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나고 싶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제도적, 문화적 지원 기반도 중요합니다(최현섭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_2018.01)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제도적, 문화적 지원

기반도 중요합니다

 

 

 

최현섭(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강원대 사범대 교수와 총장을 역임하였고, 교육시민단체인 정의교육시민연합대표와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공동대표로 활동하였다. 현재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김진우 인터뷰정리·사진 임종화

 

 

새 정부가 출범한 후 교육계에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국가교육회의’, ‘정책자문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3기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된 최현섭 강원대 명예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현재 교육계 이슈에 대한 입장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먼저 어떻게 교육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중고등학교를 두 시간 넘는 거리에서 통학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짜릿한 학창 시절이 아주 적습니다. 기억이 있다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청소년 적십자단 활동을 하면서 실감한 교과서 밖의 세계가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3에 이르러서야 그 허기진 학창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공허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범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교사 생활을 2년 하면서 수업의 질, 교사 문화, 청소년 문제, 시민교육, 사회 구조 등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시민운동은 저의 허기졌던 학창 시절과 2년 동안의 교사 경험 그리고 교육 이론들을 사회운동으로 묶어 풀어 보고자 하는 작은 소망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의교육시민연합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를 통해 교육시민운동을 하셨는데 시작하신 배경과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교육시민운동은 1992년 당시 손봉호 교수님이 공동대표였던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 협의회(정사협)’의 교육 파트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의교육시민연합(전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교육운동 협의회)’은 정사협이 발전적으로 해체되면서 발족되었지요. 당시 우리는 교육 현장이 정직, 정의, 정도라는 큰 틀 안에서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현장 교육의 개혁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 교장과 교사 등 교육 관련 당사자의 대화와 소통을 위한 자리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꼬마시민운동, 청소년 의회 등 학창 시절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교육운동단체와 만나게 되었고 연대 활동을 하면 좀 더 효과가 높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전교조, 흥사단, 기윤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등과 함께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교육 개혁 담론이 뜨거웠고 5.31 교육 개혁이 적용되는 시기라서 교육부 개혁, 학교 개혁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최근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는 학교교육혁신분과, 고등교육혁신분과, 입시제도혁신분과, 평생직업교육혁신분과, 미래교육국제화분과, 학교안전분과 등 6개 분과 6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1월 출범한 제3기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셨는데 이 기구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위원장으로서 위원회 구성 과정에 깊이 관여하지는 못했습니다. 자문위원회는 분과위원회 중심으로 내용이 채워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위원장의 역할로 크게 세 가지가 중요해 보였습니다. 하나는 교육 또는 교육 정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과 그림을 명료화하고 공감을 높이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분과위원회가 활성화되도록 돕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문위원회와 교육부 관료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조율입니다. 이를 위해서 될 수 있으면 각 분과위원회 모임에 참여하여 현장감을 키우고 혹시 있을 수 있는 간극과 오해를 줄여서 정책의 효율화를 증진하도록 힘쓸 생각입니다.

 

정책자문위원회가 민관 협치의 하나인데 민관 협치가 잘 되게 하는 조건이 있을까요? 교육부나 교육청에도 여러 위원회가 있지만 실제로는 형식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협치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책의 중추인 교육부 장관이 협치 상황에 대해 밀착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 보고를 받을 때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었는지, 쟁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관의 관심이 협치의 효과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정책을 보고할 때 협의 결과를 첨부하는 것을 아예 제도화하는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야 모양 갖추기 자문위원회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분과위원장과 해당 정책 담당자와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아직 우리는 협치의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잘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자문위원들과 관계를 밀접하게 맺으려고 애쓰고 있고, 정기적으로 장관과의 면담 등을 통해 형식화를 최소화하려 합니다.

 

정책자문위원회와 별도로 국가교육회의가 구성될 예정인데 이 두 기구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나요?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운데 국가교육회의는 장기과제 중심으로, 정책자문위원회는 현안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책자문위원회도 장기과제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국가교육회의와 정책자문위원회의 역할과 소통 방식도 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정부에 정권을 넘어선 교육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민단체도 정권과 관계없이 정책에 대한 일관된 주장을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시민단체 주관 토론회에 교육부 담당자를 초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치가 구호로 그치지 않으려면 정책 결정 권한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정책 내용과 적용 전략에 대해 함께 숙의하고 연대하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정책자문위원회의 당면 과제를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교육 개혁의 요구나 담론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차근차근 확정하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가장 급한 것은 20181월에 해야 할 교육부의 대통령 보고 내용 정하기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등교육 정책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 생각합니다. 질 높은 고등교육을 통해 질 높은 전문 인력이 사회에 투입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국가와 사회의 혁신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학이 학생들의 잠재 역량을 제대로 개발하도록 하는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하고 학점을 이수하는 형식적 교육이 아니라 학생 각자의 전문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대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대학이 스스로 이러한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자각과 재정립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율적인 고등교육 개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하고 시키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로봇 대학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고등교육 개혁에서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것은 정부가 정책을 세세히 만들고 관리 감독을 하여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총론적이고 기본적인 방향만 제시하고 모든 것은 각 대학교가 나름대로의 계획과 성과 지표를 정하여 자율적으로 혁신해 가는 자율적 혁신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저는 유치원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장 응급처치 차원에서 보면 고등교육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치원 교육이 잘 되려면 선생님의 질이 높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치원 교육을 혁신하려면 유치원 교사 양성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결국 고등교육의 혁신이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고등교육의 혁신은 훌륭한 교사, 훌륭한 전문가 투입의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이 활력과 열정, 연구 기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대학 평가도 더 이상 괴롭히는 평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혹자는 총장 직선제가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착각입니다. 총장 선출을 간선제로 하든 직선제로 하든 구성원 마음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둘 다 문제가 있습니다. 교수가 바뀌면 대학교육의 질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제가 대학교 1학년을 가르쳐 보았는데, 대학생들도 얼마든지 역량 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이건 유치원이건 모두 현장 구성원들의 자율 역량을 어떻게 기르느냐 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고등교육의 변화를 강조하셨는데 중등교육의 과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난 정부의 실정 중 하나는 자사고·특목고를 과잉으로 만들어서 우리나라의 인재 양성 구조의 기본 틀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것은 구조의 문제입니다. 영재를 위한 특수목적을 가진 학교가 0.3~0.5%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영재의 범위를 너무 넓혀서 10~15%를 영재의 범위에 넣음으로써 인재 양성 구조 전체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영재가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영재의 범위에서 벗어난 학생 대다수를 둔재처럼 인식하게 만든 것이 문제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인재상의 왜곡입니다. 인재는 다양한 사람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키우고 발휘해야 합니다. 원래 사회가 능력도 다양하고 품성도 각양각색인 사람들의 집합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못난 사람과는 함께 놀지 않아야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착각, 잘난 이들끼리만 어울려야 훌륭한 인재라는 독야청청 인재 양성에 갇혀 있어 문제입니다. 결국 연대와 협력의 인재관이 무너졌고, 독야청청 인재들도 과잉경쟁으로 인해 심각한 불행과 부적응에 시달리게 하고 말았습니다. 다수를 소외시키고 선택된 이들에게 이전투구적 경쟁에 빠지게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행의 고교체제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체제는 유럽처럼 미리 진로를 정하는 시스템도 아니고 완전한 단일 시스템도 아닌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유럽처럼 12세에 미래가 결정되는 구조와 미국처럼 18세에 미래가 결정되는 구조가 중첩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유럽은 12세에 일찍 진로가 결정되지만 18세 이후에 다시 대학에서 학문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았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때문에 직업 현장으로 간 학생들도 그렇게 소외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도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바로 대학에 가게 하지 말고 직업 세계에 들어가거나 지역에 있는 커뮤니티 스쿨에 들어간 후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고교 학점제 도입이 이슈인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교 학점제가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교과 학습실을 만드는데 앞장선 적이 있습니다. 교과 학습실이 없으면 이동 수업이나 학생들의 선택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교과 학습실을 만들어야 교과 전문성이 생기고 교과 교사끼리 연구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그래야 이동 수업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과 학습실의 효율적인 운영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대학교의 선발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학급 담임 중심에서 교과 담임 중심의 학교 운영, 교사의 교과 전문성 강화, 평가 개혁 등이 같이 가지 않으면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표는 분명히 정하되 천천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입시도 지금처럼 점수와 결과 중심이 아니라 성취 중심, 아이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잘만 된다면 그에 많이 근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입학사정관제도는 본산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서양은 인재의 잠재력과 그 개발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간파해 내는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정부패를 걱정해서 전문가를 기르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 대학의 인재 판별 기준도 애매하고 불안정합니다. 각 대학의 인재 양성의 방향과 전략도 애매하고 불안정합니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제 정착을 위해서는 입학사정관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고교 학점제의 성공 여부도 대학이 어떻게 읽어 주느냐에 달려 있기에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통해 질적 평가를 할 수 있는 체제가 같이 가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입학사정관의 평가가 한 학생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책무성을 어떻게 길러줄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입시 문제와 연관해서 수능 절대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한 이슈는 크게 평가 반영의 방식과 평가 내용의 문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평가 내용의 문제는 수능이 무엇을 평가하고, 어떤 능력을 평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가능하다면 수능을 잘 본 학생이 10, 20년 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추적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런 연구 데이터도 없이 평가 반영 방식을 바꾸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수능이 절대평가가 되면 풍선 효과 때문에 대학이 다른 요소를 반영해서 현장을 왜곡할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대학들은 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빠져나갔습니다. 여전히 대학은 자기들의 편한 방식, 점수 중심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을 가지고 선발하고 있고 잠재력 중심의 평가를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잠재력 중심의 평가로 바뀌지 않으면 절대평가를 하든 안 하든 똑같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또 하나의 우려는 제도가 바뀌면 적응이 가능한 계층의 학생들은 5년 이내에 쉽게 적응하는데 낮은 계층의 학생들은 쉽게 적응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계층 간 불평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정이 어렵고 사교육을 적게 받은 아이들이 유리하도록 제도를 만들어도 5년만 지나면 부유층은 다시 거기에 적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도에 쉽게 적응은 못하지만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발견하는 심층적인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커뮤니티 스쿨제도가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이 제도는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좋은 학교에 입학할 역량이 개발되어 있지 못하지만 커뮤니티 스쿨에 들어가서 역량이 제대로 개발되면 쉽게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패자 부활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공립형 전문대학을 많이 늘리고 활성화해서 18세에는 준비가 안 되었더라도 나중에 의지와 역량이 개발되었을 때 명문대학에 입학할 통로를 열어 두는 방향으로 개혁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18세에 집중되는 입학 경쟁도 완화되고 계층 상승 사다리도 상당히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 이외에 또 중요한 이슈가 무엇이 있을까요?

위에서도 언급했는데 당장의 효과는 없지만 유치원 교육이 중요합니다. 현재 유치원 교육은 많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이미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정답 위주, 성적과 인격의 등치 현상이 유치원까지 내려가 있습니다. 유치원 교육은 진도나 교과 목표가 중심이 되면 안 됩니다. 놀이를 통해 자기의 에너지를 키우는 교육, 잠재력을 키워 주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유치원 교사 양성 체제를 바꿔서 유치원 교사의 전문성을 키워야 합니다.

만약 유치원 교육의 변화가 어렵다면 초등교육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교육대학을 4년제 종합대학에 통합시켜야 합니다. 현재처럼 독자적인 캠퍼스 양성 방식으로는 초등학교 교사를 명실상부한 다중지능형 전문가로 육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합대학에서 인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수업과 경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감각, 인간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해야 합니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실패한 사람의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초등교원 양성 과정에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 교육 자치도 강조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교육 자치가 참 중요한데 숙의(熟議)’가 있는 자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감이 되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풍조가 살아 있는 한 교육 자치 확대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교육감들이 지역 사회와 아이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 인재 양성의 벽돌을 쌓아 가는데 무한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임기 동안 자신의 개인적 교육관을 마음껏 펼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순간 아이들에게 치명타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치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교육감의 과잉 자율을 막는 제도적 장치도 중요합니다. 자율과 자치는 책임과 도덕성이라는 터 위에 자리할 때만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원 정책과 관련해서는 어떤 것이 중요한 과제일까요?

저는 수많은 교원 정책 중에서 교장 제도의 개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교장 승진 제도는 종속과 줄 세우기, 비리 등의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형 공모제 등 교장이 되는 트랙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트랙 간 제도 경쟁이 됩니다. 단일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부형 공모제 교장들과 혁신학교 교장 출신들이 연구 모임을 만들어 성과에 대해 연구하고 후배들을 도와서 정책이 성공하는데 기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많은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 현 정부가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이번 정부는 지난 정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혁명적 전환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쉽게 과제를 풀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언론계, 학계, 정치계의 패거리적 논란도 문제지만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 수준의 대안 고집과 막무가내식 문제 제기 등도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기득권 세력의 단순 총점제 중심의 인재 판별 기준도 능력 중심의 인재 양성을 방해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주 단단한 각오와 결단이 없으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다가 말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한편으로는 학자들의 연구를 통한 데이터를 통해 대중을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카이스트에서 일반고 출신 학생과 특목고 출신 학생의 성적을 비교하여 고학년이 되면서 일반고 학생의 성적이 더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문제 풀이 교육과 창의력의 연관성에 대한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지속적인 연구, 데이터 축적과 더불어 현 정부의 강인한 의지와 결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 교육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뒤따라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며 헤쳐 나갈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교사운동을 포함한 교원단체와 교사에게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저는 좋은교사운동이 교사의 권리보다 학생의 행복과 미래, 가정 배경 때문에 힘든 아이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그것을 이룩하는 수단으로써 교사의 권리나 제도적 개혁을 추진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한두 명의 폭력 교사로 인해 전체 학교가 폭력적인 학교로 규정될 수 있지만, 반대로 한두 명의 좋은 교사가 전체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교사 한 명 한 명은 매우 귀합니다.

산업화 시대는 권리 쟁취가 중요한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평화, 화합, 연대가 중요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좋은교사운동이 평화, 화합, 연대의 가치 진작을 위해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교실 개혁, 수업 개혁, 학교 개혁, 교육 개혁 모두 그 방향에 더 역점을 두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부의 운동을 넘어 외부로 파급되는 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 전교조나 교총과도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문화와 구조까지 개혁하는 교사 운동 모델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최현섭 위원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교육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육이란 인간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고 이것이 교사의 눈, 평가의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실현을 위해 교사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하지 않고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한 제도적, 문화적 지원 기반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통찰을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