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로 그리는 천국

월간 《좋은교사》 공식 블로그

연재 종료 333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2014.12)

정병오 칼럼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남녀 일진으로 구성된 기독학생반 2002년의 일이다. 그 해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1월 겨울수련회 때 학급제자양육 관련 강의를 듣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래서 그 전 해까지는 계발활동에 기독학생반을 개설하되 인원제한 없이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애썼다. 그야말로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는 전략이었다. 물론 이렇게 떠밀려서 온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려니 힘은 힘대로 들고 열매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소수의 충성된 자들을 모집해 그들을 집중해서 양육하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제자를 양육하게 하는 제자양육 전략은 그 동안 내가 고민해왔던 비효율의 부분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2002년 새 학기를 맞..

더 큰 일은 없다(2014.11)

정병오 칼럼 더 큰 일은 없다 “선생님, 내년에도 계속 학교에 근무하는 건가요?” “예, 학교에 있어야죠. 제가 7년의 공백을 끝내고 이제 겨우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데 학교를 떠나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지난 6월 지방선거 직후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한 달 반 정도 파견 근무를 한 후 2학기에 다시 학교에 복직하자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제 내가 조만간 어떤 형태든 교육청의 일을 맡기 위해 학교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물론 내가 서울시 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교육청의 명령이 있으면 언제 어떤 일이든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기본 생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학교의 교사로 충실하게 내 직무를 다하고 그 외..

교회 안에서 배우는 믿음(2014.9)

정병오 칼럼 교회 안에서 배우는 믿음 아들과 함께 금요기도회에 몇 달 전부터 중3 막내아들과 매주 교회 금요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가면 자율학습 등으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금요기도회에 꾸준히 참석해서 목사님의 사도신경 강해를 통해 교리적인 기초도 다지고 뜨겁게 부르짖는 어른들의 기도 분위기 가운데서 자신의 문제를 내놓고 기도하는 법을 몸으로 체득해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막내 시온이는 8년 전 개척 교회를 시작할 때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였기 때문에, 교회 개척과 함께 새롭게 시작한 온 가족 예배를 특별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저학년 사이에는 예배에 마음을 담지 않거나 싫증을 내는 모습을 보여 부모와 실랑..

역사와 현실, 그리고 하나님의 뜻(2014.08)

정병오 칼럼 역사와 현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비록 자진사퇴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지난 6월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역사 인식 논란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3년 전 온누리 교회에서 했다는 특강 내용은 많은 기독교인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인식일 뿐 아니라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그의 글을 읽었을 때는 문제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다만 기독교인 사이에서 이해되고 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언제든지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생각만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읽으면서 처음 읽을 때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창극 후보의 글을 통해 그 동안 내가 역사와 섭..

조금씩 오래 많이 슬퍼합시다(2014.07)

정병오칼럼 조금씩 오래 많이 슬퍼합시다 대학 시절,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간 적이 있다. 오랜 시간 질병으로 고생을 하다 돌아가신 것이어서 그 친구와 가족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 친구가 평소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친밀하고 돈독했었기 때문에 그가 느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 보였다. 그런데도 장례식 기간 내내 그 친구는 많이 울지 않았고 슬픔을 잘 절제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장례식을 다 마친 후 그 친구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내가 혹 이 슬픔을 한꺼번에 다 쏟아버리고 이후에 슬픔을 잊고 살게 될까봐 너무 두려웠어. 그래서 장례 기간 내내 어떻게 이 슬픔을 잊어버리지 않고 오래 기억할 것인지 고민했어. 어떻게..

교사의 책꽂이(2014.6)

정병오 칼럼 교사의 책꽂이 참고서와 문제집이 다야? 대학 졸업 후 갓 교직에 나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 중 내가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교무실 선생님들의 책꽂이에 참고서와 문제집만 가득 꽂혀있다는 사실이었다. 참고서라는 게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도 교과서 내용을 잘 요약하거나 일부 좀 더 자세한 부연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고, 문제집이라는 것은 교과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암기했는지를 확인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묶어놓은 책이라는 것이 내가 경험했고 알고 있던 상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참고서와 문제집은 암기 위주 입시교육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도 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 한 가운데 살아가는 교사가 당장 이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참고서나 문제집을 활용할 수는 있다 ..

비본질의 홍수 속에서 본질 살리기(2014.5)

정병오 칼럼 비본질의 홍수 속에서 본질 살리기 7년 만의 복직, 뭐가 달라졌나요? 7년 만에 학교에 복직해 보니 가장 달라진 변화는 학기초 업무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3월 첫 2주 동안 아이들에게 배부한 가정통신문만 50종이 넘는 것 같고, 그 중 학부모 회신을 받은 것도 30종은 족히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전에 학기초가 되면 매일 아침 자습 시간에 2-3명씩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던 시간은 도무지 가질 수가 없다. 하루에 평균 2개 정도 되는 가정통신문 회신문을 수합하고, 이를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재확인을 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가버린다. 물론 이 회신문 중에서 꼭 필요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신문은 만약의 사안이 터졌을 때를 대비해서 학교가 책임을 지지 ..

교과서 단상(2014.04)

정병오 칼럼 교과서 단상 “선생님, 1학년 담임이니까 오후에 신입생 예비 소집 때 아이들 지도 부탁해요.” 7년 만의 복직,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업무분장일에 첫 출근을 했는데, 1학년 담임에 1학년 기획 업무가 주어졌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에서 담임을 맡는 것이 가장 빠른 적응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새로운 내 입장에서 처음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1학년을 맡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신입생 예비 소집일에 입학식 준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전달 사항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교과서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두터워지고 종이 질도 좋아진 교과서를 나눠주다 보니 교과서와 관련된 어릴 적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교과서 ..

칸트, 해외 탐방을 떠나다(2014.03)

정병오 칼럼 칸트, 해외 탐방을 떠나다 “선생님, 해외여행 안 가세요?” “예, 저는 그냥 칸트처럼 살려고요.” 나라고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에 대한 욕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4명의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해외여행을 꿈꿀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기독교사운동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다 보니 방학이라고 해서 덜 바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교직 초기 교육청 단위 수업 공개를 열심히 한 덕분에 젊은 교사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는 해외 연수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기독교사 수련회 일정과 맞지 않아 거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내 속의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 ..

아프리카도 보아야 하리라(2014.02)

정병오 칼럼 아프리카도 보아야 하리라 “좋은교사운동은 한국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아프리카에도 필요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이 한국의 교육 현실뿐 아니라 아프리카를 포함한 선교지의 교육 문제를 함께 안고 가야만 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6년 전 갓 좋은교사운동의 대표를 맡아 좌충우돌하고 있을 때 김두연 선생님(현 좋은교사운동 내 전문모임 중의 하나인‘Youth Global Action 연구회’대표, 월간 2013년 3월호‘좋은만남’에서 소개)이 불쑥 찾아와 했던 말이다. 김두연선생님은 서울 광신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기 중에는 기독학생반 동아리를 통해 아이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는 일에 매진할 뿐 아니라, 방학이 되면 팀앤팀이라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한 식수 개발 전문NGO의 일원으로서 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