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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사람들이 무서운 말없음표 공주님#2



<나는 교사다> 교단 일기 최우수
사람들이 무서운 말없음표 공주님#2

장 종 심


딸을 안 키워 봐서

 집으로 가려다가 말없음표 공주님 집에 가정 방문을 가기로 했다.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집 근처인 듯한 곳에 주차를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빠를 불러내었더니 남매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왔다.

 “선생님, 우리 방을 못 닦았어요.”

 “그래? 선생님이 가면 미리 방을 닦아 놔야 되는 거야?”

 “네, 그래요.”

 별 걱정을 다한다.


 할머니 거동도 불편하시고 집안 사정도 어려운 듯해서 의료 보험 영수증을 찾아서 아이 편에 보내 주면 급식비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좋아하셨다. 아이가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오는데 갈아입을 옷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공주님이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서는 티셔츠랑 웃옷 하나를 들고 나왔다. 입혀 보니 겉옷은 사이즈가 커서 아무래도 활동이 불편해지니 갈아입지 않는 것 같았다. 할머니로부터 이런저런 집안 사정 이야기를 듣다가 아이 어머니가 일하는 가게로 가 보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남매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가게에 들렀지만 가게 주인 눈치도 보이고 어머니 입장도 편하지 않으신 것 같아 잠시 머물렀다가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우리 교실에 가서 놀면 안 돼요?”

 “학교 문 다 잠갔는데? 선생님이랑 놀고 싶어?”

 “네.”

 “그럼 선생님이랑 시내로 쇼핑하러 갈까?”

 “네, 좋아요.”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시내 옷 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옷들을 입혀 보고 티셔츠랑 바지를 몇 벌 골랐다. 오빠가 입을 옷이 적당한 게 없어 여기저기 둘러보니 공주님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너무 많이 샀어요. 이제 그만 가요.”

 “오빠 옷은 아직 못 골랐는데?”

 다른 가게 몇 군데에 들러서 티셔츠 두어 벌이랑 겉옷 한 벌씩을 더 샀다. 손을 꼭 잡고 길을 가는데,

 “선생님, 오늘 돈 너무 많이 썼어요.”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된 녀석이 남의 지갑 걱정까지 해 주다니 참으로 기특하기는 한데, 딸을 안 키워 봐서 다른 집 딸들도 그러는지 모르겠다.


공주님은 요리사

 “이제 교실에서 큰 소리로 발표도 하고 그럴 거야?”

 “네, 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 공주님은 장래 희망이 뭐지?”

 “요리사요. 맛있는 요리를 해서 오빠에게 줄 거예요.”

 “그럼 선생님도 우리 공주님이 요리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겠네?”

 “네, 나중에 제가 요리를 하면 선생님에게 제일 먼저 드릴래요.”

 오늘은 기특한 말만 골라서 한다.

 “제가 요리사가 되면 선생님은 뭐가 되어 있을 거예요?”

 “선생님은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그럼 그때도 이 머리를 그대로 하고 있고, 옷도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야 돼요.”

 “왜?”

 “그래야 제가 선생님을 찾을 수가 있잖아요.”

 “넌 선생님 딸 한다고 해 놓고서는 나중에 찾긴 뭘 찾니, 지금부터 늘 함께 있을 건데.”

 “아, 맞네. 그럼 안 찾아도 되는 거네요?”

 “그래, 인석아.”

 “히힛.”


하나님, 말없음표 공주님과 깜빡이 왕자님을 부탁해요

 남편과 함께 말없음표 공주님과 공주님의 오빠인 깜빡이 왕자님을 교회에 데리고 갔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실 거야.”

 “정말이에요?”

 “응.”

 “눈 깜빡이는 버릇도 고쳐 주시고, 발표도 잘하게 해 주시고, 공부도 더 잘하게 해 주시고. 음… 또 앞으로 부자로 행복하게 잘살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면 틀림없이 들어주실 거야.”

 “네.”


 말없음표 공주님의 오빠인 깜빡이 왕자님은 재작년에 내가 맡았던 아이인데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입까지 실룩거리는 묘한 버릇이 생겨 있었다.

 “요즘도 수업 시간에 발표 잘하지?”

 “안 해요.”

 “왜? 2학년 때는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서 학력상도 받았잖아? 너 머리 엄청 좋은 거 선생님이 알고 있는데?”

 “그때는 그랬는데….”

 “작년에는 학력상도 못 받았니?”

 “네.”


 공부에 대한 긴장이 심해서 그런지, 아니면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그런지. 눈을 심하게 깜빡이는 버릇도 얼른 고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될 것 같아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아이를 안과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시고 어머니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며 난감해 하기에 의료 보험 카드를 아이 편에 보내 주시면 퇴근 후에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눈을 깜빡이는 습관도 정신적인 불안이 원인일 수가 있으니 어쩌면 지금 말없음표 공주님보다 깜빡이 왕자님의 상황이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대예배가 끝나고 교회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대부분 어른들만 식사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불편할 거라며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자고 남편이 우겼다.

 “선생님은 늘 바빠서 집안 정리도 못 하고 잔뜩 어질러 놨는데 어쩌지?”

 “괜찮아요. 선생님 집에 가 보고 싶어요.”

 공주님이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오늘은 사태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학년 초부터 담임과 특별한 친교를 나누면서 공주님은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고, 점차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법을 터득하여 한 학기가 다 가기도 전에 못 말릴 정도의 수다쟁이로 변신을 했답니다.

 아이의 오빠도 학교생활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눈을 깜빡이는 틱 장애가 생겼지만 안과 치료를 받고 안경을 착용하게 되면서 상태가 점차 호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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