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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배움을 통한 회복을 위하여 #2


열혈 아줌마의 좌충우돌 수업 이야기 5

배움을 통한 회복을 위하여 #2

 

 

김주화

(행복한수업만들기 한문 모임 대표)

 

여름 방학의 두 가지 연수

저는 지난 9월호에서 ‘비폭력 대화와 회복적 학생 생활 지도’라는 좋은교사 연수에 참여했었고, 연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소개했습니다. 또한 연수를 통해 수업적 맥락에서의 ‘회복’을 살펴보았지요. 지난 호에도 언급했듯이 제게 연수가 남긴 두 단어는 ‘회복’과 ‘공동체’였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의 회복과 공동체 자체의 회복이 제게는 화두가 된 셈이지요.

지난 호 원고를 모두 완성한 뒤에 연수를 하나 더 받았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의 전문 모임인 한국협동학습연구회에서 진행한 ‘협동학습 기본 과정’ 연수였습니다. 기독교적 수업을 꿈꾸면서 수업 방법에 있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고 있었고, 협동학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기다리던 연수였지요. 과열 경쟁으로 치달아 유치원생까지 경쟁하고 있는 사회, OECD 국가 중 청소년들의 행복 지수가 꼴찌인 사회, 경쟁에 매몰되어 공동체 의식이 무너져 가는 학교. 나를 둘러 싼 환경이 이러하지만 공동체를 위하여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친구를 배려하며 서로 협동해서 수업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단지 협동학습의 구조와 활동뿐만 아니라, 협동학습이라는 수업 기법 안에 면면히 흐르는 ‘회복’과 ‘공동체’라는 공통된 화두를 다시 한 번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협동학습과 같은 새로운 교수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이유는 단지 재미있는 수업을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재미를 넘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수업을 통한 ‘회복’을 바랄 수 있기에 그리도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겠지요. 저도 참 많이 배웠습니다. 수업 내용만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방법 역시 교사의 교육 철학과 신념이 담긴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두 번의 연수를 경험하며 올 여름 제 화두는 ‘회복’과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제가 2학기 들어 처음 가르친 단원은 ‘孝’에 대한 단원입니다. 내용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風樹之歎(풍수지탄)’입니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어버이를)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시지 않는다.

《좋은교사》 9월호에, 제가 父子有親하라고 배우면 효도할 수 있는가를 물었었는데, 그 글을 쓰고 나서 가르칠 첫 단원이 ‘孝’에 대한 단원이더군요. 저 문장의 풀이를 배우고 나면, 효도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학생들의 마음속에, ‘그래,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열심히 효도해야 해’라는 동의는 얻을 수 있겠지요. 그것은 제가 수업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孝’는 인류 공통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주제에 대한 동의는 쉽게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동의했다고 이 수업을 통해 내면의 회복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이 하나도 없는 집은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기에 저희들의 관계는 끊임없는 갈등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저희 학교는 어려운 환경으로 인하여 가정에 상처가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대개는 자식보다는 부모의 문제로 야기된 상처입니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孝’에 대한 다짐을 하게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순종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순종하는 아이들로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고민하다가, 제가 부딪힌 지점은, ‘내가 그 내용을 가르칠 자격이 있던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孝를 실천하는 자식도 못 되고, 孝를 받을 만한 부모도 못 되는 부끄럽고 부족한 모습인데 아이들에게 ‘孝’를 가르쳐야 하다니요. 그걸 어떻게 가르친답니까.

 

사랑이 먼저

그래서 과감히 제가 뭔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엄마’된 입장에 서서 가정으로부터,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 마음을 달래어 부모님을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습니다. 孝가 행실로 나타나려면 마음으로부터 부모님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조금이라도 그 마음이 부드러워져 부모님을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내면적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배운 대로 협동학습 구조도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공동체성의 회복을 바라면서요.

  

 

수업 계획

1차시

1. 학습 목표 제시

2. 새로 나온 한자 학습 (플래시 카드)

- 돌려 가며 외우기 -짝 점검 -교사 정리

3. 본문 문장 풀이

-개인, 짝 학습지 -모둠 학습지

4. 정리

2차시

1. 학습 목표 제시

2. 마음 열기

-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사연(영상 자료 이용), 정철의 시조 제시

- 영상과 시조를 통해 느낀 점을 느낌 목록표를 이용하여 작성하고 모둠끼리 나누기(돌아가며 말하기)

3. 생각 쌓기

- 1차시 모둠 학습지 점검(개인별 맡은 부분 확인하기)

- 교사 설명 및 정리 - 주제 탐구: 風樹之歎

4. 생각에 날개 달기 : 부모님 마음 이해하기

- 먼저 생을 달리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사연 (영상 자료 이용)

- 자식의 마음 vs 부모의 마음 (교사 자신의 사진 자료 이용)

5. 삶에 접속하기

- ‘孝’ 글자에 대한 자원 이해 (연로하신 어버이를 부축하고 있는 자식의 모습)

- 효경의 한 구절을 읽으며 ‘孝’에 대해 생각해 보기

 

울었다가 웃었다가

1차시는 주로 한문의 기본적인 학습에 대한 수업이었습니다. 문장을 익히기 위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한자의 뜻과 음을 익히는 학습과 스스로 문장 풀이에 도전해 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풀이 부분은 4인 1모둠임을 감안하여 의미 단위로 네 부분으로 끊어서 개별 과제를 주었습니다. 2인 1문장으로 구성하여 개별 과제가 끝난 후 짝과 맞춰 보면 한 문장의 풀이를 완성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짝 점검이 끝나고 모둠끼리 맞추면 두 문장으로, 본문 전체가 완성이 되는 구조입니다. 서로 모르는 부분은 알려 주며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학습지가 완성이 되어 제출할 수 있기 때문인지 아이들끼리 열심히 묻고 알려 주고 하더군요.

2차시에는 본문 학습과 더불어 본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사연, 먼저 생을 달리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사연을 모두 영상으로 보여 주며, ‘부모-자식’이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관계의 깊이를 공유했습니다. 〈남자의 자격〉 ‘청춘 합창단’ 편에서 15년 전에 생을 달리한 아들을 그리워하며 〈만남〉이라는 노래를 부른 분이 계셨습니다.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지요. 그분의 영상을 보여 주자 분위기는 숙연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자못 어색한 남학생 몇은 괜히 웃겨 보려고 농담을 던졌다가 분위기에 외면당하기도 했습니다. 눈물이 고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후, 저는 제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습니다. 저의 과거 사진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고, 눈물짓던 아이들이 웃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만삭이었을 때 찍었던 사진,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 아이의 신생아 때 사진과 훌쩍 자란 아이의 사진들이었거든요. 한바탕 같이 웃고, 저는 제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솔직히 고백하고, 엄마가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는 부모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자식 노릇보다 훨씬 어려운 엄마 노릇에 대한 경험적 이야기도 짧게나마 들려주었습니다. 비록 지금 부모님이 이해가 잘 안 되어도, 혹은 부모님이 마음에 상처를 주더라도 그런 갈등은 인간관계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그런 갈등으로도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부모-자식’ 관계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저 역시 못난 자식에 못난 어미라고,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사랑할 이유를 ‘완전함’에서 찾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후회되는 그때’가 되지 않도록 오늘, 부모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가자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은 위로를 받았을까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

우리는 대체로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립니다. 저도 그렇고요. 방학이 끝나갈 즈음엔 그 부담감이 꿈에서까지 괴롭힙니다. 텅 빈 교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하는 꿈을 꾼 적도 있습니다.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우리의 삶을 직면하고 솔직히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우리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중이니 수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내보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한 걸음 함께 나아가면 어떨까요. 부족한 인격끼리 진실하게 만날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교실 안에 부어 주시기를, 주께서 친히 회복시키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