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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배는 바다를 떠나서 살 수 없다(2015.5)

제가 올해 응답받은 말씀인데 배는 바다를 떠나서 살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교사는 학교와 학생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파도 학생들의 아픔을 부여잡고 함께 울며, 고통스러워 벗어나고 싶어도 학교 안에서 머물러 있을 때 그 사명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끝까지 버티고 오래 오래 학교현장에 머물러 있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주님 오실 날까지!

 

 

 

배는 바다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대전 탄방중학교 구종희 선생님

 

 

 

 

 

 

글 - 손현탁 

 

 

 

임용고시 합격은 보통 몇 번의 도전 끝에 이뤄질까요? 이 질문에 나만큼 도전한 사람은 없을걸!‘ 하는 분이 여기 계시네요. 게다가 제비뽑기로 단체의 대표가 되었다니?! 이런 과정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섭리는 이런 것이라고 삶으로 이야기하는 구종희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학습부진을 극복하며 성장한 유년기

경북 봉화군의 작은 산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41녀 중 4남으로 태어나 형제들과 우애가 돈독했습니다. 아버지는 산으로 강으로 자연을 벗 삼아 놀러 다니길 좋아하셔서 많이 따라다니며 개구리도 잡고, 토끼도 잡으며 즐거운 유년생활을 보냈습니다. 집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사일도 많이 했습니다. 소도 키우고, 꼴도 베고, 땔감용 나무를 하고, 고추, 배추 등도 심고 따고... 요즘 이런 농촌체험활동을 돈 주고 하는데 지나고 보니 땀 흘리는 보람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공부를 잘 못해서 나머지공부를 할 정도였는데 담임 선생님과 셋째 형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부터는 공부를 곧잘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선생님들께 혼도 많이 나고 벌도 많이 받았지만, 친구들 집에도 자주 놀러 다니며 자유롭게 생활하는 편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많이 믿어주시는 편이라 책임감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범생으로 전교회장이나 반장도 여러 번 하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여러 선생님들이 떠오르는데 특별히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머지공부를 시켜주셨던 박병환 선생님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교감 발령 나시기 전에 1학년을 맡으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공부를 가르쳐 주셔서 학습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노력으로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제일 고맙고 감사한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아주신 박진 선생님은 집까지 차도 태워주시고 가정방문도 해주시고 참 고마우신 은사님이십니다. 서른 살 기념으로 동창회를 할 때는 선생님을 모셔서 다 같이 저녁도 먹고 사은회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의 일이 되었네요.

 

우연한 계기? 하나님의 인도하심!

대학생활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며 고학생처럼 생활했습니다. 신문배달을 비롯해서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다 해본 것 같아요. 신앙이 없던 시절, 과돌 이와 과대표도 해보고 자취방 친구들과 어울려 보통 대학생처럼 세상문화에 젖어 살았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교 때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야학 교사를 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교직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야학에서는 제도권에서 이탈한 학생들, 직장인이어서 퇴근하고 오신 분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가르치며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학활동이 쉽진 않았지만 그분들이 배우시는 태도나 열정을 통해 오히려 제가 배우는 부분도 있었고, 학생들이 야학의 도움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교사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신앙과 관련 없는 삶을 살다가 대학생이 되었으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읽어보자4차원적인(?) 생각으로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1절이 믿겨지지 않는 상태에서 각종 선교회 활동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서 이내 선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비록 선교회는 그만두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임용고시를 무려 5번이나 떨어지게 되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겸손한 마음, 하나님께 항복하는 마음으로 노량진 근처에 있던 교회에 출석하며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출석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7수를 해서야 임용고시에 합격했습니다. 7수를 하는 동안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강한 제 자아를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달았고, ‘수렁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있다 보니 지금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실패를 아는 선생님이라고 얘기하며 학생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상담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소중한 공동체를 만나다

7수만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부푼 꿈을 안고 학교현장에 나아갔는데 교육현장 가운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처음 발령 난 학교가 크지 않은 편이라 보통 3명이 나눠서 해야 할 일을 1명이 해야 할 정도로 업무는 많고 보람은 없고.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에다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수업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서 출근할 때마다 악마의 소굴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기도하지 않으면 도저히 출근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가운데 동료교사의 소개로 대전지역 연합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많은 기독교사들과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는 가운사명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참석한 기도회가 계기가 되어 대전기독교사모임, 현재 대전행복교육실천운동(행복교실)에 연결되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업무에, 교회에서 맡은 일도 많아 시간이 날 때만 참석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처음 참석한 2010기독교사대회와 2013년에 목자로 세워진 것이 계기가 되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모임도 참여하며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기도모임 같은 경우에 박윤환 선생님을 비롯해 학원복음화 사역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통해 좀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개인적으로 점심시간에 반 학생들을 몇 명 모아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주변 교회로 인도하는 식이었다면, 현재는 교회의 지원을 받아 아침에 큐티모임을 진행하고 금요일 점심시간에는 40여 명이 모여서 찬양예배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만들고 주변의 지원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합니다. 올해에는 제가 학생부장을 맡게 되어 학생들을 100여 명 정도 선발해서 학교폭력 예방도우미, 일명 행복지킴이들로 임명하고 학생동아리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전성시화운동본부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디프리핑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복음적인 메시지도 나누고 저희 학교 학생 전체에게 선한 영향력이 확산되기를 기도하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전 행복교육실천운동은 연말에 제비뽑기를 통해 다음 해 대표를 정하고 있는데, 작년과 올해 연속해서 대표로 뽑혀 선생님들을 섬기는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대표가 되어 작은 모임들을 좀 더 활성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저희 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전문성 모임(행복한수업만들기, 학원복음화모임, 교육정책연구모임, 기독교사아카데미, 인도선교 등)과 단체에서 이뤄지는 각종 행사들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였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간을 사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권리포기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번 아웃되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내 시간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니 오히려 마음에 자유함과 평안함도 생겨 더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내 힘과 내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혼! 행복을 그리다.

아내와는 교회 봉사활동에서 만나서 9개월 정도 교제하고 결혼하였습니다. 주님이 제게 허락하신 최고의 배우자라고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내도 그렇게 말할 런지는 모르겠네요.

교회와 학교, 행복교실 사역으로 늦게 귀가하는 일이 많은데 불평 없이 세 자녀를 홀로 열심히 돌보는 아내를 보면 마음이 짠해 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내가 청년 때에 사역 열심히 하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는데, 그 기도를 늦게나마 들어 주신 것 같아요. 가끔씩 저는 왜 그런 기도를 했냐고 투정을 부려 보기도 합니다. 결혼 후 믿지 않던 장인, 장모님도 모두 전도하였고, 여동생도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저 혼자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번 명절에는 세어보니 신자와 불신자의 비율이 7 : 7로 비슷한 세를 형성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점점 더 가족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께 더욱 감사드릴 뿐입니다.

바쁜 여러 가지 일 가운데에도 세 딸과 아내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참 감사한 믿음의 한 가족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 복되고 귀한 가정과 자녀를 허락하여 주신 주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배는 바다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제가 경험하였던 것처럼 학교 현장에서 혼자서 사투를 벌이시는 기독교사 분들에게 당신들의 든든한 동역자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과 함께 할 때에 힘들이지 않고 더 큰 꿈과 비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제 학교와 교실 현장에서 교사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모든 일들이 너무나 벅차고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사라는 구별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학교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 삶은 너무나 고달프고 힘들지요. 그래서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핵심 가치는 바로 복음”, “공동체”, “회복”, “헌신(섬김)”입니다. 즉 상처받고 낙심한 교사들이 복음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통해 강하여지고 치유되고 회복되어 다시금 학교 현장을 살려내는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아 낼 수 있도록 학원 선교사로 재파송하는 것이죠.

이것을 위해 올해 행복교실에서는 영성모임인 8개의 소그룹 목장과 전문성모임인 7개의 사역팀 체제를 운영합니다. 공동체에 속한 모든 선생님들이 소그룹 목장 공동체를 통해 영성을 키우고 전문성모임을 통해 기독교사다운 전문성을 더욱 신장시켜, 대전과 이 땅의 모든 학교의 학생과 교사가 함께 행복해지도록 변화시켜나가는 것. 그것이 저희 공동체의 비전이며 소망입니다. 올해 처음 시작되는 소그룹 목장 예배를 통해 많은 기독교사들을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길 바라며 목자들과 목원들 모두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올해 응답받은 말씀인데 배는 바다를 떠나서 살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교사는 학교와 학생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지요. 아파도 학생들의 아픔을 부여잡고 함께 울며, 고통스러워 벗어나고 싶어도 학교 안에서 머물러 있을 때 그 사명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끝까지 버티고 오래 오래 학교현장에 머물러 있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주님 오실 날까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야곱과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 외삼촌 밑에서 7년간 2번 고생하였던 야곱, 그리고 온갖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며 역경을 견뎌내어 가족과 민족을 섬겼던 요셉.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위치에서 순종함으로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는 구종희 선생님의 삶이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것을 느낍니다. 선생님의 삶을 응원하며 기대합니다. 그리고 구종희 선생님처럼 이 땅 구석구석에서 살아가고 계신 모든 기독교사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