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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은 만큼 흘려보내기(2017.08) 사랑, 받은 만큼 흘려보내기 김에스더 (남호초등학교) 인터뷰, 사진 김만호 에스더라는 이름처럼 50년 인생동안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선생님. 또한 받은 사랑만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많은 사역을 감당해온 선생님. 교사로, 교회 사모로, 세 아이의 엄마로, 두 개 지역모임의 간사로 섬기는 그를 통해 섬김의 모습을 배워봅니다. 영화를 보며 갖게 된 교사의 꿈 부모님께서 생후 한 달 된 저를 처음 교회에 데리고 가셨을 때, 갓난아이가 예배시간 내내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자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목사님께서 이름을 ‘에스더’라고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피를 토하시며 계속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많이 아프셨는데, 이런 아버지의 병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았습니다. 어린 시절 .. 더보기
다시 말씀 묵상의 바다에 빠지다(2017.07) 정병오 칼럼 다시 말씀 묵상의 바다에 빠지다 말씀 묵상을 글로 정리해 나누기 시작 올 3월부터 매일 아침 말씀 묵상한 것을 글로 정리해서 가족 채팅방과 내가 소속된 지역모임인 기윤실 강남모임 단체 채팅방, 페이스북과 교회 홈페이지 등에 올리고 있다. 말씀 묵상한 것을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가족들의 생애 주기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 대학생이 되고 막내도 고3이 되니 가족기도회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아이들의 개인 일정이 다 달라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나이가 50을 훌쩍 넘기다보니 저녁 식사 후 쏟아지는 잠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냥 쓰러져 잠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실적으로 가족기도회는 주 1회, 주일 저녁에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아이들이.. 더보기
수학은 죄가 없다(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_2017.07) 수학은 죄가 없다 인터뷰정리 임종화 사진 김현경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 난곡중학교를 시작으로 한성과학고, 용산고, 세종과학고 등에서 수학교사로 근무하였다. ‘전국수학교사모임’을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며 수학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다 2011년 명예퇴직을 하고 ‘수학교육연구소’를 설립하여 수학 교육과정 개발과 혁신학교 수업컨설팅 사역을 하고 있다. 현재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로 활동하며 수학 대안교과서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착한 수학》, 《하루 30분 수학》, 《수학이 살아 있다》, 《개념연결 중학수학사전》,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 등이 있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이제 교육계에서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일상적이라는 말은 문제의식.. 더보기
하나님의 따뜻함을 전해주는 따뜻한 기독교사(2017.07) 하나님의 따뜻함을 전해주는 따뜻한 기독교사 박종식 (거제 하청초등학교) 인터뷰사진 김영식 교사로서의 부르심 고3 담임선생님이 제게 추천해 주신 학교가 진주교육대학교였습니다. 그런 대학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대학에 들어갔는데 꿈꾸던 학교가 아니었고, 모든 것이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듯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학교에 실망해 휴학하고 군대도 다녀와 복학을 했습니다. 이상철 당시 SFC 간사님(현, 마산성막교회 담임목사)과 함께 성경공부를 했는데 본문이 마태복음이었어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먼 미래의 천국이 아니라 내 삶 가운데 와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배우면서 그 긴장감.. 더보기
사람 노릇, 어른 노릇(2017.06) 정병오 칼럼 사람 노릇, 어른 노릇 몇 주 전 이만열 교수님이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오셔서 오전 예배 설교를 하시고, 오후 모임 특강을 하셨다. 올해 한국 나이로 80세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식은 젊은이들보다 더 날카로웠고, 겸손과 소탈함이 묻어나오는 그의 태도는 노인의 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해직교수, 투사가 아닌 신앙인을 만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재학 중이던 1984년 2학기였다. 그는 1980년 7월 전두환 군사 정권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었다가 만 4년 만인 1984년 9월에 복직되었다고 했다. 당시 삼엄한 군부독재의 현실을 조금씩 피부로 느껴가던 대학 1학년의 입장에서 ‘해직교수’는 범인이 접근할 수 없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투사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 더보기
교육이란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입니다(방승호 모험상담가,가수,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_2017.06) 교육이란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입니다 인터뷰정리 김진우 사진 김현경 방승호 (모험상담가, 가수,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 방승호는 1988년 교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을 거쳐 현재는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국 연수 중 신체 활동을 활용한 청소년 상담법을 접한 후, 간단한 신체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내는 상담법으로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고 있다. 2010년부터 가수로 활동하며 담배 피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 게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등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기적의 모험놀이》, 《우리 집 모험놀이》,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노래하는 교장의 마음반창고》,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있다. (참고:인터넷 교보문고) 방승호 선생님의.. 더보기
한번 하면 끝까지 한다(2017.06) 한번 하면 끝까지 한다 부산공업고등학교 손정웅 선생님 인터뷰,사진 조창완 부족한 시작을 준비하신 하나님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지요. 가세는 기울었고 저는 집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신문배달을 하기도 했죠.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아버지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셨음에도 가족들의 배려로 나름대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한쪽 신경은 병석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스스로에게 많은 제약을 준 시기이기도 하였지요. 그래서인지 중고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특별한 추억이 없어 좀 아쉽기도 합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공고 기계과에 진학했습니다. 사실 가족들은 인문고에 가기를 원했지만 저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취.. 더보기
가지 않을 수 없는 길(2017.5) 정병오 칼럼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기윤실, 모태신앙(?) 지난 3월,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 총회에서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내가 처음 기윤실과 인연을 맺은 것이 기윤실 창립의 맹아 역할을 했던 서울대 교수 성경공부 시절부터였으니 나와 기윤실의 관계는 일종의 모태신앙(?)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5년 무렵부터 서울대 교수 성경공부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이 모임에서 학교 복음화를 위해 학생 선교단체들을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1986년 즈음 내가 선교단체 대표를 하면서 기독교연합 행사 관계로 교수님들 성경공부 모임을 찾아갔을 때 손봉호 교수님의 인도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산상수훈 강해》를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 더보기
절망한 아이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십시오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_2017.5) 절망한 아이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십시오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사회학과 목회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인 라이프호프 대표, 기윤실 교회신뢰운동 본부장, 목회사회학연구소 소장,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머 거룩한빛광성교회 협동목사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목회사회학》, 《시민사회 속의 기독교회》(공저), 《그들은 왜 가톨릭 교회로 갔을까?》(공저), 《공공신학》(공저) 등이 있다. 인터뷰,정리_임종화 사진_김만호 정신없는 새학기가 지나고 정신차려보니 따뜻한 봄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빨라진 대통령 선거로 인해 온 나라는 매일 새롭게 쏟아지는 공약과 이슈로 인해 분주.. 더보기
교실을 바꿀 수 있으면 사회도 바꿀 수 있다(2017.5) 교실을 바꿀 수 있으면 사회도 바꿀 수 있다 ─ 차지훈 선생님 (군산미장초등학교) ─ 인터뷰,사진 _ 김만호먼 곳의 하나님이 아닌 내 옆에 계신 하나님아들부잣집 막내인 저는 드센 형님들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중학교 시절까지 꿈도 없고 자신감도 부족한 내성적인 아이였죠. 이런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지랄 총량의 법칙’의 지랄을 거의 다 사용한 것 같아요. 그러느라 공부에 소홀히 해서 수능도 세 번씩이나 봐야했고, 전주교대는 세 번째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는 합격의 기쁨과 수험생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서 세상 속에서 지냈죠.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CCC 기도회에 따라나선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고는 있었기에 기도회 가면 기도를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