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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배움을 통한 회복을 위하여

열혈 아줌마의 좌충우돌 수업 이야기 5

배움을 통한 회복을 위하여

김주화

(행복한수업만들기 한문 모임 대표)

 

비폭력 대화와 회복적 학생 생활 지도?

지난 7월에 있었던 ‘비폭력 대화와 회복적 학생 생활 지도’라는 좋은교사 연수에 참여했습니다. 1학기 동안 학급 학생의 생활 지도로 고생하다가 뭔가 획기적인 생활 지도 기법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신청하고 참여했는데, 기법이 아니라 관점에 대한 연수였습니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정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연수에서는 ‘정의’를 몇 가지로 나누었는데, ‘응보적 정의, 분배적 정의, 회복적 정의’라고 표현했습니다. 작년에 베스트셀러가 되며 주목받았던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샐던)에 제시된 정의는 ‘분배적 정의’에 해당했고, 제가 주로 알고 실현하려 애쓰고 있던 정의는 ‘응보적 정의’에 해당했습니다. 잘못했으면 처벌을 받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학급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게 되면 ‘처벌’을 이용한 재발 방지에 주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정의에 대한 관점을 ‘회복적 정의’로 변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설명하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간단하게나마 ‘회복적 정의’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일단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피해자의 피해와 요구에 주목하고, 갈등으로 인해 야기된 관계의 단절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가해자에게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래서 다시금 공동체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3일간에 걸쳐서 배웠습니다. 3일간의 연수 과정에서 저는 ‘회복’과 ‘공동체’ 두 단어를 되뇌고 또 되뇌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는 ‘정의’를 바라보는 회복적 관점이 수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의 학습 과정까지 품을 수 있다면

기독한문교사모임이 생기기 전에 기독국어교사모임에서 배웠습니다. 그때 기국모 선생님들과 함께 2005년 여름에 평택 도서관에서 ACTS에 계시는 이정미 교수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었지만, 그날 제가 가슴에 담고 돌아온 것은 ‘학습자의 학습 과정까지도 기독교적이어야 한다’는 이정미 교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학습되는 과정까지도 기독교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은 참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기만 했습니다.

‘기독교적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창조-타락-구속-회복’의 기독교 세계관을 지식의 영역에 실제적으로 적용해 보려고 수업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도 어렵고 벅차기만 합니다. ‘내용’만 있다고 수업이 되는 것이 아니니, 사실 제대로 하려면 기독교적 교수 방법, 기독교적 평가까지 나아가야 하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고, 혼자서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공동체와 함께해야 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학습자의 학습 과정까지 고민하라니 새로운 고민거리에 그게 무얼까 하며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머리는 하얗게 질려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희미하게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父子有親 배웠다고 부모님 공경할 수 있을까

2008년 8월에 기독한문교사모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9년 1월 자율 연수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한문 수업 디자인하기’라는 타이틀로 함께했고, 마지막 날에는 실제 교과서 단원을 재구성해 보는 워크숍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윤보경 선생님과 함께 ‘오륜(五倫)’ 단원을 재구성했습니다. 내용은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었습니다.

1. 깨어진 관계의 예를 보여 주며 학습 목표 제시하기

2. 본문 학습 (모둠 학습지)

- 오륜의 다섯 덕목을 각 모둠별로 하나씩 제시

- 협동 학습 구조를 이용하여 모둠별 본문 학습 (1인 1자 말하기, 돌아가며 쓰기))

3. 내용 학습 (모둠 학습지, 개별 학습지)

- 각 모둠별로 맡은 덕목에 대해 ‘이상적인 모습(창조), 왜곡된 모습(타락), 회복된 모습(회복)’의 틀로 간단히 토의

- 각 모둠별로 맡은 덕목에 대한 한자의 음과 뜻, 풀이, 토의 결과 발표

- 발표자 외 학생들은 개별 학습지를 이용하여 타 모둠의 발표를 들으며 학습

4. 정리 (교사)

함께 고민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륜의 각 덕목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현재 자신의 생활 속에서 왜곡된 모습을 찾아 직면하게 하고, 어떻게 회복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조금 더 의미 있는 수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곰곰이 수업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깨닫게 된 내용이 있어 연수 평가회 때 다음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그때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이번 연수 이후에, 연수 때 짰던 지도안(중학교-오륜 내용)을 계속 생각해 보았습니다. 육아 휴직으로 인해 당장 현장에 적용해 볼 수가 없으니 상상으로나마 수업을 해 본 것이지요. 오륜은 ‘관계’에 대한 것이고, ‘관계’의 모델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성경적 시사점을 바탕으로 했던 수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바른 관계의 모델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자는 것이 수업의 요점이었고, 오륜의 각 덕목들이 바로 그 적용점이 된다는 것이었죠.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학습자)은 그 ‘관계’에 상처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는 ‘親’이 존재해야 한다. ‘親’으로 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니 너희는 효도해야 한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명한들, 이 부모-자식의 가장 훌륭한 모델은 ‘하나님-자녀’의 모델이라고 아무리 생각하며 수업을 한들, 이미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은 그 수업이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어른들로부터 상처받은 그 마음들이 오륜 수업을 통해 위로를 받고 미약하나마 치유를 얻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제 수업이 학생들의 태도 변화만을 요구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만 너무 초점이 맞추어졌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수업을 통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의무’만을 강조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반성이 들면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위로를 받고, 아이들의 마음이 시원하게 되는 수업을 할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습자’의 ‘학습 과정’도 ‘기독교적’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공부하며 위로를 얻고, 힘을 얻듯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학문을 통하여도(모든 학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위로를 얻고,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학문 안에 포함된 인본주의적, 물질 숭배적 색채 같은 비기독교적 요소들은 잘 분별하여 걸러 내야겠지요.)

 

‘父子有親’하라고 배웠다고 해서 갑자기 막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朋友有信’하라고 배웠다고 해서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진 내면의 아픔이나 상처, 쓴뿌리들이 치유되는 회복 없이, 행동이 변화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업 시간에 ‘교사’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너무 쉽게 말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학습자의 학습 과정도 기독교적이어야 한다’고 하셨던 말의 의미는 아직도 뚜렷이 알지는 못하겠지만, ‘배우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는 학생들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회복 그리고 공동체

비폭력 대화와 회복적 학생 생활 지도 연수를 받으며 회복적 정의나 비폭력 대화나 목적은 모두 ‘회복’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상처로부터의 회복, 깨져 버린 관계의 회복, 각 개인의 회복으로 인한 공동체의 회복. 그것은 ‘샬롬’의 과정이었습니다. 평화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 적극적으로 평화가 실현되어 가는 과정, 그 ‘과정’이 바로 ‘회복’이었고, 올바른 ‘정의’란 그 ‘회복’이 일어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수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수업이 ‘샬롬’의 공간이 되는 ‘과정’안에 있을 때 ‘회복’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교과의 내용에만 집중했었다면, 이제 그 내용을 받아들여야 하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지적, 환경적, 심리적, 영적 상황과 요구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학생-교사-지식 간에 깨져 버린 관계가 회복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교제와 협력을 통하여 공동체에 속한 기쁨을 알아 가게 하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면 배우는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이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숙제로 남네요. 현장에서 부딪히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업, 생활 지도, 학급 운영, 학원 복음화 등등 교사의 할 일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전 가끔 ‘종합 예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종합 예술’의 틈바구니에서 때론 지치고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어려운 ‘종합 예술’의 길에 뛰어든 이유는 결국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천하보다 귀한 생명 하나, 그 하나의 ‘회복’이 아닐까요.

2학기가 시작됩니다.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고, 내 힘으로 회복시킬 수 없기에, 2학기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