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로 그리는 천국

월간 《좋은교사》 공식 블로그

연재 종료 333

복직을 기다리며(2014.01)

정병오 칼럼 복직을 기다리며 오늘 학교에 복직원을 제출했다. 좋은교사운동 대표를 맡기 1년 전인 2007년부터 휴직을 했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대표직을 수행했으며, 2013년 한 해는 정책위원으로 섬겼으니, 만 7년 만의 복직인 셈이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3년과 2004년에도 휴직을 했었고, 2000년에도 휴직을 했었다. 그리고 1988년 첫 발령을 받자마자 3개월 후에 바로 군 휴직을 했으니, 만 26년 교직 생활 동안 절반인 13년을 휴직을 한 ‘대한민국 최장 기간 휴직을 한 교사’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교직 발령 직후 2년 3개월간의 군 휴직이야 국방의 의무를 위한 것이었으니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후 교직 생활에 재미를 붙여갈 즈음에..

불편해도 괜찮아(2013.12)

정병오 칼럼 불편해도 괜찮아 풍요의 이면 얼마 전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의 책상과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쓰다만 연필과 볼펜 등이 수북이 나온다. 어디 연필과 볼펜뿐이랴? 철 지난 MP3, 시계, 카메라, 손전등 등 여러 물건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나뒹굴고 있다. 이것을 보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우리 어릴 때는 물건들이 귀했지. 그때는연필하나, 지우개 하나에도 다 스토리가 있었고, 추억이 있었는데….”그러고 보니 우리는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학용품과 전자 제품을 마음껏 사 주는 풍요로움을 선물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필 하나가 귀해서 연필이 작아지면 볼펜 대에 끼워 사용하며 물건 하나하나와 교감했던 스토리와 추억을 다 빼앗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선물한..

50대를 맞는 자세(2013.11)

정병오 칼럼 50대를 맞는 자세 “병오야, 우리 졸업 여행 가려는데 너도 같이 가지 않으련?” 40대 후반에 들어선 요즘 부쩍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의 연락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이런 연락을 받을 때 내 마음도 이전과는 달리 괜히 설레고 보고 싶은 마음들이 생긴다. “졸업 여행이라니?” “어휴 눈치 없기는…. 올해 우리 나이가 마흔아홉이지 않니?(사실 나는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친구들보다는 한 살 적다) 이제 몇 달만 지내면 50대로 들어서기 때문에 40대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여행을 다들 많이 간단다.” 나이 서른에 우리는 매해 연말과 연초를 맞이할 때는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약간 감상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특히 10년 단위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10년을 맞이할 때..

공부의 즐거움(2013.10)

정병오 칼럼 공부의 즐거움 에 새겨진 할렐루야! 지금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없어졌지만, 결혼을 하고서도 한동안 보관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의 물건 중에 과 가 있었다. 그 책들은 나의 고등학생 시절 개인 공부 시간의 대부분을 쏟았던 것들이라 그 책의 여백 곳곳에 내가 그 공부를 하면서 했던 생각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곳곳에는 ‘할렐루야!’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도무지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렸을 때의 희열의 흔적이었다. 에는 각 과마다 처음 공부할 때, 그리고 2번째, 3번째 공부할 때 걸린 시간과 소감이 적혀 있었다.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반복 암기 위주의 공부 체계 가운데서도 수학을 통해서는 한 문제를 붙들고 끝까지 씨름함을 통해 문제..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2013.09)

정병오 칼럼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까지 마흔두 해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쓰셨던 일기가 한 뜻있는 출판사의 정성 어린 작업에 힘입어 5권의 책으로 발행되었다. 물론 그 일기 내용은 원고지로 37,986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출판사 편집부가 원고지 6,126장으로 대폭 줄였다. 이렇게 줄인 것이 책 5권의 분량이니, 일상 이야기의 경우 겪은 일을 더 또렷이 붙잡아 쓴 글,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는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리고 또 가렸다는 출판사의 고심이 읽히는 듯 했다. 가 담고 있는 것 1권과 2권은 교사로 재직할 때의 일기인데, 교직 생활 19년차이던 1962년부터, 그의 글과 활동들이 경찰서 정보과의 감시와 간섭을 받아..

반성은 나의 힘(2013.08)

정병오 칼럼 반성은 나의 힘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반도평화연구원(KPI)이 주관하는 독일통일연구여행에 연구위원 자격으로 함께 다녀왔다. 연구 여행 기간 동안 “동독과 동유럽 체제전환 과정과 사회 발전 연구 결과의 현장 적용을 위한 전이 프로젝트” 연구 내용 중 일부 내용에 대한 집중 세미나에 참여하고, 베를린에 남아 있는 나치 시대의 역사 기록물들과 분단의 흔적, 유물들을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독일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3년간 구 동독 지역의 할레대학과 예나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체제 붕괴 후의 사회 발전”이라는 매우 거대하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었다. 이 연구에는 30여 명의 교수들이 투입되어 동독과 동유럽의 체제 붕괴 이후 사회 전 분야에 있어서 어떤..

거절의 의미(2013.07)

정병오 칼럼 거절의 의미 “선생님, 선생님의 뜻은 참 감사하지만, 아버지의 평전이 나오는 것을 아버지가 원치 않으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거나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 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셨어요. 자녀들이 아버지 칠순 잔치를 준비하려고 하자 그 시기에 다른 일정을 잡아 먼 곳으로 떠나 버리셨어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간간히 나온 자료들로 충분할 것 같아요. 이게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의 이런 생각과 판단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사실 김기열 선생님은 5남매를 결혼시킬 때도 한 번도 하객을 초청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양가 직계 가족 20여 명 정도만 참석한 가운데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때가 1960년대, 1970년대였으니 그의 생각..

나는 기도할 때(2013.06)

정병오 칼럼 나는 기도할 때 매일 기도하러 주 앞에 나아갈 때마다 신기한 것은 내 입에서 기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날마다 새로운 내용의 기도가 나온다. 기도하러 갈 때 ‘오늘은 이 내용을 기도해야지’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가는 적이 없다. 그냥 매일 일정 시간 기도하기로 했기 때문에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서두를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기도가 나온다. 물론 ‘감사합니다’로 시작했지만 실제로 감사의 제목이 먼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많은 경우 지금 내 마음을 꽉 누르고 있는 제일 힘들거나 고민되는 기도 제목이 먼저 나온다. 그럴 경우 이 제목을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기도를 한다. 어떤 날은 그 제목을 하염없..

미안함과 부끄러움에서 시작하자(2013.05)

정병오 칼럼 미안함과 부끄러움에서 시작하자 내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는 보릿고개를 갓 벗어난 시점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면 먹고사는 문제는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집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가운데 밥을 굶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때를 따라 제대로 갖춘 옷이나 신발을 사 신을 수 있는 가정 역시 많지가 않았다. 옷은 형제들이나 친척들의 것을 물려 입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신발은 검정 고무신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런닝만 입고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께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그 때는 선생님도 크게 혼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고, 나도 그것이 흉이 된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

단절과 연속(2013.04)

정병오 칼럼 단절과 연속 교직과 군대, 새로운 시작 앞에서 나는 대학 졸업 후 2개월 반 정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입대를 했다. 돌아보면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전환의 시기였다. 일단 대학이라는 곳을 벗어나 직장이라는 사회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변화였다. 물론 대학 3, 4학년 시기를 지나면서 진로에 대한 거듭된 고민 끝에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 진출을 선택하긴 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선교 단체 훈련을 받으며 ‘이렇게 살겠다’라고 다짐했던 대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내가 속한 직장을 변혁하는 자로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큰 두려움이었다. 실제로 대학 선교 단체에서 내가 가졌던 리더로서의 지위와 권위는 초임 발령을 받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