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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핀란드 교육의 속살5 : 우리에게 핀란드 교육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핀란드 교육은 무엇인가?

   
핀란드, 두 번째 가 보니

 

이번 탐방단에 함께했던 35명의 선생님들

2009년 1월 안승문 선생님이 중심이 되었던 스웨덴과 핀란드 학교 탐방 팀에 동행했었다. 이 때 핀란드 학교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교육하는 곳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압도되어 감탄을 연발했었다.(이때 내용들은 살림터 출판사가 발행한『핀란드 교육혁명』으로 정리되어 있다.) 국가가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을 책임지는 체제, 모든 아이들이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완전히 도달하도록 하는 보완 교육 시스템,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따라 인문계와 직업 학교로 나누어지되, 대학과 같은 무학년 학점제로 진행되는 인문계와 최첨단 시설의 매우 실제적인 직업 교육 과정, 교사를 신뢰하고 완벽한 자율권을 주지만 관료제로 흐르지 않는 교직 문화 등 모든 것이 감동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실내에 모래 놀이를 설치해 준다. 모래 놀이를 하고 있는 유치원 아이들




 핀란드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장면. 핀란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삼고 있으며, 영어는 제2외국어이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2011년 1월 10일부터 21일까지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과 함께 두 번째로 핀란드 학교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2년 전 방문 때 방문했던 학교와는 전혀 겹치지 않는 새로운 학교들을 방문했다.(2년 전 봤던 학교들이 핀란드 교육 당국에서 보여 주고 싶어 하는, 핀란드 교육을 대표할 수 있는 학교였다면, 이번에 방문했던 학교들은 평균적인 핀란드 교육을 보여 주는 학교들이었다.)그런데도 기본적인 핀란드 학교 체계는 그대로 작동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건물과 학교의 교육 시스템 중심으로 관찰했던 지난 방문과는 달리 이번 방문에서는 구체적인 수업 장면과 아이들의 학교생활 모습을 비교적 오랜 시간 상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교장 선생님이 아닌 교사들이나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첫 번째 방문 때와 같은 감동은 없었지만, 대신 핀란드 교육의 실체에 조금 더 접근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 핀란드 교육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래 봤자 두 번의 방문을 합해서 8~9일 정도에 10여 개의 학교를 둘러본 것에 불과하고, 이것을 가지고 핀란드 교육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기회를 가진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때, 최소한 이 두 번의 방문 기회를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을 정리해서 나누고자 한다.


 우리가 방문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음악 수업 장면.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합창으로 노래 2곡을 불러 주었다.




 같은 인문계 고등학교의 수학 수업 장면. 학교의 교육 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성이 많아서 수학의 경우 국가 수준의 교육 과정보다 훨씬 많은 시수를 배정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핀란드 사회 가운데서 교육을 보아야 한다.

첫째, 핀란드 교육을 보기 전에 핀란드 사회, 나아가 핀란드 사회와 비슷한 체제를 가진 북유럽 국가 전체(넓게는 중서부 유럽까지 포함할 수도 있다)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 관계없이 교육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한 부분이고 소산이다.

북유럽 나라들의 특징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치적으로 사회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즉, 국민들이 높은 세금을 부담하고, 국가는 교육과 의료, 노후 연금, 실업 등의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렇게 많은 세금을 집행하는 국가와 지자체는 매우 투명하고 효율적이어서 국민들의 신뢰가 매우 높다. 국가뿐 아니라 시민들도 매우 정직하다. 직업 간 임금 격차가 높지 않고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다. 국민들은 풍요롭지는 않지만 소박한 삶을 즐기고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수입이 많지 않아도 국가의 복지 정책을 지지한다.

이러한 사회 체제 가운데 교육은 복지의 한 부분이다. 당연히 거창하지가 않다. 국가를 책임져야 할 인재를 양성하거나 인격을 도야하고 완성하겠다는 구호를 걸지 않는다. 그리고 경쟁이 심하지가 않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따라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나가도록 돕는다. 굳이 10대가 아니라도 언제든지 배울 수 있고, 공부에 사생결단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 감사하고 자신이 자라서 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핀란드뿐 아니라 북유럽 전체를 보아야 한다.

 


 전문계 학교의 조리학과 학생들. 조리학과 학생들이 실습의 일환으로 직접 학교 급식을 운영하고 있었다.



                                                     

미용학과 학생들은 지역 주민에게 실습실을 개방하고 있었으며, 이 학교 교장 선생님도 이 곳에서 머리를 손질한다고….






 중학교 미술 수업 모습. 수업에 필요한 모든 미술 교구와 재료들이 구비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수업에 대한 보완 학습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실제 작은 교실에서 4~5명 정도의 아이들이 보완 교육을 받고 있었다.

둘째, 핀란드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핀란드 교육을 하나의 독특한 교육 체제로 보기보다는 북유럽 국가들(더 넓게는 중서부 유럽까지 포함)의 전체적인 교육 체제를 함께 보면서 그 가운데 하나로서 핀란드 교육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 체제는 거의 비슷하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무상 교육,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묶은 9학년 기초 체제, 고등학교 단계에서 인문계와 직업 교육, 낮은 대학 진학률, 평생 교육 체제 등. 이렇게 북유럽 국가들이 비슷한 교육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각 나라가 추구하는 교육 이념이나 강조점 등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내가 직접 방문해 본 스웨덴과 덴마크만 하더라도 그 나라만의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민주주의를 교육의 이념으로 매우 강조한다. 그래서 이러한 민주주의를 훈련하기 위해서 수업에 있어서도 하나의 과제를 여러 명이 협력해서 완수하는 식의 프로젝트 수업을 많이 하고, 고등학교 단계에서도 인문계와 직업 학교를 나누지 않고 한 학교 내 인문 과정과 2~3개의 직업 과정을 같이 담고 있다. 그래야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민주주의가 증진된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경우 자유와 다양성을 매우 존중한다. 그래서 기존 공교육 체제 외 ‘자유 학교’라는 대안 학교 체제에 대해서도 국가가 상당 부분의 재정을 지원한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애프터 스쿨(After School)’이,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에 ‘포크 스쿨(Folk High School)’이 있어 희망하는 아이들이 다른 교육을 받으면서 자아와 소질과 적성을 찾아가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핀란드가 PISA 평가에서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핀란드 교육을 주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핀란드 교육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교육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PISA 평가가 문제 해결력 중심의 뛰어난 평가이기는 하지만 교육에는 평가가 담을 수 없는 많은 요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짧은 탐방 기간에 느낀 것은 스웨덴 교육이나 덴마크 교육도 핀란드 교육에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다. 덴마크 교육의 경우 교육의 본질이라는 면에서는 핀란드 교육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핀란드 교육을 보되,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나라 교육들과 함께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핀란드 교육도 더 선명하게 보이고,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더 풍성한 시사점과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


핀란드는 학교 도서관보다는 지역


사회 도서관이 더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하루 천 명 정도 이용하며


학생 1명당 책 40권을 한 달간 대여할 수 있다.

핀란드 교육의 장점을 주목하자.

셋째, 핀란드 교육이 가진 독특한 장점은 장점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북유럽 복지 국가의 토양 내에서도 핀란드만이 가진 장점이라면, ‘교사에 대한 높은 사회적 대우와 신뢰, 그리고 우수한 교사의 자질’, ‘초ㆍ중학교 차원에서 대부분의 학생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보완 교육 체제’, ‘대학 수준의 인문고 체제와 직업 현장과 밀접하게 연계된 질 높은 직업 교육 체제’ 등이다. 이렇게 같은 북유럽 국가 가운데서도 핀란드 교육이 이러한 독특한 장점을 갖게 된 것은 같은 체제 내에서도 그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들이 변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교육 개혁은 사회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민은 다시 이러한 핀란드 교육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교육 개혁은 사회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이 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한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즉, 직업 간 임금 격차가 적고, 높은 세금과 복지로 인해 개인의 삶이 평등한 상황이다 보니 교육에서의 경쟁이 거의 없다 할 정도로 낮은 상황이 되고, 교육이 굳이 사회의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가 없이 교육 본연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직업 간 임금 격차를 낮추고 복지 향상을 통해 사회를 좀 더 평등하게 만들어 가는 일은 교육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 우리 교육을 바꾸기 위해 매우 중요하고 실제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교육 정상화를 위한 사회 개혁과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우리 사회를 좀 더 투명하고 정직하게 만들어 가는 일이다. 북유럽 사회의 높은 복지가 가능한 것은 높은 세금을 받아 복지를 집행하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전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신뢰는 국가와 공직 사회의 투명성과 효율성의 결과다. 이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시와 감독의 비용이 들지 않고 매우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핀란드는 학교 인근에 청소년 센터가 있어

방과 후에 학생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청소년 센터에서는 상담 교실과 흡연, 음

주, 약물, 예방 교육과 성 교육도 지원해 주

고 있다.

둘째, 이렇게 우리 사회가 좀 더 평등하고 정직하게 나아가도록 하는 노력과 함께 실제로 우리 사회가 처해 있고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평등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와 이를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실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일부 안정된 일자리를 향한 더 극심한 경쟁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교육계 내에서 더 극심한 경쟁 교육과 이로 인한 아이들 인성의 황폐화, 저소득 계층 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부터 낙오되고 방치됨으로 인한 문제를 앓고 있다.

우리가 교육에 대한 여러 이상을 품을 수 있지만 어차피 출발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굳게 발을 디딘 상태에서 해야 한다. 과도한 경쟁, 불신의 구조, 교육 양극화 등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해 가는 부분에 교육 운동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과도한 경쟁을 줄이기 위해 대학 입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만이라도 경쟁을 줄이고 교육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 불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교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정직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운동을 펼쳐 가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 양극화 문제 해소를 위해 학교가 돌봄의 기능을 강화하고 가정과 지역 사회와 연계된 종합적인 복지 대책을 마련해 가야 한다.


교사가 교육 전문가로 서 가도록 하는 것이 교사 운동의 핵심이다.

셋째, 교사 운동 차원에서는 교사가 가르치고 아이들을 돌보는 전문가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성을 더욱 연마해 가서 아이들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운동과 아울러 교사들이 본연의 전문성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건과 싸워 가는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여러 다른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한국의 경우 우수한 인재들이 교사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 교육의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수한 교사 자원들이 교사 양성 과정이나 임용 과정에서 전문성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교직에 들어온 이후에는 주어진 교과서를 충실히 가르치고 객관식 평가를 하는 데 안주하게 되고, 수업 전문성보다 공문 처리와 사업 진행 전문가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 교육이 처한 여러 여건이 교사들이 교육 전문가로서 제대로 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교사들 스스로 부정적인 여건과 싸워 가며 교육 전문가로 서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교사들이 최소한 지금 주어진 권한의 한계 내에서라도 교과서를 넘어 교육 과정의 본질에 맞게 수업을 재구성해 나가고, 수행 평가와 서술형 평가의 틀을 활용해 창의적인 평가를 해 나가며, 어려운 아이들의 삶을 돌보는 부분에서 학부모와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학부모들과 대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갈 때 우리 교육을 덮고 있는 수많은 비교육적 본질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실천 운동이 교사들이 교사로서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는 각종 잡무를 없애고, 학교를 누르고 있는 교과부와 교육청의 관료적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일과 함께 가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