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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 세계를 품다

우간다 에피소드 #11. 슬픈 찰스 아저씨(홍세기 선교사)

기독교사 세계를 품다 11

 

 

우간다 에피소드 #11. 슬픈 찰스 아저씨

 

홍세기 선교사

 

미스터 아곤 찰스(Mr. Aogon Chals)

미스터 아곤 찰스는 우리학교 교직원이다. 나무와 꽃을 관리한다. 몸집은 크지 않은데 점심시간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서 내가 종종 놀리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깊은 주름을 보이며 싱긋 웃었다. 어느 날 학교 관리직원 회식 자리에서 자녀 수를 확인해 보니 그에게는 8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가 수줍게 자녀 수를 말할 때 우리는 모두 웃었다. 저 약한 몸에 어떻게 여덟을 낳고 키우는지 의아하다는 나의 표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원들 모두 자녀 수가 대여섯은 되는 데다가, 두 부인에 13명의 자녀를 둔 다른 직원도 있었기 때문에 찰스 아저씨의 경우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마음도 약해진 찰스 아저씨

최근 들어 아저씨가 맡은 일을 잘하지 못했다. 학교 정원에서 긴 칼을 몇 번 휘둘러 나무를 다듬고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기를 반복했다. 그냥 보기에도 너무 힘이 없어 보였다. 학교 시설 관리 책임자를 통해서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두 번째 아내가 도망가 버리고 몸은 아픈데다가 아이들 돌보는 일도 벅차서 성실하게 일하지 못했다는 말을 전해왔다. 사실은 계속 이렇게 하면 학교에서 더는 일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려고도 했었다. 그러기 전에 혹시 무슨 사정이 있는지 먼저 알아보려 한 것이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형편을 알아주는 이가 있구나 싶어서인지 이후 아저씨는 힘을 내어 학교 정원수 관리를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는 급여가 낮은 분들을 위해서 부업이 될 만한 일을 주선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약한 몸으로 열심히 일해 주었다.

 

 

막내아들의 죽음

그런데 며칠 전, 아저씨의 일곱 살짜리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죽는 일은 흔한 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아들 장례는 학교와 멀지 않은 그의 집에서 치러졌다. 아들의 묘지는 가족이 살고 있는 집터에 만들었다. 우리 마을 부족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울타리 안에 죽은 가족의 묘지를 만드는 풍습이 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죽어도 여전히 한 가족으로 가까이 두고 그를 기리며 산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가족들을 위로했고 나도 그 자리에 갔다.

죽은 아들은 말라리아에 걸렸고 처방이 늦어져 죽고 말았다고 했다. 찰스 아저씨의 둘째 부인이 막내아들을 데리고 다른 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고, 장례를 위해서 아들의 시신을 운구해 왔다고 했다. 주름진 얼굴에 슬픈 장례를 치르는 그를 바로 볼 수 없어서 그냥 거친 손을 붙들고 등을 두드려 주고 되돌아왔다.

 

 

아저씨의 둘째 부인

직원들이 아저씨와 부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나는 이미 몇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첫째 부인과 결혼 후 네 명의 아이들을 얻었다. 그런데 그 첫째 부인이 무슨 연유로 아이들 곁을 떠났다. 네 명 중 한 명의 아이는 그녀가 새로 결혼한 집으로 데리고 갔다. 찰스 아저씨는 첫째 부인에게서 신붓값 세 마리 소를 돌려받았고, 그것으로 둘째 부인을 데려왔다.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네 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그런데 얼마 전 둘째 부인 역시 찰스 아저씨 곁을 떠났다. 막내를 데리고 갔으나 다른 아이들 셋을 두고 나가 버렸기 때문에 찰스 아저씨는 부인 없이 혼자서 여섯 명의 아이들을 키우게 되었다.

아저씨는 젊고 자기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 둘째 부인을 데리고 오면서 공부를 더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실제로 아저씨는 약속을 지켰고 두 번째 아내는 유치원 교사가 되는 공부를 했다. 문제는 졸업 후 교사가 된 후 생겼다. 둘째 부인은 취업하면서 근무하는 학교 사택에 기거하게 되었고 얼마 후부터 아예 집에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정원관리사인 남편과 유치원 교사인 자신 사이에 수준의 차이가 생겼고, 이 때문에 더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 일하게 된 학교에서 자신의 수준에 맞는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날 장례에 참석한 많은 사람 속에 둘째 부인도 있었다. 죽은 막내, 남겨진 아이들, 늘어진 어깨의 찰스 아저씨의 인생까지 모두 그녀의 책임인 것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자들의 어리석은 약속

우리 마을 남자들은 종종 젊은 아내를 데리고 오면서 공부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이 약속을 지킨 남자들은 종종 이혼을 당한다. 찰스 아저씨와 같이 아내가 학력 수준이 높아져 현재의 남편과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이 이혼의 이유가 사실이라면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까. 우간다 가정에서 무엇인가가 잘못되면 나는 모두 다 남자들이 잘 못 한 탓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정 살림이 힘들어도, 남편들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녀도, 여자들은 낳은 아이들 책임지려고 저렇게 애쓰고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하다는 말을 듣는다. 물론 부부간에 사람들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말이 회자 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매우 의아하다. 부부간에 헤어질 다른 이유가 설령 있다고 해도 아이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그 어미의 마음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남겨진 아이들은 쉽게 병들고 죽는 경우가 생기니 말이다.

 

 

홀아비 곁에 남겨진 아이들

찰스가 학교에서 왜 그렇게 밥을 많이 먹는지 이해가 되었다. 부인 없이 아이들만 있는 집에서 무엇을 제대로 먹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회식하던 날 접시에 얹어놓은 엄청난 양의 음식이 어느 순간 거의 다 없어지는 것을 본 일도 있었다. 아이들 생각에 찰스가 어딘가에 담아놓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집안 살림은 고1이 된 딸이 한다고 했다. 엄마 없이 아이들만 여섯 있는 집안 살림이 어떨지 상상이 된다. 학교 일 말고도 틈틈이 농사를 지어야 생활할 수 있는 형편인데, 그 여윈 몸으로는 농사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아저씨의 고통을 모른다. 아내가 떠난 슬픔도, 아이가 죽은 아픔도. 신앙 좋은 아저씨는 막내가 천국 갔으니 괜찮다며 울지도 않고 눈만 끔벅이며 장사를 지냈다. 나는 아들을 잃은 아비의 마음을 모르지만, 더 모르는 것은 이제 쉰다섯이나 된 나이에 아내도 없이 남은 여섯 명의 아이들을 키워내야 하는 찰스 아저씨의 무거운 마음이다. 벌이도 시원치 않고, 44kg밖에 나가지 않는 여윈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여섯 아이는 또 어떤 마음일까. 아들 장례를 마치고 다시 출근한 슬픈 표정의 아저씨를 불러서 더 처진 어깨를 두드리며 생활비를 좀 쥐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현대 사회로의 적응과정에서의 어려움

부족사회에서 유목이나 농경을 생활 수단으로 삼았을 때도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내가 사는 이곳 시골 사람들의 삶은 그야말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먹을 것은 농사를 지어 해결하더라도 아이들 교육시킬 돈을 벌기 어렵다. 그래서 어디든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면 몸을 불태우듯 쫓아다녀야 한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경우에도 여자들이 집을 떠나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다 가정이 잘 못 되는 경우가 생긴다. 살림하는 여자들의 경우 벌이가 더 괜찮은 남자를 찾아서 떠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면 남겨진 힘없는 남편과 영문도 모르고 내쳐진 아이들은 그렇게 생존을 이어가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니 누구를 정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저씨의 부인이 되돌아온다면

찰스의 둘째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이 남편과의 수준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낳은 네 아이와 아저씨가 첫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이들 셋을 모두 키우는 것이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농사와 집안일에 매달려 십여 년을 아이를 낳으며 살아봐도 별 희망이 없으니 갈등도 심해졌을 것이다. 공부하여 교사가 되어 돈을 벌어 가사에 보태려고 하다가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부부간에 남들이 이해 못 하는 다른 어려운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부인이 집을 나간 경위야 어떻든 착한 찰스 아저씨는 두 명의 부인 중 하나라도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둘째 부인이 돌아오면 더 좋겠다고 했다.

기다리면 그녀는 돌아올 것인가. 언제까지 기다리면 아이들은 엄마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찰스는 점심밥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도 될 것이고, 남은 음식을 챙기느라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보는 아프리카의 슬픔은 찰스 아저씨의 검고 여윈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깊다.

 

 

홍세기 선교사

우간다의 한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 학기를 마치면 안식년을 맞는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 자녀 이삭과 하늘, 손주들과 지내며 교사선교회 동역자들을 만날 날을 기다린다. 아내 강학봉은 지난해 연말, 퀼트 공방 부녀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으로 재봉틀을 사 자립기반을 만드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ukarum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