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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공부의 즐거움(2013.10) 정병오 칼럼 공부의 즐거움 에 새겨진 할렐루야! 지금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없어졌지만, 결혼을 하고서도 한동안 보관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의 물건 중에 과 가 있었다. 그 책들은 나의 고등학생 시절 개인 공부 시간의 대부분을 쏟았던 것들이라 그 책의 여백 곳곳에 내가 그 공부를 하면서 했던 생각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곳곳에는 ‘할렐루야!’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도무지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렸을 때의 희열의 흔적이었다. 에는 각 과마다 처음 공부할 때, 그리고 2번째, 3번째 공부할 때 걸린 시간과 소감이 적혀 있었다.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반복 암기 위주의 공부 체계 가운데서도 수학을 통해서는 한 문제를 붙들고 끝까지 씨름함을 통해 문제.. 더보기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2013.09) 정병오 칼럼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까지 마흔두 해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쓰셨던 일기가 한 뜻있는 출판사의 정성 어린 작업에 힘입어 5권의 책으로 발행되었다. 물론 그 일기 내용은 원고지로 37,986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출판사 편집부가 원고지 6,126장으로 대폭 줄였다. 이렇게 줄인 것이 책 5권의 분량이니, 일상 이야기의 경우 겪은 일을 더 또렷이 붙잡아 쓴 글,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는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리고 또 가렸다는 출판사의 고심이 읽히는 듯 했다. 가 담고 있는 것 1권과 2권은 교사로 재직할 때의 일기인데, 교직 생활 19년차이던 1962년부터, 그의 글과 활동들이 경찰서 정보과의 감시와 간섭을 받아.. 더보기
반성은 나의 힘(2013.08) 정병오 칼럼 반성은 나의 힘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반도평화연구원(KPI)이 주관하는 독일통일연구여행에 연구위원 자격으로 함께 다녀왔다. 연구 여행 기간 동안 “동독과 동유럽 체제전환 과정과 사회 발전 연구 결과의 현장 적용을 위한 전이 프로젝트” 연구 내용 중 일부 내용에 대한 집중 세미나에 참여하고, 베를린에 남아 있는 나치 시대의 역사 기록물들과 분단의 흔적, 유물들을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독일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3년간 구 동독 지역의 할레대학과 예나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체제 붕괴 후의 사회 발전”이라는 매우 거대하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었다. 이 연구에는 30여 명의 교수들이 투입되어 동독과 동유럽의 체제 붕괴 이후 사회 전 분야에 있어서 어떤.. 더보기
거절의 의미(2013.07) 정병오 칼럼 거절의 의미 “선생님, 선생님의 뜻은 참 감사하지만, 아버지의 평전이 나오는 것을 아버지가 원치 않으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거나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 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셨어요. 자녀들이 아버지 칠순 잔치를 준비하려고 하자 그 시기에 다른 일정을 잡아 먼 곳으로 떠나 버리셨어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간간히 나온 자료들로 충분할 것 같아요. 이게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의 이런 생각과 판단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사실 김기열 선생님은 5남매를 결혼시킬 때도 한 번도 하객을 초청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양가 직계 가족 20여 명 정도만 참석한 가운데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때가 1960년대, 1970년대였으니 그의 생각.. 더보기
나는 기도할 때(2013.06) 정병오 칼럼 나는 기도할 때 매일 기도하러 주 앞에 나아갈 때마다 신기한 것은 내 입에서 기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날마다 새로운 내용의 기도가 나온다. 기도하러 갈 때 ‘오늘은 이 내용을 기도해야지’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가는 적이 없다. 그냥 매일 일정 시간 기도하기로 했기 때문에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서두를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기도가 나온다. 물론 ‘감사합니다’로 시작했지만 실제로 감사의 제목이 먼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많은 경우 지금 내 마음을 꽉 누르고 있는 제일 힘들거나 고민되는 기도 제목이 먼저 나온다. 그럴 경우 이 제목을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기도를 한다. 어떤 날은 그 제목을 하염없.. 더보기
미안함과 부끄러움에서 시작하자(2013.05) 정병오 칼럼 미안함과 부끄러움에서 시작하자 내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는 보릿고개를 갓 벗어난 시점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면 먹고사는 문제는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집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가운데 밥을 굶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때를 따라 제대로 갖춘 옷이나 신발을 사 신을 수 있는 가정 역시 많지가 않았다. 옷은 형제들이나 친척들의 것을 물려 입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신발은 검정 고무신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런닝만 입고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께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그 때는 선생님도 크게 혼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고, 나도 그것이 흉이 된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 더보기
단절과 연속(2013.04) 정병오 칼럼 단절과 연속 교직과 군대, 새로운 시작 앞에서 나는 대학 졸업 후 2개월 반 정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입대를 했다. 돌아보면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전환의 시기였다. 일단 대학이라는 곳을 벗어나 직장이라는 사회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변화였다. 물론 대학 3, 4학년 시기를 지나면서 진로에 대한 거듭된 고민 끝에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 진출을 선택하긴 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선교 단체 훈련을 받으며 ‘이렇게 살겠다’라고 다짐했던 대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내가 속한 직장을 변혁하는 자로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큰 두려움이었다. 실제로 대학 선교 단체에서 내가 가졌던 리더로서의 지위와 권위는 초임 발령을 받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 더보기
떠남과 책임(2013.03) 정병오 칼럼 떠남과 책임 내가 배워야 할 것은 그 때 다 배웠다 어릴 적 출석했던 고향 교회는 장년 출석 교인이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교회였다. 중고등부의 경우 기존 교인 자녀에 믿지 않는 가정에서 출석하는 아이들을 합해 30여 명 정도 되는 규모였다. 거기서 나는 고2 때 총무, 고3 때 회장을 맡아 2년간 봉사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작은 교회들이 그랬지만 우리 교회도 지도 교사가 두어 분 있어서 예배 설교와 성경공부를 인도해 주시긴 했지만, 그 외 모든 일은 임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했다. 그래서 중고등부 자체 행사는 물론이고 중고등부가 중심이 된 전체 교회 행사의 기획과 진행,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 심방, 주보와 회지 발간, 저녁 예배 성가대 봉사, 여름 성경학교 등 교회 행사 봉사, 운.. 더보기
대선, 그 이전과 이후(2013.02) 정병오 칼럼 대선, 그 이전과 이후 “아빠, 왜 그냥 ‘000이 당선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지 않으세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 달 정도는 매일 저녁 가정예배 시간에 대통령 선거를 위한 기도가 빠지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은 평소 아빠의 성향이나 언행을 통해서 아빠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다 알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 혹은 각종 홍보물을 놓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아빠의 가치 지향이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충분히 드러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아빠의 영향을 받아 특정 후보에 대한 호의를 표시하곤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예배 시간에 아빠가 그 후보의 이름을 절대 언급하지 않고, 오직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덜어줄 수 있는 후보’ ‘.. 더보기
자녀교육 앞에서의 믿음(2013.01) 정병오 칼럼 자녀교육 앞에서의 믿음 아이의 진로와 미래 앞에서 올해로 큰 아이는 대학 3학년이 되고, 둘째는 고3, 셋째는 고1, 막내는 중2가 된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과 아이들이 크고 작은 병에 걸렸을 때 어찌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것이 제일 힘든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조금 자라서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싸워 이를 해결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들이 부모에 대한 공격과 거부로 드러나고 때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보일 때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 막내는 이 시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시기를 어느 정도 지나 중학교 고학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