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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장애가 막을 수 없는 사람(2013.08)

제가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몸이 불편한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 보기로 작정한다면 안 될 것이 없음을 삶으로 본을 보이면서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이를 교육이라는 그릇으로 잘 담아내는 일에 묵묵히 순종한다면, 통합교육이 곧 복음과 진리의 통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천 중등무지개학교 박항승 선생님

장애가 막을 수 없는 사람

 

 

 

/ 사진·김기웅

 

 

 

 

 

의족 보더(boarder), 박항승! 지난 2KBS 뉴스에서는 5살 때 교통사고로 한쪽 팔과 다리를 잃어, 의족에 부츠를 신고 한쪽 팔로 중심을 잡고 스노보드를 타는 한 청년이 소개되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거듭한 지, 2년 만에 수준급 실력을 갖췄고, 스노보드 강사 자격증을 획득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돕고 싶고, 2018년 평창 장애인 올림픽에 국가 대표로 선발되어 희망의 질주를 해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기윤실교사모임의 좋은교사, 박항승 선생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꿈을 이룰 수 없는 곳이라면

저는 뻘낙지로 유명한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모태 신앙으로 교회 다니는 것을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시골 작은 교회의 가족 같은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교회 찬양단 활동에 참여하면서, 싱어 및 인도자의 역할도 배우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예배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대도시, 목포에 있는 미션스쿨로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션스쿨임에도 모든 선생님이 크리스천은 아니라는 점도 당황스러웠지만, ‘너희들, 이런 수준으로는 좋은 대학을 가거나 꿈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 ‘돈만 주면 갈 수 있는 쫛쫛대학밖에 갈 수 없을 것이다등등 희망과 비전을 주기보다는 단념 시켜버리는 선생님들의 말씀 속에서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교통사고로 장애가 있던 터라, 이곳에서는 더더욱 꿈을 꿀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당시 제가 꾼 꿈은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휩쓸던 2000년대 초반, 저는 양손이 아닌 한손 프로게이머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대안학교!

그러던 중에 지인을 통해 대안학교로 가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대안 교육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던지라, 자유롭게 내 꿈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기독교 대안학교인 진솔대안학교에 찾아가 1주일간 체험 캠프를 하면서 기대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학교는 나에게 다양하고 의미 있는 배움의 장을 열어 주었고, 자연스럽게 섬김과 봉사, 사역의 기회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대안학교 시절, 찬양 인도자, 기도 모임 인도자로서 섬겼던 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을 강하게 경험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나의 장점과 은사, 강점, 재능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지금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애가 나에게 준 영향

5살 때의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 때문에 친구들과 관계 맺기 어렵다거나, 차별을 당하거나, 소외되는 경험은 중학교 시절까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시골 동네에서는 친구 관계나 환경의 변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목포로 진학한 고등학생 때부터는 장애로 인한 한계도 느끼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점차 의족을 한 모습을 가리거나 신체 노출을 피하게 되던 차에, 내가 가리려고 하면 상대방도 의식하게 된다는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뒤로부터는 반바지, 반팔 셔츠 등의 짧은 옷을 입고, 친구들과 목욕탕에도 같이 가는 등 신체의 모습에 대해서 자신감도 생기고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실제로 컴퓨터 자판도 한 손으로 600타 정도 나올 만큼 생활에 문제가 없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점이 없진 않으나, 장애가 있다고 측은하게 바라보거나 동정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어려움입니다. 일반인처럼 해낼 수 있고, 더 열심히 해서 더 잘 할 수 있는데, 몸이 불편한 친구들에게 이런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특히 오기가 강해서 못한다, 못한다하면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집니다. 물론 저희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고맙지만, 이런 것을 아시게 된다면 그냥 일반인처럼 편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애의 장벽을 넘어 시작한 교사 생활

전주 우석대 특수교육과 학생으로 지낸 4년간의 대학 생활은 이리저리 세상을 둘러보다 다시 믿음 안에서 무게중심을 확립한 시기였습니다. 선교단체인 CCC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장애 관련 단체 사역에 이모저모로 가담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나 단체들과 관계를 넓게 하기 위해서 신앙에서도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잠시 기독교사의 부르심에 대한 의식이 약해진 부분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가만히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위한 특별한 만남과 관계를 예비하고 계셨음을 시간이 흐르면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졸업 후, 임용 시험이 여의치 않아 많은 학교에 기간제 원서를 넣기 시작했는데, 장애가 결격사유가 되어 대부분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때로 장애라는 단어를 빼고 원서를 넣어 보니 여러 곳에서 제의가 왔지만 결국 최종 합격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장애로 인해 늘 장벽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2개월간 특수학교에서 교사를 하면서 열심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의 무너진 가정들을 보며 제자들을 키우는 일이 내 말과 열심만으로는 참 힘들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연결된 곳이 바로 고향과는 매우 동떨어진 경기도 연천 전곡고등학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학교의 특수교사 선생님과 특별한 만남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2년간 기간제를 하면서, 좋은교사운동 소속의 기독교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대학 생활 동안 잠시 신앙의 힘을 잃고 있었다가 기독교사들과 만나서 교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신규 교사로 발령 받아 오신 조기임 선생님을 통해 동두천 기윤실교사모임을 소개 받았고 공동체로 함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이 기간에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믿음 위에 선 가정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기간제였던 전곡고를 나와서 이제는 결혼을 위해 정규 직업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좀 더 고용이 안정된 직업으로 전향하려고 노력도 해보았는데, 오히려 나의 부르심이 교육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사명 포인트’, 대안학교!

올해 3월에 지금 근무하고 있는 경기도 과천시 소재의 중등무지개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안학교에서 특수교사를 채용하는 일은 흔치 않은 사례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경험하면서 일하게 된 이곳은 내 인생의 사명포인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지개학교는 공동 육아를 하던 가정들이 늘어나면서 초등무지개학교를 시작, 현재는 9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는 대안학교입니다. 중등학교는 시작한지 3년이 되어가며, 학부모 교육비만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학급별로 1명의 장애우가 소속되어 있어 사회에서의 생존 능력 함양을 위한 농사, 수영, 대중교통 이용하기, 관광지 방문 등의 수업을 합니다. 한 가지의 주제로 1년간 프로젝트 수업도 합니다. 장애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조화롭게 통합교육이 운영되고 있는 점이 매우 인상적인 곳입니다. 또한 대안학교 특성상 선생님들과 소통과 회의를 통해서라면 언제든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을 펼칠 수 있으며, 신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곳 무지개학교에서도 좋은교사운동 회원인 기독교사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장중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나의 동역자

교제하고 있는 여자 친구, 권주리 선생님도 특별한 이유로 특수교육을 전공하였습니다. 지금은 법으로 입학 거부가 되지 않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동생이 학교에 입학하려는데, 그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예술대학에서 아동 청소년 연극을 수료하여 연극과 특수교육을 융합한 연극 치료 프로그램으로 여러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프리랜서입니다. 고급 스포츠(?)인 스노보드를 접하게 된 계기도, 수영에 도전하게 된 계기도,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는 저를 배려하고 적극 격려해준 그녀 덕분입니다. 이제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면 결혼하고 같이 특수교육을 제대로 해보려고 계획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도 함께 준비하고 계십니다. 장애우들이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폐나 정신지체 장애 같은 경우는 일반인들과의 소통을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시골에서 사는 것도 유력한 대안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시골에 장애우를 위한 작은 마을을 만드는 일도 꿈꾸고 있답니다.

 

제가 용기를 보여 주고 싶어요

제가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몸이 불편한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 보기로 작정한다면 안 될 것이 없음을 제가 삶으로 본을 보이면서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이를 교육이라는 그릇으로 잘 담아내는 일에 묵묵히 순종한 다면, 통합교육이 곧 복음과 진리의 통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기윤실에서도 찬양 싱어로 열심히 활동했었는데, 앞으로는 찬양 인도자로도 서고 싶습니다. 언젠가 되건 기독교사대회 때 찬양 인도자로 섬길 기회도 주시지 않을까요? 제 장애가 찬양이 되며, 제 삶이 감사의 제사가 되는 예배자를 꿈꿉니다. 또한 소치 올림픽부터 스노보드 종목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는데, 현실적으로는 비인기 종목이라 지원이 열악하고 여름 해외 훈련이 힘든 상황지만, 혼자서라도 꾸준히 연습을 계속하여 2018년 평창에서 패럴림픽 국가 대표로 서보고 싶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늘 한계를 넘어 이 모든 일을 즐거워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를 또한 칭찬해 주시니 더욱 격려가 되고, 제가 열어가야 할 꿈들임을 하나님께서 한 번 더 보여주시는 증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