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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4. 검 토 안 3 : 복지 국가 시스템 하에서의 교육 변화의 전망과 과제


복지 국가 시스템 하에서의 교육 변화의 전망과 과제

 

김 중 훈(좋은교사 연수원장)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교육 개혁안은 그동안 교육 개혁 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 안은 교육은 교육 자체로도 분명히 가치가 있고 중요하지만, 교육 정책은 궁극적으로 교육 정책과 산업 정책의 목적이자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가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교육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용, 산업, 복지, 경제 성장, 국토 균형 발전, 국제 경쟁력 등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이 목적에 맞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교육 외적 분야들이 제 자리를 찾을 때 그동안 교육 개혁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들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시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미래 구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교육의 전제로서의 복지 사회 구축

- 교육․의료 등 기본적인 삶의 수요에 대한 복지 확충, 높은 세금과 낮은 임금 격차, 실업 수당, 수시 재교육 등을 통한 직업 이동 가능

2. 각자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형 및 책임 교육을 실시하는 초중등 교육

- 교사 두 배 확충을 통해 학교에서 교과 및 특기 적성 교육까지 책임(사교육 해소)

- 개인의 소질과 흥미에 따른 맞춤형 교육

- 민주적 가치와 소통 능력, 창의성, 공동체성 등 복지 국가적인 소양 교육

 

3. 정예화된 연구 중심의 대학(원)과 활짝 열린 (직업)교육 중심 대학

-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 진학하는 비율을 30% 정도로 조정

- 소수의 대학을 연구 중심 대학으로 정예화하고(학문 중심, 전문 대학원), 대부분의 대학을 (직업) 교육 중심으로 특화시켜 직업 교육과 평생 교육 감당

 

4. 평생 교육 체제 대폭 강화

- 일평생 세 번 이상 대학 입학 기회 부여(고교 졸업 후, 직장 근무 중, 퇴직 후 등)

- 변화하는 산업 세계에 맞춘 새로운 직업 능력 획득을 주목적으로 함


사회 한 부분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시야를 열어 줌

교육도 사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교육 개혁을 이야기할 때 현재 사회가 처해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맥락과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의 관계 속에서 논해지고 대안 모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 특히 개혁적인 그룹에서는 교육 개혁이 교육 본연의 맥락에서 논해지지 않고 정치․경제적인 맥락에서 논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이런 논의를 멀리 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부처 이름이 상징하듯, 보수 진영에서 교육을 단지 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복지 국가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북유럽 복지 국가들이 사회뿐 아니라 교육 발전의 모델로도 제시되면서 교육 개혁을 교육 내적 논리를 넘어 복지와 경제 발전의 맥락으로 논의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논의는 여전히 교육 내적인 논리에 기반을 둔 교육 개혁의 그림을 그리면서 이의 실현을 위한 조건으로서 노동 시장과 사회 복지의 문제를 논하는 선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교육 개혁과 사회 복지․경제 발전이 어떤 맥락에서 맞물리고 상호 작용을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 정교한 연결 고리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 부분에 있어서 교육과 사회, 복지, 노동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만나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시야를 열어 주고 있다.

 

복지 국가 이행과 관련된 질문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향하는 교육 구상은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복지와 교육, 사회 체제의 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고 속도에 대한 이견은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이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대체로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증세와 복지의 또 다른 전제인 정직과 투명에 대한 정신적 자산의 부재와 국가에 대한 낮은 신뢰도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이 워낙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몇 가지 보편적 복지 정책을 도입하는 차원에서는 정직과 투명, 국가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지만,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향하는 높은 세금과 매우 효율적인 재정과 복지 집행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과 국민의 행복을 이끌어 가려면 정직과 투명, 국가에 대한 신뢰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육, 의료, 노령 연금 등 삶의 기본적인 수요에 대한 보편적 복지 시행, 높은 누진세, 최저 임금 격상 등을 통한 임금 격차 해소, 평생 교육을 통한 자유로운 직장 이동 등 북유럽식 복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현재 우리 교육이 앓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복지 제도 하에서 사람들이 굳이 몇 가지 직업으로 몰리지 않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따른 자기만의 진로를 찾아 갈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대학 입시 제도를 특별하게 고치지 않아도 정상화될 것이고,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이나 평가도 쉽게 정상화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가 평등해지는 만큼 교육이 다양해지는 것은 우리 상황에서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상당 부분 의식과 문화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복지 제도와 시스템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북유럽 복지 국가들을 보면 복지 제도와 시스템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평등 의식과 지역 자치 전통이 매우 강했던 나라들이다. 기본적으로 직업 소명설과 만인 제사장설에 근거한 루터의 신학이 개인과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아 왔고, 루터교회는 지역 자치와 지역 복지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사회주의 평등 의식도 매우 깊게 영향을 미쳤다. 이런 정신적인 배경 위에서 북유럽식 복지 제도와 시스템이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런데 체면 문화와 가족주의, 봉건적인 계급 사회, 숭문주의, 중앙 집권주의 등의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동양 문화권에서 복지 국가를 실현한다고 할 때 그에 맞물려 교육과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는 아직 의문이다. 동양권에서는 중국과 북한, 베트남 등에서 공산주의가 50년 이상 지배를 했지만 학벌이나 대학 서열주의 등 교육과 관련된 문제는 일본, 한국, 대만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복지 국가로 나아가게 되면 과도한 대학 진학률과 대입 경쟁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고 이로 인해 초중등 교육도 확실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명문대 입시를 통한 새로운 귀족 계급에로의 편승 욕구와 그로 인한 명문대 경쟁률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리고 초중고등학교를 옥죄고 있는 학교에 대한 관료적 지배와 이로 인한 교육의 획일화 문제는 복지 문제와 별도로 풀어야 할 문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우리 사회가 복지 국가로 간다고 할 때 그로 인해 우리 교육의 문제 가운데 자동적으로 해소될 부분과 복지 국가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고 남을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복지 국가, 교육계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안을 보고 있으면 교육계가 그동안 열심히 매달려 왔던 여러 교육 개혁안들이 허무해 보이고 맥이 풀린다.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교육 내에서 아옹다옹해서는 되지 않고 조세, 복지, 고용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 문제들이 풀리면 자동적으로 교육 문제가 다 풀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교육계의 영역 밖에 있고 교육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복지 국가로 간다고 해도 교육계가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현재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서 교육의 내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인 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와 교육 내적 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가 좀 더 분명해질 뿐이다.

현재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교육 내적 논리가 아닌 복지 국가라는 정치적인 문제로 풀어야 할 문제는 주로 대학 입시와 대학 체제, 그리고 직업 교육과 평생 교육 등의 문제다. 초중등 교육 가운데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와 사교육비 문제도 기본적으로 복지 국가의 틀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초중등 교육의 체제와 관료주의 극복, 교육 과정과 수업의 본질 회복 등의 문제는 교육계가 계속 중심을 잡고 교육 내적 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가 복지 국가 체제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복지 국가 체제 자체가 모든 미세한 교육의 문제까지 자동적으로 바꾸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육계는 이러한 복지 국가 이행과는 별도로 교육 내적인 문제를 가지고 여전히 씨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