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만남

제가 만나는 아이들은 참 좋은 씨앗입니다(2014.02)

제가 만나는 아이들은 좋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왜곡되게 자란 자신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좋은 씨앗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좋은 씨앗으로 보고 그 안에 감춰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그 땅을 개간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서울 인덕공업고등학교 이강은 선생님

제가 만나는 아이들은 

참 좋은 씨앗입니다

 

 

 

글 / 사진·김기웅

 


 

 

 

 

여기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전국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다녀오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경기 평택, 충북 진천, 울산, 인천 강화, 경기 안산, 경기 파주 등 많은 곳을 다니셨지요. 어른의 눈으로 사업장의 환경과 업무 분위기를 보고 제자들이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이 발걸음은 얼마나 큰 의지와 위로가 될까요. ‘다음 주 한 학생을 울진으로 취업을 보낸다. 좋은 회사이긴 하지만 어린 나이에 멀리 보내는 것이 부모도 교사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곳의 현장 소장님이신 김 상무님께서 귀한 메시지를 주셨다. 이런 기업이면 믿을만하지 않겠는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바로 이강은 선생님이 제자가 취업할 기업의 임원과 문자를 주고받은 후 SNS에 남긴 글입니다. 선생님은 부모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모도 미처 내려가지 못할 그 길을 선생님은 함께 합니다. 이런 선생님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상의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학생이었던 시절 이런 선생님이 한 분만 계셨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라는 질투가 섞인 아쉬움을 내뱉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SNS에는 유난히 많은 제자들이 찾아오고 현재와 또 미래의 각오를 남깁니다. 선생님의 특별함, 어디에 있을까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우리는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성실하고 겸손하여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저희집 가훈입니다. 이렇게 긴 가훈 들어보셨나요? 흔한 ‘정직’도 아니고, 성경구절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침이면 아들 형제를 앉혀 놓고 이 가훈을 외우게 하셨습니다. 이 가훈을 외워야 하루가 비로소 시작되었지요. 아침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유능한 사람, 유명한 사람, 특별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 어머니의 가르침을 그때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매일 같이 외우는 가운데 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이후 인생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어머니의 가르침은 제 삶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장로님이신 아버지와 권사님이신 어머니 아래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맹목적인 신앙을 가졌던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고2때 참석한 수련회였습니다. 교회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중3 여학생이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제껏 오랜동안 교회를 다니며 기도를 해도 저런 은사를 받지 못했는데, 이제 1년 갓 다닌 아이가 방언 기도를하다니….’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궁금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3이 되어 수련회 기간이 되었습니다. 고3이라면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다들 분주했지만, 저는 학력고사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수련회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련회가 되어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든 고3 친구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너 시간 동안 눈물로 기도하는데 지치지 않았고 더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닌 기도는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게 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나도살아있는하나님을경험하게해주세요.’하는저의작은기도에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을 보며“기도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이때가 하나님을 제 인생의 스케줄보다 우선으로 모셨던 첫 번째 순간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기도로 훈련받고 눈이 뜨이다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야간, 새벽 비행, 여름이면 뜨거운 활주로의 열기로, 겨울이면 끝이 안 보이도록 넓은 활주로의 눈을 치워야 하는 외롭고 힘든 공군! 저는 기체정비특기로 공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저는 군대에 가기 전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 생활 동안 주일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 신앙이 더 성장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저는 기체정비 특기를 받았지만 24시간 비상 체제인 정비 컨트롤 타워 근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근무하시는 선임 하사님의 도움으로 주일 성수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병이 교회를 자유롭게 다닌다는 것에 불만이 있었던 선임병도 있었지요. 크리스천인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뿐이었습니다. 공군교회가 근무지에서 뛰어서 5분 거리라, 새벽 5시면 일어나 감사하며 교회에 뛰어갔습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새벽기도를 한 후 6시가 되기 전에 또 뛰어와 선임병들을 깨우는 일도 제가 맡았습니다. 제대할 때까지 새벽기도 습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군 생활 동안 찬양팀, 교회학교 교사 등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병장 말년에는 군 생활을 했는지 교회생활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지요. ‘군대에 있을동안 신앙이 끊이지 않고 성장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참 감사했습니다.

선임병들과 소통하기 위해, 크리스천으로 더 철저하고 꼼꼼히 일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얻었습니다. 울산에서만 살았던 청년이 전국 각지에서 온 청년들을 대구에서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참 작았던 나를 발견하고, 제대 후 서울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편입학을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은 군 생활 동안, 세 가지 기도 제목에 다 응답하셨습니다. 저는 기도의 훈련을 쌓았고 새로운 눈이 뜨였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또 무엇이 찾아올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실패로‘인도’하신 하나님

제대 이후 아주대학교에 편입했습니다. 그러다 덜컥 총학생회장 후보 제안을 받았습니다. 전년도 총학생회장이었고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김상민 의원이 저에게 차기 총학생회장 후보를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캠퍼스의 문화를 확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전 회장이 정치력도, 정치 기반도 없는 저에게요. 저는 후보로 등록하려면 졸업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학교를 위해 나의 인생을 걸만한 큰 도전’이라는 것과‘캠퍼스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공부해서 남 주는 캠퍼스를 만들어 보고 싶은 큰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30일 작정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강한 응답을 주시면 나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수원중앙침례교회 기도실로 달려가 기도했습니다. 약속된 날짜가 다가와도 마음에 깊은 감동이 없어 마음을 정리하면서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어느날, 기도하는중에제마음속에울림이있었습니다.“ 내가너를쓰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였습니다. 확신에 찬 감동과 하염없는 눈물이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세처럼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증거를 요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임용고사 학원에 등록했고, 이미 몇 번의 수업에도 참석했습니다. 만약 학원에서 임용고사 학원비를 전액 돌려준다면 출마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많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원에 사정을 말하니 아무 말 없이 전액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확실한 응답에‘21C 아주를 이끌어 갈 교육과 문화의 maker 빛과 소금 총학생회’라는 이름으로 학생회장 후보로 등록했습니다. 서로의 약점을 파고든 날선 비방 속에 선거 운동이 혼탁해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총학생회 선거에 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선거본부에‘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비방과 흑색선전이 아닌 정당한 정책으로 학우들의 마음을 움직이자’고 제안했고 선거본부가 함께 기도하고 새롭게 마음을 바로잡았던 기억이 납

니다. 1차 투표에서 우리 선본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고 이겼기 때문에 재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2차 투표는 방학이 다가와서 결집력이 센 NL계열 총학선본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21표차로 패했습니다. 함께 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안정되고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너를 쓰겠다’는 말씀만 확실히 믿고 달려왔고, 패배의 고배를 마셔 하나님을 원망할 법도 한데, 왜 제 마음이 편안했을까요? 이제껏 나의 편안함을 위해, 안정된 내 직장을 찾기 위해, 나만을 위해 달려 왔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학우들을 만나면서 공부해서 남 주는 학교를 만들어 보겠노라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입에 익숙한 꿈이 아니라 내 가슴속 꿈이 다져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쓰겠다’하시며‘실패’로 이끄신 이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눈이 뜨였지만 아직 하나님이 잘 쓰시려면 제 시야가 더 넓어져야 했습니다. 선거 후, 나 중심적 삶의 가치와 시야에서 벗어나 제 시야가 넓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기도 응답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저도 소명을 발견했어요

아주대에서 CCC를 만났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고,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말씀이 꿀보다 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순장에서 대표순장, 단기 선교의 리더 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의 리더를 맡으면서 제 리더십도 자랐습니다.

CCC에서는 매주 금요일‘리트릿’이라는 활동이 있었는데, 그 시간만 되면 저는 주눅이 들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자신의 꿈과 비전을 분명하고 소신 있게 이야기 하는데, 제 차례가 오면 저는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기계공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후 돈을 많이 벌면 선교사님을 후원하겠다”는 것이 대학 2학년 때까지 제 꿈이었습니다. 확신 있는 꿈이 아니었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은 기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 2학년 말 금식 수련회 때 100가지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한 후 고향인 울산을 찾았습니다. 후배들에게 어느 대학을 왜 지원했냐고 물었는데 학교는 달랐지만, 다들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점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그 한마디에 저는 꽂혔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제가 가진 재능과 장점을 파악하여 진로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으로 평가받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었지요. 후배들의 저와 다르지 않는 진로 선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아이들의 끼와 재능을 통해 진로를 발견해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제 소명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흥분한 상태로 고향에서 학교로 올라와 교학과를 찾았습니다. 교직은 2학년 때 신청하는 거라고 단칼에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꼭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제 확신과 소명을 밝히니, 그럼 학과장의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학과장님의첫마디는“너미쳤냐!”였습니다.“ 대기업에들어가면돈도많이버는데 왜 돈도 안 되는 교사를 하려고 해”라고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를 말리셨습니다. 그러나 확신과 믿음으로 교사의 길을 택했기에 학과장님의 말씀에 흔들리지 않았고, 제가 고민하는 문제가 돈의 문제가 아님을 확신하게 된 학과장님은 사인을 해 주셨습니다. 그후 저는 교사가 될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모하지만, 내 소명은 하나님이 열어 주실 줄 믿어요

그러다 대학 4학년 때 총학생회장에서 낙선하고 졸업도 연기된 시점에 다시 임용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금식수련회를 가야겠다는 생각하고 있을 때 교학과로부터 전화가왔습니다.“ 서울의인덕공고에서 기계과 시간강사를 모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졸업 연기 취소도 가능하다고 해 주셔서 인덕공고로 전화해 원서 접수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매년 드리는 금식수련회날짜와 겹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매년 드리는 금식수련회가 있는데 금식수련회를 마치고 원서를 내면 안 되겠습니까?”참 놀랍게도 그분이‘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금식수련회 이후에 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려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사장님 면접이 있으니 2월에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뛸 듯이 기쁘던 찰나, 그 날짜가 졸업하면서 후배들의 순장 수련회에 교육순장으로 섬겨 주기로 약속한때였습니다. 또 한 번 양해를 구했고, 교무부장님은 또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인덕공고에 아는 사람이 하나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교무부장인 이경식 선생님을 아는것도 아니었는데. 제가 생각해도 이 무모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강사로 임용되어 교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전화를 받으셨던 교무부장님인 이경식 선생님께 임용과 관련한 저의 당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실한 장로님이신 선생님도 제 요청에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임용중에금식수련회와 순장순련회때문에 이런 요청을 하다니 정말 믿음이 좋든지, 혹시 이단 종교를 믿는 사람은 아닐까?’하면서요. 나중에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내가 이 학교에서 해야 할 분명한 소명이 있어서 이곳에 하나님이 보내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 후, 우연히 건네 드린 기윤실 회보를 통해 이경식 선생님은 기윤실교사모임에 등록하셨습니다. 권역 멘토, 통일분과위원장을 역임하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며, 저의 멘토이기도 하십니다.


아이들에게는 경험이 중요해요

2000년 9월 정교사로 임용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들 중에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여행, 교회 수련회를 통해 경험한 캠프의 소중함은 저로 매년 아이들과 1박2일 캠핑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대학 시절 기획했던 문화거리 축제의 경험을 되살려 인덕 축제를 처음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끼를 발산하기 위한 자리였지요. 저도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을 따라 우연히 정신지체장애보육원에서 봉사활동 했던 기억, 대학 시절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참 좋았던 터라 나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봉사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평 꽃동네 봉사활동과 해비타트 운동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왜 이런걸 하냐’고 투덜대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찾아와 ‘정말 기억이 많이 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000 기독교사대회를 통해 연결된 기윤실교사모임, 청소년 문화에 눈을 뜨게 해 준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 운동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많은 방법, 아이들을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전문성 있는 기독교사로 성장하는데 큰 토대가 되었습니다.

정직 캠페인과 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 방법을 모색해 보고 이를 통해 흥미를 느낀 친구가 청소년지도학으로 진로를 정할 때 희열이 느껴지더군요. 되돌아보니 달려온 13년의 교사 생활, 바쁘게 성장하고 아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한 시간이었네요.


청소년진로연구회 비전코디 태동하다

제가 교사가 된 이유는 진로에 대한 고민에 있었습니다. 교사가 된 이후에도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관점에서 교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함께 운동으로 풀어내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기윤실 교사 모임의 꿈섬지기로 섬기면서 예수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개인 기도하며 예레미야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대한 파괴와 회복의 말씀이 저에게‘이 시대에 힘들어 하고 있는 아이들의 진로의 문제와 이 문제를 회복시키시겠다’는 말씀으로 다가와서 꿈섬 지체들에게 나눈 적이 있습니다. 참 놀랍게도 동일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세 지체(정연석, 명진희, 임종혁)들이 있어서 함께 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진로의 문제를 비단 진로진학상담교사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과 늘 만나는 담임교사가 풀어야 할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더 나아가 전 교사가 한 아이의 진로 개발을 위한 마인드를 갖고 접근해야만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학과 취업을 결정하기 이전에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바로‘자존감’이 향상되어야 생기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이 향상되려면 사랑과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의 자존감이 회복되

어야 비로소 새롭게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고민을 마태복음 13장 말씀의 씨 뿌리는자의 비유를 통해 풀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갈새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떨기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더라.”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다른 성질의 땅들이 이 시대와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좋은 부모 아래서 좋은 교육과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결실을맺지만,‘ 내가만나는아이들, 특성화 고등학교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갈등과 아픔이 깊어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 같은 환경에서 자라 열매를 맺을 기회도 없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묵상에 잠겼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구절이“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서”였습니다. 씨 뿌리는 자는 어떤 마음으로 뿌리러 나갔을까요? 분명자기가 갖고 있는 좋은 씨앗, 생명력 있는 씨앗을 뿌려 많은 열매를 맺고자 하는 마음으로 뿌리러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좋은 씨앗이 길가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본래 좋은 씨앗이었지만 길가와 돌밭에서 왜곡되게 자라 학교 현장으로 들어온 ‘우리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좋은 씨앗이었어. 그런데 이들은 왜곡되게 자란 자신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좋은 씨앗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아이가 자신이 좋은 씨앗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할 수 있다면,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그 땅을 개간해 주는 것, 환경을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전략이 PAUL 전략입니다. 비전코디는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학교 현장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진로 교육 프로그램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성경적 가치관을 녹여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갔습니다. 먼저 우리가 그린 큰 밑그림은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남들과 다른 모습 속에서 나를 이해하고 달란트를 발견하며 여러 가지 전략을 세워 자기만의 비전을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하나씩 살을 더해 나갔습니다. 무엇보다 단기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30년을 내다보고 준비할 수 있는 전략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각 단계의 앞 글자를 따서 바울(PAUL) 전략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좇는 것이 나의 꿈이다

저에게 꿈이 있다면 매순간 제게 주어진 일에 소명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게 맡겨진 학교의 아이들, 학교 업무,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빠, 그리고 아들과 사위, 교회에서는 맡겨진 여러 사역들 속에서 말입니다. 순간순간 제게 맡겨진 일에 순종할 때 여러 일들을 통해 준비시키고 계신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아파하시고 있는 부분을 느낄 수 있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분야를 보는 순간 그것이 제 꿈이 되고 저의 소망이 되고, 제 삶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일을 회복하는 일! 그래서 제가 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읽는 통찰력과 실행하고자 하는 순종의 마음이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도한답니다.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는 마음으로 늘 제 삶을 돌아보고 교단에 서는 것이 제가 지금껏 살아온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제가 만들어 가는 꿈이 아니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좇아 행할 때 저의 계획보다 더 큰 계획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더욱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에 개입하시고 성장시키셔서 여기까지 오는 것을 경험했기에 두려움 없이, 따지지 않고, 더욱 달려갑니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교사로 부름 받아 청소년 문화의 흐름 안에서 각자에게 맞는 다른 영역을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공교육 속에서 음악 치료를 통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아내의 비전, 공교육 속에서 성경적 진로 교육을 통해 아파하는 아이들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저의 비전, 하나님께서는 이제껏 이 방향으로 이끌어 주셨는데, 앞으로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게 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께서도 선생님만의 좋은 씨앗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씨앗을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선생님의 방법으로 접근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그 학교의 기독교사로 세우신 이유는 선생님이 가지신 좋은 씨앗을 통해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분야를 치유하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선생님을 통해서 누구나 똑같은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학교를, 학생을 변화시키실거라 확신합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이강은 선생님은 빛나지 않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며 우리가 만나는 모든 학생들의 빛깔은 각기 다른 무지개 색깔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선생님 말씀처럼‘진로를 단지 진학으로 풀려고 한 것이 아닌가’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들꽃 같은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돌아보는 농부 같은 선생님을 만나 참 좋았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 들고 계신 스마트폰으로 꼭 찾아보세요.‘ 아이들의 Up Dream은 교사의 엎드림에서!’내가 엎드려서 Up시키고 싶은 아이의 꿈이 눈에 보이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