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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

안 그래도 바쁜 월요일 아침에 큰아이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 줄거리를 적어 월요일까지 보내 주세요. 구연동화 대회를 합니다” 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학습 안내 사항을 불행히도 처음 발견했어요. 부랴부랴 아이에게 묻습니다. “은택아, 너 무슨 동화가 제일 재밌었니? 빨리.” “엔진 포스 로봇 합체.” “그런 거 말고, 토끼와 거북이 알지? 그걸로 하자.”

부랴부랴 한글 자판을 두드립니다. 편집장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잘 적다가 잠자고 있는 토끼를 외면하고 앞서 달려가는 거북이 대목에 자판이 멈춥니다. ‘아니 이러면 저 혼자 앞서 달린 토끼와 다를 바가 뭐야? 결국엔 거북이도 자기만 이기면 된다는 거잖아.’ 이건 아니다 싶어 거북이가 잠자고 있는 토끼를 깨워 거북이와 토끼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일등을 하는 걸로 줄거리를 바꿔 적어 주었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들 표정이 묘하네요.

이번 특집에서는 대학 체제 개편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어요. 초중고 교육이 왜곡되고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는 데에는 대학 서열화와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대학 입시 자체에 대해 논의했다면, 이번 논의는 보다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 교육이 토끼와 거북이가 동시에 출발해 똑같은 구간을 지나 누가 먼저 결승선에 도착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고민했고 그간의 주된 이야기는 결승선을 대학 입시에 두었지요. 그러나 이번 논의는 그 결승선을 대학 입시가 아닌 그 너머로 정하고 있어요. 또한 토끼와 거북이가 달려야 할 과정도 획일화, 개인화를 넘어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대하고 있고요.

큰아이가 구연할 새로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기대해요. 또한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보다 다양한 구간을 달려 혼자가 아닌 함께 결승선을 통과하길 소망해요.

희망을 낚는 어부

한 성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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