차지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차지하는) 불의한 현실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사람들에게 정의가 실현되는 위안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이상적인 위안처에서 현실의 불의의 모상(模像)을 발견하였을 때 그 분노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분노에서 현실에 대한 분노로 화(化)되어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본 대지진이 있기 전 심해 갈치가 수면에 떠오르거나 돌고래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많은 징조들이 있었다고 한다. 작년에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라든지 〈나는 가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의 실수에 국민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한 사회를 지탱하는 정의라는 둑의 균열이 심각함을 보여 주는 전조일 수도 있다.

 기독 교사로서 사회의 불의를 깨닫고 개선하며 또한 학생들에게 정의를 가르치며 실천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교육 목표로 제시되어야 할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학교의 목적, 혹은 학급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누가 그 영광을 차지해야 정의로운 학교, 혹은 학급이 되는 것일까요?


2. 우리 사회의 불의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김영사)







이봉수 

덕성여고에서 법과 사회, 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 사회쟁점교육위원회 위원이다.
여러 연수에서 토론 수업에 대해 강의하고 있고, 이혁규 교수의《수업, 비평의 눈으로 읽다》(우리교육)에 그의 토론 수업이 소개되었다.
아내 박은희와의 사이에 하람, 하온 두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