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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다시, 좋은 교사를 꿈꾸다





어떤 일을 맡으면 완벽하게 수행하는 소문난 똑순이 교사다. 현재 백석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일산 기윤실교사모임과 기독국어교사 모임에 나가고 있다. 교회에서도 중고등부 총무 교사로 일한다. 어딜 가든 일을 만들어서 하고, 찾아서 하는,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

류한나 (고양 백석고등학교)

“조금씩 타협했던 것들을 이제는 다시 세워 나가고 싶어요. 타협이 아닌 나의 방법을 좀 더 내려놓고 내가 그동안 좋은교사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늘 그랬듯이 어설프게라도 따라하면 그 장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요.”

 

글/사진 ․ 김태현

 

다시, 좋은교사를 꿈꾸다 

 

본부 상근자로서 제일 힘든 일 중에 하나는 고결한(?) 정병오 대표님의 잔소리를 버텨 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좋은 만남> 원고를 쓰는 일이다. 긴 글을 쓰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더 힘든 일은 인터뷰 대상자를 찾는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에게 “〈좋은 만남〉 인터뷰 좀 하시죠?” 하고 말을 걸면 모두다 손사래를 치면서 “나는 그럴 인물이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많은 선생님들이 여기에 나오신 분들은 뭔가 대단한 선생님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 류한나 선생님을 만났다. 사실 류한나 선생님을 만난 것은, 인터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선배 교사로서 후배 교사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그래 맞다. 이 얘기를 그대로 원고를 쓰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류 선생님은 교사 새내기 시절 ‘가정 방문’, ‘기독 학생반 운영’, ‘신우회 조직’, ‘기독교적인 수업’, ‘학부모 편지 보내기’, ‘수업 평가 받기’ 등 좋은교사운동에서 하라고 하는 모든 일들에 철저히 순종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좋은교사 선생님의 열정이 어디서 사라지는가?’라는 주제로 류한나 선생님의 삶을 꼼꼼하게 살펴보기로 했다.

건방진 프로필 팍팍 !

경남 김해 1남 1녀의 장녀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람. 유복한 가정 환경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김해의 엄친아! 게다가 초등학교 2학년 수련회 때, 천로역정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앙까지도 비범한 아이로 자라남.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 여기며 착실하게 신앙 생활을 해서, 교회 다니는 모든 집사님들로부터는 훌륭한 아이, 동료 친구들로부터는 온갖 시샘 받는 아이로 자라남. 그러나 김해 엄친아도 거창고에 진학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남. 하나님만 잘 섬길 줄 알았는데, 입시 경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세속주의 성공을 꿈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성적이 최우수였는데, 우수 수준에 머무르며 성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음.

결국 첫 번째 대학 시험 실패. 두 번째 대학 시험 점수도 예상보다 적게 나와 어쩔 수없이 서울 모 대학 식품영양학과를 들어감. 대학 입시의 실패로 많은 좌절을 했지만 선교 단체 YWAM에 들어가 열심히 훈련을 받음. 월요일은 ‘리더 모임’, 화요일은 ‘제자 양육’, 수요일은 ‘교회 기도회’, 목요일은 ‘캠퍼스 모임’, 금요일은 ‘금요 기도회’ 등 전공은 뒷전이고 온갖 신앙 훈련에 열중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선교 단체를 그만두게 됨. 김동호 목사님의 동안교회에 안착. 동안교회에서 사법 고시 준비생 강 모 형제와 눈이 맞음. 주의의 모진 핍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연애를 해 나감.

이 와중에 대학 조교로부터 “교직 이수를 하지 않겠냐?”는 뜻밖의 제안에 무심결에 “그러겠다”고 승낙하여 교직의 꿈을 꾸기 시작함. 가정 선생님이 되려 했으나, 교과가 너무 적성에 맞지 않아 국문과를 복수 전공. 국어교육과 계절 학기를 수강하기 위해, 선후배 십여 명을 꼬드겨 국어교육과 과목을 매 방학마다 개설하고 정상적으로 졸업함.

필사적으로 공부했으나 임용 고사에 낙방. 큰 시험은 못 친다는 징크스를 갖게 됨. 임용 고사 재수 공부 중에, 남자 친구로부터 고시 코칭을 받음. 방법은 단 하나! ‘공부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라!’ 일명 ‘믿음 공부법’으로 편안하게 공부함. 그 결과 열심히 공부한 부분에서만 임용 고사 문제가 나와서 시험 시간이 20분이 남는 여유를 보임. 그 결과, 대망의 합격! 2005년 일산 중산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음.

의욕적으로 교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현실의 벽에서 무너짐. 2학기에 인터넷을 통해 일산 기윤실교사모임을 알게 되어 기독 교사 공동체 생활을 시작. 2006년부터 가정 방문, 일대일 결연, 신우회 조직, 기독 학생반 운영 등 좋은교사 모든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많은 은혜를 맛봄. 2008년에는 사법 고시를 합격한 남자 친구와 결혼함. 이제 삶의 황금기가 찾아오기 시작함. 그러나 2009년도 고등학교로 전근한 이후로 예전의 ‘은혜’는 다 사라지고 평범한 입시 전문 국어 교사로 기독의 정체성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음.

그럼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기독 교사의 삶을 회복하려는 당신은, 그야말로 좋은 기독 교사 우후훗!

 

좋은교사와 만나다

류한나 선생님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 하나 있다. 바로 ‘똑순이’다. 눈망울도 큰 사람이 행동도 민첩하고, 목소리도 야무지다. 무슨 일이든지 정말 잘할 거라는 기대감을 주는 사람이 바로 류한나 선생님이다. 실제로 작년에도 비담임으로 교무부를 섬겼는데 일을 정말 잘해서, 모든 일이 자기에게 집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무부장님이 올해에도 교무부에 있으라고 했는데, 너무 일에 지친 나머지 담임을 하고 싶어 교무부장님을 설득해서, 간신히 담임으로 옮겼다고 했다. 이런 류한나 선생님이니 새내기 교사일 때는 어떤 다른 교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을 것이다.

 

“처음 학교에 근무할 때 정말 이상한 교감 선생님을 만났어요. 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욕을 하셨죠. 그 외에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으며 정말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기독 교사의 역할 모델이 없었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교회 다니는 교사’, ‘신앙 교사’, ‘일산 교회 교사’ 등 이런 저런 키워드를 쳐 봤는데, 일산에 기독 교사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모임을 찾아갔죠. 아마 이때가 2005년 9월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 김홍임 선생님(중산고등학교 수학)이 계셨는데 저를 정말 환대해 주시는 거예요. 모임은 4~5명 정도 모여서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저의 마음이 쏙 빨려 들어갔죠. 제가 학교에서 생각했던 주제, 소재인데, 내용이 달랐어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적당히 내보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학생을 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래 이것이 기독 교사의 삶이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해 겨울 수련회에 갔는데,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어요. 수련회 영상으로 나온 ‘기독 교사의 삶’만 보고서도 마구 울었죠.”

 

 

“특히 저는 ‘여러분이 영적인 교장이다. 준비된 기독 교사 한 명이 학교를 바꾼다.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말에 은혜를 받아서, 동료 교사였던 이혜연, 오용완, 이미애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신우회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 모임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많은 선생님들이 모이고, 많은 기도의 열매를 맺게 되었어요. 모임에 참석했던 선생님들이 전근 가셔서도 열심히 신우회 활동을 하게 될 정도로 끈끈한 모임이었어요. 그리고 신우회 선생님들과 연합하여 기독 학생반도 만들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에 모여서 찬양하고 말씀을 들을 뿐인데, 아이들이 20~40명이 오는 거예요. 홍보도 하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 대충 이야기했을 뿐인데,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오는 거예요. 다음 해에는 ‘사랑 나눔반’으로 CA를 해서 지역 교회 대학생들이 토요일마다 도와주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안 믿는 애들이 교회를 다니게 되는 등 많은 구원의 역사가 있었어요. 정말 저는 이때 모든 것을 다했어요. 가정 방문도 세 명의 학생 빼고 다 갔어요. 그러면서 학생들을 가슴으로 품게 되었어요. 오죽했으면 이상한 교감 선생님께서 “류 선생님은 정말 열심히 한다. 아직 어리니까 가정 방문까지 하네”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리고 기독교적인 수업을 위해 기독국어교사 모임도 나가기 시작했죠. 학급 경영, 학원 복음화뿐만 아니라 수업까지도 기독 교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었죠. 그래서 매일 저녁마다 행사가 있었던 거 같아요. ‘신우회 모임’, ‘기윤실 모임’, ‘기독국어교사 모임’, ‘교회 리더 모임’, ‘기독 학생반 모임’ 등. 이때 진짜 어떤 정신으로 이런 모든 것을 다했는지 모르겠어요.”

 

좌절을 맛보다

여기까지 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성공적인 교사의 삶을 산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이런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이토록 잘하던 그녀가 어떤 계기로 열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는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저의 화두는 늘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교육 과정 전반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고등학교를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백석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았어요. 백석고에 처음 와서 학부모 편지에 가정 방문을 하겠다고 적었는데, 한 학부모가 학교에 항의한 것 같더라고요. 학교에서는 ‘학년 부장도 안 거치고 이런 편지를 보냈냐?’며 저를 나무라면서 가정 방문을 못 하게 했어요. ‘그래도 가겠다’고 했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호출을 하더군요. 교감 선생님은 ‘이 동네는 너무 잘살아서 가정 방문이 필요 없다. 가정을 방문하는 것은 좋은 문화가 아니다’고 말씀하셨어요. 주위에 있는 선생님께서도 전에 있었던 ‘촌지 사건’을 말씀해 주시면서 말리셨죠. 그래서 저는 ‘내가 이렇게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여기서 타협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때 기독 교사의 실체를 알게 되었어요. 다들 모든 것을 잘하지는 않더라고요. 다 가정 방문 하는 것도 아니었고요. 다 기독교적인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마음은 불편했지만, 쉽게 타협을 하고 안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어요. 하나를 놓기 시작하니깐 모든 것을 쉽게 놓게 되더군요. 기독 학생반도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와 달리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하는 것이었어요. 10년이 넘는 기독 학생반인데 매일 아침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도회를 해요. 오죽하면 교감 선생님이 저에게 ‘매일 학생들이 추운데서 기도회를 하는데, 한나 선생님은 뭐하는 거냐?’고 말씀하시면서 기독 학생반 애들을 챙기라고 말해요. 기독 학생반이 이렇게 잘 돌아가니 제가 할 일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부턴가 또 스스로 나태해지더라고요. 신우회도 마찬가지예요. 올해 2월에 모였는데, 은혜가 넘쳤어요. 그래서 두 번째 모임을 3월 둘째 주에 가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모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점 타협을 많이 하더군요. 사실 모임 하나 안 하면 몸이 정말 편해지잖아요. 그러면서 지역 모임도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고요. 고등학교에 왔으니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입시를 잘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적어도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기본기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입시 지도에 열을 올렸죠.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제가 기독 교사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때의 삶과 비교해 보면, 하나를 잘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잘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는 하나가 깨지니깐 뭐든지 깨지게 되더라고요.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하고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좋은교사》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고 그래요. 읽기만 해도 눈물이 주루룩, 마음의 회복이 일어나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는 정말 이런 사람과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학교와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상황 탓을 할 때가 많아요. 정작 변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인데, 하지만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기기는 또 힘들어요. 무엇인가를 새로이 하려면 무엇인가를 버리고 싸워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해요. ‘그냥 이렇게 살아도 보통 교사보다는 낫지 않냐’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지금의 제 생활에 정당성을 부여해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기독 교사의 삶에 대해 들은 것이 있으니깐 지금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늘 이렇게 두 마음이 공존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어디 가서 좋은교사 회원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어디 숨어 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

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 생각났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 이론이 기독 교사의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소한 타협 하나가 우리의 기독성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일반 교사의 삶과 구별되지 않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정말 의욕적으로 신우회 활동을 하였다. 선생님들과 시험 기간에 놀지 않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했다. 한 명씩 굴에 들어가서 통성 기도를 하며 학교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기도했다. 매주 수요일에는 교회에서 같이 예배 드리며 중보 기도 시간을 가졌다. 신우회 카페도 만들어 그 속에서 삶을 나누고 기도 제목을 같이 나누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 우리 학교가 기독교 학교로 거듭날 것을 같이 소망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신우회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그 당시 함께했던 동료 선생님들도 흩어져 얼굴은 보고 있지만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어떤 지점에서 타협을 시작했더니, 모든 유리창이 깨져 버린 것이다. 사소한 타협, 그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기독 교사들에게는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류한나 선생님은 이 타협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방학 때 자신의 수업을 좋은교사 선생님들에게 공개하여 ‘입시 위주’의 수업이 아니라 ‘배움이 있는’ 수업 만들기에 힘을 쓰고 있고, 지금 이 인터뷰도 잘못된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류 선생님의 앞으로 삶이 더 기대된다.

“처음에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에 가정 방문을 가지 않는 것도 쉽게 타협하고, 신우회나 기독 학생반도 소홀하게 되었어요.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는 만큼 수업을 더 잘했어야 되는데 수업마저도 일반 선생님들과 다를 바 없는 수업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죠. 그래서 이번 방학 때 보충 수업을 좋은교사 선생님들에게 어렵게 공개했는데 그 이후 제 수업에 변화가 있었어요. ‘선생님 수업에 감동 받았고 정말 유익했다’는 학생의 문자에 용기도 얻었고 수업을 더 사랑하게 됐어요. 보충 수업을 하면서 내가 이전에 했던 방법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법의 수업을 용기 내어서 하니까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죠. 교사를 하면서 신기한 것은 선배 기독 교사들이 했던 것들을 어설프게 따라하기만 해도 변화가 시작되고, 그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거예요. 조금씩 타협했던 것들을 이제는 다시 세워 나가고 싶어요. 타협이 아닌 나의 방법을 좀 더 내려놓고 내가 그동안 좋은교사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늘 그랬듯이 어설프게라도 따라하면 그 장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요.”

그녀의 솔직한 고백이 사소한 타협에서 무너져 버린 선생님들에게 많은 힘을 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2학기, 그녀의 당찬 포부로부터 우리도, 우리가 파놓은 늪에서 빠져나가자! 그리고 당당히 외쳐 보자. “나는 기독 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