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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해결 방법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전상희 사단법인 갈등해결과대화 상임 공동대표_2018.6)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해결 방법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전상희(사단법인 갈등해결과대화 상임 공동대표)

선생님은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15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지금은 ()갈등해결과대화 상임 공동대표로 갈등을 대화로 다루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쳐 가고 있으며, 분쟁 현장에서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일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터뷰·사진 한성준

 

상근교사들끼리 안산교육청 기억교실에 다녀오는 길에 우리 사회가 갈등을 잘 다루지 못해서 겪고 있는 사회적 아픔과 손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확인한 정보를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공유했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큰 아픔을 겪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개인 사이의 갈등이든, 사회적 갈등이든 우리는 갈등을 어렵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갈등을 직면해서 대화로 해결해 본 경험은 턱없이 부족하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 온 사단법인 갈등해결과대화 전상희 대표님을 만나 보기로 했다.

 

 

()갈등해결과대화는 어떤 단체인지 궁금합니다. 또 이 단체는 어떤 일들을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사단법인 갈등해결과대화는 작년 7월에 창립총회를 열었지만 그 시작은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에서였어요. 평화여성회는 남북통일의 과정에서 갈등을 평화롭게 다루기 위한 우리 사회의 평화적 갈등 해결 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찍부터 노력을 기울여 왔고, 갈등해결센터는 사회의 전 영역에서 선도적으로 갈등 해결의 새 영역을 개척해 활동해 왔어요. 갈등해결센터의 활동 영역이 일상의 영역으로 더 확장되고 전문화되어 그에 맞는 조직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에서 분리해 독립했어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 시민 단체 활동가와 학교, 마을 공동체, 협동조합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하고, 조정도 하고, 진행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사업 영역으로는 갈등 해결 교육, 조정, 회복적 정의 피·가해 대화 모임, 대화, 진행, 숙의토론과 공론화 과정 참여 등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차이와 불일치를 다루는 갈등 해결 교육은 실천적 교육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으로만 끝나지 않고 삶과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요.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중립적 3자로서 대화 과정을 돕는 조정 활동도 하고요. 그룹의 논의나 구성원 내에 이견을 다루는 것이 필요할 때 회의 과정을 설계하고 운영을 돕는 진행(Facilitation) 활동도 하고 있어요.

갈등이 생기기 전에 공동체 내에 신뢰를 형성하는 대화의 경험을 만들어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갈등이 있는 그룹 간 혹은 갈등 이슈를 답을 정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활동도 하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원전 문제를 다뤘던 숙의토론과 공론화 과정에도 참여했어요. 또한 지역 사회 내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찾아가 갈등 해결을 돕는 역할도 합니다. 가정법원 안에 있는 화해권고위원회나 서울시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학교에서 대화 모임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면 학교로 들어가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갈등은 하루에도 매일 겪는 일인데요. 이를 대화로 해결하는 것은 참 익숙하지 않은 일이에요. 대표님께서는 갈등해결과대화에서 언제부터 활동하셨는지, 어떻게 이 단체에서 활동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15년 정도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있었어요. 그리고 청소년 수련관 관장도 했었어요. 수련관 관장일 때, 일을 그만두고 갈등 해결과 관련한 교육이 있어서 참여했는데 저에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갈등 해결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들으면서 그동안 했었던 대안학교에서의 다양한 경험, 수련관 관장으로서 역할 등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많이 얻었어요. 수련관에서 관리자로서 봤을 때 사업 담당자와 부서 안에서의 내부 갈등을 잘 다루지 못해 조직이 어려운 일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보았거든요. 청소년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왜 부족한지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고요.

갈등은 해결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어요. ‘대화로 갈등을 해결한다고 하는 건, 실은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되면서 대화의 방법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싶고, 경험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 일을 하게 되면 제가 좀 더 갈등을 잘 다루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지금까지 갈등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갈등의 의미는 무엇인지, 갈등을 다룬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다루어야 되는지에 대해 새롭게 다가오게 된 거예요.

 

우리나라 정서에서 갈등은 참 불편한 것으로만 여기고, 그래서 갈등을 대화로 건강하게 풀어 가는 것에 참 익숙하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상황에서 갈등을 건강하게 다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갈등은 정말 자연스러운 거예요. 갈등은 사람 사는 데서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고요. 갈등은 달라서 생기는 것보다는 서로가 다를 때 충족되고자 하는 서로의 욕구가 부딪힐 때 생겨나요.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갈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함께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생기면 갈등은 문제라고 인식해요. 잘못된 것으로 인식해서 계속 숨기려고 해요.

그리고 갈등이 어느 시점에 제일 많이 발생하느냐면 기존의 질서에 새로운 바람이 불 때 많이 발생해요. 이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결론을 내기에 급급하죠. 그러다 보니 갈등 해결을 승패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하고요. 갈등을 다루는 과정보다는 빨리 해결에 이르기를 바라죠. 그런데 갈등을 다룰 때 결론을 내기보다는 갈등을 다루는 과정이 중요한 거거든요.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답을 어떻게 찾아가는지가 중요한 거예요. 우리 사회는 갈등을 드러내서 다루는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그 과정을 겪어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 과정에서 힘이 들 수도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답과 다른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죠. 가장 힘든 건 시간과 감정이 많이 소모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그 경험을 하기보다는 빨리 끝내고 싶어 할 수밖에 없겠죠.

 

우리 사회가 갈등을 잘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월호도 그렇고, 대입 정책을 두고 벌이는 공방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언제 한번 갈등을 협력적으로 다뤄 본 경험이 있나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와 싸우거나 부딪혔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 제일 많이 다투게 되는 상대는 형제, 자매이잖아요. 다투게 되면 부모님들이 늘 하는 형제자매끼리는 싸우는 게 아니다, 양보해라, 잘 지내야 한다는 등의 말을 듣고 자라다가 학교에 가서 친구랑 싸우고 나면 사과해라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기보다는 혼나고 나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결론을 들으면서 큰 거예요. 사이좋게 지내는 게 무슨 의미이고, 어떻게 해야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것인지는 다뤄 주지 않은 거죠. 사과의 의미도 모르고,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 것인지 배우지 못한 거예요.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잖아요. 그런데 어찌 보면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갈등을 잘 다루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한 우물을 쓰는 마을에서 도망갈 데도 없는데 갈등으로 부딪히고 싸우면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도 요즘에 비하면 예전에는 마을 단위에서 더 적극적으로 갈등을 다루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마을이라는 개념도, 공동체라는 개념도 많이 약화되었지만 그 당시에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였고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삶의 안전한 기반을 송두리째 버리는 것이기에 어찌하든 그 갈등을 다루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공동체를 떠나 버리면 되잖아요. 학교에서는 전학을 가고, 회사에서는 퇴사를 하면 되고, 가정에서는 이사를 가서 사는 지역을 바꾸면 되니까요.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우리 사회는 갈등을 다뤄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갈등을 다룬다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갈등을 안 다루는 것이 공동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갈등을 피해야 할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사회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또 개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지 않고 갈등을 피해 공동체를 그냥 떠나 버리는 것이 큰 문제예요. 물론 공동체를 떠날 수 있고, 또 공동체에 머무르는 것만이 답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공동체에서 그 문제를 다루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거죠.

공동체에서 갈등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경우는 공동체에서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갈등을 표현하는 것은 결국 이 공동체에 머무르고 싶다는 다른 표현일 수 있어요. 내가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고, 내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고 싶은가 하는 것은 내가 이 공동체에서 계속 문제도 해결해 보고, 뭔가 갈등이 있을 때 또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을 공동체 안에서 해결해 보는 경험을 만들게 되고요. 갈등을 공동체 안에서 해결했던 경험을 많이 가진 공동체는 갈등을 더 잘 다룰 수 있는 거죠. 작은 갈등부터 큰 갈등까지 갈등을 다루어 가는 방법을 쌓게 되는 거죠. 우리 사회도 이런 경험들을 많이 쌓아 갔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일상에서 겪는 갈등을 보면 갈등을 피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중요해요.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실은 말하지 않는 게 제일 편하거든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욕하면 되거든요. 이렇게 갈등이 단순히 뒷담화로 해결할 수 있는 거면 괜찮아요. 그런데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일 때 이것을 드러내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마음가짐, 끝까지 이것을 대화로 풀고자 하는 의지는 아주 중요해요. 그리고 한 개인이 갈등을 표현하기에는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그 개인에게 신뢰와 안전감을 주는 것도 중요해요. 자신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공동체에 자신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상호 신뢰도 중요해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개인적 경험이 모아져서 사회적 경험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저 아는 분이 세입자로 살면서 겪었던 경험이에요. 이 분은 강아지를 키우는 분이었어요. 처음 이사 갈 때는 강아지 키우는 문제가 아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살면서 누수가 생겼는데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집주인과 엄청난 갈등을 겪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전에는 괜찮았던 것들이 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지 않았는데 몰래 키웠다, 그래서 집을 망쳤다 등등. 그 과정에서 세입자는 집주인이 세상에서 제일 위선적인 사람이 되었던 거죠. 이사 나오면서 이 일은 마무리 되었지만 이 이후에 그 집주인은, 세입자는 어떻게 될까요?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를 고를 때, 세입자는 집을 고를 때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게 될까요? 그런 경험들이 사회적으로 모아졌을 때 사람들은 세입자와 집주인에 대한 인식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어요.

갈등이 생겼을 때 다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다루고 싶었던 문제가 다루어졌는지, 나의 염려에 대해서 이해 받았는지, 내가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할 수 있었는지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해에 보육안전과 CCTV’라는 주제로 열린 대화를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열린 대화는 결론을 정하기보다는 상호 이해가 목적인 대화의 장으로 저희 단체에서 진행하는 대화 사업 중의 하나예요. ‘보육안전과 CCTV’라는 주제로 학부모, 어린이집 교사, 어린이집 원장 등의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어요. 대화가 끝났을 때 학부모 중에 한 분이 소감으로 나는 여전히 어린이집에 CCTV를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떤 문제가 있다고 했을 때 무조건 선생님들에게 CCTV부터 먼저 보여 달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라고 하셨어요. 즉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시작점이 생기는 거죠. 이런 측면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한 사회 안에서도 갈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공동체에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많이 경험해 갔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든 또 어떤 공동체든 공동체 안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대화를 통해 갈등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 과정을 통해 공동체가 더 성숙해지는 경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대표님께서는 청소년 상담과 갈등 해결도 오래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잖아요. 기억에 남는 사례를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다뤘던 첫 사례이기도 하고 잊을 수가 없는 장면도 있어서 지금까지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에요. 제가 화해권고위원으로 경험한 이야기예요.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문제로 결국 법정에까지 온 거죠. 3명의 남학생이 1명의 여학생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해서 여학생의 코뼈가 부러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학교폭력으로 다뤄서 서면 사과도 하고 했지만 결국 법정까지 왔어요. 가정법원에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화해권고제도가 있어서 재판으로 가기 전에 각각의 당사자와 각각의 당사자 부모님들이 함께 모여 대화모임을 갖는 제도가 있어요.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자발성이에요. 대화는 서로가 원해야 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여학생에게 대화를 하겠느냐고 했을 때 하고 싶지 않다고, 그 남학생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몇 차례 대화를 나눈 후에 여학생이 남학생들을 쳐다보고 싶지 않고 등을 돌리고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대화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양측 부모님과 학생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 여학생은 등을 돌리고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여학생이 자기에게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그 피해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 때까지만 해도 피해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남학생들이 상대 여학생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 여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어요. 물론 학교에서 그 전에도 글로 사과를 했지만 사과의 깊이가 달랐던 거죠. 등을 돌리고 앉았던 여학생이 몸을 돌려 그 남학생들을 마주 보더라고요.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부모님들 사이에서의 오해도 풀렸어요. “이렇게 피해를 주고도 어찌 한번 사과를 하러 오지 않느냐. 절대 합의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실은 학교 측에서 처음에 연락했을 때 그쪽 부모들 얼굴도 보기 싫다는 말에 양측 부모를 분리시켰던 거죠. 또 피해자 부모들이 너무 막대한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오해했던 부분도 대화 과정에서 오해를 풀 수 있었고요.

대화 후에 양측 부모님이 모두 그러시더라고요.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거의 6개월이 다 지나서야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왜 보다 빨리 이런 대화를 할 수 없었는지 안타깝네요.” 학교 안에서 갈등을 건강하게 다룰 수 있었다면 그 어린 아이들이 법정에까지 올 필요가 없었죠.

 

요 몇 년 사이에 학교에 비폭력대화, 회복적 정의, 회복적생활교육, 서클 등의 새로운 용어들이 익숙해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학생들의 갈등을 다루는 것은 참 힘들어요. 학생들이 자기 피해는 잘 말하면서 책임을 지는 일은 안 하려고 하거든요. 피해와 손상, 회복과 책임, 학교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대안학교에 있었을 때예요. 아이들이 뭔가 잘못을 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면,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를 생각해 보자고 하면 벌을 받겠다, 차라리 청소를 시켜달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깨닫게 된 게 있어요. 아이들은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 것이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더라고요. 정작 다투었던 친구와의 관계나 피해 학생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고 벌을 받으면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기더라고요. 회복과 자발적 책임은 나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이었는지를 알아채는 것에서 시작해요. 그 과정은 제 3자가 전달하는 것보다는 있었던 일과 그 일의 의미, 그 일로 인한 감정, 피해 등을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었을 때 훨씬 의미가 있어요.

 

대화를 통해 건강한 학교 공동체를 이뤄 가는 일에 있어 학교가 우선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교사나 학부모 입장에서도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옛말에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했잖아요. 요즘엔 학교에서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나죠.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학부모 모임의 학부모님들을 하나의 행사 도우미로서 활동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단순 행사 도우미가 아니라, 또 소수의 학부모들만이 아니라 다수의 학부모님들이 건강하고 자발적으로 학교에 참여할 수 있는 길들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학부모님들도 학교 안에서 생기는 갈등을 대화로 해결해 가는 경험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고요.

선생님들에게는 제가 쉽게 말씀 드리기가 어려워요. 학교폭력이나 학교 내 갈등을 다루면서 학교를 접할 기회들이 많았어요.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교사로서의 자율성이 낮은 학교문화가 너무 아쉬웠어요.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신속하게 답을 요구하는 것들이 많고, 정해진 절차대로만 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고요. 그리고 학급이나 수업 운영에 있어 교사의 결정권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제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쉽지 않네요.

그래도 부탁을 드린다면 아이들이 어떤 갈등으로 교사 앞에 왔을 때 답을 이미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이미 예상한 답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답부터 빨리 주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아이들을 조금 더 믿어 주시고 기다려 주시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대화의 장을 열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참 쉽지 않지요? 학교에서는 뭔가 빨리 문제를 처리해 버리기를 바라니까요. 그래도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능력을 믿고 조금 더 기다려 주시고, 더 많이 믿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대표님, 이 일을 하시면서 보람이 있던 경우도 많았지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또 마지막으로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해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과정 시민참여단 숙의 토론과정에 연구진으로 참여했었어요. 젊은 친구들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정말 연령별, 성별, 지역별을 고려한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셨어요. 시민참여단 토론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참가자들이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때 참가자 중의 한 분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똑같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왜 그런 의견을 갖는지 알게 되어서 의미가 있었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층간 소음 갈등을 조정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서로가 무엇이 힘들었는지 알게 되어 이 자리가 의미 있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 이 일을 하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이 있어서 참 좋아요. 진심으로요. 우리 사회에 이런 실천가적 마인드를 가진 교사 그룹이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워요. 학교에서 아이들의 갈등이 생겼을 때 이것을 건강하게 다루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앞으로도 그 자리를 잘 지켜 주셨으면 좋겠어요.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정 안에서 나의 대화 방식, 내가 대표로 있는 모임에서의 갈등을 다루는 방식 등을 계속 생각했다.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는 경험을 가진 공동체! 갈등을 공동체에서 다룰 수 있는 상호 신뢰감! 마음 깊은 곳에 떨림을 준 말들이다. 이 떨림이 나와 내 가족, 내 모임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흘러넘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