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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5. 제 언 : 대학 체제 개혁 논의의 걸림돌과 과제


대학 체제 개혁 논의의 걸림돌과 과제

  

좋은교사운동 정책 위원회

앞에서 제시된 세 가지 대학 체제 개혁안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고민의 지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은 대학 체제 개혁을 포함해 우리 교육 전체가 고민하고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할 부분이다.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적정 학력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우선 전체 국민들이 필수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교육을 받아야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그 적정 학력을 위한 교육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이 고민은 현재 전 국민의 83% 정도가 대학에 진학하는 현 체계가 과연 바람직하고 앞으로도 지속해야 될 체계인가 하는 반성도 포함하고 있다. 국립교양대학 안은 국립교양대학 진학 과정에서 최소한의 수학 능력을 검증한다고는 되어 있지만 희망하는 모든 사람이 국립교양대학과 일반 대학에 진학하는 현 체제를 용인하고 있다. 이는 국립대통합네트워크 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알다시피 북유럽 국가들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모든 국민들이 이수해야 할 필수적인 과정으로 상정하고 있다. 고등학교 이후 대학 과정도 국가가 무상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중학교 졸업 이후 직업학교에 진학해 취업을 하도록 하고 절반 이하의 아이들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그중에서 더 적은 숫자가 대학에 진학한다. 이렇게 해서 필요 이상의 과도한 교육으로 인한 국가적 개인적 비용을 줄이고 있다. 대신 평생 교육 체제를 잘 정비해서 언제 어디서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대학에 대한 투자 못지않게 고등학교 단계에서의 직업 교육의 내실화 및 그들의 취업 지원 체계, 취업 후 차별 해소, 그리고 평생 교육 체제 확립 등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그래야 공부에 대한 흥미 없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고, 국가 교육 예산 사용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업 영역으로 진출이 가능한 영역을 많이 확대해서 할 수 있다면 전문 대학원이나 석ㆍ박사 진학 인원을 축소 및 정예화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최근 유럽을 포함한 각국에서 대학 진학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며, 이전에 비해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양과 정보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에 높은 대학 진학률은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 진학률을 억지로 낮추기 어려운 우리의 사회 문화적인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왕 현재의 대학 체제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대학 체제의 틀을 짠다고 할 때, 과연 바람직한 대학 진학률을 어느 선에 맞추느냐 하는 것을 깊이 고민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 대학 진학률의 문제는 교육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의 효율적인 분배 문제, 대학 교육의 성격 문제, 고등학교 교육의 성격 문제, 직업 교육의 문제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 병목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두 번째 고민은 상급 학교 진학과 관련하여 병목을 어디에 둘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둘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이 병목을 분산시키고 넓힐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상급 학교 진학과 관련된 병목을 중입에서 고입, 대입까지 옮겨 온 상태다. 그리고 이 병목과 가까이 있는 학령기일수록 파행적인 입시 교육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대통합네트워크 안이나 국립교양대학 안은 대입 과정에 있는 이 병목을 2년(국립대통합네트워크 안에서는 대학에서 2년 교양 과정 후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 국립교양대학 안에서는 국립교양대학에서 일반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에 경쟁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혹은 그 이후로(전문 대학원 진학 과정) 옮기겠다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경쟁은 현 대학 입시와 같은 객관화된 시험에 근거한 성적에 의한 한 줄 세우기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쟁의 병목을 경험하는 시기를 이 경쟁을 감당할 만한 좀 더 늦은 나이로 늦추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리고 대학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에 대한 평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것은 현 교과서 내용 암기 중심의 한 줄 세우기 경쟁보다는 의미 있는 경쟁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대학 시기에 현 대입과 같은 병목이 집중될 경우 대학 교육에 객관성과 선명한 한 줄 세우기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 교육의 왜곡을 가져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도 많은 대학 교육은 취업 교육화되고 있고, 대학생들이 받는 사교육은 초중고등학생 그 어느 시기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이 병목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교육에 씌운 무거운 덫이다. 그리고 우리 교육은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신음하면서 동시에 이것이 자신의 무기인 양 휘둘러 왔던 부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대학 체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현재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이 병목을 고용과 복지, 조세 문제 등과 연관시켜 어떤 방법으로 풀어 갈 것인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고졸과 대졸 간의 과도한 임금 격차 문제를 해소하고, 고교 단계에서 직업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 대한 취업 기회 확대, 생애 어느 순간이든 손쉽게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 교육 체제, 생애 위기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체제 확립 등의 문제가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사립 대학, 어떻게 할 것인가?

세 번째 문제는 사립 대학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고등 교육을 사립 대학에 맡겨 버렸다. 그러다 보니 사립 대학이 대학 교육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다양한 형태로 사립 대학에도 국가의 재정 지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사립 대학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 안이나 국립교양대학 안 모두 마찬가지로 사립 대학에 대한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매개로 사립 대학을 국가가 원하는 체제 개편의 틀로 이끌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수단은 구조 조정의 벼랑 끝에 선 대학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대학 개혁과 관련해 국가가 대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책적 수단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물론 혁명적 상황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겠지만, 일상적인 5년 정권이 국민의 뜻을 모아 법률이 허용하는 한계 내의 권한을 활용해 대학 체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면, 실제 가능한 정책 수단에 대한 명확한 파악과 그 수단으로 가능한 개혁 범위와 방법들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비용 대비 개혁 효과에 대한 치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네 번째 대학 체제 개혁의 비용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학 체제 개혁안은 대학에 대한 엄청난 투자를 요구한다. 물리적인 투자 외에도 현 체제 관련 이해 당사자 혹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들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물리적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서 현재 우리 대학 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들이 극복이 되고, 나아가 대학 체제의 모순으로 인해 신음하던 초중등 교육이나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고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아무리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 체제 개혁이 실제로 우리 교육의 개혁과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아픔을 덜어 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각 대학 체제 개혁안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전망들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그 전망들을 대비하기 위해 개혁안을 세밀하게 보완해 가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대학 체제 개혁 문제는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서 논의된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완벽한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 자체로 완벽한 정답이라 하더라도 대학 체제 개혁은 거대한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어떻게 합의해서 수용하고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것과 맞물려 있는 문제다. 그러기 때문에 대학 체제 개혁에 대한 논의는 어떤 하나의 안을 불변의 당론으로 붙들기보다는 현재 있는 안을 포함해서 여러 다양한 대안들을 공론의 장에 내놓고 많은 논의와 수정의 과정을 통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