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복지에서 시작한 학교 변화,
이제 교육의 본질로 들어가려 합니다
인터뷰 및 사진 ㆍ 홍인기
현재 우리 교육계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2012년 1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를 기획하면서 편집부가 던진 질문이었다. 여기에 대한 편집부의 답은 이주호 현 교과부 장관과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었다. 이 두 분 가운데 좀 더 긍정적인 의미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되는 김상곤 교육감을 만나기로 했다.
2009년 경기도교육감으로 당선되고, 2010년 재선되신 이후 현재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더불어 우리 교육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감 당선 이전에는 교육(특별히 초중등 교육)과 관련한 전문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중등 교육과 관련된 안목과 전문성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얻으셨나요?
대학에 재직하면서 민교협, 교수 노조 등 교육 운동에 참여해 왔고, 이 가운데서 초중등 교육의 관계자들과도 지속적인 만남과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우리 교육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안목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초중등학교 현장에 근무했거나 교육청에서 교육 행정의 실무를 담당한 적은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이나 사업의 작동 방법, 운영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나아가야 할 큰 비전을 제시하되, 이를 정책화, 사업화 하는 과정에서는 교육청의 전문직과 일반직에 계신 전문가들과의 상호 토론 속에서 내용을 다듬어 갔습니다. 사실 제가 초기에 제시하는 교육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교육청 내에서 무관심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정책의 담당 팀 전원과 같이 이야기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이들의 의견을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무 수준에서 이 정책을 실행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하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등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논의까지 같이 진행했습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기본적으로 나는 배우는 과정이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최대한 반영해 달라’는 자세로 토론을 진행하다 보니 서먹함, 무관심, 거부감이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책화 과정에서 해당 부서 직원들의 그 정책에 대한 관심들이 모아지고, 자신들의 정책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교육감 당선 이후 무상 급식, 학생 인권, 혁신 학교 등 중요한 교육 정책들을 내놓으셨고, 이렇게 내놓는 정책들은 곧바로 정치 쟁점이 되거나 전국적인 교육 쟁점이 되면서 우리 교육계와 사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제 설정 능력의 비결은 무엇인지요?
그런데 교육 복지 개선을 생각할 때 우리 교육 복지의 수준이 매우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디부터 시작하는 것이 교육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고 파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급식’을 일차 과제로 잡은 것입니다. 초중등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면서 이것을 징검다리로 해서 교육에 있어서 보편적 복지를 확보할 수 있는 주제로는 급식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학교 문화 혁신과 관련해서는 교육의 주체들이 서로 대립하고 불신하는 관계를 바꾸어 학교 가운데 평화가 흐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사는 교권을 보호받고, 학생은 인권을 보호받는 가운데서 가르침이 이루어지도록 해야겠죠. 그래서 학생 인권 조례와 교권 보호 헌장을 만드는 일에 착수한 것이지요. 이렇게 학교를 둘러싼 복지와 문화의 혁신이라는 바탕 위에서 수업 혁신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학교 혁신이 이루어지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교육 개혁 이슈를 찾아 나섰다기보다는 우리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깊게 성찰하고, 교육에 종사하는 주체들과 국민들이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망들과 소통한 결과 교육 혁신의 이슈들이 하나하나 나오게 된 것이죠.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감님의 여러 교육 개혁 정책들이 교육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를 드린 바와 같이 제가 교육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데부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무상 급식과 학생 인권 조례만 보면 수업 혁신이나 학교 혁신과는 조금 멀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1년 들어 교육 환경 개선과 관련하여 경기도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교무 업무 경감입니다. 실제로 일상적인 공문 축소 외에도 교무 업무 시스템 개편을 통해 교사들이 행정 업무를 전혀 하지 않고 수업과 생활 지도에만 전념하는 시범 학교들을 늘려 가고 있고, 2012년에는 모든 학교에 교무 행정 보조 요원을 1명 이상 다 배치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교무 업무 경감 조치가 확실히 자리를 잡으면 교사들이 행정 업무에서 해방되어 수업과 생활 지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 환경 개선이 수업 혁신이라는 교육 혁신의 본질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교육을 둘러싼 환경을 다 바꾼 후에 교육 본질의 개혁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2011년도만 해도 경기 교육 5대 혁신 과제를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수업 혁신이 한 항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이미 창의 지성 교육과 관련한 수업과 평가 모형을 제시했고, 서술형 평가도 꾸준히 늘려 가고 있습니다. 수업 연구회 활성화와 교사 연구년제의 내실 있는 실천도 수업 혁신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 연구회의 경우 400여 개가 내실 있는 활동을 하고 있고, 교사 연구년제의 경우 경기도가 다른 어떤 시도에 비해 양과 질적인 모든 면에서 탁월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결국 수업과 학교가 혁신되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스스로 전문가가 되고 학교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며 주체로 서 가야 하는데, 바로 이 교사 연구회와 교사 연구년제가 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교육 개혁 정책을 수행해 오면서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9년에는 경기도의회가 여러 차례 무상 급식 예산을 부결시켰고, 학생 인권 조례 관련한 학교 현장의 반발, 그리고 일부 학교장들의 태업과 교육 관료들이 해 온 오랜 관행과의 싸움 등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 오셨는지요?
하지만 이러한 내부적인 설득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교육계 내부의 논리에 매몰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교육 관련 연구자들 가운데 교육 행정 밖에 있는 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라 바빠도 일주일에 2~3시간은 확보하려고 했죠. 그래서 그 결과물을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교육 개혁의 정확한 방향을 잡으려고 노력했고, 한편으론 교육 행정의 내부 직원들과도 끊임없는 소통을 해 왔습니다.
경기도와 경기도의회, 교과부 등과의 관계 속에서는 대화와 설득이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단기적인 싸움의 승패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될 바른 방향의 큰 흐름 가운데 있는가 하는 부분을 늘 점검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에 서 있다면 결국 경기도민과 경기 교육 주체들의 지지 가운데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감님이 추구하는 큰 혁신의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세밀한 보완책이 없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흐름도 많습니다. 현재 생활 지도 상의 어려움이 학생 인권 조례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 인권 조례 후 교사들의 지도와 통제에 따르지 않는 아이들로 인한 어려움은 확실히 증가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장의 호소에 대해 교육감님은 얼마나 공감하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한 대안 마련과 관련해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백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체벌 위주의 생활 지도에서 대화와 상담, 학생 자치 활동 위주의 생활 지도로 바꾸는 과정이 어찌 쉽게 되겠습니까?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학교 현장의 생활 지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인권 교육, 체벌 대체 프로그램, 전문 상담 교사 확충 등 새로운 시스템을 계속해서 강구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할 계획입니다. 예컨대, 2012년도의 전문 상담 교사는 380명으로, 2011년 100명의 약 4배입니다. 이런 부분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국 학교마다 상황이 다르고, 각 학교의 상황은 선생님들이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학교별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학교별로 고민하고 대안을 만드는 가운데 교육청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제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나온 우리 교육정보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선생님들의 61.4%는 학생 인권 조례 이후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78.4%의 선생님들이 “학생 인권과 교권은 조화될 수 있다”고 하셨고, 83.9%는 “학생 인권 조례 적용으로 학생 지도의 어려움이 가중되었지만 학생 지도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답하였습니다. 이렇게 어려움 가운데서 학생 지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육청으로서도 이러한 선생님들의 상황과 마음을 잘 알고 여기에 화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과부와의 충돌 때문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압니다. 교과부와 교육청 사이에 적절한 권한과 책임의 경계선은 어디라고 보십니까? 그리고 교과부와 교육청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위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교육 자치의 경우 일반 지방 자치보다 조금 더 늦게 도입되었고, 교과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시도교육청의 권한마저도 보장해 주지 않고 보수적으로 해석하거나 역행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 교장 공모제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지난 2009년 10월 교과부는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15%로 축소시켰습니다. 2010년 11월에는 신설 학교가 공모제를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둘째, 조금 있으면 결과가 나오는데,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와 관련하여 교과부는 교육감에게 어떠한 재량권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교과부가 신경 쓰고 있고, 온통 ‘하지 말라’는 지침뿐입니다. 셋째, 최근의 자율형 사립고 관련 시행령 개정에서 교과부는 교육감의 입시 전형 승인권을 폐지하려고 합니다. 지난 6월에는 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취소 권한이 미덥지 못해서 그런지, 지정 취소할 때 교과부와 협의하도록 시행령을 바꾸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서명 교사를 징계하는 부분은 분명히 교육감의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교과부와 마찰 결과 법원 판결을 통해 교육감의 권한임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교과부는 세종시의 경우 교육감 직선제를 공동 등록제로 바꾸려고 하는 등 지방 교육 자치 자체를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과부가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하면 교육 자치가 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교육 개혁은 교육청의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현장 교사들의 개혁에의 동참 혹은 자발적인 혁신 노력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현장 교사들에게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교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부탁드리고 싶은 점은 많은 말씀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경기 교육은 매우 넓습니다. 교육감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학교 현장의 불합리한 부분이나 경기 교육 정책에서 아쉬운 지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터뷰 도중 앞으로 경기도 교육청이 계획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 물었더니, ‘영업비밀’이라는 농담으로 응답했다.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정책들이 이름만 미리 발표되어 논란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 교육의 핵심을 건드리는 개혁 정책들이 많이 준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가 말했듯이 교육의 외곽에서 시작해서 점점 더 핵심으로 접근하는 방식의 교육개혁 정책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시기에 드러날지 기대가 되었다. 김상곤 교육감의 당선으로 시작된 경기도 발 교육 혁신들이 학교 현장 가운데서 실효성 있는 변화의 열매들을 맺어 가고, 그 열매들이 전체 교육계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번져가길 간절히 소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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