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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고1 : 동생 행복? 교사도 행복하고 싶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6. 27. 15:05

특집3. 기고 1
동생 행복? 교사도 행복하고 싶다

고 영 수(가명)


별거 아닌데…

 난 실업고 아니 전문계 아니 특성화고 교사다. 매년 학교 이름이 바뀌니 나도 헷갈린다. 업무는 방과 후 학교 운영 담당이다. 어떤 학교는 방과 후 학교 전담 교사가 있다고도 하고,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도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수업도 하고, 담임도 하며 방과 후 학교 운영을 담당한다. 업무는 별 거 없다. 1년에 여섯 번 학생 희망 조사를 받아 교과, 자격증 대비, 특기 적성 교육으로 구분하여 방과 후 학교 강좌를 개설하고, 그에 맞게 방과 후 학교 강사를 모집하고, 전교생에게 가정 통신문을 보내서 학생들을 모집하고, 수강료 납부를 확인하고, 자유수강권 대상자를 선정하고, 강좌가 끝나면 에듀파인으로 강사비 지급 기안하고, 매월 자유수강권 집행한 것 보고하고, 방과 후 학교 수업 빠진 학생 점검하고, 분기별 만족도 조사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연말이 되면 방과 후 학교 보고서 작성하는 정도다. 별거 아닌데 하루하루가 정신없다. 가끔은 그냥 예전 보충 수업처럼 학생들을 강제로 다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동생들의 행복

 그러던 어느 날 예년에 없던 새로운 공문이 나에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학생 멘토링’ 관련 업무. 학교 행정 아시죠? 새롭게 생긴 업무인데, 담당할 사람이 애매하니 가장 업무가 유사하다는 이유로 나보고 맡으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을 위해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자원 봉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그 이름도 감동적인 ‘동생 행복 프로젝트!’ 좋은 교사임을 자부하는 내가 학습 부진 학생과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대학생을 연결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의 통로’가 아닌가?

앗! 그런데 그 아름다운 생각은 환상이고 착각이었다. 이때부터 내 담당 공문함에는 새로운 공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나열해 본다.


2010.03 (공문) “대학생 봉사자 동행프로젝트” 신청
2010.03 (보고) “대학생 봉사자 동행프로젝트” 관리교사 지도비 및 프로그램 운영비 신청
2010.03 (공문) 2010학년도 1학기 동행프로젝트 지원금(2차) 교부 알림
2010.04 (공문) 동생들과 함께 하는 특별한 동행(기획봉사) 실시 안내
2010.04 (공문) 1학기 동행 프로젝트 운영 현황 파악을 위한 모니터링 협조 요청
2010.05 (공문) 동행 프로젝트 관리교사 및 대학생 대상 해외봉사활동 참가자 추천 요청(추가)
2010.06 (공문) 2010년 1학기 동행 운영 결과 및 관리 교사 설문지 제출 협조
2010.06 (공문) 2010년 2학기 동행 프로젝트 신청 안내
2010.07 (공문) 동행 사업보고서와 봉사활동사례집 배부 안내
2010.07 (공문) 동행 홍보를 위한 리플렛 및 소식지 배부 협조 요청
2010.08 (공문) 2010년 2학기 동행프로젝트 신청 기간 연장 및 신청 협조 요청
2010.08 (공문) 2010년 2학기 동행 신청학교 신규 관리교사 직무교육 참석 협조
2010.09 (공문) 2010년 2학기 동행프로젝트 운영계획서 제출 및 운영비 신청 안내
2010.09 (공문) 2010년 2학기 동행프로젝트 운영비(2차) 교부 알림
2010.10 (공문) 2010년 2학기 동행프로젝트 운영비(3차) 교부 알림
2010.10 (공문) 한국 대학생 지식봉사단 운영 협조 요청(사전 수요 조사 요청)
2010.10 (공문) 미래 국제재단 장학생 자원봉사 새싹 학습지도 협조 요청
2010.10 (공문) 2010년 2학기 동행 모니터링봉사단 학교 방문 협조 요청
2010.10 (보고) 2010년 2학기 “대학생 봉사자 동행프로젝트” 프로그램 운영비 및 관리 교사 지도비 신청


동생들이 행복할까?

 자, 이제부터 나의 업무는 시작된다. 학기 초 대학생 멘토링 관련 공문을 보고, 멘토링 사이트에 들어가 우리 학교에 필요한 과목과 인원을 신청하고, 신청한 대학생과 통화하여 만나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선생님들에게 메신저로 멘토링 희망 학생을 모집하고, 대학생과 우리 학교 학생 시간을 맞춰서 대학생 한 명과 우리 학교 5명씩 해서 아이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그리고 첫 시간 멘토링을 잘하고 있는지 집에도 못 가고 확인하고, 교재도 구입해 주고, 아이들에게 열심히 할 것도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 대학생들에게서 멘티 학생이 안 온다는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한다. 씩씩거리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불러 왜 빠졌는지 확인하고, 빠지면 혼난다고 확인 또 확인,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비와 관리비를 쓰고 보고하기 위해 필요한 교재 사러 서점도 다니고, 가끔은 멘토 대학생과 만나 저녁을 먹으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더 기가 막힌 건 관리 교사라고 관리비도 받고 잘하면 해외여행도 갈 수 있다는 소문에 관리자에게서 눈총까지 받는다는 사실. 거기다가 교육청에서 멘토링 잘하고 있는지 모니터링도 오고, 학기별로 설문 조사도 해야 하고, 멘토 대학생 봉사 활동을 위해 봉사 활동 시간도 확인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국 대학생 지식 봉사단 멘토링 추천’, ‘00 국제 재단 장학생 자원 봉사 새싹 학습 지도 협조 요청’, ‘서울 00대학교 희망 교육 참가 신청’ 공문까지 멘토링 관련 공문은 끝이 없다. 대학생 멘토링 기관은 왜 이리 많은지, 이제 구청과 모 신문사에서도 한다고 하니 유행은 유행인가 보다.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화상 채팅으로 멘토링을 하는 곳도 생겼다고 공문이 온다. 아이들에게 화상 채팅할 수 있는 도구를 주고, 대학생 언니, 오빠들과 화상으로 대화를 한다고 하니, 세상 참 좋아졌다.


나도 조금은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제 ‘대학생 멘토링’ 관련 공문이 오면 조용히 무시하기로 했다. 어느 학교처럼 대충 대학생들을 자율 학습 감독을 시키든지, 멘토링 단체와 MOU를 맺어서 체계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대학생 멘토링을 담당하는 전문 교사를 두든지 해야지 이건 아니다. 여러 기관에서 우후죽순 스팸처럼 보내오는 대학생 멘토링 사업은 교사인 나에게는 또 다른 잡무일 뿐이다.

어느 지역은 멘토링 사업이 과열되어 대학생 사이에서 멘토링이 단순한 자원 봉사를 넘어 짭짤한 아르바이트 과외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어느 지역은 멘토링 사업 자체가 없어서 그 지역 대학생도 소외되고, 멘토링이 필요한 아이들도 혜택을 못 받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학교 교사는 멘토링 업무에 치여서 힘든데, 어느 지역은 대학생 멘토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니….

 ‘대학생 멘토링’이 정말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서적, 학습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리 잡고, 관리 교사인 나의 업무도 조금은 줄어드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