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로 그리는 천국

월간 《좋은교사》 공식 블로그

연재 종료 333

거룩한 사치(2015.10)

정병오 칼럼 거룩한 사치 내가 하고 싶은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쓸데없는 상상인줄 잘 알면서도 ‘지금 내게 모든 생계의 부담과 사회적 책임의 짐이 없어지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늘 1순위로 떠오르는 생각은 성경공부를 마음껏 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성경공부란 본문을 놓고 원어를 포함한 여러 다른 번역본도 찾아보고, 성경 사전이나 성경지도 등을 활용해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어야 하겠지만, 그를 위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고 열정도 부족한 나로서는 이런 작업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일이다. 이보다는 성경본문과 그 배경을 깊이 연구해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연구..

어떤 결혼 주례사(2015.09)

정병오 칼럼 어떤 결혼 주례사 결혼 서약문의 의미 결혼식에 많은 순서가 있지만 이 중 가장 중요한 순서는 신랑신부의 결혼 서약일 것입니다. 조금 전 신랑 신부는 결혼 서약문을 통해서 서로를 향해 “이제부터 평생토록 괴로우나 즐거우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그대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신랑 신부는 이 약속을 온 마음을 담아 진실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의 의미를 다 알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결혼 생활이란 이 약속 속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탐구해가고 맛보아 알아가는 긴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약속에는 두 분의 만남과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단지 두 분의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과만이 아니라 이 감정..

기도의 사람(2015.08)

정병오 칼럼 기도의 사람 올해 서울시교육청에서 하는 오디세이학교(자세한 내용은 5월호 칼럼 참조) 일을 맡다 보니 지난 몇 달은 정말 한 치도 쉴 틈 없이 그것도 초긴장 상태에서 일을 해왔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덴마크 애프터스쿨을 실험해 본다’ ‘꽉 막힌 한국의 입시교육의 틀 가운데 숨 쉴 틈을 제공해주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길을 열어 보겠다’ ‘극도로 비정상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 교육 가운데 상식적인 교육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건강한 상생모델을 만들어 보겠다’ 등 여러 이상을 가지고 시작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이상만 분명하면 그것을 붙들고 부딪혀보는 편이고 세세하고 치밀하게 계산해보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이 일을 맡겠다고 나설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여..

내 삶의 과제는 어디에서 왔을까?(2015.07)

정병오 칼럼 내 삶의 과제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전공은 국민윤리교육학과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할 즈음까지만 해도 진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학력고사를 치르고 입학 상담을 할 때 담임 선생님이 내 점수를 고려해서 한 과를 추천해주셨고 나도 별 이유 없이 그 과가 괜찮은 느낌이 들어 그 과를 당연히 나의 길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원서를 쓰는 날 담임 선생님이 입학상담 때 추천해주셨던 그 과를 1지망으로 기록을 하고, 그 다음에 2지망을 써야 한다며 비교적 안전한 합격선에 들어있던 한 과를 이야기하셨다. 난생 처음 들어보던 과였지만 1지망에서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2지망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담임 선생님의 뜻에 맡겼다. 그런데 막상 입학 결과가 ..

세월호 속의 세상,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2015.06)

정병오 칼럼 세월호 속의 세상,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지난 4월 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해서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세월호 유가족 초청 간담회를 가졌다. 세월호 유가족 한 분과 세월호 유가족들을 지난 1년 동안 친가족처럼 도왔던 좋은교사운동 출신의 퇴직교사인 강영희 선생님을 함께 모셨다. 주일 점심 식사 후 교회당 내 책상을 치우고 의자만 큰 원을 두 겹 정도 만들어서 어른들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인들이 둘러앉았다. 1시간 아니라 10시간이라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할 말이 많은 유가족과 강영희 선생님에게 각각 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만 드리고, 그 후 모든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그 분들의 이야기에 대한 반응 혹은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

새로운 도전 앞에서(2015.5)

정병오 칼럼 새로운 도전 앞에서 우리 교육에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교육이 조금씩 알려지고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2009년 진보 진영의 학자, 교사 그룹들과 함께 스웨덴과 핀란드를 다녀왔다.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과 사회적 전통이 우리와 많이 달라서 당장의 적용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바라보지만 그 좁은 틀의 한계 가운데 갇혀있던 시야를 열어 교육 본질에 기반을 둔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을 좋은교사운동 회원들에게 열어주고 싶어서 2011년 북유럽 교육탐방팀을 꾸려 핀란드와 덴마크를 방문했다. 북유럽교육, 그 본질이 뭐지? 핀란드와 덴마크는 국가가 모든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질과 적성에 따른 교육을 책임진다는 공교육의 ..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2015.4)

정병오 칼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물 위에 떠오른 것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거의 온 나라를 마비시킬 듯한 깊은 충격과 슬픔, 자성의 침울한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진상규명을 막고 대충 넘어가려는 정부와 반대 세력들의 방해를 뚫고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진상조사위원회를 힘겹게 발족시켰다. 물론 이 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벽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국민들의 지지가 여전히 있기 때문에 최소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리라 예상이 된다. 지나치게 역동적인 한국 사회의 특성상 잊을 만하면 큰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무..

어느 기독서점 키즈의 회상(2015.3)

정병오 칼럼 어느 기독서점 키즈의 회상 지난 달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았다. 그런데 가까운 시간대의 표가 다 매진이 되어 많은 시간 기다려야해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터미널 맞은편 상가에 있는 한 기독 서점을 찾았다. 한참동안 책을 보고 있는데 서점 한 구석에서 열심히 책을 뒤적이고 있는 한 청년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청년은 30년 전의 나였다. 기독 서적의 통해 신세계를 만나다 그 청년은 서점이라고는 학교 앞 문방구와 함께 운영하는 학교 참고서 중심의 작은 서점밖에 없는 면단위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교회도 그 면에 위치한 작은 교회에 출석을 했다. 책이 귀했던 그 시절, 그래도 일반 동화나 위인전 등은 조금 안정되게 살았던 친구집이나 학교 도서관을 통해 빌려 읽을 ..

연구자로서의 교사(2015.2)

정병오 칼럼 연구자로서의 교사 “선생님, 저희가 이번 겨울에도 수련회를 하는데, 매 번 해 주셨던 것처럼 매일 아침 오셔서 QT를 지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언제까지 저를 강사로 부를 거예요? 이제 3년 정도 훈련이 됐으면 내부에서 강사를 세우세요. 특히 병오 학생은 이제 졸업하고 선배가 되니까 병오 학생이 그 동안 QT를 해왔던 경험을 잘 정리를 해서 후배들에게 QT를 교육하도록 하세요.” “언제까지 나를 강사로 부를 거예요?” 대학 생활을 돌아보면 ‘행운’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지도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윤종하 총무님이다. 이 분은 한국 성서유니온 초대 총무를 맡아 20년 가까이 실무 ..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2015.1)

정병오 칼럼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왜 나의 절박함에 응답하지 않을까? 초중고 시절, 그 때는 학교에 체벌이 많았다. 이 체벌 가운데는 학교 선생님들에 의한 공적인 것도 있었지만 동네 형들이나 학교 선배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적인 체벌도 많았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학교는 즐거운 추억과 함께 체벌에 대한 두려움이 늘 함께 남아 있다. 어릴 적 겁이 많고 기본적으로 순종적이었던 나는 선생님들에게나 선배들에게 개인적인 체벌을 받은 기억은 많지 않다. 이것은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단체 기합은 나 개인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단체 기합은 늘 우리 몸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나드는 수준으로 주어졌기에 특별히 병약했던 나는 그 단체 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