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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 세계를 품다

우간다 에피소드 #10. 자존감 높이기 (홍세기 선교사)

기독교사 세계를 품다 10

 

우간다 에피소드 #10. 자존감 높이기

 

홍세기

 

77학번 교대 동창생들이 만든 브라스 밴드팀

친구들끼리 아프리카에 한번 가자고 이야기하던 것이, 모두 교직을 은퇴하고서야 실현되었다. 이들은 그냥 오지 않고 학교에서 브라스 밴드를 시작할 수 있도록 각종 악기를 들고 왔다. 졸업 후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동창생 밴드 팀이 주축이 되어 악기를 모으고, 운반이 어려운 악기는 이곳에서 사도록 돈을 보내왔다.

이를 계기로 25명의 우리 학교 학생 밴드 팀이 구성되고, 방문 기간에 창단식과 기본 레슨을 진행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지금, 우리 학생들은 악기를 불며 행진을 하고, 의식에 필요한 우간다 국가, 교가, 부족가 등을 다 불고 두들길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나게 빨리 발전하는 밴드 팀 열정에 감동한 어떤 분이 유니폼을 기증하겠다 했다. 그리고 이번 11월 말 졸업식에는 이 팀이 손님맞이 음악을 연주하며 행진을 하게 될 것이다. 강당에 드럼도, 전자기타 하나도 없던 학교에서 5년 만에 숙원 사업 하나가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제 학생들은 예배 시간에 드럼, 기타도 치고 나팔도 치켜들어 불어댄다.

 

 

환경과 역사의 영향으로 얻게 된 지금의 정체성

아름다우며 신사적이고 공부하기 좋아하고, 열대 태양 아래서도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더불어 자연환경도 이렇게 좋은 상황에서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자주 질문을 해 왔다. 이에 대하여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 , 에서 지리, 지형, 기후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노암 촘스키는 507년 정복의 역사는 계속 된다라는 책에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정복의 시기에, 아프리카에도 온 유럽인들의 침략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지리, 환경적인 이유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정복자들은 온갖 괜찮은 것들을 다 가져갔다. 사람들을 노예로 붙들어가고 사고팔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자존감은 저 땅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미 독립은 되었고 여러 면에서 자립하는 것 같지만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여전히 종속되어 있고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도 혼미한 상태다. 이런 일에 대해서 화를 내고 원인을 찾는 것이 정상일 텐데, 이 착한 사람들은 가난과 배고픔을 자기들 탓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자존감을 다시 찾으려면 역사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는데 역사라고는 대부분 서양 사람들이 쓴 자료들 뿐이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00년 세월을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잃어버린 정체성과 신앙, 비전을 회복하기 위해 광야가 필요했듯이 이들에게도 하나님을 경험하고 신앙을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신앙과 정체성 형성, 말로 가능할까

하나님의 나라를 욕망하라등의 책을 쓴 제임스 스미스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인 하나님의 나라는, 논리적으로 가르치기 이전에 그 나라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체득하며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교육에 대해서 제임스 스미스의 접근법에 동의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말을 하지 않거나 꼭 해야 하면 짧게 한다. 중요한 행사에서 말해야 할 때는 써서 읽는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학교 교직원들을 관리하고 학교 교육과정이나 환경을 잘 조성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쓴다. 몸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움직여 일하며 의미를 전달하고, 학생들을 환대하는 환경을 조성하므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모두를 위한 좋은 교육 공간을 만들어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성령께서 인격적으로 역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학기가 시작될 때면 잔디도 잘 깎아 놓고, 필요한 건물 수리도 해 놓으며, 교직원들과 교육활동 준비도 최대한 해 놓는다. 학생들 환영 파티도 준비하고 직원들 사기 진작도 도모한다.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환경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기본 교육 자재들이 부족한 이곳이라서 더더욱 교수진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이 여기서는 더 중요하다.

 

교직원들과 함께 간 머치슨 폴(Muchison Fall)

이번 학기 시작 전에는 큰마음을 먹고 교직원들과 머치슨 폴(Muchison Fall)에 다녀왔다. 한국서 온 손님들 모시고 나는 이미 여러 차례 가보았지만, 정작 우간다 사람들은 거의 가보지 못한 곳이다. 거리가 멀어서 특별 차량이 필요하고, 입장료도 내야 하며, 숙박을 함께 해야 하는 등 거금이 들어가는 여행이다. 학교 이름이 새겨진 버스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다녀왔다. 아주 잘 구경하고, 좋은 곳에서 잘 자고 잘 먹었다. 공부 좋아하는 교수들을 데리고 게임하고 춤추며 놀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모두에게 머치슨 여행은 처음이었고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신기해했다.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는 가족들과도 나누라고 칠면조 살만한 돈을 격려금으로 주기도 했다.

 

새 강당 옆 카페 만들기

지난해 완공한 새 강당은 얼마나 요긴하게 쓰는지 모른다. 올해 학생들이 늘어나기를 예측이라도 한 듯, 한국의 어떤 아름다운 사람이 이 건물을 지어주었다. 학생들은 여기서 집회도 하고, 수업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운동도 한다. 많은 사람이 떼지어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 이곳 문화상 공간이 큰 건물은 모두의 로망이었다. 엊그제 강당 옆에 전통 양식의 카페를 하나 짓고자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필요한 공간을 다 만들지는 못해도 기초에 기둥 세우고 나무를 얽은 후 풀을 얹을 예정이다. 괜찮은 호텔에 가면 볼 수 있는 분위기 있는 카페를 만들 것이다. 망고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는 교직원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고, 강당에서 예배를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눌 공간이 될 것이다. 한국 선교사 사모님들은 어서 여기서 빵도 굽고 커피도 제공하고 싶어 한다. 사랑 담긴 음식을 먹으며 앉아 책도 읽고, 성경 공부를 하는 모습도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5년 전에 드린 기도의 응답

부산의 피자 가게를 운영하시는 장로님께서 분점을 내면서 후원비를 증액하여 학생들에게 월-목요일 점심 급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존심 보호를 위해서 그냥 주지 않는다. 월요일 성경읽기, 화요일 소그룹 성경공부, 수요일 독서, 목요일 봉사활동 클럽활동에 참여한 학생에게 급식을 제공한다. 원래 계획으로는 이 후원금액이면 금요일도 제공할 수 있었는데,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아직은 나흘만 운영한다. 5년 전, 영양실조로 죽은 얼굴도 모르는 한나라는 학생의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드렸던 기도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선교사님들이 정기적으로 헌금도 하고 바자회 후 주신 기금으로 야외용 책상 의자 30개를 만들어 나무 아래 놓을 예정이다. 거기 앉아서 의기양양 음식을 먹는 모습도 며칠 후면 볼 수 있다.

 

 

마구 뛸 수 있는 운동장 만들기

학교 땅이 거의 평지여서 운동장은 불도저만 동원하면 쉽게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진척이 잘되지 않는다. 땅이 넓어 평탄 작업이 쉽지 않고, 잔디 심기, 수도 화장실 시설구축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게 잘 만들어지면 우간다 북동부 지역에 유일한 국제규격의 운동장이 된다. 우리 학생들도 달리고, 지역 초중고 학생들도 와서 달릴 수 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달리기경기를 좋아한다. 내가 잘 달리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해 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쿵쿵 뛴다. 훈련한 만큼 성적을 내는 정직한 종목이 달리기다. 특별히 아프리카 사람들은 달리기에 특화된 체형을 가지고 있다. 중장거리 현 세계 챔피언 죠수아 쳅티게이는 우리학교 학생의 가까운 친척이다. 맨발로도 할 수 있는 달리기 명문학교가 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개미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의 헌금으로 공사는 진행되고 있다. 운동장 공사장에 가면 사람들은 운동장을 만들어 주어서 대단히 고맙다.’는 말을 한다.

 

 

학생들도 부응하여 뭔가를 하고 있다

사범대 미술과 학생들이 학교에 조형물 하나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도서관 앞에 컴퓨터를 들고 공부하는 학생 모양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우리학교 최초의 예술 작품이다. 두 번째로는 정문 앞에 학교 로고를 탑으로 만들어 세웠다. 지난 방학에는 농학과 건물 앞에 농사 기술로 세계를 섬기자는 뜻의 조형물을 세웠다. 만들어 놓은 모양이 제법 괜찮아서 보는 이들마다 그 앞에서 사진 찍으며 좋아한다. 오래된 학교 싸인 보드들도 모두 제 색깔을 입혀 놓았고, 무불레 나무 밑에 농학과 실습 농장을 위한 야외교실도 만들어 놓았다. 방학이면 이렇게 하나씩 만들어간다. 이번에는 학교 본관이 세워질 자리 앞에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 나라의 좋은 일꾼이 되자는 뜻의 조형물을 만들겠다고 한다. 아직 본관 건물은 디자인만 하고 돈이 없어서 시작도 못 하고 있는데 건물 앞 작품이 먼저 생기게 되었다. 이번 학기로 졸업하는 키 크고 잘생긴 미술교육과 학생들이 그리울 것이다.

오랜 기간 종살이를 경험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많았듯 수백 년 침탈의 역사를 겪은 이곳 사람들에게 역시 그런 회복의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들으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천혜의 자연에 대해 감사하며, 모여서 대화하고 먹으며 쉬고 교제하면서 느끼는 그 사랑, 그리고 긴 다리로 잘 달리는 몸에서 나오는 자신감,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산할 기회와 자유, 이런 것들이 내가 말이 아닌 행동과 환경으로 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들이다. 아픈 역사를 이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서는 사람들 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다. 그래서 아픈 과거의 역사를 사랑으로 세상에 되갚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올해는 가진 것이 없어서 무엇을 하자고 말도 잘 못하는 학생들에게 졸업식 전에 송별 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하고 한껏 힘을 넣어 사회로 보내 줄 것이다.

자신들의 어렵던 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우리학교에 밴드팀을 만들어 학생들의 자존감을 한껏 일으켜준 동창생들이 고맙다. 머치슨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교회도 고맙고, 장로님이 고생하며 일군 부산의 피자 가게는 아주 아주 잘 되기를 기도한다. 카페 건축 자금을 보내주신 피부과 원장님, 학교의 어려운 일을 모두 극복하게 도와주는 개미가족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전한다. 이 밖에도 우리를 돕는 많은 분들의 지원과 사랑이 이곳에서 열배 백배 열매를 맺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 사람을 만들고 있음을 밝힌다.

 

홍세기 우간다 쿠미대학교에서 6년째 일하고 있다. 지난학기 학교에 어려운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늘어나서 긴장하고 있다. 아내 강학봉은 부녀자들 30여 명과 퀼트 공방 작업을 변함없이 성실히 하고 있다. 한국에는 어머니, 딸 하늘, 아들 이삭과 가족들이 살고 있다. ukarum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