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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삶의 어려움 속에서 붙들어야 할 것(2012.12) 정병오 칼럼 삶의 어려움 속에서 붙들어야 할 것 돌아보면 아찔했던 순간들이 몇 순간 떠오른다. 그 중 한 사건은 군 제대를 2년 남겨놓은 상황에서 사소한 오해로 인해 영창에 갈 뻔했던 사건이다. 그 때는 제대를 2개월 정도 남겨놓은 시간이었다. 후임자가 들어와 내가 하던 일을 넘겨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각종 근무에서도 열외가 되던 그야말로 제대 말년의 한가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고백하듯이 이 때야 말로 시간이 제일 천천히 가고 군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답답함을 온 감각으로 느끼는 주관적인 의미에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 비슷한 시기 전역을 남겨놓은 동기들이 추억 앨범을 만드는 등 당시 군에서 유행하던 .. 더보기
신앙에는 본질적으로 세대차가 없다(2012.11) 정병오 칼럼 신앙에는 본질적으로 세대차가 없다 교회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새로운 교회 개척에 참여한 지 6년이 지났다. 장년 출석 교인 350명 정도(아이 포함 500명 정도)의 본 교회가 20가정(아이 포함 80 여 명)의 성도들을 개척 멤버로 자원을 받고, 본 교회로서는 무리가 될 정도의 많은 개척 지원금과 목회자를 파송해서 시작한 교회였다. 그래서 약간의 빚을 떠안긴 했지만 서울 외곽에 자체 예배당 공간과 사택을 소유한 자립 교회로 시작했으니 한국 교회 가운데 상당히 모범이 될 만한 분립개척 모델이었다. 거기다가 여기에 참여한 교인들은 교회의 성경적 본질 회복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그렇지만 교회는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목회자와 교인들 간의 교회에.. 더보기
정직한 글쓰기, 진실한 삶 살기(2012.10) 정병오 칼럼 정직한 글쓰기, 진실한 삶 살기 뜻밖에 주어진 기회 1990년 군 제대 후 복직한 학교는 강북에서는 꽤 소문이 난 부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에 첫 담임을 맡았을 때 ‘촌지’ 문제가 나를 많이 괴롭혔다. 처음에 무방비로 ‘촌지’를 접하다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괜히 학부모와의 관계만 어색해지기도 하고 또 내 마음 속의 물질적 욕심이 자극을 받아 반응하는 것을 느끼며 나름대로 단호하지만 학부모와의 관계를 상하지 않는 방법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1년 동안의 ‘촌지’와 관련된 경험을 글로 정리해 그 해 말 내가 활동하고 있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소식지에 투고를 했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월간 『빛과 소금』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존재하는 촌지의.. 더보기
기도와 근심(2012.09) 정병오 칼럼 기도와 근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양재동 인근에 있는 어느 유명한 기독교 출판사 건물에 걸려있는 이 문구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 문구는 30년 전 내가 중고학생일 때 ‘늘노래선교단’이란 찬양팀이 불렀고, 당시 기독 청소년들이 참 좋아해서 많이 불렀던 복음송가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나 문구의 의미나 의도는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신음하는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나아와 죄값을 사함을 받고 사탄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으라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소리일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는 못하고 인생의 모든 질고를 내가 다 지고 끙끙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나의 것이 아.. 더보기
닫히는 문, 열리는 문(2012.08) 정병오 칼럼 닫히는 문, 열리는 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둔 나에게 대략 4가지 정도의 길이 열려있었다. 그 중 하나는 교직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교사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그렇게 높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국립 사대 졸업생에 대한 의무발령이 나던 시절이어서 많은 친구들에게 교직은 좀 더 나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보장해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정말 안 될 경우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핀과 같은 개념이 강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3학년 즈음부터 교직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물론 교사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보다는 교직으로 가는 것이 낮은 곳으로 가는 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길은 신학을 해서.. 더보기
성경이 말하게 하라(2012.07) 정병오 칼럼 성경이 말하게 하라 나는 대학 졸업하고 교직 발령을 받은 후 3개월 정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휴직을 하고 군 입대를 했다. 군대에 가고 싶어서 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어차피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또 군대라는 곳이 우리 사회의 죄악된 모순이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이라면 반드시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적극적으로 군을 선택한 면도 있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또 힘들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입대를 했지만 역시 군 생활은 쉽지가 않았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약하고 운동 신경이 둔한 나로서는 군사 훈련과 각종 작업을 감당하는 것도 힘이 들긴 했다. 하지만 누구나 경험을 하듯 군대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내무반 생활에 있었다. .. 더보기
비진리에 대응하는 진리의 전략(2012.06) 정병오 칼럼 비진리에 대응하는 진리의 전략 얄밉도록 사역을 잘 하는 이단 대학 3학년 때였다. 그 때 나는 한 선교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캠퍼스에는 이단이 많았다. 그들은 보통 많은 물질적 혜택과 따뜻한 관계를 통해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했지만 동시에 당시 대학생들이 고민하던 시대적 문제에 대해서 학술적인 형태의 접근도 많이 했다. 나로서는 그들이 이단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의 의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일반 학생들에게는 그저 가난한 학생들을 도와주는 장학 사업, 외로운 학생들의 힘이 되어주는 상담 사역, 시대의 고민에 대해 또 다른 대안을 제안하는 학술 사역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그래서 일반 학생들에게 매력이 있었고 많은 학생들이.. 더보기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2012.5) 정병오 칼럼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나는 도덕 교사다 나는 도덕교사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한 번도 도덕 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우연찮게 도덕(윤리)교육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도덕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된 이후에는 도덕 교사라는 자부심을 놓은 적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다른 과목이 아닌 ‘도덕’ 과목으로 불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놓은 적도 없다. 하지만 갈수록 황폐해가는 아이들의 도덕성을 바라볼 땐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의 도덕성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은 우리나라 도덕 교육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을 느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도덕 교육은 모든 교사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지 도덕 교사가 다 책임져야 할 영.. 더보기
그리스도인에게 ‘선거’의 의미는 무엇인가?_2012.04 정병오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선거’의 의미는 무엇인가? 2012.04. 세속 정당을 축복해도 되는 거야? 내가 처음 ‘선거’를 경험한 것은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던 1985년 1월 국회의원 총선거였다. 1980년 광주 학살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민정당은 주요한 야당 인사들을 정치 금지 대상으로 묶어놓은 상태에서 군사정권에 제대로 날을 세우지 않는 허약한 군소 야당 체제를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4년의 전두환 군사 정권의 치하에서 이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1985년 1월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표출되었다. 그래서 군사 정권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선거 직전에 갓 탄생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중심이 된 신민당이 제1 야당으로 급부상을 했다. 그리고 이 선거 결과에 탄력을 받아 군사 정.. 더보기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_2012.03. 정병오 칼럼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2012.03. “선생님, 대표 그만두면 뭐하실 거예요?” 대표 임기 만료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묻는 질문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대답은 현재 주어진 일을 허덕이며 감당하느라 제대로 생각할 여유를 잘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는 명제는 늘 옳은 말이지만 ‘급한 일을 먼저 하라’는 현실에 늘 쫓기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게 이 물음에 대한 절박함이 덜한 이유는 ‘복직’이라는 안전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안전판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교사 모임의 대표가 일정 기간 휴직으로 모임을 섬기다가 다시 교직으로 돌아가서 교사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 가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