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나고 싶었습니다

통일은 치유다(전우택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_2016.6)


통일은 

치유다
















전우택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연세의대 정신건강의학과/의학교육학과 교수) 


정신과 의사로서 사회정신의학을 전공하여 주로 북한, 통일, 남남갈등, 치유 등을 연구한다. 대학에서는 의학교육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땅과 제도의 통일보다 “사람의 통일”이 더 중요하며, 통일은 분단과 갈등에 대한 상처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통일은 치유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기독신앙과 통일의 문제를 연결하려는 활동들도 한다. 현재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사람의 통일, 땅의 통일>,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등의 책이 있다. 





인터뷰·조창완 / 사진·김현경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전우택 원장은 정신과 의사면서 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통인 ‘통일’ 논의를 정신과 의사인 전 원장은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만나보았다.



원장님은 의사로서의 직책과 통일 관련 직책을 가지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의사로서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지금과 같은 삶을 살기까지 의미있는 과정이 있었는지요?


할아버지가 목사님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세브란스에 외과의사로 계셨고 몽골에서 7년 동안 의료 선교를 하셨죠. 기독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습니다. 평범한 모범생이었다고 표현하면 제일 맞을 것 같아요. 대학교에 들어와 3월에 IVF를 알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동기 친구가 들어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 어색하니까 따라가 달라고 해서 함께 갔다가 친구는 가입을 안 하고 저 혼자 가입을 한 일이 발생했죠.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제 인생의 한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에요. 쭉 신앙생활 해왔지만 성경을 스스로 진지하게 읽는 경험을 IVF에서 처음 했기 때문이죠.

예과 2학년이 되던 해, 학교에 의·치·한의대생으로 구성된 대학 선교단체인 CMF가 만들어졌어요. 예과 2학년에서 본과 1학년으로 올라갈 때는 CMF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단체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의 도전과 훈련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의 대부분을 바꿔놨다고 봐야죠. 


젊은 시절의 의미 있는 경험이 원장님을 키운 것이네요. 그러면 의사, 특히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아버지가 의사셨고 저는 집안의 장남 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땐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고요. 그런데 저는 사실 철저하게 문과 체질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문예반을 하고 처음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기억도 나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거나 하는 것에 인상을 많이 받아왔죠. 그래서 의과대학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저 가장 문과적인 공부를 해야 흥미를 가질 것 같다는 생각을 이미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했습니다. 그렇게 정신과 의사를 하리라 결정하고 의과에 진학한 것이죠. 

정신과에는 크게 두 가지 주류가 있습니다. 프로이드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영역, 면담을 통해서 정신 질환을 치료 하는 것이죠. 그리고 생물정신의학이라고 하는, 약을 개발해서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영역입니다. 저는 레지던트까지 잘 마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 영역이 모두 저한테는 잘 안 맞는 거예요. 정신분석은 제 신앙관과 맞지 않았어요(둘이 양립이 안 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평생 이걸 하면서 살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죠. 쥐 잡고 실험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요.

레지던트 지원 면접을 볼 때 주임 교수님이 왜 정신과를 하려 하냐고 물으셔서, “솔직히 저는 정신 질환이나 환자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정상인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상인을 이해하고 정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을 하는데 정신의학을 공부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얘기 했어요. 만약 지금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을 만나면 저는 안 받았을 것 같아요.(웃음) 그때 교수님은 저를 받아주셨죠. 저는 정신과의 작은 영역이었던 ‘사회문화정신의학’이라는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관심이 아주 적은 분야였지요. 레지던트하고 의과대학 교수 생활 시작할 때 계셨던 민성길 교수님은 제가 갖는 관심을 인정해 주셨어요. ‘해봐라’ 말씀하셨죠.


올해부터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장을 맡게 되셨습니다. ‘자살’ 문제는 저희 좋은교사운동이 세워지게 된 계기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입시 경쟁 속에서 목숨을 버리는 청소년 현실을 마주한 기독교사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교육의 본질을 회복시켜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고 일어난 운동이기 때문이죠. 

얼마 전 아주 모범생이었던 졸업생 제자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만큼은 그렇게 생각 안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시절에 자살 생각 안 해보는 애가 어디 있어요?” 하는 거예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자살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1980년대, 중3 학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써놓고 자살한 사건이 우리 사회에 아주 큰 충격을 줬었죠. 한국 사회가 압력밥솥 같은 사회입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잣대가 너무 획일적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살기 어려운 나라예요. 아이들은 숨도 쉴 틈 없이 대학 입시를 위해 살고 있죠. 가정, 학교, 사회가 아이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시켜주고 있어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평가는 상대적 등수로 이루어지죠. ‘중고등학생들이 자살 생각을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심지어는 이런 말도 용인되는 사회예요. 참 유감스럽고 걱정스러운 모습입니다. 결국 좋은 나라라는 것은 ‘내가 이곳에 태어나서 살 만하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는 나라입니다. 반면 ‘왜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은 나라라면 절망스럽죠. 그런데 그런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대학 입시에서 자유롭게 너희들 인생을 살라고 말하기 힘들죠. 그래서 결국은 선생님들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줘야죠. 하지만 그게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것이 잘 안되고 어렵습니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교육, 사회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 거고, 그 이후에 나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또다시 가치를 향해 살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게끔 되어야 하죠. 반면 ‘내가 어디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을 거고, 그렇다면 난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살 생각까지 연결되는 거죠.

선생님이 학생의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쉬운 건 아니겠지만, 학생들이 교사의 삶을 볼 때 ‘저 선생님은 좀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도록 교사 스스로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해요. ‘내가 힘들 때 저분한테는 가서 얘기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선생님이요. 좀더 현실적인 방법은 교사들이 자살예방교육을 충실하게 받는 겁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자살예방교육은 그런 징조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합니다. 학생이 스스로의 삶을 내려놓지 않도록 교사가 도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죠. 

자살예방교육을 받는 것 만큼이나, 청소년 자살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 또는 지역 사회 내에 관련된 분들이 함께 모여 충분히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자살했을까, 이 아이와 같은 여건에 놓인 아이들 중 왜 그 아이들은 자살하지 않고 이 아이만 자살을 했을까, 이 아이가 놓인 특별한 상황은 뭐였을까, 자살하기 전에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 것은 무엇이 있었나, 이런 것들을 쭉 점검하는 것이죠. 이를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간을 가지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높아져요. 선생님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의사로는 가장 왕성하게 통일운동을 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전공한 사회정신의학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정신병리나 심리를 다루는 정신의학 분야입니다. 특정한 집단 안에서 발생하는 정신병리적 또는 심리적인 현상을 보는데, 저는 그 특정 집단을 ‘북한’으로 설정하고 연구를 해 온 것이죠. 제가 94년도에 전임 강사로 교수직을 처음 시작했는데, 그해에 북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동기라면, 한 탈북자와의 만남 때문이죠. 그분은 제가 만난 최초의 북한 출신이었고, 동갑내기였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함께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아주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북한은 저에게 사역의 대상이기보다는 학문의 대상이죠.

하지만 북한을 제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데에는 신앙이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해요. 북한, 또 북한 사람에 대한 문제는 신앙인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죠. 94년도 당시만 해도 통일이나 북한을 다룰 때 군사나 외교적인 접근만 있었습니다. 북한의 ‘사람’에 대한 연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거의 처음이지 않았나 싶어요.  


많은 탈북민의 심리 상태나 트라우마에 대해 연구를 하셨고, 그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들의 심리 상태나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진짜 힘든 일을 많이 겪으신 분들이에요.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힘들지요. 특히 중국을 거쳐서 들어오는데, 가족 문제가 심각해요. 중국에서 한족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을 중국에 두고 혼자만 들어온 경우도 많고요. 북한에서 낳은 자식도 있고 다시 남한에 와서 낳은 자식이 있기도 하고요. 굉장히 복잡한 문제예요. 어디까지를 결혼으로 보고, 또 어디부터는 어떻게 봐야 할지 어렵죠. 

남한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남한에서는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라고 하면 오히려 편하게 대해요. 그런데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심리적 장벽이 높아서 아주 불편하게 대하죠. 또 살면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북한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남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도 안 되고 용납도 안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상호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들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탈북민은 이미 중국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훈련을 받고 들어와서 빨리 적응하는 분들도 아주 많아요. 다시 말해 탈북민의 심리 상태나 트라우마는 심각하다면 심각하지만, 심각하지 않다고 하면 또 심각하지 않습니다. 남한 출신 사람들도 남한에서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게 많이 자살하지 않습니까. 탈북자가 낯선 환경에 와서 사는 것이 힘들지 않다면, 그게 거짓말이죠. 문제는 남한의 환경에 탈북자가 더 취약하냐는 것인데요. 그것도 아니죠. 적어도 여기 올 정도면 산 넘고 물 건너 올 만큼 강인하다는 말도 됩니다. 많은 분들이 남한에서의 삶을 잘 견딜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성취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탈북자를 대할 때 처음부터 ‘탈북자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힘들 것이다’ 이렇게 볼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냥 남한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 중에 힘든 사람이 있듯이, 북한에서 오신 분들 가운데도 여러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좀더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 분들께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면 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좀더 취약한 분들께 더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됩니다. 탈북자와 함께하는 교회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요. 그런 곳에 속해 함께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탈북 청소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은 학교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주시고요. 그 아이들을 자신의 반 안에서 잘 돌보아 주는 선생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을 설립 때부터 함께 하시다가 2013년 3대 원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은 어떤 곳인지 소개해주십시오.


내년 초면 한반도평화연구원이 세워진지 10년이 됩니다. 통일 관련 기독교 싱크탱크(Think Tank)로 만들어진 연구기관이에요. 다양한 학문 분야의 대학교수나 국공립 혹은 민간 연구소의 연구위원 약 6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님이 이사장으로 계시고요.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통일을 준비하고, 나아가 관련 교육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통일 논의나 활동은 다른 기관에서도 할 수 있지만 기독 신앙과 연계해서라면 가장 많은 전문가들이 연결된 모임입니다.


지난 4월에 ‘북한 이탈 주민 지원 인력의 소진 대처 및 극복 방안’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데요. 탈북민에 머물렀던 시선이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로 확대된 아주 중요한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원장님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계신지요?


말씀하신대로 아주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탈북자를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 직원들, 전국의 하나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 하나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탈북자)대안학교의 교사들 등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북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동원하는 것과 또 다른 측면이 많아요. 많은 분들이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며 탈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자기가 의미 부여해서 하는 일인데 웬 탈진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한반도평화연구원에서는 이 연구를 시작으로 지원 인력에 대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한 명을 돕는 것보다 탈북자 지원 인력 한 명을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통일이 될 때까지, 통일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우리의 중요한 활동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원장님이 생각하는 ‘통일’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방법으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제가 늘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의 통일”입니다.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통일은 체제·영토의 통일이 아닌 사람의 통일입니다. 이전까지는 통일이라면 한 체제, 한 이념, 한 지도자가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 ‘사람’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북한 연구에 있어서 작지만 제가 기여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의 활동도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살 것을 준비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그런 통일을 준비해야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제가 20년 동안 강조해 온 것입니다. 

최근에 2~3년 전부터 새롭게 말하는 것은 “통일은 치유다”라는 거예요.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잘 살게 되었는데,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많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요. 그 이유는 결국 한국인이 갖고 있는 상처, 트라우마가 너무 크기 때문이에요. 탈북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제시대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거쳤어요. 남한에서는 산업화라는 급진적 사회적 변동과 민주화 과정을 거쳤죠. 이 모든 과정에서 한국인은 기존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전에 그 다음 트라우마를 입고, 또 입게 되었어요. 

저는 이것에 대한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해결 포인트가 통일이라고 생각해요. 통일은 대박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많은 조건이 앞에 붙어야 하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치유적 기능이 작동되는’ 통일이어야만해요. 많은 분들이 인간의 문제와 통일의 문제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는 통찰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교사운동에서는 북한에 학용품을 보내는 ‘북한 학교 돕기’활동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대북 지원이 중단되어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남북의 문이 닫히고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이야기해야 하고요. 만약 북한이 지금 대외 개방도 적절히 하고 남북 관계를 만들어가고, 국제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면 통일은 점점 멀어져가는 것입니다. 북한 체제가 안정화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하지만 지금과 같이 극단적으로 움직이며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만드는 것은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통일은 가까워 왔습니다. 그런데 통일이 따듯한 날 자연스럽게 될 것이냐? 역사가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이죠. 우리는 다만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고요. 

문제는 통일도 통일이지만 통일 이후의 문제를 통일한국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예요. 남한 내에서의 남남갈등이 극심합니다. 남한 내의 균열과 충돌을 해결하는 사회의 능력이 너무 낮아요. 저는 가끔 하나님께서 남한 사회의 통합과 치유 능력이 길러질 때까지 통일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우리가 남한 사회 내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충분히 훈련받아야 훨씬 심한 남북갈등을 해결할 수 있어요. 

남남갈등의 해결이란 것이 방대한 문제이긴 합니다.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공산권 붕괴로 이미 해결해 버린 문제들을 한국은 여전히 해결 못하고 있거든요. 여전히 이념 대립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문제가 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먼저는 한국인에게 상처가 많습니다. 근현대사를 통하여 사상의 문제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때로는 권력 투쟁을 위하여 사상을 내세웠기에, 좌우의 선명한 사상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역사의 흐름 속에 떠밀려 죽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한 때문에 남남갈등을 해결할 마음조차 없지요.

두 번째는 아주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통일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라는 존재가 존립하는 한 남한에서는 분단을 반영한 갈등 구조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남갈등의 궁극적 해결은 통일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분단 자체가 곧 남남갈등을 해결 못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에요.

마지막으로 남한 사회의 모순이 여전히 크기 때문입니다. 급속히 경제 발전하며 과(過)자본주의가 되어있어요. 신자유주의의 극한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사회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죠. 

이러한 갈등의 원인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남남갈등은 극복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 사회를 치유해야하고 통일해야하고 내부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다음 세대, 특히 통일 세대를 길러내는 기독교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께서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으면 해요. 그러자면 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지 선생님들이 먼저 알고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한반도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 되기 위해 통일이 되어야합니다. 한반도의 반쪽 나라에서 아무리 부유하게 잘 산다고 해도 북한이 있는 한 해결 안 될 문제가 정말 많습니다. 2,400만 한국인이 최악의 인권 상황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죠. 그들을 놔둔 채로 우리끼리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우리 시대에 희생할 부분을 우리가 감수하자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니라면 우리 자식세대가 감수할 문제예요.

나아가 통일이 특정한 정치적 현상을 넘어 인간 사상의 도약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방 문엔 간디, 창 쪽엔 만델라 사진이 있는데요. 이 둘은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롤 모델이죠. 영국의 식민지 독립운동 한 나라는 수없이 많았어요. 간디는 그 독립운동을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실천했어요. 간디의 운동은 단순히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이 아니라, 인간의 새로운 정신운동으로 바뀌어요. 이것이 인류를 변화시킵니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어 펼친 행보는 언뜻 보면 과거 청산이죠. 이는 수없이 많은 나라가 해왔어요. 하지만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라는 방법으로 과거를 청산했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정신적인 변화를 만드는 축이 되었어요.

경제력이 크게 차이 나는 나라가 평화롭게 통일될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 간격을 메우려고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지만, 핵무기는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않거든요. 세계의 질서에 따르면 이런 경제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끌어 내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런데 그 일을 우리가 한번 도전해보자는 겁니다. 그것이 21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정신운동이 되지 않겠어요? 인간에게는 돈이나 이익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지면 어떨까요.

요즘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통일은 되면 안 된다고 해요. 이유는 ‘엄마가 통일되면 우리가 더 가난해 진대요’ 라는 거죠. 엄마들의 말을 뒤집을 교사들의 말이 필요합니다. 당당하게 얘기하시면 됩니다. 저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각합니다. 제 강의를 듣는 120명 중에 한 명만 건지면, 그 한 명이 세상을 바꾼다고요. 교사가 학생을 키운다는 것은 그 ‘한 명’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교사운동에서 방학 때나 선생님들 모임에서 통일 캠프 등의 활동을 진행한다면 한반도평화연구원에서 적극적으로 함께하겠습니다. 통일 세대를 길러내는 것은 선생님과 학생 모두가 함께 기도하며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교사운동에서 그러한 공동의 노력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통일교육뿐 아니라 교육 전반에 있어서 좋은교사 선생님들이 더 열심히 모이고, 더 열심히 함께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는 모두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붕괴되어버립니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만 받는 등 우리 교육의 왜곡된 모습이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선생님들의 역할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쪽으로 역할이 개발될 수 있다고 봐요. 많이 도전하시고 함께 힘을 모은다면 분명히 이 모임을 통해 모두가 꿈꾸는 교육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통일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하나 되는 것, 한반도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뇌리에 남는 말이다. 교육에서 교육제도나 교육과정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인 것처럼 통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쉽게 놓치고 마는 기본을 잘 짚어주었다. 많은 후학들이 전 원장의 삶을 통해 통일 연구로, 통일 운동으로 뒤따르고 있다. 우리 좋은교사운동은 통일에 있어 하나님의 역사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