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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책갈피

이번 호는 읽지 말아 주세요 새내기 편집장이에요. 매달 받아 보던 《좋은교사》는 작고 가벼운 책에 불과했지요. 얇은 책이라 한 손이면 충분히 들 수 있었고요. 삶이 분주하면 서재 한 편에 잘 쌓아 두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번 4월호부터는 이 작은 책이 쉽게 들리지가 않네요. 새내기 편집장으로서 처음 내는 책인데, 그냥 서재 한 편에 쌓아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이 작은 책의 무게를 알아 버렸기 때문 같아요. 이 작은 책을 매달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수고와 헌신의 깊이를 조금 알게 되었어요. 4년 동안 이 일을 해 오신 조은하 선생님의 헌신과 매달 이 일을 해 오신 사무실 간사님들의 수고를 이제야 알았거든요. 그리고 삶으로 살아 낸 진실한 이야기들을 펼쳐 주시는 저자들의 땀이 베인 삶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더보기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5월 한 달 동안, 메일함에 화사한 꽃다발 그림과 함께 “선생님 은혜 감사합니다” 하는 메일이 가득해요. 그런데, 그걸 보낸 이들은 제가 한 번도 가르쳐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요. 은행과 카드사, 보험사, 관공서, 교사 커뮤니티 사이트…. 전화로 “사랑한다” 고백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가장 또렷하게 들리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는 ‘솔’ 음계에 맞추어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주문으로 남의 지갑을 열어 보려는 텔레마케터들이지요. 짖궂은 남자들은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도요 !”라고 맞받아치고 차 한 잔 하자고 수작을 걸어 당황시키기도 한다네요. 정신없이 바쁜 중에 전화를 받아 그런 고백을 듣게 되면 어색하고 짜증이 나지요. 그런데, 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의 “사랑한다”.. 더보기
부록이 본책보다 더 매력적일 때가 있지요. 나이 마흔은 불혹(不惑)이라지만, 불혹이 자꾸 부록(附錄)으로 들린다는 강윤후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마흔 한 살의 저는 두 해째 부록을 살고 있어요. 30대까지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다가 마흔이 되면서 휴직하고 잡지를 만들고 있으니, 제대로 부록 같은 나날들이에요. 그런데, 요즘 웬만한 잡지들은 부록이 본책보다 더 매력적일 때가 많잖아요? 여성지를 사면 본책보다 두세 배 비싼 화장품과 핸드백을 부록으로 주지요. 우리 잡지도 달력이 부록으로 나오는 12월에 유독 독자들이 배송을 꼼꼼히 챙기지요. 그래도 저는 이 부록 생활보다 본래 생활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옛 동료들의 지친 목소리로 팍팍한 학교 소식을 전해 들을 때면 복직이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취재 가서 마주치는 아이들을 보면 학교로 얼른 돌아가고.. 더보기
초심으로 돌아가기 싫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본이 되고 계시지만, 인터뷰는 안 하기로 유명하신 윤구병 선생님을 만났다는 자랑부터 해야겠어요. 선생님과 어울려 공동체 이루어 사시는 분들이 손수 기르신 먹거리로 차려 먹는 ‘문턱 없는 밥집’에서 밥 먹고 ‘기분 좋은 가게’에서 이야기 나누었어요. 인터뷰 마치고 사인을 청했더니, “은하 선생님, 은하수처럼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많이 울어 주세요”라고 쓰시는 거에요. 좋은 선생님 되라는 축복은 많이 들어 봤지만, 많이 울라는 부탁은 처음 받아 봤어요. 제가 교사가 되고 가장 많이 울었던 해는 발령받던 첫 해지요. 교실 바로 옆 화장실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을 위해 운 것’은 아니었어요. ‘저 자신을 위해 운 것’이지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임용고시에 합격한.. 더보기
아이들 눈이 정말 정확할까요? 다시 3월이네요. 나이가 들어 가도 2월은 쓸쓸하고 3월은 설레는 것을 보면 저는 천상 선생인가 봐요. 올해 2월은 유난히 봄 방학을 반납하신 선생님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대부분 학교에 나가 새 학기를 준비하시더군요. 학교의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서건 자의에 의해서건 준비된 채 3월을 맞는 것은 교사에게나 학생들에게나 복된 일인 것 같아요. 저마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기에 특별히 마음을 기울여 준비한 것도 다 다르겠지요. 선생님은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올해는 교원 평가가 법제화도 되기 전에 전면 시행되지요. 설익은 제도로 가르침을 계량화하여 서로 다른 교과의 교사들을 한 줄 세우기하는 것은 우려되는 일이지요. 또 어떤 분들은 ‘아이들 눈은 정직하다’고는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며 걱정하.. 더보기
이모는 좋은 교육감보다는 좋은 담임을 원해 2010년 올해는 전국의 주민들이 직접 자기 지역 교육감을 뽑는 의미 깊은 해지요. 교육감이 가진 막강한 결정 권한을 생각할 때, 학교 입장에서는 교육감이 대통령보다 더 영향력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2008년, 2009년 교육감 직선이 그렇게나 과열되었고, 올해도 그렇겠지요. 어떤 교육감 후보가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형편에 놓인 아이든 학교 다니는 일만큼은 걱정하지 않게 해 주는 교육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마음을 쏟을 수 있게 해 주는 교육감이 당선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어떤 교육감이 당선되든 교육계 인사 중에 한 아이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담임이겠지요. 그래서 2010년 첫 조카를 초등학교에 들여보내는 이모 조은하의 기도는 '좋은 .. 더보기
금식이 가장 쉬웠어요. 이번 2010년 1월 특집은 숙제 이야기에요. 아이들은 바빠서 숙제를 못 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렵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하기 싫기도 하대요. 학교를 졸업한 어른에게도 인생 숙제들이 있지요. 저는 몇 가지 절실한 숙제를 앞두고 지난 달 보름을 작정하고 저녁 금식 기도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오랜만의 금식이 생각보다 너무 쉬운 거예요. 오후 5~6시경의 출출함만 이겨 내고 나면 금세 공복감에 적응하겠더라고요. 덩달아 살 빠지는 재미도 한몫했고요. 문제는 금식은 쉬운데, 기도가 어렵더란 거예요. 남들 밥 먹을 때 너무 심심해서 TV를 켜게 되고, 메일을 읽으려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뜬 뉴스와 인기 블로그 글까지 읽고 나오게 되더라고요. 사야 할 것이 생기면 더 싸게 살 곳이 없나 여전히 인터넷 쇼핑몰을.. 더보기
버리지 못하는 굴욕 사진이 있나요? 연수와 수련회의 계절이 왔어요. 연수(硏修)나 수련(修練)이나 비슷한 말이지요. 훈련한다는 뜻이지요. 연수나 수련에 참여한다는 것은 앞으로 할 일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과 함께,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해요. 연수와 수련회 사진은 유독 굴욕 사진이 많지요. 연수 때는 강의에 빨려들어 넋 나간 표정이기 일쑤이고, 교회 수련회 사진은 거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인데, 이런 모습이 예쁘게 나오기 어렵지요. 사진의 구석에 짝사랑하던 오빠의 모습이 찍혀 있지 않았다면 옛날에 찢어 버렸을, 어릴 적 교회 수련회의 굴욕 사진들을 지금 들여다보면 흐뭇하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어요. 온몸과 영혼에 부딪쳐 오는 말씀 앞에 깨어지며 눈물 콧물 흘렸던 그 굴욕의.. 더보기
나를 먹여 살리는 당신 "회비는 계속 낼 테니, 잡지는 보내지 마세요." 회원 한 분이 전화하셔서, 너무 바빠서 잡지를 안 읽고 쌓아 두게만 된다며, 낭비인 것 같아 잡지를 안 받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요. 아무리 안 읽은 잡지가 쌓여 간대도, 아예 잡지 받기를 포기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잡지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회비를 내시겠다는 것은 좋은교사운동에 뜻을 함께하고 계속 힘을 실어 주고 싶다는 말씀이기에 얼른 사사로운 섭섭함을 접었어요. 또 다른 한 분은 제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셨어요. 요지는 좋은교사운동을 탈퇴하신다는 것이었지요. 탈퇴의 이유를 자세히 쓰신 후에, 그동안 좋은교사운동에 내던 만 원을 더 값지게 써 줄 곳을 찾아보겠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셨어요.. 더보기
계절을 앞서 사는 사람들 계절을 앞서 사는 사람들이 있지요. 지금쯤 옷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내년 봄 옷을 생각하고 있겠지요. 잡지를 만들면 두 달 정도 앞서 살아요. 10월호를 한창 만들고 있을 때, 어디서 "벌써 9월이네" 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해져요. 지난 한 달은 10월 잡지를 만들면서 2010년 연수를 준비했더니, 2010년 10월을 산 것 같아요. 2010년 1월에 열릴 좋은교사 자율 연수를 위해 운영위원들과 논의하고 강사를 섭외하려고 많은 분들과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전화 통화를 시도했는데, 한 분 한 분과 연락 닿기가 정말 쉽지 않았어요. 다들 너무 바쁘게 살고 계신 거죠. 가까스로 연락이 닿아, 어떻게 지내시는지 여쭤 보니, 이분들 모두 계절을 앞서 살고 계시더라고요. 이 땅에서 교직 생활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