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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이런 기도

이런 기도

 

 

 

방학이 너무 짧았습니다

잊고 털어야 할 이름들은 아직 손에 쥐여 있고

사랑하기로 다짐할 이름들은 채 쓰지도 못했습니다

지나간 저 해 어린 이름들 속에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이 소복한 들꽃처럼 정답게 있어

당분간은 쉬이 놓지 못할 것인데

다가올 이 해 어린 이름들은

하나 같이 빳빳한 엉겅퀴 같아 겁부터 지레 나서

쉬이 못 잡기도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외로이 가방에 담겨 학교로 오는데

가방도 못 열고 다시 그 가방에 담겨

그대로 집에 돌아가는 아이가 올해도 더러 있을까

참 두렵기도 하겠습니다

가르침 너머와 배움 너머

그 지점을 꿈꾸며 양쪽에서 모래성을 쌓다

흙만 만지며 희미한 성처럼 사라지는 날들도 더러 있겠습니다

무엇엔가 우리는 저마다 불안하여

믿고 싶다가도 결국 저버리고 싶은 날들을

끝도 없이 계속 해서

살아 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늘 그러셨듯

그럼에도불구하고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러나로 우리를 수차례 역전시키셨다가

그리하여로 다시 이 터전에 부르시는

당신만의 접속사 뒤에

오직 한 줄의 소명처럼

저희를 놓아 두십시오

딱 하루만 더 방학을 달라고 조르고 싶은

개학 전야

아직 가야 할 길을

이미 가 본 이들처럼 걸을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주십시오

이런 기도라도 들으신다면