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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우리 서로 기다려 주자


 담임 엄마의 말랑말랑 연애편지 14
우리 서로 기다려 주자

이 여 진


나 상담 끝낸 교사야

 드디어 상담의 끝이 보인다. 음화화홧! 너희들은 나의 이 희열을 모를 것이다. 마지막 상담이 끝나는 순간 담임이 느끼는 감동이란…. 냐하하. 한 열 명 정도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상 넘어가면 점점 기력이 쇠잔해지면서, ‘아, 오늘은 딱 10분만 상담해야지!’ 음흉한 마음을 먹지.

 그런데 또 해 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아.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비록 내가 가진 것들이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것을 말해 주고 싶다는 욕심. 위로와 희망을 담아서. 자신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협박(?)하면서.

 스무 명이 넘으면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아, 그만 두고 싶다!’ 하는 사악한 욕망.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상담을 중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담임이므로 에잇! 다시 힘을 내는 것이다. 에헴.

 그래서 상담이 다 끝날 때쯤 되면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 수고했다’ 백만 번 칭찬해 주고 이 솟구치는 뿌듯함을 만끽하지. ㅋ 그리고 상담 전보다 훨씬 더 아이들을 가까이 느낀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하면 그전보다 더 마음이 짠하고, 야단을 칠 때도 정말 좀 뭐랄까, 내 새끼들 야단치듯 그런 마음이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상담을 참 중요하게 생각하고, 힘들어 하고 그리고 좋아하는 것 같아. 나중에 나중에 나이가 많아져서, 힘이 다 빠져서 내가 상담을 귀찮아하는 담임이 된다면, 아이들을 사랑할 힘이 없어진다면 그땐 학교를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는 좀 더 많아져 있을 고 아름다운 월급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난, 난, 난, 정말 멋진 바느질 할머니로 변신할 테다.


한 달 동안 쓴 담임 샘의 일기야

 작년부터 봐 와서 그런지 11반이랑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냥 같이 살았던 사람들 같다. ^___^ 참 붙임성들도 좋고. 아주 나의 교무실을 놀이터 삼아 왔다 갔다 하고. 어찌나 밝고 즐거우신지들. 난 수학여행이 두렵다. 우리 반 별난 거 2학년 전체에 소문날까 봐. 사실 체육 대회가 더 두렵다. 1, 2, 3학년 전부 다 우리 반의 실체를 알게 될까 봐. ㅋㅋ

 위에 쓴 일기는 그냥 샘이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하는지 보여 주려고 조금 담아 와 봤어. 사실 저게 한 달 내내 쓴 일기의 전부다! 뭐가 이렇게 바쁜지 집에 오면 일기 쓸 시간도 없이 바로 바로 숙면에 들어간다는. 일기를 써야 마음과 생각이 그림자처럼 비추어지고, 더 아름답게 살자 다짐도 하게 되는데. 생각을 다듬을 겨를도 없이 해마다 더 바빠지는 것 같다. 교사가 된 이후로 왜 나는 좀 더 이 삶에 익숙해지고 여유로워지기보다 오히려 더 바쁘고 피곤해 지는 것인지. (샘 나이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당신! 문ㅈㅎ!)

 아마, 내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럴 거야. 대강대강 살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라서. 욕심 많은 담임 만나서 너거들도 힘들제? (고개를 수없이 끄덕이고 있는 ㅁㅈ혜.)


너희들을 만나기 위해 교사가 된 거야

 여태까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의 그림이 다를 수 있단 생각을 한다. 샘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교사가 꿈이었고, 그래서 교사가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생각 속에서만 살았던 것 같아.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의 그림 속에서 내 관점으로 말하고, 가르치고, 야단치고….

 얘들아, 샘도 매일매일 더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할게. 지금 내 모습 속에는 아직도 미숙하고, 부족하고, 모난 모습들이 많지만 너희들의 아이를 내가 다시 가르칠 때까지 성실하게 더 성숙한 교사로 자라 갈게. 그러니 우리 서로 기다려 주자.

 11반의 좋은 점은 밝고 명랑한 것. 수업 시간에 방청객처럼 ‘크화홧’ 우렁차게 잘 웃는 것. 틀린 답도 크고 씩씩하게 말하는 것. 거짓말하거나 가식적이지 않은 것.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것. 쌈이(우리 반의 애완 식물)를 잘 키우는 것. 예쁜 것. 잘 먹는 것. 작년 한 해 자유롭게 살다 와서 힘든 것도 많을 텐데 그러려니 적당히 포기하고 나름 빡빡한 내게 적응해서 사는 것. 컴퓨터 바탕 화면 잘 바꾸는 것. 단합이 잘되는 것. 털털한 것. 옛 습성(?)을 버리고 열심히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 날마다 새 마음을 품는 모습들.

 11반의 쫌 그런 점은 많이 야한 것. 교실이 사뭇 더러운 것. 자기 청소 구역 자기가 청소 안 하면 다른 친구가 더 힘들다는 것을 몰라주는 것. 레드 포인트가 제일 많은 것. 샘이 말할 때 소곤소곤 떠드는 것.

 어? 이상하다. 편지 쓰면 우리 반 반성할 것 다 적어 줄라고 그랬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까 쓸 게 별로 없다. 에잇, 팔불출 담임 같으니라고. ^____^a 다음 편지 땐 고민 많이 해서 나쁜 점 좀 찾아볼게. 이번 주말엔 잠 충전 좀 많이 하고 샘이랑 도서관 가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꼭 승리하길.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용기. 알지?

 누가 뭐라고 해도 너희들은 나의 꿈이야. 손발이 오글거리는 말,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그래. 나는 너희들의 담임이 되기 위해서 아주 오래 전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던 거니까.


즐거운 토요일
꽃단풍 붉은 수액으로 달리는 충전식 미래 자동차
몽 양과 함께하는 신나는 출근길.
그러나 구형 아반떼는 여전히 나의 적!
어리바리 엄마 담임 여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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