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를 직면(直面)하다
김두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검사를 지냈다. 검사직을 그만 둔 이후 코넬대학교대학원에서 다시 법학을 공부한 후에는 한동대 법학부 교수로 형법, 형사소송법, 사회보장법 등을 가르쳤다. 「복음과 상황」, 「당대비평」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여성과 법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문경민 / 사진·김중훈
적은 지면 안에 김두식 교수를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김두식 교수를 설명하려면 많은 이야기를 덧붙여야 한다. 그는 고정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김두식 교수의 현재 모습이 『김두식』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변화된 모습에 대한 힐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두식 교수는 따뜻하고 솔직한 지식인이다. 그는 딱딱한 우리 사회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왔다. 그는 기득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한국 교회에 쓴 소리를 던지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 속 세상, 세상 속 교회』를 통해 한국 교회에 대한 절망과 슬픔, 희망을 읊조렸다.
그의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독교사들과 김두식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교회에 대한 건강한 비판은 충분히 수용 가능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부분과 성경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보는 시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예수전도단 출신이었고 ‘복음과 상황’의 고정 필자였던 그가 선을 너무 많이 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정한 독자가 있는 지면에 어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제 3자가 풀어놓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이 인터뷰가 김두식 교수의 일면을 보여주고, 그를 통해 이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법학은 어떻게 선택하시게 되셨나요?
86년에 대학을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때 간접적으로 무시무시한 군사 독재정권을 경험했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바른 말을 해도 붙잡혀가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는 직업은 변호사 정도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법학을 하게 되었어요. 나름 의식 있는 고등학생이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돌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았어요. 그런 방식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평화주의자였던 건가요?
아뇨. 저는 아무 주의자도 아닙니다. 남들이 제게 간판을 붙일 뿐이죠. 대학시절에 저는 돌 던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그런 방식으로 함께 하지 않았어요.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긴 했죠. 하지만, 그 당시에 하나님의 형상의 존엄과 가치가 그렇게 완전히 훼손되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한때는 제 라이프 스토리를 여기저기 많이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예수전도단에서 예수 믿게 된 이야기, 회심한 이야기,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야기, 결혼한 이야기, 많이 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요즘엔 그게 ‘내가 했어야 했던 소리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 라이프 스토리는요, “하나님을 믿었더니 인생이 이렇게 잘 풀리더라.” 이런 소리밖에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돼요.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가 뭐냐는 거죠.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한국 교회는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진짜 슬픔을 겪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야기를 못하죠. 불행이 생기면 자기 믿음을 점검하게 만들어요. 진짜 불행을 겪은 사람에게는 이것보다 폭력적인 것이 없어요. 제가 알고 있던 분 중에는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선생님이 있어요. 크리스천이었고 아주 훌륭한 특수교사였는데, 그런 불행이 닥친 겁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이런 얘기는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교수님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쓸 당시의 저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좋은 기독교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류의 기독교인은 아닌 것 같아요. ‘탈근본주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저의 내면이 정리되기 전에는 교회 쪽과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래서 교회와 관련된 설교, 강연 요청은 응하지 않았어요. 『교회 속 세상, 세상 속 교회』를 쓸 때에 제가 던졌던 질문 중의 하나는 “동성애가 성경이 말하는 죄인지 아닌지, 나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 여러분한테 왜 동성애자 친구가 없는지 스스로 질문을 해보라.” 는 것이 였습니다. 근본주의 신학 안에 있으면서 외곽에 있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불편해도 괜찮아』에서는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한 남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 한 여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을 넘었죠. 한국 기독교 신학에서 편하게 인정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겁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교회 분들의 비판과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각오하고 쓴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판과 공격에 힘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공격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좀 낯선 느낌이 찾아왔어요.
그것은 ‘내가 이런 사람들과 평생 살아왔구나.’라는 자각, 충격. 그런 것들이었어요. 저는 대학 때부터 성경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돌아보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리고 그것을 매일 일기로 남겨왔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와 관련된 공격을 받으면서 저의 신앙을 돌아보게 됐어요. 6개월 정도 성경을 안보기로 작정을 하고 정말 안 봤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성경을 읽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는지 생각하고 오늘은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성경 읽기가 어색하게 다가왔어요. 사람들은 저를 비교적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사람으로 분류를 해요. 저의 성향상 한국 교회에서 늘 공격을 받는 처지에 있을 때가 종종 있었고, 저는 저의 신앙을 방어하기 위해서 신학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었어요.
존 요더나 스탠리 하우어워즈, 월터 윙크 같은 사람들 책이 한국에 번역되기 전부터 읽어치웠죠. 영어 주석서들도 쌓아놓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아… 이제 그만 좀 하자.’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내가 신학자도 아닌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당신, 그렇게 이야기하면 기독교인 아냐.” 라고 공격이 들어오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보지.” 라고 웃고 넘어가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됐어요.
한국 기독교는 너무 피곤해요. 나를 옥죄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지고 좋더라고요. 6개월 후에는 성경도 다시 펴게 됐어요.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다시 성경을 읽으면서, ‘아… 내가 이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기독교인으로 보든 말든 상관없이, 나는 이것으로 살아가는구나.’ 생각했어요.
가끔 기독학생들이 저를 찾아올 때가 있어요. 신앙적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나 때문에 교회에서 어려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저는 요즘 널널한 기독교 신앙인입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유로운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람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쁜 사람 만나서 고생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변에도 저를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엄마들이 있어요. 우리 어머니도 좋은 엄마이고, 아내도 좋은 엄마고, 우리 딸도 일종의 좋은 엄마예요. 아빠를 긍휼히 여기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바깥에도 엄마 같은 친구들이 있어요. 좋은 환경과 자유를 누리고 살아왔죠. 이 자유를 다른 사람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 혼자 누리기는 아까워요. 저는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하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저 같은 사람들은 술자리에 가면 늘 긴장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긴장과 갈등에 굴하지 않고 술을 안마셨을 때, 우리는 자유를 느끼곤 해요. 그런 걸 다른 사람도 누렸으면 좋겠어요. 대학교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사발식’을 하더라고요. 선배들이 이 막걸리를 다 마시지 않으면 남은 걸 머리에 부어야 한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저는 그 때 막걸리를 하나도 먹지 않고 그냥 머리에 부어버렸어요. 그랬더니 주변 선배들이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황함을 박수로 수습하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게 됐어요. 나는 평생 술을 입에 한 방울도 대본 적이 없다, 이야기하곤 하는데, 요즘 들어서는 술 안마시고 사는 이것도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율법주의가 이런 율법주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포도주랑 치즈랑 놓고 혼자 한잔했어요.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이해의 한계, 한계를 타고 오는 또 다른 위선
법률 상담을 하다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제가 겪어보지 못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낙태를 겪은 여성들이 자기 사연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겉으로는
“그럴 수 있죠……. 그럼요. 그런 상황에서…….”
하지만 내 안에서는
“거 조심 좀 하지, 낙태 같은 건…….’
제 안에 이런 생각이 바로 들어오더라고요. 저는 그것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 겁니다.
저는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이웃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대개 깊은 고통을 겪고 스스로도 고통의 원인이 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주목할 만한 경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상대방을 볼 때에 ‘나도 그런 적이 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냥 안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 차이, 아시겠어요?” 그냥 안아주는 것과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 안아주는 것의 차이 말이에요. 저는 그렇게 못해요. 기독교인 김두식은 겉으로는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은 남을 늘 차갑게 판단하고 있지요. 아마도 제가 큰 죄를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럴 겁니다.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진짜 고통을 겪고 죄를 지어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너무 약해요. 누구도 그냥 안아줄 수 없는 거죠. 제 생각에는 말이죠, 좋은교사운동의 선생님들도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그냥 안아주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들 중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좋은 집에서 컸어요. 중산층이었죠. 먹고사는 거 걱정해 본 적도 없고요. 저희 부모님도 이상적인 부모님이셨어요. 싸움 한 번 하지 않으셨죠. 크게 어려운 일도 없었죠. 소소한 간증꺼리들은 있지만 정말 평탄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 삶이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 그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잘 사나. 그런 죄책감이 들기도 했죠. 그런 죄책감 속에서 약자들을 어떻게 보고 약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고민도 저의 한계 안에 갇히게 되더군요.
저는 성문 안의 사람이에요. 성문 안에서 편하고 행복하게 잘 살다가 어떤 계기로 성문 밖에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 뿐이에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도 그렇고 동성애자도 성문 밖의 사람들이죠. 성문 밖에서 자기를 들어내지 못하고 사는 사람에게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의 한계는 분명해요. 그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지만, 성문이 닫히는 시간이 오면 빨리 뛰어 들어와서 성문 안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 행위만 해도 사회적으로 굉장히 존경을 받더군요. 하지만 저는 제가 그런 ‘존경을 받아도 될 자격이 있을까?’, ‘또 다른 사기는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에게는 한계가 있죠. 중산층의 한계예요. 정말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고, 함께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육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시스템입니다. 엄마가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입시 제도를 이해하기 전에는 어떻게 대학에 보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정상인 것이 이상한 상황이지요. 저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사탄이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의 영향이 강하게 미치는 영역 중에 하나가 ‘교육 시스템’이라고 보고요. 아이들이 계속 죽어나가는데, 별 방법이 없어요. 교육개혁을 계속해도 우리 애는 좋은 대학 가야 한다는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런 욕망이 지금처럼 타오르는 이상,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탄은 이 시스템만 만들어 놓고 그냥 놀고 있어도 될 겁니다.
교육 문제는 우리의 위선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봅니다. 위선이에요. 저 자신에게서도 같은 위선을 봅니다. 교육제도의 문제를 늘 이야기 하지만, 이 살벌한 경쟁 속에서 우리 애는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보수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원하고, 진보는 진보적이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원한다.’고들 하더군요. 욕망이 너무 강해요. 저도 그렇고요. 그런 한계를 노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경건함이란 어떤 것인가요?
옳고 그름은 중요합니다. 정의가 있어야 하죠. 그릇됨이 있을 때에 그것을 응징하고 정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잘못한 것만큼의 처벌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변명을 너무 들어주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터지면 돌 던지는 일을 너무 잘합니다. 저는 최소한 앞장서서 돌을 던지지는 사람이 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경건이라는 건 정말 담백해진 상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죠. 제대로 된 경건함과 굳은 얼굴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담백한 사람이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이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게 됩니다. 규범으로 꽉 짜여서 단죄의 눈초리를 보내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사람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것이 경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성령님의 내주하시고 거기에서 자기 삶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는 규범성만 강조되고 있는 경향이 강해요. 하지만 이런 기독교가 정말 열매를 맺고 있나요? 아주 위선적이에요. 요새 ‘개독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위선에 질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근본주의적인 흐름에서는 위선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의심도 허용하지 않잖아요. 저는 그동안 교회 생활을 해오면서 의심을 품거나 자유롭거나 자연스러우면 저주를 받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자주 느꼈습니다.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해주면 좋겠어요. 판단하면서 이해하고, 판단하면서 용납하고, 판단하면서 안아주지 않고 그냥 안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헌법의 풍경』과, 『교회 속 세상 세상 속 교회』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의 단단한 목소리는 『욕망해도 괜찮아』이르러 좀 더 부드러워진듯하다. 그러나 그의 부드러움 속에는 그가 지우지 못한 단단함이 여전히 살아있다. 그가 의심을 이야기하고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그의 삶의 본질은 여전히 정의와 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그가 조금 부드러워진들 어떠하랴. 그의 삶은 그의 것인 것을. 그가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 나 또한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리라. 의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과 교감을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는 김두식 교수의 삶. 그의 앞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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