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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역사를 사는 그리스도인 정병오 칼럼 역사를 사는 그리스도인 “아빠! 성경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음, 성경의 핵심을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아빠는 이원우 교수님이 《성서》(살림출판사)에서 표현한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세상을 향한 그의 변함없는 사랑이다. 아름답고 공평하고 완벽하게 지음 받은 세상이 혼란과 부패와 성스럽지 못함으로 변질되었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 자신과의 선한 관계를 깨뜨린 인간을 위해 새로운 화목을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오시는 사랑! 맹목적 사랑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 희생과 용서가 가득한 아름다운 사랑! 강요된 사랑이 아니라 몸소 사랑의 아픔과 상처를 짊어진 희생의 사랑! 예수를 통해 보여.. 더보기
하나님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난해 교회 교육 부서 책임을 맡고 있으면서 부모 교육의 일환으로 2번의 가정 예배 세미나를 개최했다. 첫 번째는 5월에 임경근 목사님(분당 샘물초등학교 교목 역임, 현재 교회 개척 준비 중)을 모시고 했고, 두 번째는 12월에 김헌수 목사님(대전성은교회 목사 역임, 현재 독립 개신교단 신학교 교수)을 모셨다. 다시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다 임경근 목사님은 가정 예배를 매일 드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실제로 목사님 가정은 하루에 3번 가정 예배를 드린다고 하셨다. 내용과 형식에 관계없이 모일 수 있는 가족들만이라도 모이고 아이들의 상황과 수준에 맞는 간단한 말씀과 기도를 나눌 것을 권면하셨다.(올해 초 임 목사님 가정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갔었는데, 최근에는 매일 찬송.. 더보기
우리는 과연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사랑의 빚을 갚고 살고 있는가? “선배님, 이번에 저희가 겨울 수련회를 하는데 선택식 강의 강사로 와 주실 수 있나요?” 시간과 장소를 물어보니, 시간은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1시간이고, 장소는 서울에서 2시간 걸리는 장소다. 선택 강의 참여 예상 인원은 10명 내외라고 한다. 순간 갈등이 된다. ‘그래도 나름 유명 강사급인데, 나를 어떻게 보고 고작 10명 대상의 1시간 강의에 왕복 4시간을 투자하라고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대학 시절 내가 그 선교단체 활동을 하던 그 때 우리를 도와주셨던 4명의 선생님이 떠오른다. 뒷모습으로 가르치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지도교수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은 당시 내가 활동하던 선교단체의 지도교수로 계셨던 이후철 교수님이다.(지금은 모교에서.. 더보기
고전읽기와 세상읽기 고전읽기와 세상읽기 사회학 고전 읽기 지난 10월과 11월 오마이뉴스가 개설한 “김호기 교수의 사회학 고전 읽기” 강좌를 수강했다. 매주 교수님이 제시한 책을 읽은 후 그 책의 내용이 오늘 한국의 현실 가운데 주는 시사점에 대해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질의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강좌는 모처럼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우리 시대와 우리 운동을 되돌아보게 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8주 동안 에밀 듀르케임의 『자살론』, 막스 베버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 미셀 푸코의『감시와 처벌』, 이매뉴얼 월러스틴의『근대세계체제1』, 마뉴엘 카스텔의『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울리히 벡의『위험사회』, 앤소니 기든스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이렇게 8권의 책을 읽었다.. 더보기
자녀가 마음대로 안 될 때(2010년 10월호) 자녀가 마음대로 안 될 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출석하던 교회가 설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외곽 지역에 교회 개척을 하는데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본 교회는 주일 오전 예배 장년 출석 인원이 350명 정도 되는 규모라 한국 교회 일반 규모로 볼 때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교회의 건강성과 온 교인들간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는 이 정도 규모에서 계속 분립개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교회가 이를 수용한 상황이라 나는 집에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개척 멤버로 지원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비록 이 문제를 놓고 가정예배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쭉 해왔지만 기본적으로 개척교회 참여 결정은 부모의 신앙적 결단의 문제였지 아이들의 의사가 반영된 .. 더보기
우리에게 신학이란 무엇인가? (2010년 5월호) “야! 도대체 네 전공이 뭐냐?” 대학 시절 같은 과 친구들이 나한테 던지곤 했던 질문이다. 친구들이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가 주로 듣는 과목이나 들고 다니며 읽는 책, 그리고 좇아 다니는 활동이 전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전공 과목은 졸업을 위한 최소 이수 학점만 듣고 나머지 학점들은 종교학과에 개설된 신학 사상 관련 과목, 언어학과의 헬라어 과목, 철학과 과목들 가운데서 신학과 연관성이 있는 과목을 들었다. 그리고 전공 과목을 공부할 때도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 철학자들, 그리고 칼 야스퍼스나 키에르케고르와 같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 그리고 라이홀드 니버나 에밀 브루너와 같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윤리 사상에 대해서 깊이 공부해서.. 더보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0년 4월호) “야! 정병오. 나 ○○○ 선생님이다.” 작년 이맘때쯤 중학교 시절 은사님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중학교 졸업한 지가 30년이 지났고, 그동안 한 번도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니 너무 반갑고 또 죄송했다. “정병오, 너 정말 작고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이후 고향 방문길에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께서 중학교 시절 내 모습을 추억하며 하신 말씀이다. 우리 학교에 초임으로 부임해 오셨던 그 선생님은 우리와 띠 동갑의 젊은 나이에다가 모교 출신인지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고,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돌봐 주셨다. 선생님은 ‘인물’ 감으로 보이는 아이는 그 방향으로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채찍질하셨고, ‘돌봄’이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그 방향으로 사.. 더보기
교회란 무엇인가? (2010년 3월호)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형! 우리 교회 제직 수련회에 와서 교회와 관련된 강의 한 번 해 주세요?” 대학 시절 신앙 훈련을 받았던 선교 단체 멤버이자 한 1년 정도 공동생활도 같이 했던 후배 목사의 부탁을 받고 한참 머뭇거렸다. 교회!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교회는 지금까지 내 삶에 있어서 가정, 기독교사운동과 더불어 내 인생의 제일 중요한 주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돌아보면 교회로 인해 많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교회로 인해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도 많이 겪었다. 그러기에 그 아픔을 부여잡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씨름해야 했으며, 교회와 관련된 성경과 여러 책을 읽으며 교회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으며,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여러 목사님, 성도들과 논쟁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더보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2010년 2월호)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이 노래지고 고등학교 1학년 말 나는 교회 중고등부 학생회에서 총무라는 직책을 맡았다. 중고등부 다 합해서 20명 조금 넘는 작은 규모였지만, 처음 임원을 맡은 나는 의욕에 넘쳐 있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시작한 일이 우리 학생들이 즐겨 부르던 복음 성가들을 모아 교회 중고등부의 찬양집을 묶어 내는 일이었다. 저작권 개념이 별로 없던 당시로서는 여러 출판된 찬양집의 찬양 가운데 필요한 곡만 골라 복사해서 교회 이름으로 제본해서 펴내는 일은 여느 교회 중고등부나 청년부에서 많이 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찬양집이 제작․보급되면 엄숙하고 답답한 교회 문화를 다양한 영적 감성을 표현하는 활기찬 분위기로 바꾸는 데 많이 사용되곤 했다. 딱히 반대는 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적극성을 보이지 않던.. 더보기
우연이란 이름의 인도 (2010년 1월호) 한국 땅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이가 그렇듯 나도 대학과 전공을 정할 때 난생 처음으로 ‘선택’이란 것을 해 보았다. 당시 대부분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명문 대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대학을 통한 신분 상승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진로에 대한 별다른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다른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 집안이 내 대학 등록금을 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자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점수면 4년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주겠다는 대학의 법학과에 진학해서 고시를 준비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든지 많은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것을 제일 중요한 진로 지도의 기준으로 삼는 지방 사립 고등학교의 진학 방침에 밀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