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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나는 교사다> 교단 일기 우수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홍 진 영

가을이의 행복

 올해 들어 좋은교사운동에서 실천하고 있는 가정 방문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도 한번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여 막상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기회가 왔다. 학교에서 추진하는 교육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몇몇 아이들의 가정 방문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반 가을이네 집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꼭 가보리라는 나의 마음이 아마도 하나님께 전해졌나 보다.

 가을이는 3월부터 지금까지 숙제를 제대로 해 온 적이 거의 없다. 아마 가을이에게는 ‘안 한다’는 표현 보다 ‘못 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학기 초에는 가을이를 이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가을이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하소연도 해 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식적인 가정  방문은 가을이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몇 번의 안내장과 가을이 할머니께 사정하다시피 허락을 얻어 내어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가을이네 집. 집안에 들어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을이는 형과 함께 열심히 컴퓨터 게임 중이었다. 잠시 후, 나를 마중 나가셨다던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솔직히 가을이 학교생활, 이런저런 지원 및 복지 문제로 할머니와 통화하면서 할머니 목소리가 조금은 퉁명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뵈니 인상도 정말 좋으시고 참 선해 보이셨다. 작은 체구 어디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숨겨 놓으셨는지 할머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을이 부모님 이야기, 할머니 집안 이야기, 가을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일, 경제적인 상황, 현재 출석하고 계신 교회 이야기까지. 놀랍게도 이야기가 하나씩 들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에 걸맞은 은혜를 함께 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문득 달력을 보니 내일은 5월 5일. 엄마는 회사에 나가셔서 며칠에 한 번 집에 오시고, 할머니는 신장 투석하러 아침부터 병원에 가셔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어린이날 덩그러니 집에 남겨질 가을이 형제가 안쓰러웠다. 나는 무작정 가을이 손을 잡았다.

 “가을아, 내일 어린이날이니까 선생님이 과자 사 줄게.”

 “아이고, 선생님 아니에요. 사 주지 않으셔도 돼요.”

 할머니가 한사코 사양하셨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남기고 가을이와 가을이 형을 데리고 슈퍼로 갔다. 각자 고른 과자 두 개씩을 양손에 들고 은근히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 왔다. 마음껏 과자를 고르지도, 좋아하지도 못하는 녀석들. 단돈 3,750원으로 두 명의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음 해부턴 이렇게 가정 방문이 좋으니 용기 내어 모든 아이들에게 꼭 실천해 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예야, 고마워

 월요일 오후, 직원회의를 다녀와서 짐을 챙기려는데 책상 위에 작은 선물과 편지가 놓여 있다.

 “선생님, 지예예요. 작년 선생님 생신을 까먹지 않고 기억해 두었어요.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선생님.”

 ‘어라, 오늘 내 생일 아닌데?’

 생각해 보니 이 녀석, 내 음력 생일을 양력 생일로 착각하고 선물을 준비한 게 아닌가. 포장을 뜯어보니, 캐릭터 삼색 볼펜과 머리끈 세 개가 들어 있다. 가슴이 찡했다. 지예는 어릴 적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언니와 셋이 살고 있는데 조용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무엇보다 항상 자신은 ‘잘하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는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반장도 하고, 발표도 공부도 더 열심히 하여 나에게 자주 칭찬을 받았었다. 알게 모르게 그 사실이 지예에게는 고마움으로 다가갔는지 별로 해 준 것 없는 나에게 지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함을 표현했다.

 ‘아직 내 생일까지 한 달도 더 남았는데’ 하면서도 미리 축하 받은 생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 혼자 이런 감정에 몰입되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불현듯 일전에 어떤 교수님이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누구나 교직 생활을 하면서 몇몇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이들의 말보다는 우리에게 실망하여 우리에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떠나간 수많은 아이들의 침묵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을 들을 당시 난 그동안 내가 참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하던 자부심이 일순간 무너졌던 기억이 났다.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침묵으로 나를 떠나간 아이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냥 오늘만큼은 나를 향한 지예의 마음을 마음껏 느끼며 나 스스로를 참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하고 싶다. 때론 이런 자부심이 내가 좋은 교사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영양분이 될 수 있기에.


근화야, 비오는 날 싫어하지 마

 근화는 다문화 가정 아이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3학년 학생 중 혼자 올 백점을 맞았는데 그 비결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나를 바라보는 근화의 눈빛으로 알 수 있다. 근화네 집은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고, 남들에게 말 못할 사정도 있지만 그래도 항상 긍정적이고 성실한 근화를 보면 어른인 내가 오히려 근화에게서 더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 다음날, 집에서 일기 검사를 하는데 근화의 일기장에 비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이 싫다. 내가 어렸을 때 중국에서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아끼는 목도리와 보라색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엄마는 나중에 다시 사 주시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일기 검사를 끝내고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오래전에 선물 받은 내 보라색 목걸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 선물이 다른 사람에게 더 의미 있게 사용되는 것이 나에게 선물을 준 사람에 대한 예의인 듯싶어 보라색 목걸이를 예쁘게 포장하여 다음날 학교로 가져갔다. 종례를 마치고, 근화를 조용히 불렀다.

 “근화야, 이거 보라색 목걸이인데 선생님이 근화에게 선물로 주는 거야. 앞으로 비오는 날 싫어하지 마.”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감정 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 근화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쁨으로 활짝 밝아지는 근화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기뻤다. 다음날, 가장 먼저 근화의 일기장을 검사했다.

 “오늘 선생님이 나에게 선물로 목걸이를 주셨는데, 신기하게도 예전에 내가 잃어버린 목걸이와 비슷했다. 난 앞으로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목걸이를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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