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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모든 ‘만남’은 항상 의미가 있다 (2015.10)

남학생들과 대중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만남은 진정한 관계중심교육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목욕탕에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되더군요. 자신의 비밀이나 좋아하는 여자친구 이야기 등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목욕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등을 직접 밀어주는 거예요.

 

 

 

모든 만남은 항상 의미가 있다

수원 중앙기독중학교 김재현 선생님

 

 

 

_김정태, 사진_전형일

 

 

 

 

처음에 선생님을 봤을 때, 우선 그의 훤칠한 키가 눈에 띕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거구 앞에서 웬만한 남자들은 겸손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의 병약했던 어린시절, 건담 프라모델을 교실에 두고 외계인이라는 중딩들과 소통하며 사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거구의 사나이가 이토록 다정다감한 사람일 줄이야 하면서 놀라게 됩니다. 한때 로봇과학자가 꿈이었으나 지금은 그 꿈을 약간 변형시켜 기술교과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김재현 선생님, 그와의 좋은 만남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병약했던 아이

저는 어릴 적에 무척 허약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고열이 한 달 동안 계속되어 의사는 뇌와 장기가 상했을 것이니 혹시 나아도 정상적으로 살기가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특별한 치료가 없었는데 그냥 나았어요. 하지만 체질적으로 굉장히 약했어요. 제 손목이 너무 가늘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어머니께서 항상 가방을 들어주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병약한 몸으로 인해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고 학교에서 괴롭힘도 많이 받았어요. 중학교 때까지 공부도 정말 못했어요. 지금 제 키(185cm)를 보면 어릴 적 병약했다는 말을 잘 믿지 못하실 거예요. 집안 장손이 그리 약하게 났으니 부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이 저를 돌보느라 노심초사했어요. 그래서 녹용을 비롯한 보양식을 많이 먹이셨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제 건강함은 그 열매인 것이죠.

 

건담 프라모델과의 첫 번째 만남

병약한 몸 때문에 매사에 자신감이 많이 부족했던 제게 의미 있는 만남이 찾아왔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건담 프라모델을 선물 받았어요. 그냥 값비싼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조립하는 순간, 그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놀라운 기계공학의 세계로 저를 인도해낸 작품(?)이었어요. 부품을 조립하며 제품의 정교함에 감동을 느꼈어요. 이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만들 때마다 느껴지는 그 손맛이 너무 좋았고 지금도 그래요. 그러면서 장래에 로봇을 제작하는 과학자의 꿈을 키웠어요. 자연스럽게 공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지금도 교실 안 제 책상 옆에는 건담 모델이 있어요. 반 학생들이 제 건담을 보고 저게 뭐예요?’ 하면서 먼저 말을 걸어요. 건담은 교사인 저와 학생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의 역할을 하는 거죠. 어떤 아이들은 주말에 건담, 레고 같은 프라모델을 사면 제게 찾아와서 한참의 대화를 하죠. 특별히 남자아이들과의 접촉점으로 축구 같은 운동과 함께 이런 프라모델들이 잘 먹히는 것 같아요.

 

하나님과 생명의 만남

건담 이후 두 번째 의미 있는 만남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예요.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으셨어요. 젊은 나이에 걸린 암이었지만 너무 심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알게 되어 손을 쓸 수 없었죠. 어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신 다음 우리 자식들을 위해 아버지의 재혼까지 준비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우리 가족이 모두 주변분들의 도움으로 교회(성덕중앙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어요. 하나님은 저희 어머니의 병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셨어요. 의학적으로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의 놀라운 회복속도로 위암 말기에서 완전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어머니는 투병 당시 성경 전체 필사를 두 번 완료하시고 믿음의 세계에 푹 빠지셨었어요.

그리고 온 가족이 하나님을 깊이 있게 만나는 경험을 했어요. 어릴 적이라서 저는 생각이 많이 안 나지만 어머니는 항상 성경을 읽거나 쓰셨고 그때마다 저와 제 동생은 성경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토목공학과의 잘못된 만남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급격한 사춘기 성장을 경험했어요. 그토록 연약하고 야윈 어린아이가 한 달에 10cm 이상씩 성장하면서 골격도 커지고 얼굴도 변하고 동시에 자신감도 생기고 공부도 조금씩 잘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이 바닥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뒤늦게 인수분해를 터득하고 수학 실력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수포자였던 제가 공대를 가고자 준비하게 되었지요. 건담과의 만남 이후 갖게 된 기계공학자에 대한 꿈만 가지고 준비했어요.

그런데 건설교통부 공무원이신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토목공학과로 방향을 바꿀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사실 저희 할아버지는 1970년대 중동지방에서 우리나라 건설기술을 자랑하던 현대건설의 역군이셨습니다. 그 당시 사막 한 가운데 석유를 수출할 수 있도록 도로건설을 했던 것에 자부심을 가진 기술인이셨지요. 그런 집안 내력을 두고 아버지는 기계공학보다 토목공학을 권하셨지요. 무엇보다 아버지의 제안을 거부할 정도 더 강력한 동기가 제 안에 없었기에 로봇과학자의 꿈을 제쳐두고 토목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권유에 의해 전공을 선택한 다른 학생들과 같이 토목공학과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과 같은 참 어색한 조합이었습니다. 특히 거의 매일 술 마시고 당구치는 공대문화가 제게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공 아닌 다른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키웠어요. 특히 연극, 사진 같은 것이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최근 다중지능검사에서 저는 논리수학지능이 가장 낮은 영역이었어요. 그동안 저는 기계적으로 수학을 풀었을 뿐, 수학적인 머리는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반대로 저에게는 언어지능과 공간감각지능이 가장 높은 영역으로 나왔어요. 그 결과를 보며 지금 교사가 된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기술교사가 된 것은 나의 강점지능을 가장 잘 살린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길과 만남

대학 휴학을 하면서 대학로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배웠고 연극영화과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고요. 영상촬영에 관심을 가지고 VJ활동도 하였어요. DSLR을 통해 사진을 배우면서 온라인상에서 유명한 블로거가 되기도 했고 취업 시즌에는 외식, 유통업에 기웃대면서 취업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전공을 따라서 원치 않았던 토목설계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어요. 회사에서 주로 하던 일은 터널, 지하철 등을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공대 문화의 연장선과도 같은 회사 분위기가 역시나 저와 맞지 않더군요.

대학생 때도 그랬지만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 날씨가 좋으면 거의 무조건 수업을 빼먹고 학교 근처 공원으로 꽃 사진을 찍으러 갔어요. 그런 저였으니 조직적이고 위계적인 설계회사 생활이 불편했지요. 거의 매일 지속되는 야근과 주말근무 등을 생각하면 참 싫었던 기억이 나요. 요즘도 가끔 옛날 회사동기들과 연락해요. 지금 부장급인 그들은 거의 제 연봉의 두 배를 받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저는 다시 거기로 가고 싶지 않아요. 특히 야근이 너무 싫었어요. 물론 지금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업무로 야근을 종종해요. 하지만 가르치는 일의 야근은 기쁨으로 하게 되더라구요.

 

평강공주와 사랑의 만남

직장생활 3년 차 때, 여자 친구가 생겼어요. 당시 제가 교회 청년부 회장이었는데 사촌 누나의 교회와 연합 행사가 있어서 그쪽 교회에 방문했죠. 그때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는 아가씨가 눈에 띄었어요. 참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촌 누나의 옆구리를 찔러 소개를 받았고 대화가 잘 통해 사귀게 되었어요.

당시 제 여자 친구는 고등학교 기간제 국어교사였어요. 주말이면 데이트를 즐겼는데 이상한 것은 항상 학교 아이들과 함께 데이트 장소에 나타나는 겁니다. ‘나는 주말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의 데이트보다 저 학생들과의 만남이 더 중요한가?’ 라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학생들은 참새같이 쫑알대면서 자기 선생님의 남자친구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배를 채워줄 물주와 같이 대했어요. 저는 그 귀한 데이트 시간과 데이트 자금을 아이들과 함께 먹는 떡볶이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 여자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의 필요를 보고 있는 여자친구의 시선을 알 수 있었어요. 학업이 힘든 아이, 하나님이 필요한 아이, 부모와 관계가 힘든 아이. 모두가 손길이 필요하고 만짐이 필요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대화하고 교제하는 여자 친구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는데 그때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했어요. 병든 자와 함께하고 소외받은 자와 함께하는 예수님의 사랑. 그런 사랑이 제 여자친구에게 있었지요.

사실 저는 불행하게도 학창시절 동안 본이 되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 저에게 여자 친구의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세상에 이런 교사가 있다니!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여자 친구가 오늘 저의 아내가 되어있습니다.

 

중앙기독중학교와의 놀라운 만남

데이트하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여자 친구를 따라 온 학생들과 대화하던 내 모습을 지켜본 여자 친구는 문득 제게 교사를 해보라고 제안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내의 평소 모습은 그렇게 주도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아주 가끔씩 강력하게 권면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정말 그 권면에 힘이 느껴져요. 교사를 해보라는 아내의 제안은 딱 그런 권면이었어요.

때마침 한양대학교 네비게이토선교회에서 형제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던 때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때 나이 29세, 결혼을 앞두고 진로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약속을 확신하면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처럼 제가 그렇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아내도 기간제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고 저는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교육대학원을 다니던 시점이라 만약 가정을 꾸리면 두 사람 다 직장 없이 살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도 있었죠.

바로 그 시점에 수원 중앙기독중학교가 개교하면서 교사초빙을 하였고 아내가 지원했어요. 심층면접과 시범강의 등 5시간 가량의 임용심사시간 동안에 저는 아내를 학교에 보내고 중앙기독중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기도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아 333)

며칠 뒤 아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중앙기독중 국어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고 비밀한 일은 아내의 합격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 이어 1년 뒤에는 제가 임용되는 더 크고 비밀한 일이 생겼습니다.

 

TCF와의 탁월한 만남

그렇게 중앙기독중학교에서 기독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자마자 박은철, 전형일, 이원철 선생님 등의 TCF 선배들과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TCFer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박은철 선생님(전 중앙기독중학교 교장, TCF 대표)이 잠깐 와보라고 했던 교실에서 TCF 수원 모임을 하고 있었고 영문도 모른 채 매주 그 모임을 나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지시였으니 거절할 수도 없었죠. 하지만 그 만남은 탁월한 만남이었고 지금까지 그 만남을 유지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립학교인 중앙기독중학교라는 한 학교의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인데 다른 여러 학교의 선생님들과 만나면서 우리 학교와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교에서의 선생님들의 삶을 경험하고 간접적으로 배우면서 나름의 시야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맛있는 만남, 뜨거운 만남, 재밌는 만남

중앙기독중학교의 7가지 교육 원칙 중에 ‘Interest before information’ 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심(관계)가 관건이라는 이 말은 우리 학교의 관계중심교육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관계하지 않는 교육은 바른 교육을 할 수 없게 하며 함께 관계하여야만 삶으로 가르치고, 삶으로 배우는 것만이 남는다는 중심을 잘 잡고 가게 해줍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 14명의 담임교사입니다. 학교 운영의 모든 부분에 관계라는 키워드를 적용하다보니 수업에서 아이들도 행복해하고 학부모와 만남도 행복하며 신뢰가 넘치며 교사로서 힘을 많이 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저는 모둠별로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을 갑니다. 남학생들과 대중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만남은 진정한 관계중심교육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탈의실에서 교사로서의 권위 따위를 모두 벗어버렸을 때의 자유함을 통해서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지며 관계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특히 목욕탕에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되더군요. 자신의 비밀이나 좋아하는 여자 친구 이야기 등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목욕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등을 직접 밀어주는 거예요. 어쩔 때는 세족식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저는 목욕탕에서의 만남을 뜨거운 만남이라고 불러요.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즐겨하셨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을 자주 합니다. 고기뷔페를 가기도 하고 팥빙수를 먹으러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같이 급식을 먹습니다. 저는 이 만남을 맛있는 만남이라고 부릅니다.

같이 잠도 자봐야겠지요? 아이들과 엠티를 가거나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일도 합니다. 저는 이 만남을 재밌는 만남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다양한 만남 활동은 남녀 혼성의 30명 가까이의 학급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한다하더라도 힘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동성 14명 학급에서는 그냥 삶과 같이 있는 일입니다. 그냥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의 합의가 되어야 하는 일인데 같은 학교 교사인 아내는 저보다 더 이런 일을 갈망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이 우리 부부의 동일한 목표이고 관심입니다. 같이 체험학습을 간다던가, 집에 데려와서 하룻밤 자는 것은 한 번의 체험이지 생활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과 생활해보는 것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산촌유학을 가서 아이들을 모아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기숙형태의 대안학교를 보면 가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습니다.

 

몇 년 전 학생들과 함께 수영체험학습을 갔던 날이 생각납니다. 실내수영장이라 수영복 착용을 해야만 했던 순간을 두고 속살을 보여야 하는 민망함에 여러 핑계를 대며 피하려 했었죠. 그런데 오늘 김재현 선생님의 목욕탕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과의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면 내가 먼저 열고 다가가야 함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이제는 만남을 넘어 삶을 공유하는 꿈을 꾸시는 선생님, 그 꿈이 장차 어떤 열매로 나타날지요? 무척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