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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2010년 2월호)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이 노래지고

고등학교 1학년 말 나는 교회 중고등부 학생회에서 총무라는 직책을 맡았다. 중고등부 다 합해서 20명 조금 넘는 작은 규모였지만, 처음 임원을 맡은 나는 의욕에 넘쳐 있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시작한 일이 우리 학생들이 즐겨 부르던 복음 성가들을 모아 교회 중고등부의 찬양집을 묶어 내는 일이었다. 저작권 개념이 별로 없던 당시로서는 여러 출판된 찬양집의 찬양 가운데 필요한 곡만 골라 복사해서 교회 이름으로 제본해서 펴내는 일은 여느 교회 중고등부나 청년부에서 많이 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찬양집이 제작․보급되면 엄숙하고 답답한 교회 문화를 다양한 영적 감성을 표현하는 활기찬 분위기로 바꾸는 데 많이 사용되곤 했다.

딱히 반대는 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적극성을 보이지 않던 다른 임원들의 우려를 믿음 부족으로 돌려 버리고 마음 맞는 친구 한 명과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그래서 선곡과 초본 편집을 마치고 복사와 제본을 앞둔 상황에서 담임 목사님을 찾아갔다. 복사와 제본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받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른들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 귀한 일을 어린 학생들이 추진한 것에 대한 칭찬과 지원을 기대하던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목사님의 꾸중 앞에서 적잖이 당황했다. 목사님은 교회에 경박한 복음 성가 문화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셨고, 우리로서는 매우 깊은 신앙과 헌신의 표현이었던 책 제작에 들인 수고를 ‘공부할 학생들이 쓸데없이 교회에 모여 노닥거리며 난로 기름만 낭비하는 활동으로 일축해 버렸다. 물론 지도 교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목사님께로 찾아온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일장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날 목사님께 호된 꾸중을 듣고 나오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이 노랗게 변해 거의 쓰러질 뻔했던 사건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정신적 성인식을 치렀다.

찬양집 제작과 관련해 목사님께 혼난 후 한참을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풀어야 할지 몰라 고심하고 헤맸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사건은 이후 내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겪게 될 인생 경험의 모티브였다.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중고등부 학생회 총무 1년, 회장 1년의 직책을 맡으면서 그보다 더한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하다가 그 무거운 책임감에 눌려 쓰러지기도 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서 도망치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기도 했고, 또 여러 미숙함으로 인한 상처를 주고받는 한가운데서 괴로워하기도 했다.

고등부 회장을 그만둔 이후 6개월, 그리고 대학 1학년 생활을 합해 1년 6개월 정도가 어떤 책임을 맡지 않은 유일한 기간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 기간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유무형의 책임을 졌고, 비록 그 책임을 잘 감당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도망치지는 않고 감당했고 감당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고1 말 겪었던 찬양집 사건은 신앙적 혹은 정신적인 면에서 일종의 성인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건 전에는 나는 아이였다. 그냥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내 인생이라는 것은 사회 가운데 있는 것이고 그들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실제로 나이가 들고 선배가 되어 갈수록 구체적인 직책을 맡는 것과 관계없이 더 많은 책임과 짐들이 주어졌고, 그것은 끝없이 이어질 뿐 아니라 갈수록 더 무거워져 가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지친 것일까 아니면 요령을 피우는 걸까?

내 나이 40대 중반, 직책과 나이와 책임에 따른 수많은 다양한 책임의 짐을 지고 말 그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 왔기에 이제 이 짐을 지는 데 있어서는 전문가나 달관의 경지에 도달해 있어야 하겠건만 이상하게 갈수록 이 짐을 지고 가기가 더 힘들다. 분명히 이전에 이미 졌고 극복했던 문제건만 이제 작은 자극에도 심하게 떨리고 빨리 이 문제를 벗어나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너무 쉴 새 없이 달려와 지친 것일까? 아니면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입덧도, 배불러 불편함도, 산통도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인 줄 알고 견뎠는데, 둘째부터는 그 고통의 과정을 아니까 자꾸 요령이 생기면서 그 고통의 과정을 견디기가 더 힘들어지더라고요”라는 아내의 말처럼 내가 요령을 피우고 있는 것일까?

하여간 경험이, 인생의 연륜이 날로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인생의 책임과 짐을 이겨 나가는 본질적인 힘이 아님을 요즘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문제 해결의 두 가지 지혜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것은 직책과 나이와 책임에 따른 인생의 짐들이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올 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 세상 가운데는 피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십자가 그 그늘, 예수님의 품 안으로 더 속히 뛰어내린다. 그래서 우선 내가 지고 간 그 짐의 종류나 그 가운데서 내가 입은 상처나 내가 했던 실패와 허물에 관계없이 우선 그분의 품이 주는 따뜻함 가운데서 우선 원기를 회복한다. 그런 다음에 내 짐 보따리를 풀어 놓고 그 짐 하나하나를 아뢰며 그 분이 친히 이 짐을 져 주시길, 혹은 내게 그 짐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이런 방법으로 짐을 풀어 가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짐은 결코 그 짐이나 혹은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 그리고 가까운 과거와 미래만을 봐서는 결코 풀 수가 없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나는 유독 이 많은 짐을 지고 가야 하는 것인지, 이 짐을 언제까지 지고 가야 하며 이 짐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나는 나의 잘못과 무관하게 이렇게 오해와 비난을 받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인지, 왜 나는 속 시원하게 내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그것을 조정하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인지, 과연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과연 내가 참고 인내해야 하는 한계가 어디고 어디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하는 부분들은 오직 하나님께 시각을 맞추고 그분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훈련을 하고 천년을 하루 같이 보시는 그 분의 시간 계획으로 보아야만 문제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매고

타락 이전 에덴에서의 삶이 아무런 삶의 부담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에 책임을 맡아 그 책임에 대한 짐을 지고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는 삶이었듯이, 우리의 육체의 장막을 벗고 들어갈 영원한 안식의 세계 역시 어쩌면 이 땅에서 감당하는 책임과 짐보다 더 많은 책임과 짐을 지는 세계 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책임과 수고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것이기에,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지는 것이기에 쉽고 가벼울 따름일 것이다.

이제 종말론적 시각에서 다시 지금 내게 주어진 책임과 그 무거운 짐의 무게 앞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단지 내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 옆에서 쉬려고 하지 않고, 그 십자가에 나를 매달아 못 박는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살아난 새로운 내가 주님의 그 마음과 시각으로 다시 내 짐을 보고 그 짐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수많은 사람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며 각각의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내 짐에 붙어 있는 불필요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다. 그리고 훨씬 가벼워진, 그렇지만 내게 주어진 본질적인 책임과 짐을 다시 멘다. 그리고 다시 내가 부름받은 그 현장에 선다. 그렇게 오늘을 다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