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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묻는 교실

철학을 묻는 교실




 


"30분만 더 공부하면 네 남편 직업이 바뀐다." "졸 테면 졸고 잘 테면 자라. 서울대는 너를 버려도, 서울역은 너를 받아 줄 것이다." 웃고 넘기기엔 씁쓸한 급훈들이네요. '옆 반 정복'이나 '우주 정복'보다는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교훈으로 삼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학교와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여기기에는 아니다 싶어요.

작년 연말, 저희 여섯 살 큰아이와 네 살 작은아이가 교회 어린이집에서 성탄 행사를 한다고 교회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을 초대한 적이 있어요. 여섯 살, 네 살 두 아이가 영어로 뮤지컬을 했는데, 행사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했어요. 뜻도 모를 영어를 외우고 있는 아이들과 흡족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들 사이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 때문이었죠. 즐거워할 학부모들을 위해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 우리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네 살 아이들을 데리고 또 얼마나 무한 반복 학습을 시켰을까 생각하니, 애매한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뜻 모를 영어를 하면서 밝게 웃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면서, 이 사회와 교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과연 옳은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과연 대한민국 교육이 지향하는 교육 철학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작년 좋은교사운동 북유럽 탐방단이 북유럽 교육을 탐방하고 북유럽 교육과 한국 교육의 근본적 차이는 '합의된 교육 철학의 부재'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이번 호 특집에서는 작년 북유럽 탐방 이후 시작한 교육 철학 모임에서 논의하였던 교육 철학에 대한 고민들을 글로 묶어 봤어요.

이제 곧 3월이 오겠지요? 새 학년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학급과 학교가 지향할 핵심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급훈을 정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고 우리의 교육 철학을 묻는 큰 발걸음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 걸음, 2월호를 읽는 것으로 시작해 보시죠?

희망을 낚는 어부

한 성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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