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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한 아이의 마음친구가 되고 싶어요(2018.3)

 

 

 

 

한 아이의 마음친구가

되고 싶어요

 

 

최경희(광명서면초등학교)

 

 

 

인터뷰·사진 조창완

 

 

하나님과의 첫사랑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늘 친구들과 바닷가에 나가 놀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모태신앙이라 어려서부터 교회를 동네 놀이터처럼 다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캔디 만화 시간과 예배 시간이 겹쳐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고 혼났던 기억도 나네요. 교회는 저의 피난처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이 심했어요. 건축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사업도 잘 안되면서 어머니는 많이 아파 늘 누워 계셨습니다. 그런 집안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교회를 더 찾게 되었죠. 교회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저를 항상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함께 찬양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깊지 않은 상태에서 고3 때 성적이 떨어지고 자신감을 잃으면서 정말 하나님이 있는 걸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진짜 이유는 뭘까?’라는 의문이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재수학원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8명의 친구와 함께 학원 옥상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수업이 끝난 밤 10시에 학원 앞에서 찬양하며 노방전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를 비롯한 우리 8명의 첫사랑이었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도전의 시기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교대 미술교육과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기에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게 되어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남겨진 할머니, 언니, 오빠와 함께 허름한 단칸방에서 힘겨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좌절과 절망보다 도전과 극복을 배웠고 삶에 더욱 집중하는 시기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2개나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고 주일학교 교사, 대학부 편집부, 예수전도단 활동까지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제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한편, 대학교 3학년 때 과대표로 졸업여행을 추진하다가 여행사가 돈을 챙겨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모든 비난이 저에게 쏟아져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한 달 동안 새벽기도하며 많이 울었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저의 욕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인지도도 없는 여행사를 택한 이유는 과대표인 저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저는 그것에 미혹되어 그 여행사를 선정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저절로 회개기도가 일어나면서 내 모든 것을 아시고 온전한 믿음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수님과 학생들이 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졸업여행을 다시 추진하면서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교수님과 함께 미술 교과서 수업자료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 사업을 따오길 원했습니다. 미술교육과이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참여하였는데 6개월 동안 매킨토시를 배워가며 기술을 익혀야 했고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합숙소 생활에 너무 힘들고 지쳤습니다. 마감 시한이 다가오자 한 달 동안 두문불출하며 밤을 잊고 일에 매달려 미술 교과서 CD-ROM을 만들어 냈습니다. 3학년 교과서에 만들기 동영상도 넣고, 서예 쓰기 애니메이션도 넣었습니다. 교수님들도 신기해하셨고 그 당시 CD-ROM으로는 최초였습니다. 이때의 창의성과 몰입의 경험은 제 한계를 뛰어넘는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한 아이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갑자기 임신중독증이 찾아왔습니다. 조산하여 1.85kg으로 태어난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한 달 반 동안 있었습니다. 그때 심한 트라우마를 겪어 약간의 해리현상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마주하고 직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죠. 첫째 아이는 천식이 있었고 잘 아팠으며 혼자서 노는 아이였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고 3년 반 동안 휴직하며 육아서적을 탐독하며 아이에게 매진했습니다. 거실은 원서, 유아책으로 도배를 했고 아이를 위한 교육 정보 서핑이 저의 주된 일과였습니다. 첫째 아이가 학교 입학 전까지 공부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대학시절처럼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괜히 화가 나서 남편과 싸우게 되고, 유아실에서 예배를 드리다 보니 영적 공급이 되질 않아 몸과 마음 모두 소진되어 갔습니다. 첫째 아이를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는 교만 속에 하나님을 떠나 있었던 것이죠.

2010년 복직하며 저는 6학년 담임이 되었고, 첫째 아이는 1학년에 입학하여 함께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본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책도 펴지 않고 수업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여 선생님의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엄마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더라고요. ‘내가 문제가 있나? 우리 아이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안한 마음은 아이 마음에도 투사되었고 아이를 더욱 옥죄었습니다.

 

터닝 포인트

2011년에 맡은 6학년에는 나쁜 일을 일삼으며 갱스터처럼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수학여행 때 패싸움이 벌어져 아이들의 이가 부러지고 눈이 찢기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후에 쉬쉬하고 은폐하기 바쁜 학교, 정의가 없는 교실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였습니다. 그해 여름, 남편이 속한 선교단체에서 가는 인도 캘커타 선교 탐방을 가족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비포장도로, 경적을 울려대는 혼잡한 거리, 맨발의 릭샤, 빈민촌 가정들, 공장 굴뚝의 아이들그들의 평범한 삶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인도 선교 탐방은 대학시절과 결혼 전의 뜨거웠던 신앙의 불씨를 되살려 주었습니다. 밤마다 2시간씩 기도하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중보기도팀을 일으켰습니다. 거짓말처럼 그렇게 힘들던 학교 일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제 신앙의 터닝 포인트였죠.

2012년에는 비폭력대화와 회복적 서클을 만나면서 제 말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느꼈다는 것입니다. 저희 반에서 왕따 문제가 발생하여 당사자 아이들을 불러 서클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여전히 제 안에는 학생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과연 서클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서클을 통해 회복이 이루어졌고, 졸업 때까지 누구를 괴롭히는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2013년에는 1기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가 과정을 통해 평화로운 학급 공동체와 학교 문화 만들기를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교사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첫째 아이 5학년 때 김중훈 선생님께 소개 받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궁금했던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엄마로서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고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힘을 주었습니다. 남편의 꾸준한 뒷바라지가 이어졌고 아이를 최대한 존중하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아이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더니 6학년이 되어서는 친구들을 계속 집에 데려왔고 지금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찾아가고 있습니다. 엄마로서의 터닝 포인트도 경험한 것이죠.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와 평화서클교회를 다니면서 제 몸과 마음은 편안한 안식을 찾았습니다. 가정과 학교의 일이 힘들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는 느낌입니다. 박성용 목사님, 박숙영 선생님, 박은지 선생님, 좋은교사 회복 식구들은 제게 너무도 감사한 분들입니다.

 

한 아이 바라보기, 마음친구

반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첫째 아이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이런 아이가 한두 명이 아닌데 어떻게 학급에 어울리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2016년 문수정 선생님, 이해영 선생님과 함께 국제나이팅게일상을 수상한 김수지 박사님의 좋은의자에 참석하고 공부하면서 정서·심리적 약자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아이들은 학급에서 문제의 진앙지에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정서·심리적 약자이고 마음이 아픈 아이인 것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론화되면서 좋은교사운동 안에 마음친구 교사자조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임은 ADHD, 품행장애, 우울증, 의사소통장애, 무기력 등 정서·심리적 고통으로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위기학생 돌봄을 위한 교사모임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학생으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 입은 교사들의 치유와 돌봄, 회복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이사야 5812) 이 말씀을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 이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어려서부터 다양한 사람과 사귀고 어울리도록 하였고 가난한 시절의 경험, 첫째 아이, 내적 치유, 중보기도, 회복적 생활교육, 좋은의자 등 사역을 위한 밑거름을 주셨습니다. 학교 안에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마음친구가 되어 주는 일이 시급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좋은교사임을 늘 기억하며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