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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꿈꾸는요셉학교 김애화 선생님



김애화 (꿈꾸는요셉학교)

교사 경력 3년, 주일 학교 교사 경력은 23년. 마흔에 시작한 늦깎이 3년차 교사로 보기엔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 꿈꾸는요셉학교에서 꿈쟁이 아홉 친구들과 함께 희망의 씨앗을 키워 가고 있다.“행복한 농군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들려오지 않는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들로 무성해질 ‘하나님 나라’라는 이름의 숲, 그 숲의 향연을 꿈꾸며 기다리는 ‘네 살배기 God's Hope’ 그것이 나의 새로운 이름이다.”



꿈꾸는요셉학교 김애화 선생님

사람을 세우는 아름다운 꿈쟁이

글 및 사진 / 김 태 현


 어떤 일이든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 타성에 젖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이 가져다주는 유익도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선생님으로서의 첫 출발을 기억하시나요? 사범대, 교대를 나오거나 혹은 교직을 이수해서 임용 고시에 합격한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 교사로서의 꿈을 안고 학교에 왔다. 그리고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지금 우리의 속마음을 살펴보자. 어떤가? 아이들이 가슴 속에 살아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가슴이 떨리는가? 머리로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스쳐가지만, 바쁜 일상과 고단한 업무로 이런 마음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지는 않은가 ! 모태 신앙이 갖는 못해 타성이 우리 기독 교사의 삶 속에도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번 〈좋은 만남〉에서는 모태 기독 교사들(?)을 깨울, 늦은 나이 마흔에 교사가 된 꿈꾸는요셉학교의 김애화 선생님을 만나 봤다.


그녀는 누구인가? 건방진 프로필, 팍팍 !

 김애화 ! 그의 나이 마흔셋 ! 나이는 마흔이지만 교사가 된 지는 이제 고작 3년! 하지만 주일 학교 교사 경력은 무려 23년! 1988년부터 교회 주일 학교 교사로 섬기면서 지금까지 이 사역을 해 오고 있다.

 1992년에는 과학 보조 교사 1년,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어린이집 원감으로 5년, 원감으로는 성이 모자랐는지 직접 아이들에게 글쓰기, 전통차, 예절 교육을 6년간 지도했다. 그리고 노인 복지관에서 노인들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섬겼다.

 남녀노소를 넘나들면서 이곳저곳을 누볐던 그녀는! 드디어 2007년 꿈꾸는요셉학교 인턴 교사로 들어가게 되었고, 2008년부터 정식 근무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나이 40에도 아름다운 교육을 꿈꾸고 있는 그녀는, 욕심쟁이 우후훗 !


마흔, 기독 교사의 삶이 시작되다 ! 

 나이 40 ! 공자가 일찍이 이야기했듯이 불혹(不惑)의 나이다. 중년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는 나이고 젊다는 느낌보다는 기성세대라는 말을 듣는다. 나이 서른에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지만, 나이 40은 이제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시기 ! 이제 인생의 전반전이 아니라 후반전이 된 이 시기에, 김애화 선생님은 왜 교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일까?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16살 때 교회에서 열린 학생 부흥회 때, 새로이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때 주님은 저에게 새로운 꿈을 주셨어요. 그것은 바로 ‘사람을 세우는 사람 !’ 그것은 예전에 제가 꾸어 왔던 꿈과는 조금 다른 꿈이었어요. 시시때때로 바뀌는 대학 교수, 국어 선생님, 시인, 방송인, 디자이너 같은 직업에 관한 것이 아니었어요. ‘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꿈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큰 열망으로 바뀌었던 것이죠. 솔직히 말해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그것을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제 가슴은 시도 때도 없이 쿵쾅쿵쾅 가슴이 뛰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디에 있든지 간에 ‘사람을 세우는 사람’으로 살기로 한 것이죠.

 하지만 대학 시절 저의 적성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어요. 사람을 기를 수 있기보다는 소위 취업이 잘되는 학과에 진학했어요. 이 학과를 나오면 관공서에 잘 취업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렇게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보내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어요.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다가, 우연히 목표대학교에서 진행된 ‘방과후아동지도사’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사실 대학교 은사님께서 정원을 채우기 위해 저보고 신청해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신청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때부터 제게 교사의 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어요. 이 무렵 남동생 부부가 어린이집을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는데, 저는 방과 후 학교 원감으로 자연스럽게 일하게 되었어요.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라는 꿈이 이제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거죠.

 저는 이때 교통비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이 일이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사역이라는 생각에 기쁨으로 일했어요. 삶에서 잃어버렸던 참 기쁨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사실 어린이집 원감 일이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애들 식사 준비, 간식 준비, 학부모 상담, 교사 교육, 시설 관리, 청소 등 수많은 일들 속에서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정말 불같은 열정으로 일했어요. 식사를 걸러도 배고픈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일했어요. 잊힌 옛 소명이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본 거죠.

 시간이 조금 지나서 원감 자리를 내려놓고 애들을 좀 더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제 마음속에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그래서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온 곳을 쫓아다니며 배웠어요. 은사 개발 프로그램, 요리, 글쓰기, 과학 실험, 프뢰벨, 가베, 차와 예절, 품성 교육 등. 저는 정식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기독 교사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쳤죠. 힘든 일이었지만 제 가르침에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가슴이 뜨거웠어요. 그러면서 제 안에 ‘정말 제대로 된 공부를 해 봐야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제가 정말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독교 교육’을 전공으로 교육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어요.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저에게 또 다른 곳을 보여 주었어요.

 2007년에 목포에 처음으로 기독 대안 학교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바로 꿈꾸는요셉학교였어요. 저는 제 자식들을 이곳에 보내기로 하고 학부모 교육에 참석했었죠. 그런데 이 학교가 정말 사모되는 거예요. 마음속에서 저도 이런 학교에 근무해 봤으면 하는 욕심이 마구 생기는 거예요. 다시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라는 이 문구가 가슴에 쿵쾅하고 부딪히는 거죠. 그런데 마침 학교에 계신 지인이 꿈꾸는요셉학교에서 교사를 모집하고 있으니 지원해 보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좋았지만 대학원을 마치고 교사 생활을 시작하려 했기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밤새워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각종 면담과 실기 시험, 수업 시연 등을 거쳐 6명의 인턴 교사 중의 한 명으로 뽑히게 되었어요.

 다른 인턴 교사들의 경력에 비해서 저는 한없이 부족했어요. 교원 자격증도 없고, 기혼자고, 더군다나 세 아이의 엄마였어요. 나이는 마흔 살 ! 6개월인 인턴 교사 생활을 포기할까 싶었어요. 세 아이와 한 가정의 남편을 섬겨야 하는데 기본 과제를 제출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어요. 그런데 이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한 거예요.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를 왜 이제 하고 있나?’ 싶었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죠. 그리고 6개월 후, 최종 세 명의 교사 임용 명단에 ‘김애화’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어요. 어찌나 기쁘던지 ! 이렇게 정식으로 교사가 되니 정말 기뻤어요. 비록 공교육 교사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학교에 기독 교사로 세워졌다는 사실이 저의 가슴을 뛰게 했죠.”


늦깎이 교사의 삶 !

 김애화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부분보다 기독 교사로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기독 교사로 세워지게 된 경험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이다. 그럼 그녀는 지금 어떻게 교사 생활을 하고 있을까? 문득 그녀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무작정 목포행 KTX 기차를 타고 꿈꾸는요셉학교로 향했다.

세 시간 정도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창가를 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꿈꾸는요셉학교가 보였다. 짧은 순간이지만 ‘저곳이 그곳인가?’ 하면서 달리는 기차 속에서 뚫어지게 학교를 쳐다봤다. 그리고 3분 뒤 목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꿈꾸는요셉학교의 모습. 좋은 관계 속에서 아이들이 온전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사실 기차 안에서 학교를 봤을 때, 약간 실망감이 앞섰다. 대개 대안 학교 하면, 자연 속에서 생태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는 학교를 상상한다. 그런데 내가 잠시 봤던 꿈꾸는요셉학교는 분명 교회 건물에 있었다. 아주 잘 지어진 교회 건물 속에. 일단은 내가 그렸던 대안 학교 분위기랑 달라, 약간은 한 풀 꺾인 상태에서 학교로 향했다. 역시나 학교는 교회 건물 안에 있었다. 학교 건물이 세워지지 않아 교회에서 더부살이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속으로 들어가니 대안 학교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반 이름은 ‘좋은 나무’, 좋은 나무와 같은 학생들로 가르치고자 하는 김 선생님의 게시물이 눈에 띈다. 특히 경청을 강조하는 게시물.

경청 : 눈과 귀와 마음으로 듣는 것, 상대방이나 맡은 일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여 그 가치를 보여 주는 것

경청 말씀 : 내 말을 귀담아 들어라(잠언 4:20), 다른 사람의 말은 빨리 듣고 자신의 말은 천천히 하십시오. (약 1:19)

 지식을 강요하기보다는 온전한 인간으로 학생들을 양육하고 싶은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읽혀진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이었지만,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고 있었다. 선생님은 옆에서 안내자 역할을 할 뿐,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책을 반납하고 고르고 대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도서관 한 곳에 앉아서 책을 읽고, 간단한 감상을 적었다. 늘 부모와 교사들에 치여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두 시간의 도서관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상한 곳으로 향했다. 전교생 야외 수업이 있는 장소를 가는 것이었다. 1주일에 한 번 꿈꾸는요셉학교는 전교생들이 모여 야외 수업을 한다. 야외 수업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다. 그냥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이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이 아이들의 스승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부추겨 축구를 하자고 한다. 즉석 축구 시합이 벌어졌다. 축구 골대도 없다. 근심 없이 자란 나무 두 그루가 골대였다. 그 사이에 공을 집어넣으면 골인이다. 아이들은 달린다. 선생님들도 같이 달린다. 여 선생님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공을 빼앗으려 한다. 또 한 무리는 개울가에서 올챙이를 잡는다고 난리다. 그리고 옆에서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은 떨어진 낙엽을 날리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내가 대안 학교에서 보고 싶었던 장면이 이것이었다. 꽉 막힌 공교육의 현장 속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이 장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봄이 왔음을 스스로 알리고 있었다. 스스로 놀잇거리를 찾고, 만들며 더불어 함께하는 삶. 이속에서 김애화 선생님은 기독 교사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대안 학교 특성상 학교 시스템이 안정화되어 있지 않고, 경제적인 지원도 넉넉하지 않다. 이상적인 교육을 꿈꾸는 학부모와의 갈등, 매년마다 학생들을 모집해야 하는 어려움 등 여타의 학교와는 다른 고민을 김 선생님은 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이 많지 않아 아침 일찍부터 와서 저녁 늦게까지 학교 행정과 수업 준비를 하고 집으로 가야 한다. 집에 가서는 세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이런 바쁜 와중에서도 문득문득 ‘내가 지금 올바른 교육을 하고 있는가?’, ‘내가 과연 사람을 세우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나는 기독 교사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면 두려움과 불안함이 앞선다고 한다. 그래도 김 선생님은 힘을 낸다. 용기를 낸다. 그에게 당장 맡겨진 우리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적은 작은 글 속에 이런 희망의 소리가 들려온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마다 내가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될 꿈쟁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사실이 나를 떨리게 한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인 교사가 되게 하셔서, 그 ‘무엇’과 ‘어떤’ 것에 대한 꿈을 이루어 가고 계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다. 2학년 여호와 이레 반 !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키워 가며 나를 드리기를 소망하는 씨앗들인 아홉 명의 꿈쟁이들…. 한 사람 한 사람 아홉 명 모두가 나의 소중한 꿈 보따리들이다. 감히 꿈꾸지 못했던 것을 이제 마음껏 꿈꾸고, 자신들이 꾸는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꿈쟁이들. 이 거룩한 백성들이 바로 꿈꾸는요셉학교의 아이들이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알고 나와 다른 친구의 개성을 인정할 줄 아는 아이들, 서로 기도하겠다고 ‘저요! 저요!’ 손들며 진실한 언어로 간구할 줄 알며, 집마다 지은 사람이 다 있는데 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사람들은 안 믿는지 모르겠다며 눈물로 기도하는 아이들,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축복의 도구로 드릴 줄 아는 멋진 세대 ! 이런 사랑스런 아이들과 어우렁더우렁 등 부비며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과 나눈 재미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꿈꾸는요셉학교에 살고 있다는 착한 시간 도둑 이야기’다. 말씀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하루 일과가 끝나고, 한 주일, 한 달, 한 학기, 한 학년도가 누군가가 훔쳐 간 것 마냥 아스라이 사라져 가고 나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키는 말할 것도 없고 교사인 내 키까지 훌쩍 자라 있는 걸 보게 되니 말이다.

 이제 걸음마를 떼고 아장아장 걷는 선생에게 당신의 정원에 친히 뿌려 놓으신 좋은 씨앗들을 돌보게 하신 용감하신 하나님 ! 하나님의 사진기에만 찍히는 자라남의 속도를 아무도 가늠하지 못한다. 어떤 나무가 되어 어떤 열매를 맺을지도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적힌 바로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저장 된 사진 파일들을 드래그하여 ‘슬라이드 쇼’ 기능을 작동시켜 봐야 알 일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인이신 꿈꾸는 요셉 정원 ! 그곳에서 씨앗들이 묻혀 있는 밭고랑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잡초 뽑는 것마저 즐거운 행복한 농군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들려오지 않는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들(시 1:3)로 무성해질 ‘하나님 나라’라는 이름의 숲, 그 숲의 향연을 꿈꾸며 기다리는 ‘네 살배기 God's Hope’ 그것이 나의 새로운 이름이다.”


 김애화 선생님의 취재를 마치며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상근하면서 각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힘들다, 일이 많다, 바쁘다.” 물론 그 마음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기독 교사들이 지나치게 상황 속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기독 교사로서의 마음 하나만은 꼭 잡았으면 좋겠다.

 안락한 교육 환경 속에서 교사직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아이들에 대한 희망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현실의 모순을 돌파하길 기도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즐겁게 교사직을 감당하고 있는 늦깎이 교사 김애화 선생님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 물음표 하나가 꼬리를 문다. 

 내게 가르칠 제자가 있고, 같이 꿈을 이루어 갈 동료 선생님들이 있기에, 김애화 선생님은 기독 교사로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는 과연 지금, 무엇으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