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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어떤 변명(2017.1)

정병오 칼럼


어떤 변명




지난 2016 기독교사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분에게는 생소한 이야기겠지만, 그 때 송인수 선생님이 주제강의를 하면서 나의 퇴직을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요청한 바 있다. 그 이후로 많은 분들이 나를 만나면 그 때 송 선생님의 퇴직 요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오고 있다. 지난 115일에 있었던 좋은교사운동 비전공청회에서도 송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나의 퇴직을 요청했다. 이런 퇴직 요청은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 있었다. 그동안은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했다면, 최근 들어 공개적 요청을 하고 있어 나도 공개적인 답변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공적 통로인 이 칼럼을 통해 나름의 변명을 하고자 한다.

 

20년 전 그 때의 헌신 각오

송 선생님과 내가 퇴직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기윤실 교사모임이라는 작은 모임을 시작한 이후 이러한 운동을 어떻게 확산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가지고 박상진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 때 박 목사님은 작은 기독교사 모임들이 산발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는 한국 교회나 교육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기 때문에 기독교사 단체들이 다 통합을 해야 하고, 이러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교직을 그만두고 이 일에 풀타임으로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이 말을 들을 때 송 선생님과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고, 둘은 이것이 성령의 강력한 감동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 때 박 목사님과 만난 후 광나루 언덕에서 봤던 석양을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그 때 이후 19958월에 4개 기독교사 단체 대표들이 첫 기독교사 단체 대표자 모임을 개최했고, 19961월에는 1998년에 첫 번째 기독교사대회를 개최하기로 역사적인 합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사 단체들 간의 통합보다는 강한 연합의 형태가 더 건강할 수 있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연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1998년 첫 번째 기독교사대회 이후 연합된 조직이 한국 교회와 교육을 바꾸는 주체로 쓰임받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위해 풀타임으로 헌신할 사람이 필요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둘이 이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각오를 서로 다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각오는 가족들과는 상의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좋은교사운동에 후원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여간 아무런 대책 없이 우리는 운동의 흐름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만 보면서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만나면 누가 먼저 퇴직할 것인가 하는 일명 퇴직 게임’(?)을 겁 없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직, 휴직 그리고 퇴직

우리의 무모한 헌신은 우리 생각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8년 첫 번째 기독교사대회 후 개최된 실행위원회에서 우리의 퇴직을 요청할 것이라는 기대는 무산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두 번째 기독교사대회를 앞두고 송 선생님과 나는 1년간 휴직을 했다. 물론 체계적인 후원 조직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몇몇 개인 후원자의 도움을 받고 대부분의 생활비는 개인적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독교사대회는 그 규모나 질의 측면에서 학교에 근무하면서 남는 시간으로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여간 두 사람의 대책 없는 휴직의 헌신에 힘입어 2000년 기독교사대회가 새롭게 도약을 했고, 후원 체계도 갖추게 되었다.

다시 2년이 지나 2002년 기독교사대회 준비를 위해 송인수 선생님은 또 휴직을 했고, 이제는 더 이상 휴직으로는 운동을 감당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래서 송 선생님의 결단과 실행위원회의 결정으로 2003년부터 퇴직을 하고 좋은교사운동을 전적으로 섬기게 되었다. 어떤 운동의 결과를 한 사람의 공로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그래도 송 선생님의 퇴직 이후 좋은교사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송 선생님은 퇴직 후 5년 동안 대표 임기 수행 후 2008년부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새로운 운동 단체를 만들어 교육개혁의 새로운 흐름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자격있는 제안

송 선생님이 퇴직 후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마지막 사업으로, 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조건으로 내건 것이 좋은교사운동 상근자들이 자유롭게 휴직을 보장받는 법적 장치의 마련이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하게 보였던 이 일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졌고, 덕분에 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퇴직을 하지 않고 휴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대표 임기를 끝낸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송 선생님은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내가 퇴직을 하고 교육운동에 전적으로 뛰어들 것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자신과 같이 우리 교육계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를 붙들고 운동할 것을 제안을 했다. 그래서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할 때는 학교폭력 걱정없는세상을 만들면 어떻겠냐며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좋은교사운동 연구소좋은교사운동 대학원을 만들어 좋은교사운동이 풀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붙들고 연구를 해주거나 후배 리더들을 양성하는 일을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의 자연스런 인도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 교회와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면 교직을 버리고 헌신을 하겠다는 다짐은 20년 전에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었다. 그리고 송 선생님은 이 약속을 따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자신을 던져 좋은교사운동의 기초를 든든히 하고 지평을 확대하는 일을 했으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새로운 교육운동의 장을 열었으니, 나에게 이런 요구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문제는 내 속의 확신의 문제다. 좋은교사운동을 벗어난 새로운 운동이든 아니면 좋은교사운동을 든든히 세우기 위한 기초 작업이든 과연 그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또 하나님이 과연 이 일을 위해 나를 풀타임으로 부르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 계속 기도하지만 여전히 확신이 없다. 그리고 내가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후배 리더들에게 도움이 될지 짐이 될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이러한 확신이 없는 가운데 교직에 복직을 해서 평교사로서 또 좋은교사 평회원으로서 묵묵히 살고자 했던 나에게 오디세이 학교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물론 이 일은 나 개인의 일이나 좋은교사운동의 일이 아니고 서울시교육청의 사업이고 나는 한 사람의 교사로서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학교는 2005년에 40, 2006년에는 82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했으니 전체 한국 교육을 생각할 때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일이 전체 한국 교육의 변화를 위해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아니 이 일 자체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하는 이 일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느낄 때가 많고, 이 일이 한국 교육의 변화에 어떻게 사용될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지만 당분간은 내가 더 붙들고 섬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계속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감당하면서 틈틈이 좋은교사운동을 섬기고, 그리고 그 외 여러 기독 운동들을 섬기는 이 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인도의 흐름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더 분명한 부르심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분명한 부르심이 있다면 교직의 안정성과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떠나 언제든 그 부르심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나로서는 지금 현재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흐름을 떠나 비약적으로 새로운 길을 선택하려면 그만큼 강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