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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자녀가 마음대로 안 될 때(2010년 10월호)


 자녀가 마음대로 안 될 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출석하던 교회가 설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외곽 지역에 교회 개척을 하는데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본 교회는 주일 오전 예배 장년 출석 인원이 350명 정도 되는 규모라 한국 교회 일반 규모로 볼 때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교회의 건강성과 온 교인들간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는 이 정도 규모에서 계속 분립개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교회가 이를 수용한 상황이라 나는 집에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개척 멤버로 지원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비록 이 문제를 놓고 가정예배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쭉 해왔지만 기본적으로 개척교회 참여 결정은 부모의 신앙적 결단의 문제였지 아이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는 아니었다. 다행히 분립개척에 참여를 한 20 가정 가운데 둘째, 셋째, 넷째 아이의 경우에는 친했던 또래 친구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첫째의 경우 친했던 친구들과 모두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분립 개척된 교회에서 첫째 아이는 또래의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다가 중고등부에서 자신이 제일 선배 노릇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첫째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인데다가 어려서부터 과도한 언니 노릇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가진 아이였다. 거기다가 그는 아직 부모로부터 건강한 독립을 해야 하는 사춘기의 터널을 한참 지나고 있었고,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도 고난의 연단을 거치지 않은 부모라는 온실 속에서만 길러진 연약한 상태였다. 그런데 개척 교회에서 그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중고등부의 기틀을 잡고 앞으로 올라올 후배들의 좋은 신앙적 선배 역할이었다. 누구도 이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직감으로 느꼈을 것이다.  


나의 원칙을 깨야 하는 상황 앞에서

그래서인지 첫째는 처음부터 교회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주일을 너무 힘들어했다. 사실 그는 본 교회 중고등부에 다닐 때는 중고등부 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중고등부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본 교회 중고등부를 너무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런 첫째 아이에게 새로운 교회의 의미나 가족이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설명을 했지만 이미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설득이 될 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은 본 교회 중고등부에 다니게 해주면 안 되겠냐고 간절히 호소를 했다. 부모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될 때까지 뻗대는 스타일이 아니라 부모의 뜻을 살펴서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힘들어하는 첫째의 스타일을 잘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첫째 아이가 원하는 본 교회 중고등부교회에 출석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우선 그 때 교회를 새롭게 개척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는 ‘가정 중심’이었다. 그래서 주일예배도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참석하는 세대통합예배로 드렸다. 그리고 신앙교육도 교회교육이 중심이 아닌 가정이 신앙교육의 중심이 되고 교회교육이 보조적 역할을 하는 모델을 만들려고 노력중이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 매일의 가정예배를 통해 주일날 온 가족이 함께 받은 말씀을 나누고 큐티를 나누고 함께 기도함을 통해 교회와 가정이 유기적으로 묶이고 온전하게 성장하는 틀을 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이 일에 우리 가정이 모범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우리 가정이 먼저 균열을 보이기가 싫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부모와 함께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중고등학생 시기에 기숙사 학교나 조기 유학 등으로 인해 부모를 떠나 있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싸우더라도 집에 있으면서 싸워야 하고, 고등학생 때 대부분의 아이가 하숙생 같은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아침과 밤 시간 잠깐잠깐이라도 부모 얼굴을 보고 짧은 대화라도 나누는 생활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부모 자식간에 나중에까지 이어지는 끈끈한 정이 있고, 이러한 정을 통해 스며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중3, 거기다가 자기 나름의 체험적 신앙이 견고하게 서지 않은 아이를 부모와 다른 교회에 보낼 때 아이가 제대로 교회 생활을 해 나갈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혹 이러다가 아이가 제대로 교회 생활을 해 나가지 않고 자기 신앙도 안착이 되지 않을 경우 하나님에게는 물론이고 아이에게도 죄를 짓는 것이 될까봐 조금 더 붙들고 있고 싶었다.


그 결정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

하지만 사람이 늘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해야 할 상황도 많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이가 부모와 함께 교회 생활하는 것의 교육적 타당성과 기독교적 정당성만 고집하다가는 자칫 아이의 신앙이 제대로 꽃 피지도 못하고 부모의 권위에 막혀 시들어버릴 것 같은 우려가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비록 아이의 교회 생활을 독립시켜줌으로 인한 교육적 취약성과 신앙적 방종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쪽의 위험이 덜하겠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본 교회 중고등부로 돌려보내겠다는 판단을 하고 나니 내가 내려놓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겨졌다. 우선 첫째가 개척 교회의 중고등부의 기초를 잡고 후배들을 세워주는 선배로 역할을 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소망이고 아이에게도 큰 축복이 되겠지만 본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한 부모의 욕심이고 아이에게는 부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중심의 교회를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 우리 가정이 모범이 되고자 하는 부분도 내려놓아야만 했다. 비록 가정중심의 교회가 성경적인 원리에 맞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첫째가 교회를 옮김으로 인해 나와 우리 가정은 하나의 이빨이 빠지게 되었고, 모범이 될 수는 없었다. 단지 모범이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개척 교회를 하면서 함께 헌신하자고 하고 이런 개척교회에서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이 자녀교육에도 좋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자기 딸은 그래도 교육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교회로 보냈다는 비난의 근거도 될 수 있는 여지도 감수해야 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맛보며

결국 첫째는 교회 개척 이후 1년 여 만에 본 교회 중고등부로 돌아갔다. 감사하게도 그는 전에 그가 불만족하던 중고등부의 여러 상황들을 감사의 제목으로 받아들여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입 과정에서 만난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키심에 대한 체험들을 하면서 부모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하나님을 알아갔다. 고등부에 올라가서는 중고등부의 임원을 맡아 공동체를 섬기는 훈련의 맛을 알아갔고, 그 이후에도 선배로서 후배들의 신앙상담과 돌봄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바쁜 고3 여름방학의 시간을 쪼개 3박 4일간의 중고등부 수련회에 온전히 참석했을 뿐 아니라 후배들 한 명 한 명을 붙들고 이야기를 해 주고 기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기는 하지만 특별히 자녀를 키우다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마다 부모는 조금씩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 내려놓음에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나 내가 아이의 미래를 다 책임지고 챙겨주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은 물론이고 때로 선한 교육적 원칙이나 믿음의 원칙까지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내려놓음과 동시에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원칙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아이 인생의 주인이시며 그 아이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 믿음 위에 굳건히 서야만 자녀 교육과 관련된 위기 상황 가운데서도 인내를 가지고 자녀를 지켜볼 수가 있고, 자녀에 대한 신뢰의 끈을 유지할 수가 있고, 자녀와의 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나빠지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그래야 결국 자녀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영광을 맛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