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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자리를 비워준 교장(삼평중학교 교사, 전 덕양중학교 교장 김삼진) 2012.05

교사의 자리를 비워준 교장





 

 


 


김삼진 (삼평중학교 교사)

한남대학교 경상대 졸업,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국방대학원 교수, 경기도 초중등프로젝트 교수학습설계교육연구회 상임고문, 미래교육을 준비하는 한국교수학습방법연구회 전국연구회장, 아름다운배움 이사, 덕양중학교 ()교장, () 삼평중학교 교사

 


 

사진 및 인터뷰·문경민, 정병오

 

 

20122. 덕양중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의 이임식이 있었다. 그 중에는 머리가 희끗하고 단아한 모습의 노()교사도 있었다. 그가 덕양중학교와 함께 했음을 기리는 이 자리에서 김영식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송사를 나누었다.

 

 

열정을 갖고 활동하는 후배 교사들이 좌절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삶을 던지시기로 하셨던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께서 덕양중학교에 들어오시면서 마치 준비되었다는 듯이 한 사람 한사람 모여들었습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덕양중학교을 새롭게 그려갈 수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교사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교사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교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교장 선생님이 서서 교사들을 영혼 없는 사람들로 만들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자리에서 저는 저의 영혼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꿈꾸고 생각하는 것을 얼마든지 현실에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덕양중학교의 교사들은 교장 선생님이 깔아 놓으신 멍석 위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교육적 이상을 펼쳐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갔고 저마다의 모습으로 나는 교사다외치고 있습니다.

 

 

김삼진 선생님은 그렇게 덕양중학교 교장으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교사로 자기의 삶을 일구어 가다, 교장공모제를 통해 덕양중학교의 교장으로 일한지 4. 그는 다시 교사로 삼평중학교 교실에 서 있다.

 

 

덕양중학교의 삶을 매듭짓고 나오시면서 마음이 어떠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떠셨나요?


덕양중학교를 나오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셨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김영식 선생님의 송사를 들으면서 마음먹었던 것들을 다 완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눈물도 났습니다. 덕양중학교4년 전에 비해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변화를 잘 소화해냈습니다. 그중에는 칭찬받아 마땅한 것들도 적잖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덕양중학교를 아는 사람들은 덕양중학교가 점점 교육의 본질을 찾아가고 있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저는 교사와 교장이 함께 마음을 모은다면 학생들의 인격과 지성과 영성을 성숙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4년 전에 당시 덕양중학교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덕양중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은 고도제한, 그린벨트, 군사시설보호지역으로 묶여 있어서 누구도 개발하고 싶어 하지 않는 지역에 있습니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보다는 어서 떠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죠. 간단히 말해서 배가 부르고 넉넉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싹트기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조손가정도 많았고 편모 편부 슬하의 학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학력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내가 갔을 때는 구구단을 못 외우는 아이도 세 명이 있었어요. 그 아이들을 구구단을 외우게 하기 위해서 외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구구단을 배우게 했습니다. 무엇을 학력이라고 이야기해야하는지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지만, 덕양중학교는 구조적으로 학력이 좋을 수가 없는 학교였습니다. 학교가 작다보니 교사 수가 적었고, 교사 수가 적다보니 순회교사를 통한 교과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은 집에서도 안정감 있게 생활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의 학생들이 순회교사의 리더십을 순순히 인정하고 따를 리가 없었죠. 순회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불화가 적지 않은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이었어요. 학생이 순회교사로 온 여자 선생님의 팔을 꺾는 사건도 있었다니까 말 다했죠. 제가 덕양중학교에 오기 전, 2007년 한 해 동안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자그마치 스물일곱 번이나 열렸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리는 학교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인격적인 면, 학력적인 면 모두 안타까운 상태였습니다.

 

 

무엇을 가장 먼저 하셨나요?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이상을 부르짖는 리더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저의 처음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세 끼 중에 한 끼는 학교가 제대로 책임져 보자!”라는 거였죠.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그게 우리 학교에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죠.

다른 거 없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좋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학교에 가기만 하면 일단 점심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믿음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교장이 되고나니 예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전기요금 내는 것도 여유롭지 않았고 급식도 옆 초등학교에서 밥을 해서 실어다 공급받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뭔가를 시도해보는 게 어려웠습니다. 식사량도 충분치 않았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지원도 받고 예산도 끌어와서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것을 해결해주는 학교로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지요.

 

덕양 중학교에서 일하시면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생을 돌보고 학생들이 배움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게 도와주는 것. 저는 그런 기본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이게 말은 쉬운데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자주 한다고 해서 그리고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그냥 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소통과 참여를 통해서 교장이나 교사 모두가 다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고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동안 우리들의 학교는 너무 답답했습니다. 관료주의적인 조직운영과 통제, 억압적인 문화로 인해서 다들 움찔거리고만 있었죠. 가정방문을 대하는 우리의 학교 조직 문화를 보면 답이 딱 나옵니다. 옆 반 선생님의 시선도 은근히 부담스럽고, 교장 선생님의 염려와 우려도 부담스럽고그러다가 가정방문 가지 말라는 얘기나 듣기 십상이죠.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봤어요. 교사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교사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들이 스스로 뭔가를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학교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조직 경영자의 태도가 덕양중학교 특유의 동료 교사 문화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덕양중학교의 교사 문화가 참 좋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곤 했는데요. 선생님께서 느끼시는 덕양중학교의 교사 문화는 좀 어떤지요.


덕양중학교의 동료애는 보통 학교의 직장 동료 사이를 뛰어 넘는 것 같아요. 관계성 자체가 다르지요. 학교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연수를 받고 탐구를 함께 하면서 쌓이는 동료 관계입니다. 그 오랜 과정을 통해 서로가 원하는 것 서로가 추구하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되는 관계이죠. 그걸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요. 함께 한 길을 가면서 쌓이게 되는 동료성. 그게 덕양중학교의 동료 관계이고 교사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덕양중학교의 선생님들이 덕양중학교를 생각하는 태도와 애정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학교를 떠나면서 눈물 흘리는 분들도 있었고덕양중학교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하며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제게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선생님들이 학교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덕양중학교의 선생님들이 덕양중학교를 사랑하게 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그게 내 자랑을 하라고 하시는 건데(웃음) , 뭐랄까요. 덕양중학교에 대한 교사들의 애정이 남다르다. 그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무엇을 했느냐, 라고 물으면 참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뭘 하려고 드는 것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선생님들이 자기 안에 갖고 있는 비전, 아름다운 상상, 이런 것들을 발현할 수 있도록 꺼낼 수 있도록,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살려주는 일을 했다고 하면 제가 뭔가를 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도 갑작스럽게 뭔가를 터트리려 하지 않았어요. 충분히 교사 공동체의 공감을 얻도록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선생님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곤 했죠. 학교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핵심적인 사업에 대해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같은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바랐어요. 예산을 뒷받침해주고 외부의 압력을 단호하게 막아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어요. 일을 마음껏 해라, 혹시 잘못되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 내가 뒤를 봐줄 테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라. 그런 태도로 선생님들께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예산 문제도 쉬운 게 아니었죠. 실제로 돈이 필요하니까요. 예산을 확보해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저는 밖으로 다니면서 돈을 끌어오는 것도 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잘했다 못했다글쎄요. 저는 함께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가급적이면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죠. 선생님들이 제 생각을 이해해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제가 선생님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죠.

그래서 어찌 보면 다른 혁신학교들에 비해 속도가 느렸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에게 좀 압박이 되기도 했죠. ‘내가 너무 추진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고민도 했어요.

 

 

선생님의 학교 경영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리더십을 발휘하셨다고는 하지만 선생님께서 바라셨던 것들이 있으셨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도 가능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덕양중학교가 어떻게 되기를 원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을 원했습니다. 단순하고 낭만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걸 이루기 위해서는 학교의 총체적인 변화가 따라와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학생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기다리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삶을 닦아나가게 되고 성숙해가게 되려면 어떠어떠한 것들이 준비되어야 있어야 하는 지를요. 선생님들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학생들도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관리자인 저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죠. 그래야 그런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날 수 있게 할 겁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고,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 밭을 잘 준비시켜주어야 하죠. 학습 환경 같은 것은 기본이고요. 교사의 자존감 문제로 넘어가면 준비되어야 할 것들은 더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저는 우리 덕양중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교육,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덕양중학교의 부족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보면서 이 학생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현 단계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배움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다리를 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4년 동안 일했지만 정말로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을 정말로 해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쉽죠. 많이 아쉽습니다. 덕양중학교가 그런 것들을 해내면 정말 좋겠어요. 서로를 배려하는 수업 과정을 통해, 함께 협력하는 공부를 통해 내 삶이 행복과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덕양중학교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모아져서 인격, 지성, 영성이 갖추어진 전인 교육이 일어나게 되기를 지금도 간절히 바라요.

현재 덕양중학교는 교수 학습 방법을 바꾸는 것 까지는 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교육 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올라서고, 재구성한 교육 과정에 따른 평가 방법도 바뀌게 되면 좋겠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추진하고 있는 행복한 성적표를 적용해보고 싶은 마음도 적잖았죠.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마무리를 한 것이 아쉽습니다. 저는 북유럽 국가 교육 이야기에서 종종 발견하게 되는 교육의 이상적인 모습들을 우리 덕양중학교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같은 교장선생님이 계신 학교에서 일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한 교사로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학교에 수업을 하는 교사로 돌아와 보니 그동안 안보이던 것들이 보입니다. 저는 평교사 입장에서 학교를 바라보면서 행복한 수업, 행복한 학교, 행복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함께 하고 싶습니다.

 

김삼진 선생님과의 긴 인터뷰를 마치면서 나의 60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 나이를 먹어가고 언젠가는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그 나이가 됐을 때,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될까 염려하기보다, 어떤 사람으로 서 있어야 할까 고민하는 길을 가야겠다. 다음의 시로 이 인터뷰를 매듭 지려한다.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