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병오 칼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0년 4월호)

“야! 정병오. 나 ○○○ 선생님이다.”

작년 이맘때쯤 중학교 시절 은사님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중학교 졸업한 지가 30년이 지났고, 그동안 한 번도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니 너무 반갑고 또 죄송했다.

“정병오, 너 정말 작고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이후 고향 방문길에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께서 중학교 시절 내 모습을 추억하며 하신 말씀이다. 우리 학교에 초임으로 부임해 오셨던 그 선생님은 우리와 띠 동갑의 젊은 나이에다가 모교 출신인지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고,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돌봐 주셨다. 선생님은 ‘인물’ 감으로 보이는 아이는 그 방향으로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채찍질하셨고, ‘돌봄’이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그 방향으로 사랑을 쏟아 주셨던 것 같다. 그때 나를 향한 선생님의 애정은 아마 ‘돌봄’의 사랑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정말 그랬다. 중학생 시절 나는 체격이 작았을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자신감이 없고 심약한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의 장난 반 동정 반 몰표를 받아 반장이 되었는데, 제대로 친구들을 이끌지 못해서 자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체육 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지레 알아서 “야! 병오 운다. 우리 빨리 줄 서자!”라고 했을 정도다.


야! 병오 또 운다

선생님이 묻지는 않으셨지만, 선생님의 표정에서 ‘그렇게 심약하고 소심했던 아이가 어떻게 그래도 사회의 한 분야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지?’ 하는 궁금증이 읽혀졌다. 이 질문은 내가 나를 향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심약하고 소심한 면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이러한 연약함 때문에 늘 괴로워한다. 그렇기에 내가 특별히 변화된 것이 아니고, 누구나 그렇듯 어른이 되면서 갖게 되는 약간의 자신감이나 사회적 지위가 주는 포장에 의해 이 연약함들이 어느 정도 가리워진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해 버릴 수 없는 것은 어릴 적 나를 지배하던 그 연약함 가운데서도 이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어린 내 속에 있었고, 그것이 점차 자라서 지금의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즉, 중학생 시절 주변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나 역시 감지하지 못했지만, 그 작고 심약하고 소심했던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자라나 내 본성의 연약함을 덮을 뿐 아니라 그 연약함의 속성을 바꾸는 역할까지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듣는 말씀, 읽는 말씀

이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따라가 보니, 성경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어릴 적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연약한 신체 조건과 심약한 심성으로는 당시 거친 시골의 형들과 친구들의 놀이 문화에 끼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읽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는 읽을 책이 별로 없었고, 자연스럽게 성경을 많이 보게 되었다.

QT를 제대로 배운 것은 대학 1학년 때였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모세5경의 제사나 율법 부분, 그리고 예언서 부분 등 어려운 부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들은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고,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그 내용에 근거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거나 나를 비추어 보고 교회나 내가 속한 공동체를 비추어 보고 간단하게나마 기도하는 생활을 했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단지 문자가 아닌 내용으로 이해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일학교와 예배를 통해 말씀을 누적으로 들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별히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어른 예배에 참석했는데, 주일 오전 예배뿐 아니라 저녁 예배, 수요 예배까지 참석했고, 부흥회, 수련회, 지역 연합 순회 예배 등에도 빠짐없이 참석했기 때문에 다양한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 말씀들이 내가 읽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말씀 위에서 나는 내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생 시절 내가 들었던 말씀과 읽었던 말씀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나를 나 되게 하는 ‘절대 기준’의 역할을 해 주었던 것 같다.

사춘기라는 시기가 그 동안 자기를 지탱해 주던 환경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자기 자신이 되는, 그래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주변을 받아들이는 시기다. 그런데 어차피 인간이란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해 완전한 진공 상태에 자기를 세울 수는 없고 어딘가에 기반을 두어야만 독립도 가능하고 자기 주체성도 가능하고 이에 기반해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자신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세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기존에 자신을 지탱시켜 주던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새로운 관계를 맺지도 못해 서로가 힘든 경우가 많고, 이런 어려움은 세상 가운데서 당당하게 자신을 펼쳐 자기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그 본성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제대로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할 여건이었지만, 듣고 읽고 묵상하는 그 말씀이 절대적 기반이 되어 주었기에 제대로 된 독립과 자아의 확립, 세상과의 관계 설정을 조용하지만 내실 있게 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고등학교나 대학 생활에서 혹 어떤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자기 삶을 뿌리내릴 든든한 기초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주변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사춘기를 말씀 위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확인한다.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의 근거 위에 나를 세워 가는 과정은 유약하고 소심했던 나에게 생각하는 힘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담대함과 실수 가운데서도 침륜에 빠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도 주었다. 말씀이라는 절대 기준이 있기에 그 외 세상의 모든 지식과 기존의 질서와 관행에 대해서 상대화하고 자유롭게 비판하고 다르게 상상할 수 있었고, 지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도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나 판단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표현하는 일에도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덜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볼 수 있고, 내가 말씀을 잘못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진리의 근거 자체가 무너지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에 내 삶을 맡기며

가끔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 시절의 학교 친구들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깜짝 놀란다.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릴 때 내가 좁은 의미의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있으나 교육 개혁이나 사회 운동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반면 중고등부나 대학 시절에 신앙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종교 활동과 사회 운동이 결합된 내 삶에 대해서 아주 잘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아마도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은 내게 주어졌던 본성적 외피 안에서 말씀에 근거한 씨앗이 자라나는 시기였고, 이 말씀에 근거한 씨앗이 본성적 외피를 새롭게 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분리된 상태로 교회 안에서만 드러났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대학 이후의 시기를 거치면서 말씀에 근거한 새로운 나의 씨앗이 인간 본성적 연약함과 결합되고 일치되어 그것을 새롭게 하는 단계로 조금씩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도 인간적인 한계로 인해 고민하고 아파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말씀이 주는 자유와 능력을 덧입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말씀의 이끌림을 받아 변화될 내 모습을 기대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